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면 뭐하니?
 

7월 20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문재인 대통령이 논의됐던 방일을 결국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 도쿄 올림픽도 한일 관계 개선의 돌파구가 되지 못했다. 양국 관계는 악화일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문재인 대통령은 최종적으로 방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습니다. 어제 7월 19일이었죠.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이 도쿄 올림픽 계기 방일을 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습니다. 도쿄 올림픽에 때맞춘 문 대통령의 방일은 한일 양국 모두 한일 관계의 돌파구가 될 것이라고 보고 상당히 공을 들인 외교 이벤트였습니다. 《요미우리 신문》은 7월 19일자 보도에서 한일 양국 정부가 도쿄 올림픽 개막일인 7월 23일에 대면 정상 회담을 진행하기로 했다고 특종 보도했었죠. 결국 오보가 됐습니다. 요미우리는 한 달 전 한일 양국 정부가 정상 회담 조율에 들어갔다는 맨 처음 알린 일본 유력지입니다. 일본 정부가 자국 내 유력지를 통해 한일 정상 회담 정보를 흘렸다는 건 그만큼 일본도 이번 정상 회담을 성사시키려는 의지가 컸다는 방증입니다. 

이건 사실 올림픽과 한일 정상 회담을 둘러싼 일본의 셈법이 복잡했기 때문입니다. 가장 가까운 나라인 한국에서조차 국가 정상이 방문하지 않는다면, 일본의 방역 상황에 대한 불신은 더 커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서로가 이런 속사정을 잘 아는 탓에 양국 외교는 밀당을 계속했습니다. 스가 총리는 “문재인 대통령이 참석한다면 정중히 맞을 것”이라고 표현했죠. 문재인 대통령은 ‘한일 간의 3대 현안’에 대한 총괄 합의가 있어야 방일한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협상에 유리한 조건이 갖춰진 만큼 파격적인 딜을 제시한 것입니다.

물론 일본 측에서 이를 흔쾌히 받아들일 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우리 외교부 고위 관계자는 일본에 협상 가능성을 열어주면서도 부드러운 압박을 이어갔습니다. 한국 정부 역시 한일 정상 회담에 대한 의지가 있었으니까요. “한일 간 3대 현안 중 적어도 하나는 테이블 위에 올려야” 올림픽에 참석한다며, 일단 협상 논의의 시작 단계라도 이루어지면 참가하겠다는 다소 온건한 입장으로 선회한 것입니다.

한국이 처음부터 참석 불가 입장을 못 박고 강경한 태도만 보였다면 일본 정부는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에 대해 크게 고민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애초에 우리 정부는 해당 논의에 대한 회담 시간을 1시간 이상 보장할 것을 요구했으나, 일본의 교도 통신은 일본 정부 관계자의 말을 빌려, “문재인 대통령 방일 시에도 각국 정상을 접견할 때와 같이 15분을 할애하겠다”라고 보도하여 양국의 긴장감은 팽팽했습니다.

하지만 양국 정부의 외교적 조율과는 별개로 한일 관계를 악화시키는 악재가 꼬리를 물었습니다. 지난 7월 12일에는, 일본의 《2021 방위백서》에 독도의 영유권이 다시금 주장되며 우리 외교부가 유감을 표명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결정타는 따로 있었죠. 일본 대사관 총괄공사 소마 히로히사는 지난 7월 15일에 주한 일본 대사관에서 열린 한국 언론과의 오찬에서 “일본 정부는 한국이 생각하는 것만큼 두 나라에 신경을 쓸 여유가 없다”면서, 뒤이어 문재인 대통령을 대상으로 성적 농담을 곁들여 한일 외교 정상화 의지를 폄훼했습니다. 일본 정부는 즉각 이에 대해 유감을 표시했죠.

그러나 이미 엎질러진 물이었습니다.《요미우리 신문》을 통해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이 23일에 성사될 것으로 보도하였지만, 청와대는 "정해진 것은 아직 없다"며 소마 총괄공사에 대한 경질을 요구했습니다. 결국 19일, 청와대는 문재인 대통령은 방일하지 않기로 결정했다고 발표했고 23일 한일 정상 회담은 끝내 성사되지 못했습니다.

