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좌의 게임
 

7월 첫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소비자가 왕이다. 왕왕 듣던 말이죠. 소비자본주의 시대엔 가게와 기업의 제품과 서비스를 소비해주는 소비자야말로 진정 왕이 맞습니다. 다만 착각해선 안됩니다. 제품과 서비스의 공급자가 소비자를 왕처럼 모시겠다는 뜻입니다. 소비자가 공급자한테 정말 왕처럼 군림해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소비자본주의 시대와 디지털 기술의 결합은 소비자의 권익을 비약적으로 증가시켰습니다. 10년 전만 해도 소비자불편신고라도 하려면 “지금은 통화량이 많아 연결이 어렵다”는 기계식 답변을 한참은 참고 들어줘야만 했죠. 지금은 다릅니다. 플랫폼에 댓글 하나만 달면 됩니다. 별점 하나만 주면 됩니다. 

게다가 플랫폼들은 공급자가 소비자의 별점에 일희일비하도록 서비스를 디자인했습니다. 소비자본주의가 평판이 자본이 되는 레퍼런스 자본주의와 결합한 겁니다. 디지털 기술의 발전은 그렇게 소비자를 진정한 소비자본주의의 왕으로 등극시켰습니다. 

사실 거대 플랫폼들은 공급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중개자입니다. 재화와 서비스의 실질적인 공급자는 영세한 자영업자들이죠. 플랫폼들은 자신들이 소비자를 왕으로 대접해주는척 합니다. 실제로 왕을 위해 봉사하는건 서민들입니다. 플랫폼을 통해 서비스를 받는 소비자들과 별다를 것도 없는 우리 이웃들입니다. 이렇게 약자가 약자를 괴롭히는 왕좌의 게임에선 진정한 왕은 존재할 수 없습니다. 게임의 진짜 주인은 따로 있으니까요. 이번주 북저널리즘은, 폭주하는 레퍼런스 자본주의를 다뤘습니다. 전찬우 에디터가 지적한 것처럼, 별점과 댓글은 자칫 자본주의의 인민재판으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한국의 자본주의는 한국의 민주주주와 함께 북저널리즘의 무수한 콘텐츠를 관통하는 대주제입니다. 북저널리즘은 레퍼런스 자본주의를 여러 형식으로 꾸준히 다뤄나갈 계획입니다. 우리의 자본주의가 효율성 있지만 인간미도 있는 사람 사는 자본주의로 진화하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저널리즘의 역할은 그런 진보에 기여하는 것입니다. 

북저널리즘이, 이주민 변호사와의 대담을 통해 차별금지법이 필요한 이유를 짚은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이주민 변호사는 《왜 차별금지법인가》의 저자입니다. 차별금지법은 결과적으로 한국경제의 발전에 기폭제가 될 수 있습니다. 미국 자본주의가 발전한건 내란 수준의 갈등을 견디며 차별을 막고 다양성을 지켜낸 덕분입니다. 차별금지법엔 찬반이 있을 수 있습니다. 그렇다고 필요한 갈등을 회피해선 안 됩니다. 

중국처럼 내부 갈등을 권위로 억누르고 돈으로 회유하면 결국 더 큰 부작용을 낳게 됩니다. 마침 7월 1일 오늘은 중국 공산당 백주년입니다. 중국공산당은 미국 민주주의의 혼돈을 일당독재의 근거로 삼고 싶어합니다. 〈이코노미스트〉는 “마오 시절 이후로 중국 사회가 그토록 엄격하게 통제된 적은 없었다”고 지적합니다. 수천년 인류 역사상 다양성을 무시하고 갈등을 억누르는 권위주의적 자본주의가 오래 번영한 전례는 없습니다. 북저널리즘은 백년을 군림한 중국공산당체제의 미래를 전망하는 디지털북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중국 자본주의의 미래는 한국 자본주의의 거울이니까요. 

지금 우리의 자본주의는 어디로 향하고 있을까요. 한 가지만큼은 분명합니다. 새우 튀김 하나 때문에 사람이 죽을 수도 있는 자본주의는 우리가 바라는 세상이 아닙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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