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페이스 트래블 오디세이
 

7월 19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우주관광시대가 개막됐다. 브랜슨과 베저스가 룬샷으로 상전이를 일으켰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나도 한때는 하늘의 별을 보면서 우주를 꿈꾸는 어린아이였다. 자라서 어른이 된 나는 이렇게 우주비행사가 됐고 아름답고 아름다운 지구를 이렇게 내려다보고 있다. 우리가 다음 세대를 위해서 앞으로 무엇을 할 수 있을지 상상해보라.” 인류 최초의 우주 관광객 리차드 브랜슨경의 말입니다.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는 유리 가가린입니다. 1961년 4월 12일에 최초로 유인 우주 비행에 성공했죠. 가가린은 우주의 시점에서 지구를 바라본 최초의 우주인이었습니다. 가가린은 “지구는 푸른빛이었다”는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냉전에서 소련이 미국을 압도한 순간이었죠. 인류 최초로 달을 정복한 우주탐험가는 닐 암스트롱입니다. 닐 암스트롱은 1969년 7월 20일에 아폴로 11호를 타고 달에 착륙했죠. 암스트롱은 달에 첫발을 내딛으면서 유명한 말을 남겼습니다. “이것은 한 인간에게 있어서는 작은 첫걸음이지만 인류 전체에 있어서는 위대한 도약이다.” 라이언 고슬링이 암스트롱을 연기한 〈퍼스트맨〉에서 닐 암스트롱은 딸을 잃은 내면의 깊고 어두운 슬픔을 검고 어두운 우주 공간에 나가서야 비로소 드러내는 과묵한 남자로 그려집니다.

이렇게 국가적 경쟁과 인류적 고뇌를 안고 우주로 나아갔던 인류 최초의 우주비행사와 최초의 달 탐험가와 달리 최초의 우주 관광객은 시종일관 어린아이처럼 신이 나 있었습니다. 우주 단체 관광객다웠죠. 리처드 브랜슨은 가가린처럼 지구에 대해 경의를 표하지도 암스트롱처럼 인류에 대한 의무를 말하지도 않았습니다. 대신 개인적 경험과 주관적 감상을 이야기했습니다. 브랜슨한테 우주여행은 지구를 위한 것도 인류를 위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오직 자기 인생의 지평을 넓히기 위한 도전이었죠. 오늘날 우리가 해외여행을 떠나는 이유와 별다르지도 않죠. 우리가 비행기에 몸은 싣는 건 콜럼버스처럼 북미 대륙을 발견하려고 가는 것도 마젤란처럼 세계 항로를 개척하기 위한 것도 아니니까요. 오직 내 삶을 위한 것이죠.

리처드 브랜슨은 우리에게 우주의 의미를 완전히 바꿔버렸습니다. 이제 우주여행도 해외여행과 별다르지 않게 됐습니다. 우주는 미지의 신적인 공간에서 현실적이고 구체적인 대상이 됐습니다. 돈만 있고 의지만 있고 행운만 따라준다면 인생에 한 번쯤은 가볼 수 있는 공간이 된 거죠. 이제까진 우주가 우리를 내려다봤다면 앞으론 우리가 우주를 역관광하게 된 겁니다. 우주에서 바라본 지구의 풍경이 자금성이나 피라미드나 애펠탑과 다르지 않은 우주 관광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우주도 인스타그래머블해질 날이 머지않은 거죠. 그래서 브랜슨은 그렇게 말한 겁니다. 나도 했다. 당신들도 우주를 꿈꾼다면 할 수 있다. 다음 세대는 우주 관광 시대를 살게 될 것이다.

아이언맨[1] 


지난 7월 11일이었죠. 리처드 브랜슨 버진그룹 회장을 포함해서 6명의 탑승객을 태운 버진 갤럭틱의 우주선 유니티는 인류 최초의 우주 관광 비행에 성공했습니다. 버진 갤럭틱은 리처드 브랜슨 회장이 세운 우주 항공사입니다. 사람과 화물을 운송한다는 점에선 대한항공과 비즈니스모델에선 거의 차이가 없죠. 다만 항로가 대륙 간 인터컨티넨탈이 아니라 행성 간 인터갤럭틱인 거죠. 그래서 리처드 브랜슨 회장도 자신이 소유한 항공사 버진 아틀란틱과 대구를 이루는 버진 갤럭틱이라고 지은 것이죠.

