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대를 바꿔라

7월 22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문무대왕함이 코로나에 습격 당했다. 조국을 지키던 장병들이 군의 무능 탓에 집단 감염됐다. 대한민국 군대는 변할 수 없는가 변하지 않는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승조원 총 301명 중 90퍼센트인 270명. 합동참모본부(이하 합참)가 밝힌 ‘문무대왕함’의 최종 코로나19 확진자 수입니다.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파병 부대가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선인 문무대왕함을 타고 나가 작전을 수행하다가, 공중 급유 수송기를 타고 복귀합니다. 청해부대에 이렇게 대규모 집단 감염이 일어날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것일까요?

청해부대는 그 유명한 ‘아덴만 여명 작전’의 주인공입니다.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이지만 대외적 군사 활동이 많지 않은 터라, ‘한국 군대’ 하면 방송에서 접하는 이미지만 떠올리는 경우가 많을 텐데요, 그래도 이 청해부대와 아덴만 여명 작전에 대해서는 적어도 한 번쯤 들어보셨을 겁니다. 청해부대의 정식명칭은 ‘소말리아 해역 호송 전대’로 대한민국 해군 소속의 특수 임무대입니다. 최근 채널A의 〈강철부대〉나 유튜브 피지컬 갤러리의 웹 예능 〈가짜사나이〉 등으로 더욱 대중에게 유명해진 ‘해군 특수전전단(UDT/SEAL)’ 대원들과 4천 톤급 구축함, 해상 작전 헬기와 해군 항공대로 이루어져 있죠.

이번 청해부대 34진에 배치되어 지난 2월 8일에 출항한 문무대왕함은 이지스 시스템을 탑재한 5천 톤급 이상인 ‘세종대왕급’ 다음의 규모를 자랑하는 충무공 이순신급 구축함입니다. 대한민국 해군력의 핵심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함정이죠. 2003년 4월, 문무대왕함의 진수식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해군의 최대·최신예 구축함’이라며 찬사를 보냈고, 당시 언론에서는 ‘한국 최초의 스텔스 구축함’이라는 설명과 함께 보도했습니다. 2009년 창설된 청해부대 소속으로 지금껏 활약해왔죠. 이 정도면 청해부대, 그리고 청해부대 34진으로 지난 2월 8일에 파병된 ‘문무대왕함’에 탑승한 대원들의 모습과 위상이 더욱 자세히 그려지실 것이라 생각합니다.
 

코로나는 감기처럼 퍼져나갔고, 군은 헛기침 같은 해명만 했다

합동참모본부에서 19일 문무대왕함에서 247명이 확진되었다고 발표했다. ©KBS
이렇게 출발한 문무대왕함에서 지난 2일 코로나로 의심되는 감기 증상을 호소하는 장병이 최초 발생했습니다. 당시 부대에서는 열흘 넘게 감기약만 주면서 간이 검사인 ‘신속 항체 검사’만 실시했다고 하는데요, 같은 달 15일에 결국 최초 6명이 확진 판정을 받으며, 18일에는 68명, 19일에는 247명으로, 확진자가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기 시작했습니다. 합참의 지난 19일 발표에 따르면, “현지 보건 당국의 유전자 증폭(PCR) 검사 결과, 기존 확진자 68명에 더해 179명이 추가 확진되었고, 50명은 음성, 4명은 ‘판정 불가’”라고 하는데요, 심지어는 함장, 부함장, 함정 지휘부도 확진 판정을 받았습니다. 코로나 잠복기와 선박의 폐쇄성을 고려하면 사실상 전원 감염에 준하는 참사가 아니냐는 언론의 뭇매가 이어지는 동안 결국 확진자는 270명, 90퍼센트에 도달했습니다. 다만 군을 향해 쏟아지는 비판은 비단 확진자 비율 때문만이 아닙니다. 불과 몇 달 전, 이미 유사 사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지난 4월 23일, 84명이 탑승해 있던 한국의 상륙함인 ‘고준봉함’에서 33명이 코로나19 확진 판정을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당시 국방부 장관은 함정에서의 근무와 작전에 대해 ‘한정된 공간에서 다수가 밀집 근무하는 특성’을 언급하며 철저한 방역을 지시하기도 했죠. 이러한 지시에도 불구하고 결국 안일한 리더십의 여파는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파병 부대인 청해부대의 문무대왕함에 집단 감염으로 나타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선례가 있고, 국방부 장관의 지시까지 있던 차였기에, 이번 집단 감염은 더욱 이해하기도 어렵고 비판도 받는 것이죠.

