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진이형의 신세계
 

7월 12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정용진의 신세계는 이베이를 품고 타도 쿠팡 할 수 있을까. 

©일러스트: 유덕규/북저널리즘

3,400,000,000,000원 


3조 4400억 원. 용진이 형의 신세계가 이베이 코리아에 베팅한 금액입니다.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은 소셜네트워크 유니버스에선 용진이 형으로 통하죠. 정 부회장은 재벌 오너 가운데 SNS 소통에 단연 열심입니다. 용진이 형이 관종이라서일까요. 아닙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장사꾼이기 때문입니다. 정 부회장은 비유하자면 현실 세계의 김주원입니다. 드라마 〈시크릿가든〉에 나온 백화점 아들 김주원 말입니다. 백화점 아들은 소비의 왕자여야 합니다. 백화점 오너가 먹고 자고 보고 사고 즐기는 모든 것들이 소비자들이 먹고 자고 보고 사고 즐기는 것들에 인플루언스를 미쳐야만 하는 거죠.

드라마 〈시크릿가든〉의 주인공 현빈이 그랬죠. 이태리서 장인이 한 땀 한 땀 만든 트레이닝복을 입고 등장했었죠. 정 부회장은 유통업에서 성공하려면 유통업의 최고경영자가 소비 시장의 인플루언서가 돼야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는 겁니다. 소비자가 자신의 라이프스타일을 선망하게 만들어야 한다는 거죠. MZ세대한텐 특별한 짓도 아니죠. 패션이나 뷰티 시장의 인플루언서가 인스타그램을 통해 돈을 버는 흔한 방법이니까요. 다만 그걸 1968년생인 신세계그룹 최고경영자 정용진 부회장이 알고 있고 하고 있다는 게 특별한 겁니다. 타고난 장사꾼인 거죠.

정용진 부회장의 이베이 인수가 예사로 읽히지 않는 이유입니다. 소비 유통 산업의 미래에 관해선 탁월한 통찰력과 전망력 게다가 행동력까지 겸비한 용진이 형이 이베이 코리아를 인수한 큰 그림이 있을 거란 얘깁니다. 형한텐 다 계획이 있을 거란 말이죠. 3조 4400억 원은 글자 그대로 천문학적인 금액입니다. 태양계가 속한 우리 은하가 보유한 별의 숫자가 많게는 4000억 개라고 하니까요. 은하보다 큰 거금인 거죠. 신세계그룹은 1997년 삼성그룹에서 계열 분리되면서 독립했습니다. 재벌 그룹으로서의 역사는 4반세기 남짓으로 짧은 편이죠. 이베이 코리아 인수는 신세계그룹 24년 역사상 최대 규모의 인수 합병입니다.

현재 신세계가 보유한 현금성 자산은 1조 원 남짓입니다. 모자란 인수 대금은 은행권에서 빌려야만 합니다. 물론 은행들은 서로가 신세계한테 돈을 빌려주려고 줄을 서 있습니다. 신세계가 보유한 하남 스타필드 하나의 담보 가치만 해도 3조 원이 넘습니다. 한마디로 돈 떼일 염려는 없죠. 그래도 빚을 내는 건 개인한테든 기업에든 부담입니다. 가뜩이나 너무 비싸게 샀다는 우려가 없지 않은데 말이죠. 레버리지가 크면 승자의 저주에 빠질 리스크도 커집니다. 그런데도 정용진 부회장은 꿈쩍도 안 합니다. “얼마가 아니라 얼마짜리로 만들 수 있느냐가 의사 결정의 기준이다.” 정용진 부회장 한 말입니다. 용진이 형은 지금 그 어느 때보다 진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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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조 원. 이베이 코리아를 인수하면 신세계그룹의 연간 거래액은 50조 원을 바라보게 됩니다. 2020년을 기준으로 이베이 코리아의 거래액은 20조 원 정도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을 모두 합한 신세계의 거래액은 28조 원이죠. 둘을 더하면 48조 원이 됩니다. 50조 원에 육박하게 되는 거죠. 유통 플랫폼에선 매출보다 거래액이 중요합니다. 오픈마켓이 기본이기 때문이죠. 가장 오래된 유통 플랫폼인 백화점도 요즘 식으로 풀어보자면 오프라인 오픈마켓입니다. 백화점에 여러 브랜드들이 임대료를 내고 입점해서 각자 장사를 하는 구조니까요. 이때 상품을 판매한 매출은 개별 매장의 몫입니다. 백화점의 매출은 각 매장이 지불한 임대료죠. 그래서 해당 백화점이 얼마나 장사가 잘되는지를 보려면 백화점의 매출이 아니라 백화점에 입점한 전체 매장의 매출 합계를 봐야만 합니다. 그게 거래액이죠. 유통의 중심이 온라인 플랫폼으로 전환됐지만 유통의 원리는 변하지 않았습니다. 여전히 수수료 한 푼이 중요하고 거래액의 규모가 중요합니다.

