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놀자와 미다스손

7월 15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야놀자는 손정의에게 제2의 쿠팡이 될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야놀자의 1조 원 투자 유치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소프트뱅크 손정의 회장(공식 직함 창업자 이사)이 8억 7000만 달러에 야놀자 지분 10퍼센트를 취득한다고 지난 9일《파이낸셜타임스》가 보도했습니다. 현재 막바지 협상 진행 중으로 수일 내에 계약이 이뤄질 전망입니다. 전부터 시장에 돌던 투자 유치설에 대해 사실무근이라고 선을 그었던 야놀자는 확인해줄 수 없다며 미묘하게 입장을 선회했습니다.

‘야놀자, 그냥 모텔 대실 앱 아니야?’라고 생각하시는 분도 계실 텐데요, 올 초 야놀자는 본격적으로 기업공개(IPO) 준비에 나서겠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시장은 야놀자 기업 가치를 3조~5조 원 사이로 추정했는데, 이번 투자 이후엔 몸값이 10조 원을 넘길 것으로 점쳐집니다. 2019년 유니콘으로 등극한 지 2년 만에 데카콘(기업 가치 100억 달러 이상의 비상장사)으로 거듭나는 겁니다. 2023년에는 쿠팡의 뒤를 이어 미국 나스닥에 진출할 것이라는 예측도 나옵니다.

대규모 자금 조달과 나스닥 상장에 대한 투자자들의 기대감은 국내 증시에서 먼저 확인됐습니다. 통상 미국 증시에 상장하면 우리나라에서보다 열 배 정도 높은 주식 가치를 인정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미 야놀자에 투자한 SBI인베스트먼트 등 관련주가 10퍼센트 가까운 주가 상승을 기록하기도 했습니다. 이제 관전 포인트는 ‘미다스의 손’이라 불리는 손 회장의 베팅이 야놀자의 나스닥 상장으로 이어질지, 이후 손 회장의 건재함이 다시 한번 입증될 수 있을지입니다. 
 

손의 전략


공식적으로 야놀자와 투자 계약을 맺는 곳은 세계 최대 벤처 펀드인 소프트뱅크의 비전 펀드(SBIA·Softbank Investment Advisor)입니다. 지난 2017년 손 회장이 나서 사우디아라비아 자본과 애플 등의 기업 자본을 더해 만든 다국적 펀드입니다. 초창기엔 검증되지 않은 기업에 과도하게 투자한다는 비판도 있었지만, 1년 만에 손 회장은 목표했던 1000억 달러(119조 원) 펀딩에 성공하며 스타트업 투자의 패러다임을 바꿨다는 평을 듣습니다. 2019년에는 128조 원 규모로 비전 펀드 2호를 추가 설립했습니다.

시장에서는 비전 펀드 설립 이후 손 회장의 투자 스타일이 바뀌었다고 분석합니다. 속도보다는 기업의 규모를 더 부각하는 방향으로 말이죠.[1] 투자 기업을 고를 때부터 당장의 이익 창출 능력보다 시장 지배 가능성에 더 큰 점수를 주는 식입니다. 실무진이 50~80퍼센트 사이의 글로벌 시장 점유율이 기대되는 기업을 골라 심사하면 손 회장은 마지막에 창업자와 독대해 최종 결정을 내렸습니다. 그렇게 투자한 곳이 우버, 위워크, 틱톡, 도어대시 등입니다.

우리나라 기업 가운데는 쿠팡이 단연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비전 펀드는 2015년, 2018년 두 차례에 걸쳐 30억 달러(3조 3000억 원)를 쿠팡에 투자했습니다. 2018년 기준으로 쿠팡 적자 규모가 2조 원에 달했는데도 말입니다. 2019년 하반기 불거진 위워크 수익성 논란에 코로나19까지 겹쳐 한때 비전 펀드 적자가 10조 원을 넘긴 적도 있었지만, 올해 초 쿠팡의 미국 상장으로 분위기를 반전시켰습니다. 투자 귀재로서의 면모를 다시 한번 보여준 순간이었습니다.
 

AI, AI, AI

2019년 손 회장은 청와대에서 열린 미니 강연에서 AI 산업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청와대
모빌리티, 중공업 영역 투자 비중이 높은 비전 펀드 1호와 달리 비전 펀드 2호는 기술 기업에 대한 투자를 확대하고 있습니다. 최근에는 우리나라 기업들의 활약도 돋보입니다. 올해 상반기에만 번역과 자막, 더빙을 서비스하는 아이유노 미디어 그룹, 외국어 교육 업체인 뤼이드, 기업 채팅 솔루션을 개발하는 센드버드가 비전 펀드의 투자를 유치했습니다. 이 세 기업은 각기 사업 영역이 모두 달라 보이지만, 이들을 관통하는 하나의 키워드가 있습니다. AI입니다.

2019년 손 회장은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과의 만남 이후 열린 미니 강연에서 AI를 세 번 외쳤습니다. 20여 년 전 빌 게이츠와 청와대에 방문해 김대중 대통령 앞에서 초고속 인터넷망(broadband)을 세 번 외친 것처럼 말입니다. 손 회장은 “지난 10년간 스마트폰이 인류의 삶을 바꿨다면 앞으로의 10년은 AI가 중심이 돼 새로운 과학과 교육, 커뮤니케이션을 만들어 갈 것”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이것이 곧 비전 펀드의 투자 이정표입니다.

