바보야, 문제는 돌봄이야

7월 9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은 보여주기식 법안이 아니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생후 두 달 정도 된 아기가 엄마 품에 안겨 곤히 자고 있습니다. 이 작은 아기를 안고 국회 기자회견장에 선 여성은 용혜인 기본소득당 의원입니다. 용 의원은 출산 휴가와 재택근무에서 복귀하던 날, 아기와 함께 국회에 출근했습니다. 우리나라 국회에서 자주 볼 수 없는 조금은 낯선 풍경에 일제히 스포트라이트가 쏟아졌습니다. 복귀하자마자 용 의원은 ‘국회 회의장 아이동반법’을 발의해 빠른 처리를 촉구했습니다.

국회법 151조에 따라 국회 회의장에는 아기가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의원과 국무총리, 국무위원 또는 정부위원, 그 밖에 의안 심의에 필요한 사람과 의장이 허가한 사람 외에는 출입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아이동반법에는 여성 의원이 수유가 필요한 24개월 이하 영아를 국회 회의장에 동반할 수 있도록 허용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진짜 변화를 위한 ‘보여주기’는 계속되어야 한다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이 생후 두 달 된 아들을 데리고 국회에 출근했다. ©용혜인 의원실
장하나 전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신보라 전 미래통합당 의원에 이어 현역 의원의 세 번째 출산이지만, 국회에서는 임신과 출산, 육아하는 의원들을 위한 제도가 턱없이 부족합니다. 아기의 회의장 출입이 불가한 것은 물론, 수유실 등 시설은 열악하거나 부족합니다. 더 놀라운 것은 국회의원은 출산·육아 휴직을 신청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관련법이 없기 때문입니다. 용 의원은 국회에 출석하지 않을 때 사유와 기간을 적어 제출하는 서류인 ‘청가서’를 국회의장에게 내는 방식으로 45일간의 휴가를 겨우 얻을 수 있었습니다. 물론 오랜 세월, 대부분 국회의원이 출산이나 육아와 직접적인 관계가 없는 나이 많은 남성과 여성이었던 영향도 있겠죠. 하지만 최근 들어 용 의원과 같은 젊은 정치인들의 국회 입성이 잦아지고 있는 만큼 개선이 필요합니다.

일각에선 용 의원의 행보에 대해 ‘보여주기식’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습니다. 직장에 아이를 데리고 가서 일하는 게 일반인들에게는 비현실적이라는 것입니다. 국회의원이니 가능한 일 아니냐며 노골적인 불만을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 용 의원은 “국회가 일하면서 아이를 돌볼 수 있는 장소가 되는 것은 매우 상징적인 의미”라며, “법안이 통과되면 육아에 대한 공적 지원의 필요성을 사회에 환기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임신, 출산, 육아에 대한 부담이 저출생 문제의 원인”이라며, “공적 지원을 늘리고 성 평등한 돌봄 시스템을 마련해야 저출생 문제도 풀어갈 수 있다”라고 덧붙였습니다. 우리나라 저출생 문제는 국가적 위기인 수준입니다. 용 의원이 지적했듯, 결국 돌봄 문제를 해결해야만 풀릴 수 있습니다. 용 의원의 아이 동반 등원이 단순한 보여주기로만 읽히지 않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돌봄에서 꼬인 매듭 풀어야 저출생 문제도 해결

©Adobe Stock
지난달 통계청이 발표한 인구동향 자료에 따르면 지난 4월 출생아 수는 2만2천여 명입니다. 1981년 관련 통계 작성 이래 가장 적었습니다. 지난해 한국 합계 출산율은 0.84명을 기록한 가운데 일각에서는 올해 출산율이 0.70명대로 떨어질 것이라는 어두운 전망마저 나옵니다. 저출생의 원인은 경제적, 사회·문화적, 가치관의 측면 등이 다양하게 얽혀 복합적입니다.
홍남기 경제부총리가 '제3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 추진 과제'를 발표하고 있다. ©기획재정부
그중에서도 돌봄 문제는 핵심으로 꼽힙니다. 정부가 저출생 정책 관점을 ‘출산 장려’에서 ‘개인 삶의 질 향상’으로 전환한 것도 돌봄 문제가 해결되지 않고서는 저출생의 늪에서 빠져나올 수 없다는 위기의식이 작용한 것으로 보입니다. 실제, 출산과 돌봄을 포함한 육아 부담이 여성에게만 집중된 것에서 저출생 현상 원인을 찾았습니다. 이에 따라 정부는 ‘제3기 인구정책 태스크포스 추진 과제’를 발표하며 “초등돌봄 연장과 온종일돌봄 서비스 확대, 민간돌봄 관리 강화 등 자녀돌봄 서비스를 대폭 강화하겠다”는 계획을 밝혔습니다. 대통령 직속 경제사회노동위원회가 개최한 돌봄 관련 토론회에서는 돌봄의 책임을 사회 전체가 부담하고 이를 지원하기 위한 사회적 대화가 필요하다는 제안들이 쏟아졌습니다. 전문가들은 “돌봄 서비스가 필수노동 영역으로 재조명되고 있지만, 민간시장에 과도하게 의존하고 있다”라고 지적하며 “공공선으로써 좋은 돌봄을 위한 법·제도·정책과제를 모색하는 대화의 틀이 마련돼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돌봄이 한 가정만의 책임이 아님을 공감하는 문화

레베카 켈리 슬로터 미 연방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이 청문회 증언 중 모유 수유를 하고 있다. ©트위터
다시 회의장으로 돌아가 보겠습니다. 미국과 유럽, 호주, 뉴질랜드 등 해외에서는 자녀와 함께 국회 회의장에 참석하는 것이 낯설지 않습니다. 출입은 물론 아이를 안고 연설하는 것, 회의장 안에서의 모유 수유도 가능합니다. 미 연방 공정거래위원회 레베카 켈리 슬로터 의원은 지난해 청문회에서 증언하며 동시에 자녀에게 수유해 화제가 된 적이 있습니다. 슬로터 의원은 “팬데믹은 자녀 돌봄을 스케줄대로 진행되지 않게 하고 이것은 일하는 부모들의 현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만약 우리나라에서 이런 일이 있었다면 갑론을박 논쟁이 치열하게 벌어졌으리라 상상됩니다. 미국에선 이 일이 문제로 떠오르지 않고, 오히려 팬데믹 때문에 자녀를 둔 워킹맘, 워킹대디의 상황을 이해하는 계기가 됐다며 칭찬이 쏟아졌습니다.

미래통합당 신보라 전 의원이 출산 휴가를 가는 것이 보도되자 ‘국민의 대표가 45일 동안 자리를 비우는 것이 말이 되냐’는 댓글이 꽤 달렸습니다. 신 전 의원 측은 “90일 휴가도 검토했지만 45일을 쉬는 것조차 못마땅하게 보는 분들이 있었다”는 이야기도 전했습니다. 신 전 의원 사례뿐만이 아니라 직장에서 임신과 출산, 육아가 ‘민폐’로 인식되는 경험을 해 본 여성들이 꽤 있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시스템이 부족한 것도 문제이지만, 우리 사회 구성원들이 임신과 출산, 육아를 바라보는 시선을 바꾸지 않는다면 저출생 문제는 절대 극복할 수 없을 것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용혜인 의원의 ‘아기 동반법’ 이슈를 살펴보며 저출생과 돌봄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뉴 룰스》, 《일할 수 없는 여자들》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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