신세계의 거래액 50조 원은 경쟁자들을 압도하는 숫자입니다. 오랜 유통 라이벌 롯데쇼핑의 2020년 거래액은 24조 원입니다. 롯데도 이베이 코리아 인수전에서 참여했었죠. 사실 신세계보단 롯데가 승자가 될 거란 전망이 우세했습니다. 일단 자금 여력이 컸거든요. 롯데의 현금성 자산 규모는 5조 원에 달합니다. 이른바 현금박치기로도 이베이를 사고도 남죠. 그래서 신세계 내부에선 인수가 경쟁에서 밀려서 결국 롯데에 이베이를 빼앗길 거란 우려가 컸습니다. 게다가 이베이 인수전은 프로그레시브 딜이었습니다. 쉽게 말하면 경매입니다. 경매장에선 누군가 최고가를 부르면 더 높은 호가가 또 없는지 반드시 묻죠. 누군가 더 높은 가격을 부르면 우선 매수 청구권은 그 사람에게 넘어갑니다. 자연히 경매 물품의 가격도 그만큼 올라가게 됩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롯데는 소심했고 신세계는 과감했죠. 신세계는 3조 원이 넘는 압도적인 인수가를 제시했습니다. 딜은 그걸로 클로즈됐죠. 덕분에 신세계와 롯데의 거래액 격차는 더블스코어로 벌어지게 됐습니다.

신세계는 전통의 라이벌 롯데만 제낀 게 아닙니다.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거래액을 기준으로 보자면, 네이버와 쿠팡도 넘어섰습니다. 2020년 기준으로 네이버쇼핑의 거래액은 28조 원입니다. 쿠팡은 24조 원이죠. 네이버쇼핑과 쿠팡은 이커머스의 신흥 강자들입니다. 유통의 주도권은 오프라인에서 온라인으로 넘어간 지 오래입니다. 코로나가 소비의 디지털 전환을 가속했죠. 어차피 올 미래를 더 빨리 오게 만든 겁니다. 신세계 역시 쿠팡과 네이버쇼핑과 경쟁하려고 SSG닷컴을 만들었죠. 공유에 공효진까지 쓱 광고 모델로 기용했지만 도저히 상대가 안 됐습니다. 쓱닷컴의 거래액은 4조 원에 불과합니다. 이베이 코리아는 네이버쇼핑과 쿠팡에 이어 이커머스 3등입니다. 이베이를 인수하면서 정용진 부회장은 오프라인 라이벌 롯데를 제꼈고 온라인 선두주자 네이버쇼핑도 제꼈고 쿠팡도 제꼈습니다. 제끼고 제끼고 제껴서, 그야말로 넥스트 레벨이 된 것이죠.

15%


15퍼센트. 이베이 코리아의 지마켓과 옥션 그리고 신세계의 쓱닷컴을 더한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입니다. 2020년 기준으로 쿠팡의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13퍼센트입니다. 이베이 인수 한방에 시장 점유율에서 신세계가 쿠팡을 앞선겁니다. 네이버쇼핑의 시장 점유율은 17퍼센트입니다. 한국 이커머스 시장 규모는 150조 원 정도입니다. 이미 시장의 절반은 상위 3개 회사가 독점하고 있는 겁니다. 이런 과점 구조는 더욱 가속화될 공산이 큽니다. 바로 이것이 용진이 형이 얼마가 들더라도 이베이 코리아를 반드시 인수해야만 했던 이유죠. 선두 그룹과 하위 그룹의 격차가 날로 벌어지는 상황에서 더는 주저하면 아예 따라잡을 수 없게 된다는 걸 알았기 때문이죠. 신세계는 이베이를 인수하면서 온라인과 오프라인 매출 비중이 50대50인 유통 기업으로 거듭났습니다. 숫자만 놓고 보면 신세계는 이젠 오프라인 유통 공룡이라기보단 온오프라인 유통 플랫폼으로 보입니다. 체질 개선까지는 몰라도 몸집 개선에는 일단 성공한 거죠.

