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저임금의 균형점

7월 13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최저임금 인상은 직원 없는 자영업자를 양산할까, 2030세대의 소비와 시간을 보장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해마다 진통을 겪는 최저임금 협상 시즌이 다시 돌아왔습니다. 노동계와 경영계의 입장은 올해도 팽팽하게 맞섰습니다. 양측은 몇 차례에 걸쳐 수정안을 제시했지만 입장차를 좁히지 못했고, 결국 정부 추천 공익위원들이 제시한 안건을 표결에 부쳤습니다. 찬성 13표, 기권 10표로 내년도 시간당 최저임금은 올해보다 5퍼센트 오른 9160원으로 결정됐습니다. 2년 동안 유지한 최저임금 인상 억제 기조에서 벗어난 것입니다. 코로나19 사태 이후 경기 회복 전망을 일부 반영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옵니다.

경영계는 최초 요구안으로 2007년부터 15년 동안 2017년 한 차례를 제외하면 삭감 동결안만을 제시했고, 노동계는 언제나 20퍼센트 이상 대폭 인상할 것을 요구해 왔습니다. 최저임금법에 따르면 내년도 최저임금 심의는 다음 달 5일까지 고시되어야 합니다. 고시를 앞두고 이의 제기가 가능하고 고용노동부가 이에 대해 합당하다고 인정하면 재심의를 요청할 수 있지만, 역사상 재심의를 했던 적은 없습니다.

 

경영계 “우리나라 최저임금 수준, 과도”

7월 8일 중기중앙회에서 열린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 대국민 호소. ©중소기업중앙회
경영계, 특히 중소기업과 소상공인 단체는 애초 내년도 최저임금 동결을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코로나19 상황이 길어지며 경영 여건이 최악의 상태인 만큼 ‘합리적인 균형’이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중소기업중앙회 등 14개 단체는 “최저임금이 또 인상된다면 기업 경영 부담은 물론이고 어려운 일자리 사정은 더욱 어려워진다”라고 강조했습니다. 최저임금을 안 지키려고 하는 게 아니라 “현실이 지키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호소했습니다. 그러면서 우리 사회 경제 상황보다 최저임금 수준이 과도하다며 경제성장률보다 최저임금이 더 가파르게 올랐다고 평가했습니다. 2018년은 전년대비 16.4퍼센트, 2019년은 10.9퍼센트씩 급등해 사업주 부담이 커졌고, 지난해 기준 최저임금은 중위임금 대비 62.4퍼센트로 OECD 회원국 가운데 61.3퍼센트인 프랑스, 57.1퍼센트인 영국 등과 비교해 과도하다고 설명했습니다.

이런 추세 속에서 기업과 자영업자 중 인건비 부담을 낮추기 위해 무인매장을 운영하는 곳이 크게 늘고 있습니다. 올해 최저임금인 8720원에 주휴 수당 등을 합치면 사실상 1만 원이 넘고, 직원을 1명 채용하면 한 달에 최소 200~300만 원의 인건비가 들어간다는 설명입니다. 한국은행이 작성한 ‘코로나19 이후 자영업 특성별 고용현황 및 평가’에 따르면 지난해 직원을 고용한 자영업자는 137만 2000명으로 2019년과 비교해 11퍼센트 가까이 줄었지만, 직원이 없는 자영업자는 같은 기간 408만 명에서 416만 명으로 2.2퍼센트 늘었습니다. 이 같은 통계치만 놓고 볼 때는 최저임금을 높여 노동자의 삶을 조금 더 여유롭게 만들고 소비가 늘어 경제 성장도 기대할 수 있어야 하는데, 오히려 사람의 일자리를 빼앗는 결과를 만든 것은 아닌지 우려되기도 합니다.

지난해 한국노동연구원이 발표한 자료에는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이 가계의 소득 소비에 별다른 영향을 미치지 않았다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최저임금이 16.4퍼센트 인상된 2018년과 그 전년의 가구소득·소비를 비교하는 방법으로 이뤄졌는데, 보고서에 따르면 최저임금 인상이 가계 소비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추정해 본 결과 저소득 가구의 소득과 소비를 늘리는 결과를 찾아볼 수 없었다고 분석했습니다.

 

노동계 “최저임금 인상돼야 소비도 살아난다”

7월 8일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최저임금 관련 기자회견. ©알바노조
노동자들의 입장은 경영계와 다릅니다. 4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협상 과정에서 경영계가 동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안을 제시하자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처지를 외면하고 저임금 해소와 임금 격차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최저임금제도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알바노조 신정웅 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 원은 2013년부터 주장해왔던 것”이라며 “시급이 1만 원이 안 되면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게 저희의 인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위원장은 특히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노동자 중 다수는 20~30대인 MZ세대임을 지적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특히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 “최저임금이 낮으면 대학 등록금 등을 벌기 위해 일을 많이 해야 하고, 이는 곧 취업이나 공부 등 청년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부족하게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미래 준비에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으로 최저임금이 설계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최저임금이 오른다면 “노동시간을 6시간에서 5시간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며 “남은 1시간은 청년이 자신만의 시간으로 쓰면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나가서 소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알바노조의 또 다른 자체 조사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수입이 각각 100만 원이 넘거나, 50만 원 이하인 알바 노동자의 식당 이용률을 비교했을 때 2.5배의 차이가 났다”라며 “최저임금 인상이 왜 필요한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 위원장은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와 오늘날 최저임금이라는 단어는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보편적인 삶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고려된 기준이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은 더 이상 돈을 주는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 간의 타협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나은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 위한 사회적 기준을 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동자와 소상공인 모두를 위한 균형점

최저임금을 단지 돈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시각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낙수효과 경제는 실패로 끝났다”라며 지난 40년 동안 미국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지만, 하위 90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정체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의 소득증대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분수효과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수요가 충분하지 않을 때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은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해마다 최저임금 협상을 몸살 앓듯 거치며 경영계와 노동계가 간극을 확인해 왔습니다. 서로 각자의 주장만 앞세우고, 비난 수위를 높이기만 했었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하겠다던 공약은 물 건너갔지만, 앞으로도 최저임금 협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헤아리면서, 노동자의 보편적 삶도 포기하지 않는 균형점 찾기는 과연 이룰 수 없는 일일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영혼 있는 노동》, 《인권이 없는 직장》, 《노동4.0》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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