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을 이야기하는 저널리즘
 

6월 둘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사람은 사람을 좋아합니다. 우리는 매일 소비를 합니다. 우리가 원하는건 물건만이 아닙니다. 물건에 깃든 사람입니다. 누가 쓰는 물건이라서 원하는 겁니다. 우리가 애정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선망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우리가 신뢰하는 사람일 수도 있습니다. 브랜드들이 우리가 환호하는 유명인을 광고모델로 고용하는건 그래서입니다. 우리의 사람에 대한 애정과 선망과 신뢰가 물건에 깃들기를 원하는 겁니다. 사람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우리가 사람을 좋아하는 진짜 이유입니다. 

우리는 매일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습니다. 어제보다 오늘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세상에 나서고 오늘보다 내일 더 나은 사람이 되려고 잠자리에 듭니다. 그것이 인생입니다. 우리가 좋아하는 사람은 우리가 매일 조금이라도 더 나은 사람이 될 수 있다고 믿게 해주는 희망입니다. 사람에겐 사람이 희망인 겁니다. 세상은 결국 우리가 사람에게 가진 희망과 선망으로 작동합니다. 희망은 꿈꾸게 만듭니다. 선망은 욕망하게 만듭니다. 선망은 노력하게 만듭니다. 희망은 도전하게 만듭니다. 희망은 투표를 유도합니다. 선망은 소비를 유발합니다. 

저널리즘의 역할은 희망과 선망 그러나 절망과 실망 사이에 있습니다. 사람들이 사람에게서 희망과 선망을 볼 수 있게 돕는 것입니다. 그러나 저널리즘은 사람들의 희망과 선망이 왜 절망과 실망이 됐는지도 보여줘야 합니다. 세상을 좌절시키려는게 아닙니다. 절망과 실망은 새로운 희망과 선망을 잉태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세상입니다. 

이번주에 북저널리즘은 최초의 흑인 게이 연준 의장으로 하마평에 오르고 있는 라파엘 보스틱을 다뤘습니다. 희망입니다. 달마저 패권경쟁의 전쟁터로 만들고 있는 미중의 진의를 짚었습니다. 실망입니다. 새로운 규칙을 써나가고 있는 닮고 싶은 새로운 여성 롤모델들과의 인터뷰를 다뤘습니다. 선망입니다. 수평적 조직문화라는 희망을 보여줬던 판교 IT기업들이 어떻게 퇴행해왔는지를 지적했습니다. 절망입니다. 북저널리즘은 이렇게 앞으로도 여러분들과 사람 사는 세상을 이야기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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