다만 15퍼센트라는 시장 점유율은 신세계가 이베이를 인수하는 데 걸림돌이 될 뻔했습니다. 막판에 네이버가 빠졌기 때문이죠. 애초 신세계는 네이버와 함께 이베이 코리아를 인수하려고 했습니다. 이베이 코리아의 지분 100퍼센트를 신세계와 네이버가 8대2의 비율로 사들이는 그림이었죠. 2021년 1월에 정용진 부회장이 판교에 있는 네이버 본사 그린팩토리를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이때 운을 뗐던 내용입니다. 당시 삼성가 재벌 왕자가 누추한 네이버 공장을 몸소 방문했다는 식의 파격 행보 운운하는 보도도 적지 않았습니다. 네이버는 시가총액이 68조 원입니다. 신세계의 시가총액은 2조 원입니다. 이마트는 4조 원입니다. 솔직히 신세계가 네이버를 오라 가라 할 입장은 아니죠. 용진이 형은 탁월한 마케터로서 세상에 비치는 자신의 이미지를 영악하게 활용할 줄 압니다. 여전히 한국에선 재벌 오너의 행차가 파격 행보로 받아들여지니까요. 그걸 통해서 네이버와 신세계가 연합하려고 한다는 믿음을 세상에 심어주는 데 성공한 겁니다. 결국 네이버보단 신세계한테 유리한 네이버의 이베이딜 참여를 이끌어냈죠.

문제는 시장 점유율이었습니다. 지마켓과 옥션에 쓱닷컴을 합하고 여기에 네이버쇼핑까지 더해지면 이커머스 시장 점유율은 32퍼센트에 달하게 됩니다. 공정거래위원회의 기업결합심사에서 제동이 걸린 가능성이 크죠. 공정위는 이미 배달의 민족과 요기요의 합병에 관해서도 사실상 반대를 했죠. 배달의 민족을 인수한 독일 딜리버리히어로는 결국 요기요를 매각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온라인은 오프라인보다 독점 발생의 가능성이 훨씬 큽니다. 소비자의 구매 경로가 훨씬 단순하기 때문이죠. 원클릭으로 구매를 하다 보면 결국 하나의 플랫폼이 포획됩니다. 원클릭은 아마존의 창업자 제프 베이조스가 특허 소송까지 불사하면서 지켰던 간편 결제 방식이죠. 아마존을 다룬 동명의 책도 있습니다. 베이조스는 이커머스에서 원클릭이 곧 독점으로 이어진다는 걸 알고 있었던 겁니다.

만일 네이버와 신세계가 손잡고 이베이 코리아를 인수했다면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절반 이상이 빠르게 독점화됐을 가능성이 큽니다. 바꿔 말하면 공정위가 나설 수밖에 없었을 거란 얘기죠. 네이버는 규제 리스크엔 노이로제가 있는 기업입니다. 2010년대를 사실상 규제와의 싸움으로 허비했으니까요. 카카오의 성장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대신 알짜배기 시장인 이커머스에서 실속을 챙기는 거로 만족해야만 했죠. 그런데 신세계와 이베이를 인수하면 다시 한번 규제 리스크에 노출될 공산이 큽니다. 지분은 20퍼센트인데 리스크는 120퍼센트인 상황이었죠. 아무리 용진이 형이 그린팩토리를 찾아주셨더라도 네이버한테 이베이 인수는 소탐대실일 수 있었습니다.

