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라던 바다
 

7월 셋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바다. 어느 작은 잡지사에서 편집장을 하던 시절에 동고동락했던 에디터가 키우는 반려견의 이름입니다. 유기견을 에디터가 구해 주고 바다라는 이름도 붙여줬죠. 마감이 밤늦게까지 이어지는 날이나 주말이면 출근도 바다와 함께했죠. 언제부턴가 우리 모두한테도 바다가 출근하는 게 당연해졌습니다. 옆 동네 부서의 눈치는 좀 보였죠. 그래도 우리 편집부만큼은 반려견과 반려 출근하는 게 어렵지 않은 문화를 만들고 싶었습니다.

일터는 어쩔 수 없는 전쟁터입니다. 그건 현실이죠. 그래도 모든 전쟁터가 매일 지옥일 필요는 없습니다. 가끔은 쉼터여도 좋겠죠. 사랑하는 반려견이 곁에 있다면 치열한 마감 전쟁도 조금은 수월해질 수 있겠다 싶었습니다. 적어도 집에 혼자 두고 온 바다가 외로울까 봐 걱정하면서 마감을 할 필요는 없을 테니까요. 이미 내 낡은 서랍 속의 바다잖아요.

지난주 북저널리즘은 아기를 안고 출근한 기본소득당 용혜인 의원의 이야기를 다뤘습니다. 용혜인 의원은 생후 두 달 정도 된 아기를 품고 국회로 등원했죠. 그렇게 출근하자마자 국회 회의장 아이 동반법을 발의했습니다. 엄마 의원이 아기와 함께 국회 본회의장에 들어갈 수 없게 막는 국회법 151조를 개정하는 게 골자죠. 상징적인 의미가 상당한 법입니다. 우리 사회에 중대한 질문을 던지기 때문입니다. 현행법상 국회의원조차 국회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없다면 이렇게 묻게 됩니다. 사무실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없는 아빠 엄마에게 우리 사회가 제시하는 선택지는 과연 현실적인가. 우리 사회는 돌봄의 책임을 엄마 아빠한테만 전가하고 있는 건 아닌가. 설은주 독자님이 데일리 아티클에 달아주신 댓글 내용처럼, 용혜인 의원의 행동과 입법은 “국회에서 아이를 돌볼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우리나라 각 분야에 반향을 일으킬 것”이며 또 그렇게 만들어야만 하는 일인 겁니다.

그렇지만 북저널리즘이 데일리를 통해 던지고 싶었던 진짜 질문은 따로 있습니다. 국회법이 개정돼서 일개 의원도 자신의 일터인 국회 본회의장에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게 된다면 말입니다. 그렇다면 왜 일반 국민은 각자의 일터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면 안 되는 걸까요? 용혜인 의원의 이야기를 다룬 다른 미디어의 기사엔 사무실로 아이를 데리고 출근하는 행위 자체를 불편해하는 댓글들도 더러 있었습니다. 사무실은 일만 하는 곳이란 말씀이죠. 과연 그럴까요?

지난주 《이코노미스트》 전자책의 제목은 오피스의 재구성입니다. 코로나 판데믹으로 재택근무가 일상화됐고 결국 사무실의 개념이 재정의되고 있다는 내용이죠. 일터와 삶터의 경계는 이미 흐려졌습니다. 바꿔 말하면 육아는 집에서 하고 업무는 사무실에서 해야 한다는 고정 관념부터가 혁신의 대상일 수 있다는 얘깁니다. 필요하면 사무실로 아이와 함께 출근할 수 있어야 합니다. 원한다면 사무실로 반려견과 함께 출근할 수 있듯이 말입니다. 사랑하는 저마다의 바다와 더불어 즐겁게 일터로 나오는 것이야말로 우리가 바라는 바다가 아닐까요.

SAS는 《포천》 조사에서 매년 일하고 싶은 직장 1위로 꼽히는 기업입니다. 새스는 기업용 비즈니스 분석 소프트웨어 회사입니다. 1976년에 설립된 이래 단 한 번도 적자를 낸 적이 없죠. 연평균 매출 성장률은 15퍼센트에 달합니다. 이런 탄탄함이 일하고 싶은 직장으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이유는 아닙니다. 아이와 함께 출근하고 퇴근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새스는 아예 회사 안에 프리스쿨을 운영하고 있습니다.사내 돌봄 서비스죠. 지금이야 제도화됐지만 시작은 작은 발상의 전환이었습니다. 유능한 여직원이 양육 문제로 퇴사 의사를 밝혔을 때였죠. 공동 창업자인 짐 굿나잇과 존 살은 생각을 바꿨습니다. 아이 때문에 출근할 수가 없다면 그냥 아이를 데리고 출근할 수 있는 회사를 만들면 어떨까.

우량 기업이라서 가능한 복지가 아니냐고 말할 수도 있습니다. 그때가 1981년입니다. 아직 창업 초창기였죠. 데스밸리를 건너던 때였습니다. 그때부터 새스는 육아를 위한 새로운 문화를 만든 겁니다. 그런 좋은 문화가 좋은 인재의 유인이 됐고 새스 성공의 원동력이 된 건 아닐까요? 앞으론 회사의 성장을 원한다면 사무실에서 아이와 반려견이 마음껏 뛰어놀게 해줘야 합니다. 직원들이 파도가 칠 땐 바다를 볼 수 있게 해줘야 합니다. 사장님, 내일 바다와 함께 출근하면 안 될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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