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곳
5곳. 전국에 있는 이베이의 물류센터 3곳과 신세계의 물류센터 2곳을 더한 숫자입니다. 이베이의 물류센터는 용인과 동탄과 인천에 있습니다. 신세계의 물류센터는 용인과 김포에 있습니다. 전 국민 70퍼센트를 사정권 안에 둔 쿠팡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신세계의 이베이 코리아 인수가 우려를 낳고 있는 부분입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유통 사업을 하려면 쿠팡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입니다. 이베이도 상수가 된 변수 쿠팡을 회피했습니다. 이베이를 인수한 신세계도 목표는 타도 쿠팡일 수밖에 없습니다. 관전 포인트는 용진이 형이 과연 쿠팡의 로켓배송 풀필먼트 시스템을 깰 수 있을 것이냐겠죠. 그런데 이번 인수로 확보한 풀필먼트 시스템의 전초 기지인 물류센터가 너무 적습니다. 이베이 인수가 너무 많이 주고 너무 적게 얻은 딜이 아니냐고 비판받는 이유죠.
정용진 부회장은 이베이 코리아 합병으로 270만 고객을 확보했다고 자랑합니다. 문제는 실체입니다. 이커머스 기업에서 회원 수는 더 이상 주요 지표가 아닙니다. 이커머스의 디지털 침투율은 다른 산업에 비해 월등합니다. 다들 이커머스 회원 아이디 하나쯤은 키우고 있단 얘기죠. 오히려 요즘은 휴면 회원이 활성 회원보다 많을 정도입니다. 다들 지마켓과 옥션의 회원일 테지만 벌써 수년째 쇼핑은 쿠팡과 무신사에서만 해온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자연히 충성도도 높지 않습니다. 약간의 가격 차와 약간의 배송 차로도 소비자들은 금세 떠나갑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을 락인시키기가 쉽지 않단 말이죠. 그런데 이베이에서 회원 수를 빼면 솔직히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이베이의 물류센터는 고작 3곳뿐입니다. 유통사가 직접 물건을 직구매해서 보관할 필요가 없는 오픈마켓 플랫폼이니까요.
정용진 부회장은 한국형 월마트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미국 시장에서 숱한 유통 강자들을 침몰시켰습니다. 아마존겟돈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죠. 시어스나 토이저러스처럼 아마존의 성장과 함께 무너진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을 통칭합니다. 그런데 미국 시장에서 아마존에 맞서 싸워 이겨낸 유통 기업이 있습니다. 월마트입니다. 월마트는 온오프라인 통합에 성공한 유통 플랫폼으로 꼽힙니다. 월마트의 온라인 부문 매출 비중은 50퍼센트에 달하죠. 월마트를 아마존겟돈에서 구한 인물은 2014년부터 CEO를 맡고 있는
더그 맥밀런입니다. 더그 맥밀런은 월마트의 트럭 하역 업무 보조에서 출발해서 최고경영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비유하자면 배송 기사님이 신세계의 부회장이 된 거죠.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의 전략은 신세계의 좋은 벤치마크입니다. 특히 베인앤컴퍼니에서 이마트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정용진 부회장의 오른팔
강희석 대표는 자타공인 월마트 전문가입니다.
더그 맥밀런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데이터 드리븐과 옴니 채널입니다. 더그 맥밀런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제품의 수요를 예측하는데 탁월한 전략가입니다. 데이트 마니아인 강희석 대표와 여러모로 닮았죠. 아마존도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수요를 예측합니다. 월마트가 아마존보다 앞서는 건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고객과 접촉하면서 수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수요 예측은 월마트만의 최대 강점입니다. 재고를 최소화하고 판매를 최대화할 수 있죠. 여기에 클릭 앤 콜렉스 서비스를 접목했죠. 고객이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다음에 오프라인 월마트 매장까지 차를 몰고 옵니다. 대기 중이던 월마트의 퍼스널 쇼퍼가 곧바로 물건을 주차장까지 가져다가 차에 실어 줍니다. 일종의 드라이브 스루 쇼핑을 도입한 거죠. 한국과 달리 택배를 통한 당일 배송이 보편화하기 어려운 대륙 국가 미국에선 확실히 효과 만점인 서비스입니다. 온라인 쇼핑과 오프라인 쇼핑을 하이브리드했단 점에선 옴니 채널의 가능성을 입증한 부분이죠. 여기에 한 가지 전략이 더 있습니다. 신선 식품입니다. 먹거리를 유통하는 신선 식품 시장은 콜트 체인망을 갖춰야만 합니다. 이커머스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분야죠. 월마트의 미국 식료품 시장 점유율은 60퍼센트에 달합니다.
사실 월마트와 이마트는 인연이 깊습니다.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할 때 구상했던 대형마트 사업의 벤치마크가 바로 월마트였죠. 당시 CJ그룹 역시 대형마트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삼성가의 장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고모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업 구상을 전해 듣고 대형마트 사업을 접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때부터 신세계그룹은 위기 때마다 월마트의 사업 전략을 연구해 왔습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월마트 최고경영진과 면담을 한 적도 있죠. 이번에도 정용진 부회장은 월마트에서 답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아마존인 쿠팡에 대항하려면 신세계가 한국의 월마트가 돼야 한다는 그림이죠.
가능합니다. 물류센터는 아직 5곳뿐입니다만 대신 형에게는 160척의 전국 매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마트의 전국 160개 매장은 쿠팡의 전국 100개 물류센터 못지않은 유통 인프라입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입니다. 월마트의 옴니 채널 전략인 좋은 벤치마크입니다. 전국 이마트 매장들은 단숨에 전국을 신세계 용진이 형 배송의 사정거리 안에 묶어줄 교두보입니다. 게다가 쿠팡 로켓배송에선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는 이미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입니다. 물류센터 화재 사건으로 드러난 쿠팡 배송 시스템의 비인간성은 쿠팡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졌죠. 용진이 형이 이커머스에서 쿠팡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한다면 시장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수익률을 최우선시해온 투자자들조차도 ESG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쓱닷컴 시절부터 강점으로 인정받아온 신선 식품 배송까지 결합하면 한국의 월마트가 현실이 됩니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로 월마트는 물론이고 카르푸까지 한국 시장에서 퇴출한 저력의 기업 집단입니다. 이베이 인수로 쓱 반전의 기회를 잡은 건 맞죠. 게다가 이베이가 보유한 스마일 배송은 비장의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스마일 배송은 오픈마켓형 풀필먼트 시스템이라고 불립니다. 직매입은 하지 않지만 유통사가 판매와 배송과 반품 같은 유통 부문을 책임져 주는 방식입니다. 스마일 배송은 백화점 모델로 성장해 온 신세계그룹과는 궁합이 잘 맞습니다. 아직 물류센터가 고작 5곳 뿐일진 몰라도 반전 카드는 있단 말입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물류센터망 확충에 앞으로 1조원 이상을 더 투자할 계획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