7.15%


7.15퍼센트. 이베이 코리아의 연평균 매출 증가율입니다. 쿠팡의 경우엔 130퍼센트였죠. 한눈에 봐도 쿠팡보다 이베이의 성장세 둔화가 뚜렷합니다. 이베이한텐 아마존이 쥐약입니다. 이베이와 아마존은 모두 인터넷 창세기인 1990년대에 설립됐습니다. 이베이는 1997년에 상장됐죠. 아마존은 1998년이 상장됐습니다. 우연히도 이베이와 아마존의 상장가는 18달러로 같았습니다. 7월 11일 현재 이베이의 주가는 69.46달러입니다. 아마존은 3719.34달러입니다. 이베이의 오픈마켓 모델은 아마존의 풀필먼트 모델을 당해낼 수 없습니다. 구매와 배송과 반품 과정에서의 소비자 경험이 다르기 때문이죠. 오픈마켓에서 플랫폼은 사람들을 가게 앞으로 모아주는 역할만 합니다. 광고와 판매와 배송 같은 유통 행위는 모두 입점 업체의 몫입니다. 판매자 관점에서 플랫폼은 별로 해주는 것도 없는데 수수료만 매출의 10퍼센트씩 꼬박꼬박 뜯어가는 존재죠. 이베이가 그렇습니다. 반면에 풀필먼트에선 플랫폼이 열일합니다. 자체 물류망을 구축하고 판매와 배송을 책임져 줍니다. 심지어 수요를 정교하게 예측해서 판매자한테 미리 물건을 직접 구매해뒀다가 소비자한테 빠르게 한발 앞서 전달해주죠. 이렇게 유통사가 판매자한테 미리 물건을 사두는 걸 사입 혹은 직매입이라고 하죠. 이때 재고가 발생하더라도 그건 판매자가 아니라 사입한 유통사의 몫이 됩니다.

그걸 뭐라고 부르건 상관없습니다. 소비자로선 배송 속도가 획기적으로 빠르게 느껴집니다. 다만 이건 단순히 트럭 배송만 빨라져서 가능해진 게 아닙니다. 수요 예측과 물류 속도가 결합한 결과죠. 아마존이 대표적입니다. 아마존은 이런 풀필먼트 시스템을 구축하느라 어마어마한 적자를 감수하면서 오랜 시간 고생했습니다. 반면에 이베이는 풀필먼트 시스템이 소비자와 판매자한테 더 이득이라는 걸 알면서도 오픈마켓 비즈니스 모델을 고수했죠. 덕분에 매년 흑자를 기록해 왔죠. 큰 투자는 없이 자리 장사만 한 덕분입니다. 흑자 행진은 이베이 코리아도 마찬가지입니다. 16년 연속 흑자였죠.

그래서 이런 이베이 모델은 아마존이 없는 유통 시장에서만 작동합니다. 소비자가 아직 불편한 걸 불편한 줄 모르는 시장이죠. 판매자가 기꺼이 자릿세를 감수하는 시장 말입니다. 아직 어떤 유통 플랫폼도 풀필먼트 혁신을 시도하거나 성공시킨 적이 없는 시장이죠. 아마존한테 미국 본토를 빼앗긴 이베이는 전 세계에서 이런 저개발 유통 시장만 노려왔습니다. 그러다 해당 국가에서 아마존이 등장하면 미련 없이 탈출하곤 했습니다. 대표적인 시장이 중국입니다. 이베이는 한때 중국 이커머스 시장의 70퍼센트를 점유했죠. 마윈의 알리바바가 등장하자 결국 2007년 중국 시장에서 철수합니다. 마윈은 정확하게 아마존을 벤치마킹했죠. 알리바바의 이커머스 플랫폼 타오바오는 중국형 아마존입니다.

쿠팡은 한국형 아마존입니다. 쿠팡 역시 창업 초창기엔 아마존처럼 적자에 허덕였습니다. 결국 한국형 아마존 모델을 만들어내는 데 성공합니다. 결국 미국 뉴욕증권거래소에 성장하는 데까지 성공했죠. 쿠팡의 물류센터는 전국에만 100개가 넘습니다. 전 국민의 70퍼센트가 쿠팡 배송센터 반경 10킬로미터 안에 살죠. 한국은 국토 면적이 작고 인구 밀도는 높습니다. 풀필먼트 모델을 적용하기엔 최적이죠. 오히려 국토 면적이 넓고 인구 밀도도 낮은 미국보다 유리합니다. 그래서 미국의 증시 전문지 《배런스》는 “쿠팡이 아마존보다 낫다”고 했었죠. 쿠팡의 성공은 이베이의 종언과 동의어입니다. 중국에서 그랬던 것처럼 한국에서도 철수할 때가 됐단 말이죠. 갑작스러운 코로나 판데믹은 이베이한테는 이베이 코리아를 털어낼 기회였습니다. 언택트 소비가 확산하면서 둔화하던 실적이 일시적으로 회복될 수 있었죠. 이렇게 코로나로 분식된 재무제표를 갖고 빨리 회사를 팔아야만 했습니다. 이베이는 어떻게든 쿠팡을 피해야만 했습니다.