그런데 버진 갤럭틱의 우주 비행방식은 좀 독특합니다. 우주 발사하면 우리는 흔히 수직으로 곧게 솟은 타워형 발사체를 떠올립니다. 굉음과 포연과 불꽃을 뿜으면서 우주로 날아오르죠. 버진 갤럭틱은 공중 발사 방식을 선택했습니다. 대형 항공기에 유인 우주선을 실어서 이륙한 다음 공중에서 발사하는 방식이죠. 우주 개발 회사인 오비탈 사이언스가 1990년대에 처음 선보였습니다. 록히드의 대형 기종인 L-1011을 개조한 일명 스타게이저가 모선 역할을 했죠. 여기에 페가수스 로켓을 달아서 우주 발사를 했습니다. 이런 공중 발사 방식은 지상 날씨의 영향을 덜 받아서 안전합니다. 연료 소모도 줄일 수 있어서 경제적이죠. 대신 발사 중량에 한계가 있죠. 모선이 대류권과 성층권의 경계면까지 우주선을 실어올려야 하니깐요. 지상으로부터 높이 20킬로미터까지인 대류권은 항공기가 비행할 수 있는 한계 고도입니다. 그다음부턴 로켓이 스스로 날아올라야 합니다. 리처드 브랜슨과 우주 경쟁을 벌이고 있는 스페이스X의 창업자 일론 머스크는 중량 때문에 공중 발사 방식에 부정적이죠.

반면에 리처드 브랜슨은 공중 발사 방식을 선호합니다. 우주 관광업에는 최적이기 때문입니다. 승객들은 항공기에 탑승하듯이 우주선에 탑승할 수 있습니다. 수직 발사체 꼭대기에 아찔하게 누워서 우주 관광을 떠나는 건 아무래도 여행의 맛이 안 납니다. 여러모로 우주선이 모선에서 분리되기 전까진 항공기 탑승 경로와 유사하기 때문에 승객들이 겪는 위화감도 적습니다. 어쩌면 기존 국제공항들을 우주 비행터미널로 이용하는 것도 가능할 겁니다. 샌프란시스코행 A10번 게이트와 런던행 A11번 게이트 옆에 우주행 G13번 게이트가 배치될 수도 있단 말입니다. 기존 항공 인프라를 우주 인프라로 활용할 수 있다면 우주 관광 시대는 더욱 빨리 일상화될 겁니다.

현지 시각으로 7월 11일 오전 10시 40분에 뉴멕시코주 활주로에서 이륙한 모선 이브는 우주선 유니티를 15킬로미터 상공까지 실어날랐습니다. 한국시각으로 7월 12일 0시 25분경에 유니티는 이브로부터 분리됐고 로켓 엔진을 점화했죠. 수 분 만에 유니티는 지구 상공 86킬로미터의 우주 공간에 도달했습니다. 86킬로미터면 중간권의 맨 끄트머리입니다. 나사 기준 우주 비행의 고도는 80킬로미터입니다. 명실상부 우주여행인 거죠. 유니티엔 리처드 브랜슨을 포함해서 총 6명이 탑승했습니다. 2명은 파일럿입니다. 리처드 브랜슨까지 4명은 버진 갤럭틱의 직원이죠. 유니티는 중간권에서 수분 동안 머물렀습니다. 그동안 탑승객들은 창문으로 지구를 관광했죠. 그러곤 한국 시각으로 7월 12일 0시 40분경에 유니티는 이브와 함께 떠난 공항으로 귀환했습니다.

리처드 브랜슨의 지구 귀환은 아이언맨 토니 스타크가 스타크 엑스포에 등장하던 유명한 영화 속 장면과 판박이였습니다. 유명 팝스타가 출동해서 노래를 부르고 모두가 샴페인을 터뜨렸죠. 그 중앙 무대로 푸른색 우주복을 입은 리처드 브랜슨이 우주에서 강림하듯 등장했죠. 리처드 브랜슨은 우주 관광을 하나의 잘 짜인 쇼로 만들었습니다. 전 과정은 리처드 브랜슨의 스튜디오에서 해설을 곁들여서 생중계됐습니다. 여기에 해설자로 등장한 인물은 다음번 유니티 탑승자인 켈리 제나디였습니다. 과학자이면서 틱톡 팔로워 50만과 인스타그램 팔로워 15만 명을 보유한 인플루언서죠. 켈리 제나디는 우주복을 연구하는 우주 방위 분야 전문가입니다. 게다가 나사의 우주발사장인 케이프 케너배럴 인근에서 나고 자랐죠. 브랜슨이 왜 켈리 제나디를 다음번 관광객으로 선정했는지 알 수 있죠.

