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자들의 입장은 경영계와 다릅니다. 40여 개 노동시민사회단체로 구성된 최저임금연대는 협상 과정에서 경영계가 동결하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안을 제시하자 “경제적 어려움에 시달리는 노동자의 처지를 외면하고 저임금 해소와 임금 격차 완화를 목적으로 하는 최저임금제도를 부정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알바노조 신정웅 위원장은 “최저임금 1만 원은 2013년부터 주장해왔던 것”이라며 “시급이 1만 원이 안 되면 대한민국에서 평균적인 삶을 살 수 없다는 게 저희의 인식”이라고 말했습니다.
신 위원장은 특히 아르바이트로 일하는 노동자 중 다수는 20~30대인 MZ세대임을 지적했습니다. 이들 가운데 특히 학업을 병행하고 있는 경우 “최저임금이 낮으면 대학 등록금 등을 벌기 위해 일을 많이 해야 하고, 이는 곧 취업이나 공부 등 청년이 미래를 준비하는 시간을 부족하게 만든다”고 설명했습니다. “미래 준비에 집중하는 시간을 확보할 수 있는 수준의 금액으로 최저임금이 설계되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만약 최저임금이 오른다면 “노동시간을 6시간에서 5시간으로 줄일 수 있게 된다”며 “남은 1시간은 청년이 자신만의 시간으로 쓰면서 공부를 할 수도 있고, 나가서 소비를 할 수도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습니다. 알바노조의 또 다른 자체 조사에서도 이를 뒷받침하는 결과가 있었습니다. “수입이 각각 100만 원이 넘거나, 50만 원 이하인 알바 노동자의 식당 이용률을 비교했을 때 2.5배의 차이가 났다”라며 “최저임금 인상이 왜 필요한지 힌트를 얻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주장했습니다.
신 위원장은 최저임금 제도가 처음 도입될 당시와 오늘날 최저임금이라는 단어는 다시 해석되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보편적인 삶과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시간이 고려된 기준이어야 한다”라는 것입니다. “최저임금은 더 이상 돈을 주는 사람과 돈을 받는 사람 간의 타협이 아니라, 더 안전하고 나은 사회가 지속 가능하기 위한 사회적 기준을 정하는 일”이라고 강조했습니다.
노동자와 소상공인 모두를 위한 균형점
최저임금을 단지 돈으로만 바라보지 않는 시각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조지프 스티글리츠 미국 컬럼비아대 교수의 주장에서도 찾아볼 수 있습니다. 그는 “낙수효과 경제는 실패로 끝났다”라며 지난 40년 동안 미국 부자들은 더 부유해졌지만, 하위 90퍼센트의 평균 소득은 정체돼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저소득층의 소득증대를 통해 경제를 활성화하는 분수효과가 대안이 될 수 있다며 “수요가 충분하지 않을 때 최저임금을 올리는 것은 좋은 방식이 될 수 있다”고
제안했습니다.
우리 사회는 해마다 최저임금 협상을 몸살 앓듯 거치며 경영계와 노동계가 간극을 확인해 왔습니다. 서로 각자의 주장만 앞세우고, 비난 수위를 높이기만 했었죠. 문재인 대통령 임기 내에 '최저임금 1만 원'을 실현하겠다던 공약은 물 건너갔지만, 앞으로도 최저임금 협상은 계속될 것입니다. 소상공인의 어려움도 헤아리면서, 노동자의 보편적 삶도 포기하지 않는 균형점 찾기는 과연 이룰 수 없는 일일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최저임금 인상 문제에 대해 생각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영혼 있는 노동》,
《인권이 없는 직장》,
《노동4.0》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