5곳


5곳. 전국에 있는 이베이의 물류센터 3곳과 신세계의 물류센터 2곳을 더한 숫자입니다. 이베이의 물류센터는 용인과 동탄과 인천에 있습니다. 신세계의 물류센터는 용인과 김포에 있습니다. 전 국민 70퍼센트를 사정권 안에 둔 쿠팡에 비하면 초라합니다. 신세계의 이베이 코리아 인수가 우려를 낳고 있는 부분입니다. 앞으로 한국에서 유통 사업을 하려면 쿠팡은 변수가 아니라 상수입니다. 이베이도 상수가 된 변수 쿠팡을 회피했습니다. 이베이를 인수한 신세계도 목표는 타도 쿠팡일 수밖에 없습니다. 관전 포인트는 용진이 형이 과연 쿠팡의 로켓배송 풀필먼트 시스템을 깰 수 있을 것이냐겠죠. 그런데 이번 인수로 확보한 풀필먼트 시스템의 전초 기지인 물류센터가 너무 적습니다. 이베이 인수가 너무 많이 주고 너무 적게 얻은 딜이 아니냐고 비판받는 이유죠.

정용진 부회장은 이베이 코리아 합병으로 270만 고객을 확보했다고 자랑합니다. 문제는 실체입니다. 이커머스 기업에서 회원 수는 더 이상 주요 지표가 아닙니다. 이커머스의 디지털 침투율은 다른 산업에 비해 월등합니다. 다들 이커머스 회원 아이디 하나쯤은 키우고 있단 얘기죠. 오히려 요즘은 휴면 회원이 활성 회원보다 많을 정도입니다. 다들 지마켓과 옥션의 회원일 테지만 벌써 수년째 쇼핑은 쿠팡과 무신사에서만 해온 소비자들도 많습니다. 자연히 충성도도 높지 않습니다. 약간의 가격 차와 약간의 배송 차로도 소비자들은 금세 떠나갑니다. 그만큼 소비자들을 락인시키기가 쉽지 않단 말이죠. 그런데 이베이에서 회원 수를 빼면 솔직히 별로 남는 게 없습니다. 이베이의 물류센터는 고작 3곳뿐입니다. 유통사가 직접 물건을 직구매해서 보관할 필요가 없는 오픈마켓 플랫폼이니까요.

정용진 부회장은 한국형 월마트를 그리고 있습니다. 아마존은 미국 시장에서 숱한 유통 강자들을 침몰시켰습니다. 아마존겟돈이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죠. 시어스나 토이저러스처럼 아마존의 성장과 함께 무너진 오프라인 유통 공룡들을 통칭합니다. 그런데 미국 시장에서 아마존에 맞서 싸워 이겨낸 유통 기업이 있습니다. 월마트입니다. 월마트는 온오프라인 통합에 성공한 유통 플랫폼으로 꼽힙니다. 월마트의 온라인 부문 매출 비중은 50퍼센트에 달하죠. 월마트를 아마존겟돈에서 구한 인물은 2014년부터 CEO를 맡고 있는 더그 맥밀런입니다. 더그 맥밀런은 월마트의 트럭 하역 업무 보조에서 출발해서 최고경영자가 된 입지전적인 인물입니다. 비유하자면 배송 기사님이 신세계의 부회장이 된 거죠. 더그 맥밀런 월마트 CEO의 전략은 신세계의 좋은 벤치마크입니다. 특히 베인앤컴퍼니에서 이마트 사장으로 자리를 옮긴 정용진 부회장의 오른팔 강희석 대표는 자타공인 월마트 전문가입니다.