‘BATNA‘라고 하죠. Best Alternative To a Negotiated Agreement. 협상을 포기했을 때 얻을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을 의미합니다. 강력한 BATNA를 갖출수록 협상력은 강해집니다. 우리 정부가 문재인 대통령 방일을 둘러싼 신경전에서 협상을 제시하며 일본 측에 다소 무리한 제안을 하기도, 유화적인 입장을 펴기도 했던 것은, 이 사안에 대해 한국의 협상력이 상대적 우위에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한국의 BATNA는, 문재인 대통령이 방일을 하지 않지만, 문재인 정부 임기 말까지 한일 관계가 악화일로를 걸을 것을 감수하는 것이었죠. 반면 일본의 BATNA는 문재인 정부에 기존보다 강경한 자세를 보임으로써, 기존 자민당의 대외 노선을 공고히 하고, 그 대신 각국 정상의 참여가 더욱 적은 실패한 올림픽으로 기록되는 것을 감내하는 것입니다. 우리 외교부가 과거사 협상 카드를 꺼내든 배경엔, 이미 이 줄다리기에서 한국이 일본보다 더 나은 대안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한일 정상 회담 무산은 스가 정부보단 문재인 정부한테 유리한 결과입니다. 심지어 소노 망언은 문재인 정부가 방일을 하지 않는 결정을 하는 걸 더욱 쉽게 해줬죠. 정치와 외교에 있어 최고는, 힘을 쓰지 않으면서 힘을 쓰는 것입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방일하지 않음으로써 다시 한 번 일본 정부에 정치적 타격을 입혔습니다. 


올림픽 취소는 안 하는 게 아니라 못 하는 것

2019년 8월, 문재인 대통령 참석한 청와대 수석보좌관 회의에서 안보 협력 폐기 가능성이 논의됐다. ©청와대 via Getty Images
스가 정부가 이렇게 수세에 몰린 건 결국 무리한 도쿄 올림픽 강행 때문입니다. 수많은 우여곡절 끝에 결국 도쿄 올림픽은 7월 23일에 개최될 예정입니다. 이미 1년 연기되었던 바 있고, 문제 상황 발생 시 금전적인 책임을 지지 않으려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와 도쿄도 사이의 불공정 계약이 공론화되는 등, 해당 올림픽에 대한 부정 여론은 일본 내에서 70퍼센트 대에 육박합니다. 일본의 코로나19 확진자 수는 6월 21일을 기점으로 다시 늘어나며 현재는 일일 2400명 정도가 신규 확진 판정을 받고 있습니다. 도쿄 역시 6월 말부터 확진자가 꾸준히 증가하여 현재는 전국 단위의 증가 추이와 비슷한 양상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이러한 사정에도 불구하고 스가 요시히데 일본 총리가 올림픽 개최를 포기하지 못한 이유는 다양합니다. 먼저, 2013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체결한 IOC와 개최 도시와의 계약 조항을 보면 올림픽 취소 권한은 IOC에만 있으며, 계약 조항에 따라, IOC가 “참가자 안전이 이유 여하를 불문하고 대단히 위협 받는다고 믿을 만한 합리적 근거가 있는 경우”에 한해 올림픽 개최를 취소할 수 있습니다. 다만 이 경우, 일본은 이에 대한 보상이나 손해 배상을 청구할 수 없으며, 반대로 일본이 계약 조항을 파기하며 취소할 경우, 중계권을 구매한 전 세계의 방송국과 IOC에 피해 금액을 배상해야 합니다.