켈리 제나디는 스페이스 제네레이션입니다. 지구에서 우주로 통하는 가장 가까운 게이트 근처에서 나고 자랐고 우주 분야를 연구하는 과학자가 됐고 결국 우주비행사가 됐으니까요. 브랜슨은 켈리 제나디의 디지털 영향력이 버진 갤럭틱을 이른바 S 세대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게 해주길 기대합니다. 미소 우주 전쟁 시대 이후 우주의 상징이 나사였다면 우주 관광 시대엔 버진이 우주의 상징이 되길 바라는 거죠. 브랜슨은 버진 갤럭틱을 우주 관광 시대의 팬암으로 만들고 싶어 합니다.

캐치 미 이프 유 캔[2] 


1935년 11월 22일이었습니다. 샌프란시스코만에선 날개폭만 40미터에 무게만 25톤에 달하는 수륙 양용 비행기 한 대가 이륙을 준비하고 있었습니다. 비행기의 이름은 차이나 클리퍼였습니다. 팬 아메리칸 에어라인 소속의 항공기였죠. 팬암은 우리한텐 스티븐 스필버그가 연출하고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캐치 미 이프 유 캔〉으로 익숙합니다. 천재 사기꾼 디캐프리오는 팬암의 파일럿으로 위장해서 전 세계를 누비죠. 팬암의 창업자는 후안 트립입니다. 오늘날 항공 산업이 존재하게 만든 혁신가죠. 무엇보다 후안 트립은 태평양 노선을 개척했습니다. 지금이야 샌프란시스코와 서울을 오가는 태평양 횡단 미주 노선은 일상입니다. 대한항공만 해도 오전 오후 하루 두 차례씩 오가죠. 당시만 해도 미국에서 비행기로 아시아까지 간다는 건 미친 생각이었습니다. 후안 트립은 항공기로 세계를 여행하는 시대가 올 거라고 믿었습니다. 그러자면 태평양 노선을 반드시 개척해야만 했죠.

86년 전 후안 트립의 차이나 클리퍼가 태평양을 향해 이륙하는 장면은 리처드 브랜슨의 유니티가 우주를 향해 발사되는 장면과 너무도 닮은꼴입니다. 후안 트립 역시 차이나 클리퍼의 이륙 행사를 거대한 쇼로 기획했죠. 루스벨트 대통령도 축전을 보내왔죠. 차이나 클리퍼의 비행은 자칫 실패할 뻔했다고 합니다. 중량이 너무 무거워서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를 위로 넘지 못하고 아래로 날아야만 했거든요. 버진 갤럭틱 역시 2014년에 대형 사고를 겪었습니다. 조종사 한 명이 사망했죠. 리처드 브랜슨과 마찬가지로 후안 트립 역시 결과적으로 대성공을 거뒀습니다. 팬암은 항공 여행 시대를 열었죠. 누가 비행기를 타고 해외 관광을 가느냐는 시대에서 누구나 비행기를 타고 해외 관광을 가는 시대로 세상이 바뀌는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이렇게 하나의 상태에서 다른 상태로 세상이 구조적으로 변하는 현상을 상전이라고 합니다. 바이오테크 기업 신타제약을 창업했고 오바마 행정부에서 대통령 과학자문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했던 사피 바칼이 저서 《룬샷》에서 제시한 개념입니다. 물이 얼음이 됐다 다시 물이 되는 것처럼 자연계에서 어떤 물질의 상태가 구조적으로 바뀌는 현상을 상전이라고 합니다. 사피 바칼은 이걸 비즈니스 분석에 접목했죠. 사피 바칼은 《룬샷》서 후안 트립이 팬암으로 항공 여행 시대로의 상전이를 일으켰다고 분석했습니다.