더그 맥밀런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입니다. 데이터 드리븐과 옴니 채널입니다. 더그 맥밀런은 인공지능과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제품의 수요를 예측하는데 탁월한 전략가입니다. 데이트 마니아인 강희석 대표와 여러모로 닮았죠. 아마존도 빅데이터를 활용해서 수요를 예측합니다. 월마트가 아마존보다 앞서는 건 오프라인 매장에서 직접 고객과 접촉하면서 수요 흐름을 파악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온오프라인을 통합한 수요 예측은 월마트만의 최대 강점입니다. 재고를 최소화하고 판매를 최대화할 수 있죠. 여기에 클릭 앤 콜렉스 서비스를 접목했죠. 고객이 집에서 온라인으로 주문을 한 다음에 오프라인 월마트 매장까지 차를 몰고 옵니다. 대기 중이던 월마트의 퍼스널 쇼퍼가 곧바로 물건을 주차장까지 가져다가 차에 실어 줍니다. 일종의 드라이브 스루 쇼핑을 도입한 거죠. 한국과 달리 택배를 통한 당일 배송이 보편화하기 어려운 대륙 국가 미국에선 확실히 효과 만점인 서비스입니다. 온라인 쇼핑과 오프라인 쇼핑을 하이브리드했단 점에선 옴니 채널의 가능성을 입증한 부분이죠. 여기에 한 가지 전략이 더 있습니다. 신선 식품입니다. 먹거리를 유통하는 신선 식품 시장은 콜트 체인망을 갖춰야만 합니다. 이커머스가 접근하기가 쉽지 않은 분야죠. 월마트의 미국 식료품 시장 점유율은 60퍼센트에 달합니다.

사실 월마트와 이마트는 인연이 깊습니다. 1997년 삼성그룹으로부터 독립할 때 구상했던 대형마트 사업의 벤치마크가 바로 월마트였죠. 당시 CJ그룹 역시 대형마트 사업을 구상하고 있었습니다. 삼성가의 장자 이재현 CJ그룹 회장이 고모 이명희 신세계그룹 회장의 사업 구상을 전해 듣고 대형마트 사업을 접었다고 알려져 있죠. 그때부터 신세계그룹은 위기 때마다 월마트의 사업 전략을 연구해 왔습니다. 정용진 부회장이 직접 월마트 최고경영진과 면담을 한 적도 있죠. 이번에도 정용진 부회장은 월마트에서 답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의 아마존인 쿠팡에 대항하려면 신세계가 한국의 월마트가 돼야 한다는 그림이죠.

가능합니다. 물류센터는 아직 5곳뿐입니다만 대신 형에게는 160척의 전국 매장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마트의 전국 160개 매장은 쿠팡의 전국 100개 물류센터 못지않은 유통 인프라입니다. 문제는 이걸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입니다. 월마트의 옴니 채널 전략인 좋은 벤치마크입니다. 전국 이마트 매장들은 단숨에 전국을 신세계 용진이 형 배송의 사정거리 안에 묶어줄 교두보입니다. 게다가 쿠팡 로켓배송에선 많은 문제점이 노출되고 있습니다. 택배기사 과로사 문제는 이미 임계점을 넘은 지 오래입니다. 물류센터 화재 사건으로 드러난 쿠팡 배송 시스템의 비인간성은 쿠팡 불매 운동으로까지 이어졌죠. 용진이 형이 이커머스에서 쿠팡보다 더 나은 대안을 제시한다면 시장의 흐름이 바뀔 수도 있습니다. 수익률을 최우선시해온 투자자들조차도 ESG를 중요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으니까요. 여기에 쓱닷컴 시절부터 강점으로 인정받아온 신선 식품 배송까지 결합하면 한국의 월마트가 현실이 됩니다.

신세계그룹은 이마트로 월마트는 물론이고 카르푸까지 한국 시장에서 퇴출한 저력의 기업 집단입니다. 이베이 인수로 쓱 반전의 기회를 잡은 건 맞죠. 게다가 이베이가 보유한 스마일 배송은 비장의 무기가 될 수도 있습니다. 스마일 배송은 오픈마켓형 풀필먼트 시스템이라고 불립니다. 직매입은 하지 않지만 유통사가 판매와 배송과 반품 같은 유통 부문을 책임져 주는 방식입니다. 스마일 배송은 백화점 모델로 성장해 온 신세계그룹과는 궁합이 잘 맞습니다. 아직 물류센터가 고작 5곳 뿐일진 몰라도 반전 카드는 있단 말입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물류센터망 확충에 앞으로 1조원 이상을 더 투자할 계획입니다.