이외에도, 올림픽 개최 지연 당시 발행된 2020년 3월 마지막 주 《이코노미스트》에 따르면,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의 올림픽 강행 배경을 알 수 있습니다. 이미 일본 내 유수의 대기업들이 덴츠(DENTSU)를 통해 거액의 광고비를 지출했고, 올림픽 인프라 유지 및 보수를 위한 비용이 막대하기 때문에 올림픽을 개최하지 못하면 이것이 그대로 매몰 비용이 되는 상황이 발생하며, 국내 관광업에 대한 의존이 높기 때문에, 함부로 개최를 취소할 수도 없다는 겁니다. 무엇보다 아베 총리의 외조부인 기시 노부스케는 총리 재임 시절인 1964년에 도쿄 올림픽을 개최하며, 제2차 세계 대전의 패전국으로서 황폐해진 일본의 화려한 재건을 국제무대에 알렸던 적이 있습니다.[1] 이러한 아베의 개인적 향수가 반영되어, 이번 올림픽을 개최함으로써 ‘잃어버린 30년’의 종식을 선언하고 싶어 한다고 기사는 분석하고 있습니다. 이는 아베의 ‘카게무샤(影武者)’[2]라고 불리는 스가에게 이어져 결국 ‘무관중’임을 감안하고서라도 올림픽을 개최하게 된 것이죠. 
 

무관중의 늪, 무정상 외교의 수렁 

코로나 확산이 지속됨에 따라 일본에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Carl Court via Getty Images
어쩔 수 없이 열게 된 잔치인 데다, 각종 잡음까지 끊이질 않으니 손님이 올 리 만무합니다. 토마스 바흐 IOC 위원장은 “무관중 올림픽 개최를 지지”한다고 밝혔으나, 관중이 없는 스포츠 경기는 선수들에게도, 올림픽 특수를 기대했던 일본인들에게도, 스포츠를 좋아하는 세계인들에게도 달갑지 않은 소식입니다. 누그러들지 않는 코로나 확진자 수와 무관중이라는 특수한 상황으로 인해 이미 세계 각국의 정상들은 줄줄이 불참을 선언하고 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뿐만이 아닙니다. 먼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도쿄 올림픽에 영부인인 질 바이든 여사와 대표단이 파견될 예정이며, 대통령 본인은 불참한다고 밝혔습니다. 일본이 가장 믿고 있던 미국이 정상 방문을 취소함에 따라, 방일을 주저하던 각국 정상들의 불참에도 무게가 실리고 있습니다. 쥐스탱 트뤼도 캐나다 총리도 불참 의사를 밝혔으며, 일본과 견원지간인 중국의 시진핑 주석도 쑨춘란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대신 파견할 것으로 알려졌고, 영국의 보리스 존슨 총리도 “참석하기를 희망한다”라고 했지만, 정확히 참석 의사를 밝히지는 않았습니다. 현재까지 참석이 확정된 것은 프랑스의 에마뉘엘 마크롱 대통령뿐인데, 이 역시도 2024년 올림픽이 파리에서 개최되는 것을 염두에 둔 것이라는 의견이 많습니다. 

물론, 올림픽마다 참여국의 모든 국가 정상이 방문하는 것은 아닙니다. 특히 미국의 경우,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 대신 영부인인 미셸 오바마가 참석했으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에서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아닌 마이크 펜스 부통령이 참석했습니다. 하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에서 줄줄이 각국 정상이 불참하는 이유가 팬데믹, 무관중과 같이 특수한 상황과 결부되어 있다는 점은 일본에 치명적입니다. 심지어 일부 스포츠 스타들도 불참을 선언하며, 그 이유로 일본의 방역 문제를 직간접적으로 거론했습니다. ‘잃어버린 30년’의 탈피를 선언함과 동시에, 성공적인 방역까지 이뤄냈음을 보여 주고 싶었던 일본에, 이어지는 각계의 불참 소식은 큰 악재라고 할 수 있습니다. 흥행에 실패한 올림픽, 그 이상의 무게로 다가올 테죠. 이는 대외 강경파인 자민당의 스가 총리가 은근히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을 원하는 이유로 작용했습니다.
 