리처드 브랜슨 역시 상전이를 일으키고 있습니다. 누가 우주선을 타고 우주 관광을 가느냐는 시대에서 누구나 우주선을 타고 우주 관광을 가는 시대로 세상을 바꾸려고 하는 것이죠. 후안 트립이 그랬던 것처럼 리처드 브랜슨 역시 룬샷을 꿈꾸는 비즈니스맨입니다. 사피 바칼의 정의에 따르면, 룬샷은 주창자가 나사 빠진 사람 취급을 받으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입니다. 우주 관광이나 태평양 노선처럼요. 문샷이란 개념도 있습니다. 닐 암스트롱을 달에 보내는 프로젝트가 문샷이죠. 구글은 한때 문샷 싱킹을 강조했습니다. 원대한 프로젝트를 과감하게 추진했죠. 문제는 문샷은 원대할진 몰라도 틀에서 벗어난 건 아니란 겁니다. 케네디가 인류를 달에 보내겠다는 문샷 싱킹을 했던 건 소련이 먼저 가가린을 우주에 보냈기 때문이었죠. 우주 정복 다음엔 달 정복은 꽤 원대해도 매우 현실적인 목표였습니다.

반면에 리처드 브랜슨과 후안 트립의 비전은 문샷이라기보단 룬샷입니다. 한 인간을 달에 보내는 것보다 인류 전체가 달에 가고 싶어지게 만드는 게 더 미친 비전이기 때문입니다. 후안 트립은 찰스 린드버그 한 사람만 대서양 횡단 비행을 할 수 있는 게 아니라 미국인 전체가 대서양을 건너 유럽으로 날아갈 수 있다고 믿게 만들었습니다. 후안 트립은 린드버그와 평생 친구 사이였죠. 둘은 함께 대서양과 태평양과 남미 상업 노선을 개척했습니다. 후안 트립이 그랬던 것처럼 리처드 브랜슨 역시 우주 노선을 개척하려고 합니다. 공항에서 달까지 버진 갤럭틱을 타고 여행하는 스페이스 트레블 시대를 열고 싶어 하죠. 실제로 브래드 피트가 주연한 영화 <애드 아스트라>에는 지구달 노선을 오가는 우주 항공사 버진 갤럭틱이 등장합니다. 버진 갤럭틱에서 브래드 피트는 우주 기내식 서비스도 제공받죠.

“역사는 똑같이 반복되진 않지만 운율은 반복된다.” 대문호 마크 트웨인이 한 말이죠. 보통 정치나 외교 무대에서 주로 인용됩니다만 비즈니스 세계에도 적용될 수 있습니다. 후안 트립의 룬샷이 세계 여행 시대를 열었던 것처럼 그 운율에 맞춰서 리처드 브랜스의 룬샷에 우주 여행 시대를 열게 될 겁니다. 적어도 우리가 모두 우주여행을 한 번씩 꿈꿔보는 시대로 상전이가 일어나기 시작한 건 분명하니까요. 25만 달러 그러니까 한화로 2억 8000만 원에 달하는 비싼 티켓값과 상대적으로 가성비가 떨어지는 짧은 우주여행 시간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후안 트립 역시 팬암으로 전 세계 항공 여행 시장을 장악하는 데 20년도 채 걸리지 않았습니다.

무엇보다 팬암은 보잉과 록히드 같은 항공기 제조사들의 기술 혁신을 유도했습니다. 프로펠러 엔진에서 제트 엔진으로의 혁신은 제조사가 아니라 항공사가 주도한 결과입니다. 보잉이 대서양을 횡단할 수 있는 보잉 707을 개발한 건 팬암이 그런 항공기를 주문했기 때문이었죠. 수요가 공급을 견인할 때 혁신의 수레바퀴도 빨라집니다. 우주 항공 기술도 마찬가지입니다. 우주 관광 수요가 확인되고 늘어나면 우주 항공 기술도 발전하고 발달할 겁니다. 오늘날 체육복 바람으로도 여권만 들고 탑승 수속만 밟아서 비행기만 타면 하루면 다른 대륙에 갈 수 있는 것처럼 조만간 별다른 준비도 없이 우주선만 타면 하루 만에 우주 관광을 다녀올 수 있는 날이 올 수 있는 겁니다. 게다가 인터컨티넨털 여행과 인터갤럭틱 관광을 결합할 수도 있습니다. 유럽 여행을 가는 길에 우주 공간을 들렀다 가는 식이죠. 수요만 생겨난다면 공급이야 얼마든지 따라줄 수 있습니다. 버진 갤럭틱의 티켓은 이미 600명이 구매했습니다. 이미 1억 5000만 달러의 매출이 확보됐단 뜻이죠. 그 중엔 명예 팬암 파일럿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도 있죠. 이것이 시장의 힘입니다.