130,000,000,000원 


1300억 원. 정용진 부회장은 SK와이번스를 1300억 원에 인수해서 지금의 쓱랜더스를 만들었습니다. SK와이번스는 전통의 명문 구단입니다. 한국 시리즈에서 네 번이나 우승했죠. 인천은 부산 못지않은 야도 고요. 그래서 용진이 형이 야구단을 인수한다고 했을 때 말들이 많았습니다. 재벌오너의 구단주 놀이가 아니냐는 의심이었죠. 구단주 놀이는 맞습니다. 그런데 아주 전략적인 구단주 놀이죠. 최근에 정용진 부회장은 구단주라고 쓰여진 맥주캔 이미지를 인스타그램에 공유했습니다. 술 이름이 구단주인 거죠. 정용진은 김주원입니다. 모든 일거수일투족이 결국 장사로 이어지죠. 소비자가 쓱랜더스 문학 구장에서 쓱랜더스를 응원하면서 쓱랜더스 구단주 맥주를 마시고 3회쯤 끝난 뒤 공수교대 타임엔 이베이나 쓱닷컴에서 다음 날 필요한 물건을 온라인 쇼핑하게 만든다는 게 용진이 형의 목표입니다. 

지난 6월 30일이었죠. 이마트 본사에서 열린 신세계 하반기 전략 회의에서 정용진 부회장은 핵심 키워드를 하나 꺼내 들었습니다. 신세계 유니버스란 단어였죠. 세계관은 영화나 음악 같은 대중문화에선 핵심 흥행 요소입니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나 로블록스의 메타버스나 SM의 에스파만 봐도 알 수 있죠. 이런 세계관은 대중을 빠져들게 만드는 요소입니다. 정용진 부회장은 세계관을 유통업에 적용하고 싶어 합니다. 신세계의 유통 신세계 안에서 소비자들이 먹고 마시고 보고 듣고 놀고 쉬게 만든다는 게 비전이죠.

정용진 부회장은 야구장을 라이프스타일 센터로 정의합니다. 쓱랜더스에 돔구장을 하나 지어서 스타필드와 결합하고 싶어 하죠. 그렇게 소비자의 시간을 빼앗고 싶어 합니다. 신세계에서 소비하는 게 소비자의 습관이었으면 싶어 하죠. 정용진 부회장은 유통업을 관심 경제로 정의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관심이 곧 돈이 되는 시장이 유통 시장이란 것이죠. 이건 쿠팡도 모르지 않습니다. 쿠팡이 쿠팡 플레이를 만든 이유죠. 아마존이 아마존 프라임을 만든 이유고요. 관심 경제에선 소비자의 시선을 끌 엔터테인먼트가 필요합니다. 영화나 스포츠만 한 게 없죠. 쿠팡이 영상을 선택했다면 신세계는 스포츠를 선택했을 뿐입니다. 일본의 1등 이커머스 기업 라쿠텐도 2004년 같은 이유로 야구단을 인수했습니다. 라쿠텐 이글스죠. 라쿠텐의 창업주 미키타니 히로시도 용진이형만큼이나 화제를 몰고 다니는 기업인입니다. 일본 네티즌들 사이에선 미키라고 불리죠. 

사실 용진이 형이 야구단보다 더 비싼 값을 주고 산 회사는 따로 있습니다. 3000억 원을 들여서 인수한 W컨셉입니다. 여성 패션 이커머스 플랫폼이죠. W컨셉의 시장 점유율은 32퍼센트에 달합니다. 이베이 인수전에 비해 가격은 10분의 1 수준입니다만 치열함은 100배 이상이었습니다. 무신사와 막판까지 신경전이 대단했거든요. 무신사도 신세계도 그만큼 W컨셉이 필요했습니다. 무신사는 남성향 패션 플랫폼입니다. 우신사라는 여성향 커머스 브랜드가 있긴 합니다만 아무래도 남성복 중심이죠. 패션 커머스를 통일하려면 여성향 플랫폼인 W컨셉이 꼭 필요했습니다. 반면에 신세계한테 W컨셉은 패션의 이베이였습니다. 신세계는 전통의 패션 유통 강자입니다. 신세계 백화점 강남점은 럭셔리 패션의 중심지죠. 신세계 인터내셔널을 통해서 여러 하이 패션 브랜드를 유통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패션 이커머스에선 한발 늦었죠. 그 사이에 W컨셉과 지그재그가 시장을 양분했죠.