한일역전이라는 현실

2010년 벤쿠버 올림픽 ©Kevork Djansezian via Getty Images
한국은 늘 일본과의 외교 다툼에서 불리한 입장에 서 있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일본에 비해 정치·경제적으로 늘 약세를 보여 왔고, 한국이 일본을 바짝 추격한지는 그리 오래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단적으로, 일본이 버블 경제 이후 잃어버린 10년을 경험할 당시에, 한국은 그때서야 ‘88 서울 올림픽’을 열며 세계에 한국을 알리고 있었습니다. 한국은 ‘아시아의 네 마리 용’으로 급격한 경제 발전을 이룬 나라 중 하나이지만, 일본이 세계적인 경제 대국이 된 시점은 한국과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이릅니다. 일본은 앞서 64년 도쿄 올림픽에서 일본의 부활을 알린 것과 같이, 전후 55년부터 73년까지 18년간 고도 경제 성장을 이뤄냈습니다.

하지만 버블 경제의 충격과 잃어버린 10년, 정치·사회적 고령화는 일본을 저성장으로 끌어내렸습니다. 2020년 발간된 《피크 재팬》에서, 동아시아 국제 전략 분석가인 브래드 글로서먼은 일본이 잃어버린 10년 이후 ‘리먼 쇼크’,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의 정권 교체 이후 민주당의 자멸, 센카쿠 열도 분쟁, 동일본 대지진 등의 4가지 쇼크로 2류 국가로 전락할 위기에 놓였다고 분석한 바 있습니다. 그에 비하면 한국의 경제 성장은 놀랍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발표한 올해 한국의 경제 성장률은 3.8퍼센트로 예상되며, 일본은 앞으로 2년 동안 평균 1.1퍼센트 역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되었습니다. 1980년 이후 경제 성장률 추이를 비교해보면 한국은 98년 외환 위기 때만 일본에 크게 뒤쳐졌고, 이를 제외한 모든 년도에서 일본을 앞질렀습니다. 

세계 3대 투자자로 꼽히는 짐 로저스는 《주간 아사히》 9일호의 연재 칼럼에서 자신은 일본을 좋아하지만 일본 쇠퇴는 필연이며, 이는 스가 총리가 아베 전 총리의 정책 계승을 내세우고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습니다. 또한, 최근 발간된 이명찬 저자의 《일본인들이 증언하는 한일 역전》은, 일본의 정치학자 시라이 사토시의 《영속 패전론》을 소개하며, 혐한의 배경에 대해 설명합니다. 영속 패전론은 일본이 전후 침략 전쟁에 대한 책임을 회피하며 대미 종속을 벗어나지 못하는 상태를 의미하는데, 한국이 고도의 성장을 이루는 동안 한국이 ‘극일’의 정체성을 공유했던 것과 대비됩니다. 저자는 이 책에서 일본이 한국에 추월당하는 이유를 정치·사회·문화적 후진성이라고 설명하며, 일본이 코로나 방역에서 보여 준 대응을 근거로 제시하고 있습니다. 한국에게 극일이 목적이 아닌 현실로 다가오는 동안 최근의 한일 관계는 어땠고 앞으로는 어떨까요?
 

한일 관계라는 숙제

일본의 한국 '백색 국가' 해제에 반발하여 반일 시위가 벌어지고 있다. ©Chung Sung-Jun via Getty Images
문재인 정부는 대표적인 ‘친중, 반일’정부로 표현됩니다. 문재인 정부는 아베 체제와 스가 체제, 두 체제를 모두 겪은 정권인데요, 스가 총리가 사실상 아베 전 총리의 노선을 따르고 있기 때문에 한일 관계에 극적인 변화는 일어나지 않았습니다. 임기 초 문재인 정부는 문희상 특사를 파견하며 지난 정부에서의 위안부 합의에 대해 국민 공감대가 낮음을 전언한 바 있으며, 전반적인 대일 정책의 노선을 과거사 논의와 미래 지향적 논의, 투 트랙으로 나눠서 진행했습니다.

2018년 10월, 일제 강점기 강제 징용 피해자들이 ‘일본제철’을 상대로 낸 소송에서 우리 대법원이 배상 판결을 내면서부터는 한일 간 무역 분쟁이 시작되기도 했습니다. 2019년, 일본 경제 산업성이 반도체 및 디스플레이 제조 핵심 소재의 수출을 제한한 것인데요, 일본은 이른바 ‘초계기 사건’을 언급하며 한국이 일본 안보를 위협한다는 논리를 내세웠습니다. 이는 수출 대상으로 신뢰할 수 있는 국가인 “백색 국가”에서 한국을 제외하는 조치로 시행되었습니다. 이에 대해 한국은 수출 규제를 우회할 수 있도록 수입처를 다변화하고 자력 개발을 통해 대응해 왔습니다. 민간 차원에서는 각종 일본 기업의 제품 불매 운동이 일어나기도 했습니다. 