퍼스트맨[3] 


시장의 혁신은 또한 경쟁으로 가속화됩니다. 우주 관광 사업은 이미 억만장자들의 우주 전쟁터가 되고 있죠. 그것이 올드스페이스와 뉴스페이스의 결정적인 차이점입니다. 우주가 정부의 영역에서 시장의 영역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죠. 덕분에 한층 가열되고 있습니다. 2021년 7월 20일은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한 지 52주년이 되는 날입니다. 제프 베저스 아마존 전 회장은 이날에 딱 맞춰서 우주여행을 다녀올 계획이죠. 베저스의 우주 기업 블루오리진의 우주선 뉴셰퍼드는 현지 시각으로 20일 오전 8시에 미국 텍사스에서 발사될 예정입니다. 제프 베저스와 윌리 펑크와 올리버 다만이 탑승합니다. 윌리 펑크는 올해 82세의 할머니입니다. 윌리 펑크는 히든 피겨스입니다. 1960년대 나사의 테스트를 통과하고 여성 우주비행사가 될 뻔했지만 당시엔 유리 천장이 너무 단단했죠. 올리버 다먼은 18세 고등학생입니다. 네덜란드 투자 회사 서머셋 캐피털 파트너스의 창업자 조스 다먼의 아들이죠. 윌리 펑크는 베저스가 초대한 손님입니다. 올리버 다먼은 베저스한테 티켓을 산 아빠 찬스 고객입니다. 블루오리진 역시 일반인 우주 관광을 시작하는 것이죠.

베저스는 브랜슨보다 더 높은 우주를 여행할 계획입니다. 고도 100킬로미터의 카르만 라인을 넘어갈 예정이거든요. 국제항공연맹은 카르만 라인부터 우주로 봅니다. 블루오리진은 지상 발사 방식입니다. 수직 타워 형태의 발사체 꼭대기에 우주 관광객들이 탑승하죠. 베저스는 대략 11분 정도 우주에 머물게 됩니다. 블루오리진은 뉴셰퍼드의 창문 크기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버진 갤럭틱보다 훨씬 큰 통창이 붙어 있어서 지구와 우주를 육안으로 더 잘 즐길 수 있다는 거죠. 이제까지 우주선의 창문이 마케팅 포인트였던 적은 없었습니다. 한 걸음 한 걸음씩 위대한 도약을 해야 하는 엄중한 우주 개발 분위기에서 창문 크기는 늘 논외였죠. 이제까지 우주비행사들은 우주로 일하러 출장을 갔던 겁니다. 자칫 출장지에서 우주 관광 왔냐는 핀잔만 들을 수도 있었죠. 이젠 당당하게 관광 왔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우주비행사가 아니라 우주 관광객들이니까요. 우주 관광 시대가 본격화될수록 우주선의 창문 크기는 우주 여행상품의 중요한 격차가 될 공산이 큽니다. 이미 블루오리진이 그걸 입증한 셈입니다.

그런데 베저스의 진정한 목표는 브랜슨과는 좀 다릅니다. 브랜슨이 우주 관광을 상업화하려는 타고난 마케터라면 베저스는 달을 식민지화해서 거주지를 만들려는 개척자입니다. 말하자면 달에도 아마존 유통망을 깔려는 거죠. 《문유》에서나 상상했던 일이죠. 베저스는 7월 20일 뉴셰퍼드가 발사될 텍사스 일대 발사장의 부지를 알아보느라 헬기 비행을 하다가 추락 사고로 죽을 뻔도 했습니다. 그런데도 우주 사업을 멈추지 않았죠. 언제나 베저스의 진정한 열정은 유통이 아니라 우주에 있었습니다. 베저스의 고등학교 시절 여자친구는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베저스가 아마존을 창업한 이유는 우주 회사를 설립하기 위한 돈을 충분히 모으기 위해서다.” 베저스도 나중엔 그 말이 어느 정도 사실이라고 인정했죠. 
 