손 회장은 앞으로 우리나라 기업을 투자 물망에 더 올릴 것으로 보입니다. 한국 기업에 적극적인 투자를 부탁한다는 문 대통령 요청에 “I will”이라 답한 약속을 지키기 위해서만은 아닙니다. 주요 투자처였던 중국의 정책 불확실성이 커졌기 때문입니다. 비전 펀드가 100억 달러(12조 원)를 투자한 중국 대표 모빌리티 기업 디디추싱은 최근 중국 정부의 제재로 미국 증시에서 주가가 폭락했습니다. 비전 펀드 수익률과 회수금에 경고등이 켜진 셈입니다.
 

초특가에서 테크놀로지로

야놀자의 새 기업 버전 테크 올인(Tech All-in)을 강조한 광고 영상 ©야놀자
이쯤 되면 한 가지 의문이 드실 수 있습니다. “그래서 야놀자가 AI, 기술 기업이라고?” 일반 사용자 입장에서 체감하기 어렵지만, 야놀자는 수년 전부터 기술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꾸준한 기술 투자가 지난해 실적으로 이어졌습니다. 코로나19 장기화로 관광 산업이 큰 타격을 받는 와중에 야놀자는 지난해 매출이 43.8퍼센트 늘어 수년간의 영업 이익 적자에서 탈출했습니다. 전문가들은 발 빠른 디지털 전환이 주효한 전략이었다고 말합니다.

야놀자는 그동안 자체 클라우드 서비스인 ‘야놀자 클라우드’를 중심으로 다양한 기술을 도입해왔습니다. 자동화 객실 예약·관리 시스템인 PMS, 주요 이커머스나 웹사이트 등에서 객실 현황을 실시간 업데이트하는 채널 관리 시스템(CMS) 등이 대표적입니다. 현재 전 세계 170여 개국 3만여 개 고객사에 기업 간 거래(B2B) 운영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이 밖에 고객의 입·퇴실 및 재실 여부를 실시간 트랙킹하는 IoT 센서, 야놀자 앱과 연동해 셀프 체크인이 가능한 야놀자 키오스크 등도 주요 기술입니다.

야놀자의 목표는 단순히 초특가로 숙소를 제공하는 중개업자가 아닙니다. 국내는 물론 해외 숙박, 레저, 교통(항공·철도·렌터카), 식당까지 한 번에 해결할 수 있는 슈퍼 앱, 다시 말해 자체 기술로 최상의 호스피탈리티(hospitality) 솔루션을 제공하는 테크 기업을 꿈꿉니다. 우선 올 하반기에 연구 인력을 300명 이상 늘립니다. 현재 임직원 중 40퍼센트 수준인 R&D 인력을 70퍼센트까지 늘리는 게 목표입니다. 또 ‘야놀자 클라우드’를 신규 법인으로 출범시키고, 호텔의 모든 시스템을 클라우드로 연결하는 자체 솔루션 ‘와이플럭스(Y FLUX)’를 출시한다고도 밝혔습니다.
 

엠파이어 오브 더 손


글로벌 테크 기업을 향한 야놀자의 여정은 더욱 속도를 낼 것으로 보입니다. 특히 IPO를 앞둔 현재로서 이번 손 회장의 투자는 공모 성사 확정의 시그널이고, 미국 증시 안착은 확실한 터닝 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야놀자와 손 회장의 장밋빛 결말을 보장하지는 않습니다. 일각에서는 우리나라 유니콘들의 나스닥 상장이 꼭 능사는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합니다. 공모 흥행이 어려울 수 있고 몸값이 급증하는 만큼 리스크도 커지기 때문입니다.

지난달 이코노미스트는 소프트뱅크의 지배 구조와 재무 구조의 불건전성을 꼬집었습니다. 북저널리즘 전자책 《엠파이어 오브 더 손》에서 그 내용을 확인할 수 있는데요, 마지막 문단 중 일부를 가져와 봤습니다. “소프트뱅크를 위한 강세장 시나리오(bull case)는 간단하다. 기술을 원동력으로 삼은 기업들이 계속해서 눈부신 성장을 지속할 것이라는 것에 노골적으로 돈을 거는 것이다. 기업은 손실을 보더라도 투자자들이 미래의 수익을 바라면서 그곳에 투자한다면 그들도 번성할 수 있다. 지금으로서는 그렇다.”

주목할 건 최근 미국 내 IPO 열풍이 점차 식어가고 있다는 겁니다.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앞서 상장 초기 흥행으로 소프트뱅크의 주머니를 불렸던 쿠팡은 시가 총액의 5분의 1이 줄었습니다. 상장 이후에는 막연한 성장 기대감이 아닌 눈앞에 보이는 실적에 투자자들의 지갑이 움직이게 될 겁니다. 지난해 겨우 적자에서 벗어난 야놀자는 테크 기업으로의 전환과 동시에 더 빨리, 많이 돈 버는 모습을 시장에 보여줘야 할지도 모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테크 기업으로 발돋움하려는 야놀자와 그 가능성에 투자한 손정의 회장의 의도를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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