한일 간의 갈등 상황은 비단 경제적인 수준에서만 머물렀던 것이 아닌데요, 한일 무역 분쟁이 비화되자 우리 외교부는 한일 군사 정보 포괄 보호 협정(GSOMIA)을 연장하지 않고 파기할 수도 있다는 입장을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만류로 결국 종료되지는 않았지만, 자칫 한미일의 군사 협력이 위협 받을 수도 있는 사건이었습니다. 이후 후쿠시마 원전 사고가 일어났을 때에도 한국은 출입국 제한이나 여행 경보 조치 발동을 고려하는 것으로 대응하며, 한일 관계는 지금까지 악화일로를 걸어오고 있습니다.

다만 이러한 현 정부의 기조를 모든 국민이 찬성하는 것은 아닙니다. 최근 몇 년 사이, 한국 내 특히 젊은 층들은 반일보다 반중 정서가 더 높은 것으로 보입니다. 올해 4월 한국일보ㆍ한국리서치의 여론 조사에 따르면, 2030세대의 주변국 호감도에서 일본이 중국을 앞지르고 있습니다. 특히 20대에서는 차이가 두 배 가까이 나타났습니다. 일본과 중국 모두 한국에게 있어 외교적으로 가장 중요한 나라들이지만, 현 정부가 일본과 달리 중국에 대해 다소 유화적인 태도를 보이는 것에 우려의 목소리가 많습니다.
 

21세기 한일 관계의 청사진


오랜 역사적 앙금, 한일 무역 분쟁, 한일 역전, 반일 정부. 이번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취소 결정으로 한일 관계는 더욱 악화될 가능성이 높지만, 한국은 앞으로도 일본과의 줄다리기에서 마냥 이기는 것에만 몰두할 수는 없습니다. 바로 미국이라는 변수 때문입니다. 한국의 외교계 인사들은 한일 관계가 매우 악화되었지만 그럼에도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 가능성이 높다고 점쳤던 바 있습니다. 올림픽 개막 직전 한미일 외교 차관 회동이 예정되어 있고, 이를 바탕으로 다음 달에는 3국의 외교 장관들이 한반도 문제를 비롯한 주요 사안에 대한 논의를 이룰 예정이기 때문입니다. 중국에 대항하여 결집하고자 하는 바이든의 동맹 체제에 한국과 일본은 핵심적인 나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한일 양국 간의 과거사 문제를 비롯한 고질적인 문제를 논의하는 물꼬를 트고, 결과적으로 3국의 협력 체제를 공고히 하기 위해서, 우리 정부 역시 이른바 ‘밀당’에 들어갔던 것입니다.

한국은 지정학적 특수성으로 인해, 전통적으로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등거리 외교를 해온 바 있습니다. 각 정권마다 온도의 차이는 있지만, 대 중국 수출 의존도가 높은 우리나라에게 중국은 경제적으로 중요하고, 미국은 한국의 안보에 있어 핵심적인 동맹국이죠. 문재인 대통령은 임기 초 한미일 정상 업무 오찬 때, “미국은 한국의 동맹이지만 일본은 협력관계”라고 발언했던 바 있습니다. 일본을 저물어가는 국가로 보는 시각이 많지만, 그렇다고 한일 관계를 악화 상태로 두는 것은 미국과의 동맹에 악영향을 줍니다. 지소미아 종료 논란이 있을 때 미국이 강한 유감을 드러냈던 것을 보면 알 수 있죠. 지난 4월 미일 정상 회담 직전 로이터가 보도한 익명의 백악관 고위 당국자의 발언에 미국의 고민이 담겨 있습니다. 이렇게 말했죠. "한일 간 정치적 긴장이 너무 높아서 동북아에서 우리의 모든 역량을 사실상 저해하고 있다고 믿는다." 미국의 입장에 너무 종속되는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있을 수 있지만, 미국을 배제하더라도 일본은 지리적으로 한국과 매우 가깝습니다. 그래서 한일 관계는 장기적으로 반드시 개선되어야 할 외교적 현안입니다.