베저스의 우주기업 블루오리진의 모토는 한 걸음씩 담대하게입니다. 거북이처럼 한 걸음씩 걸어서 달까지 가겠다는 게 베저스의 목표죠. 베저스가 자주 인용하는 우주 관련 명언이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달에 갔던 우주인 유진 서넌이 남긴 말이죠. “우리는 이곳에 도착했고, 이제 떠난다. 모든 인류를 위한 평화와 희망을 안고 이곳으로 다시 돌아올 수 있길 기원한다. 신의 가호가 있기를.” 베저스는 인류가 다시 달로 돌아가게 만들려고 합니다. 우주 관광이 아니라 우주 개척이 목적입니다.

히든 피겨스 윌리 펑크를 1호 손님으로 초대한 것이나 뉴셰퍼드라는 비행선의 이름부터가 한 걸음씩 담대하게 우주 개발의 역사적 발자취를 좇고 있는 것이죠. 뉴셰퍼드는 미국 최초의 유인 우주비행사 앨런 셰퍼드의 이름에서 따왔습니다. 유리 가가린보다 20일 늦게 우주 비행에 성공한 탓에 역사에 인류 최초라는 이름을 남기진 못했습니다. 베저스는 아무도 기억하지 못하는 앨런 셰퍼드의 이름을 계승했습니다. 미국 우주 개발 역사의 전통을 계승하고 싶어 하기 때문입니다. 적통이 되고 싶은 거죠. 아이러니하게도 베저스의 뉴셰퍼드 역시 앨런 셰퍼드처럼 리처드 브랜슨한테 선수를 빼앗겼습니다. 여러 가지로 트웨인의 말이 맞나 봅니다. 역사는 라임을 맞춘다는 말입니다. 물론 우주 관광의 선수는 빼앗겼을지도 몰라도 베조스는 포기하지 않을 겁니다. 달의 고요의 바다에 아마존 물류 창고를 짓는 그 날까지요.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를 위한 안내서[4] 


리처드 브랜슨은 평생 76번의 죽을 고비를 넘겼습니다. 브랜슨 본인이 자서전 《버진다움을 찾아서》에서 밝힌 내용입니다. 1950년생으로 올해 71세인 브랜슨은 산술적으론 거의 매년 한 번씩 죽을 뻔했다는 말입니다. 브랜슨은 실제로 열기구를 타고 세계 여행을 가다가 여러 번 죽을 뻔했었죠. 1997년 두 번째 열기구 세계 여행에선 알제리에 추락했다가 반군한테 억류됐습니다. 1998년 세 번째 열기구 여행에선 중국 영공을 벗어났다가 북한 영공으로 흘러 들어가 버렸습니다. 리처드 브랜슨은 당시 북한이 “우리 영공을 지나간다니 기쁘고 당신의 도전에 행운이 따르기를 바란다”라는 이메일을 보내왔다고 밝혔습니다. 우리가 아는 북한이 그런 이메일을 보냈다니 아무래도 이것만은 브랜슨의 허풍 같지만 말입니다. 2007년엔 라스베이거스 카지노 건물 옥상에서 마케팅 행사를 하다가 번지 점프를 했습니다. 그때 사고로 팔과 다리 뼈가 부러지는 중상을 입었죠.

리처드 브랜슨이 미치광이나 상상할 법한 우주 관광이라는 룬샷에 도전한 건, 그가 평생 돌아이처럼 인생의 한계에 도전해왔기 때문일 겁니다. 결국 최초의 우주 관광객이 됐죠. 우리가 여행을 가는 이유 역시 우리 삶의 한계를 벗어나기 위해서입니다. 세상은 언제나 넓고 일상은 늘 좁으니까요. 우리의 여행 버킷 리스트에 우주 관광이 적히는 날이 왔습니다. 바야흐로 은하수를 여행하는 히치하이커들을 위한 시대가 시작됐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인류 최초로 우주 관광에 성공한 리차드 브랜슨과 그를 바짝 추격하고 있는 제프 베저스의 우주 전쟁 전략을 분석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1]
로버트 다우니 주니어 주연의 마블 히어로물. 억만장자 토니 스타크가 아이언맨으로 등장한다. 
[2]
리어나도 디캐프리오가 천재 사기꾼을 연기한 영화. 팬암 항공사의 전성기 시절이 시대 배경이다. 
[3]
닐 암스트롱의 달 착륙 과정을 그린 데미안 셔젤 감독의 영화.  
[4]
더글러스 애덤스가 지은 코믹 SF 소설을 원작으로 만든 우주 여행물 장르의 원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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