지그재그는 카카오가 가져갔습니다. 이베이 인수전에 뛰어들 거란 예상과 달리 카카오는 현명하게도 지그재그를 선택했습니다. 패션이 이커머스의 최종 격전지가 될 거란 사실을 미리 알았던 거죠. 카카오는 카카오 선물하기의 점유율을 늘리면서 호시탐탐 커머스 시장을 노리고 있죠. 그렇다면 남은 건 W컨셉이었죠. 1020 중심의 지그재그가 더 매력적일 수도 있었지만 생각하기에 따라선 2030 중심의 W컨셉이 신세계와 찰떡일 수도 있었습니다. 신세계의 패션 취향이 203040세대 여성의 취향과 맞물리는 부분이 있으니까요. 신세계는 W컨셉을 확보하면서 MZ세대 이커머스 패션 시장으로 진입할 교두보를 마련했습니다. 앞으로 W컨셉을 통해 럭셔리 이커머스까지 나설 공산이 큽니다. 럭셔리는 패션 이커머스의 다음 격전지입니다. 그야말로, 야구장, 이마트, 백화점, 스타필드, 스타벅스의 오프라인과 쓱닷컴, 이베이, W컨셉의 온라인으로 이어지는 신세계 유니버스가 완성되는 것이죠.

72,900,000,000억 달러 


729억 달러. 7월 11일 기준으로 쿠팡의 시가총액입니다. 신세계나 이마트의 시총을 무색하게 만드는 숫자죠. 쿠팡의 시총이 이렇게 높은 건 2021년 7월 11일 현재 시점의 매출이나 영업이익 때문이 아닙니다. 쿠팡의 미래 가치를 더 높게 본단 의미죠. 쿠팡의 핵심 가치는 당일 배송을 실현한 물류 시스템입니다. 더 나은 물류 시스템이 등장하지 않는 이상 쿠팡의 시총은 유지될 겁니다. 쿠팡의 주가를 지켜보면 비극적인 물류센터 화재 사건이나 참혹한 배송 기사 과로사 문제들이 거의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걸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쿠팡의 주가가 추세적 내림세를 보여온 건 다른 이유 때문이죠. 한국 이커머스 시장의 협소함입니다. 쿠팡의 성장은 한국 시장의 크기에 정비례하니까요.

이젠 한국 시장이 작다고 불평하는 쿠팡의 성공을 지켜보면서 신세계가 대오각성한 건 사실입니다. 신세계는 지난 25년 동안 한국 유통 시장의 왕자였지만 지금 시총은 보잘것없습니다. 오프라인에 안주했고 국내 시장에 안주했기 때문입니다. 이대로 쿠팡겟돈된다고 해도 소비자 입장에선 별로 아쉬울 것도 없었죠. 한동안은 신세계 안에 패배 의식이 팽배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베이 인수는 신세계가 한국의 월마트가 될 수 있는 반전의 계기가 된 건 분명합니다. 900명이 넘는 이베이의 이커머스 인력은 오프라인에 익숙한 신세계한테 변화의 촉매가 될 수 있습니다. 디즈니 역시 픽사를 인수하면서 마침내 디지털을 깨우칠 수 있었습니다. 오늘날 온라인과 오프라인에서 모두 강한 디즈니가 될 수 있었죠. 이베이 코리아가 매년 벌어들이는 수수료 수익만 1조 원이 넘습니다. 덕분에 이베이 코리아는 16년 동안 흑자였죠. 인수자금 회수는 물론이고 장차 풀필먼트 물류센터 투자에도 괜찮은 캐시카우 역할을 해줄 수 있습니다. 이걸 바탕으로 정용진 부회장은 한국의 이커머스 시장을 네이버와 쿠팡과 함께 삼분하려고 합니다. 한 땀 한 땀 M&A를 거듭해서 명품 기업을 만들려고 합니다. 더 나아가서 한국의 월마트로서 온오프라인 유통 시장을 지배하려고 합니다. 용진이 형의 신세계는 이제부터가 4악장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이베이 코리아를 인수하고 타도 쿠팡을 외치고 있는 신세계 정용진 부회장의 비즈니스 전략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아마존의 둘째 날》, 《배달은 어떻게 세계를 바꾸는가》《플랫폼 라이벌리즘》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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