문재인 정부는 내년 임기가 종료됩니다. 자민당 중심의 스가 정권이 당분간 이어진다면 한일 관계가 극적으로 변할 가능성은 없어 보입니다. 하지만 바이든 정부가 G7 회의에서 강조한 동맹에 대한 의지는, 한국과 일본의 미래 지향적 논의에 도움을 줄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

‘김대중-오부치 선언’은 과거사 문제와 교류 협력 문제를 분리하여 일본과의 관계 복원을 시도한 한일 간의 전통적인 ‘셔틀 외교’로 불립니다.[3] 셔틀 외교의 본래 의미는 분쟁 국 사이의 중재 외교를 의미합니다. 다자주의를 강조하며 다시 한 번 글로벌 규범 전쟁에서 리더를 자처하는 미국이 한일 관계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해줄 것으로 기대도 됩니다. 하지만 제3국의 중재가 언제나 성공적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결국 당사자들이 풀어야 풀리는 문제란 말입니다. 김대중 대통령은 1998년 10월 8일 일본 국회 연설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적은 기적적으로 오는 게 아닙니다." 같은 날 김대중-오부치 선언이 발표됐죠. 

21세기 한일 관계의 청사진은 양국이 과거사의 앙금을 풀면서, 건설적인 관계로 발전하는 것입니다. 늘 과거사 문제에서 양국이 한 치의 양보도 보일 수 없었던 이유는 양국 모두 국민의 역사 인식과 정체성이 선거에 영향을 강하게 미치는 민주주의 국가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일본의 역사 교과서 왜곡을 크게 문제 삼습니다. 일본의 자국 중심적인 역사관이 답습되어 신세대가 객관적인 역사 인식을 갖는 것에 방해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입니다.

한국과 일본은 풀리지 않은 역사적 앙금이 많지만 구성원들의 역사 인식 변화는 양국 관계에 큰 변화를 가져올 수 있습니다. 과거의 아픔을 잊자는 것이 아니라, 한국은 일본에게 가지고 있던 극일 일변도의 자세를, 일본은 전후 책임을 회피하며 산적한 역사 문제들을 외면하려는 자세를 바꾸려는 시도가 필요하다는 것입니다. 한일 관계가 건설적인 방향으로 나아가려면, 지금 한국과 일본이 어떠한 위치에 와 있는지, 새롭게 도사리는 위협은 무엇인지 체감할 필요가 있습니다. 도쿄 올림픽 계기 방일과 한일 정상 회담은 무산됐지만, 이번이 아니더라도 한일 관계의 개선은 피할 수 없는 과제입니다. 양국의 차기 정부들도 외면할 수 없는 숙제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도쿄 하계 올림픽과 문재인 대통령의 방일을 놓고 벌어진 한일 간의 신경전과, 한일 관계의 현재, 그리고 21세기 한일 관계의 청사진은 무엇일지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1]
1964년 도쿄 올림픽 당시 신칸센을 새롭게 선보였으며, 정지 궤도 위성을 통해 미국 전역에 실시간으로 올림픽을 중계 했습니다.
[2]
카게무샤는 과거 일본에서 군주를 보호하기 위한 가짜 군주로, 군주와 닮은 사람을 진짜 군주 대신 내세우는 일종의 위장 대역입니다. 영화 《광해》에서 광대인 ‘하선’의 역할과 같습니다.
[3]
셔틀 외교는 이스라엘-팔레스타인 분쟁 당시 헨리 키신져가 중동 분쟁의 중재자 역할을 했던 것을 의미합니다. 한일 관계에서의 셔틀 외교는, 양국 정상이 특별한 사안 없이도 비정기적으로 회담을 가지며 격 없이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한다는 외교 정책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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