그런데 군의 입장은 달랐습니다. 국방부와 합참은 언론 보도에 유감을 표하며, 해명 아닌 해명을 덧붙였는데요, 청해부대 34진이 출항할 당시에는 국내에 백신이 반입되지 않아 미접종 상태로 출항해야 했으며, 군에 백신이 도입된 이후에도 사후 접종이 어려웠다는 겁니다. 그 이유로 국방부는 청해부대 34진이 최초 백신 접종 대상 포함 여부를 검토할 당시, 먼바다에서 작전을 지속하는 임무 특성상, 아나필락시스[1] 등 예방 접종 후 이상 반응 발생 시 응급 대처가 제한된다는 점과 함정 내에서는 백신 보관이 어렵다는 점, 백신 제조사가 계약서에서 백신의 국외 반출을 제약한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는 그저 면피성 해명에 불과했습니다. 정은경 질병 관리청장은 19일 정례 브리핑에서, “국제법과 관련해서는 제약사와 협의해 백신을 보내는 것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심지어 함정은 해외에 있어도 소속 국가의 영토로 간주 되기 때문에 한 방역 전문가는 “청해부대가 달이나 화성으로 떠난 것도 아니고, 그냥 백신 300개를 냉동 보관 박스에 담아 군용기에 실어 보냈으면 될 문제였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청해부대의 파병을 연장한 것은 애초에 유엔 안보리 상임 위원회 결의에 근거했습니다. 즉, 한국군이 유엔에 백신을 요청했으면 협조가 충분히 가능했을 상황이죠. 아랍에미리트에 파병된 ‘아크 부대’는 현지 당국의 지원으로 백신을 접종하기도 했습니다. 심지어 청해부대장 출신 예비역 해군 제독은 “청해부대는 2주~2.5주에 한 번씩 유류와 식량을 적재하려고 항구에 들어가므로, 이때 청해부대가 소속된 다국적군 사령부를 통해 백신을 지원받을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심지어 청해부대가 가져간 800개의 신속항체검사 키트는 감염된 뒤 2주 정도 지나야 생기는 항체 확인용으로, 초기 감염 여부 판단용으로는 부적절한 것이었습니다. 결국, 국방부의 해명을 곱씹어보자면 작전 도중 백신 공수가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만, 절차의 복잡성을 아무도 감내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으로 읽힙니다. 각계에선 문무대왕함의 위상에 걸맞지 않은 군 당국의 허술한 체계와 해명의 궁색함에 날 선 비판을 쏟아내고 있습니다. 결국 서욱 국방부 장관은 20일 오전 청해부대 상황과 관련하여 대국민 사과를 하기에 이르렀습니다.
 

루스벨트와 샤를 드골 그리고 문무대왕함

미국에 이어 프랑스도 항공모함 집단 감염이 발생했다. ©YTN 사이언스 투데이
집단 감염이 하루 이틀도 아니고 왜 이렇게 호들갑이냐 하실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주권 국가의 근간을 이루는 군대, 특히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최정예 파병 부대 중 하나가, 이미 백신이 보급되고 있는 현 시점에 전원 감염에 가까운 방역의 허술함을 보였다는 것은 참 부끄러운 일입니다. 무엇보다 실제 작전에 투입되며 장기간 나라에 젊음을 바치고 있는 대원들이 군 지휘 체계의 안일한 리더십과 소통의 부재로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되었다는 것이 정말 안타깝습니다. 

군은 이번 문무대왕함 코로나19 집단 감염으로 청해부대 34진 전원의 안전 후송을 위한 작전명을 ‘오아시스 작전’이라고 명명했는데, 벌써 시선이 따갑습니다. 함정에 인력을 교체하고 소독하는 동안 병력 공백이 생기기 때문에 작전을 공개하지 않는 것이 일반적이기도 하고, 이런 후송 작전의 특수 작전명을 공개하는 나라가 어디 있냐는 반응입니다. ‘오아시스’라는 작전명 역시 이번 논란으로 곤욕을 치른 합참이 ‘목이 타서 지은 것’ 아니냐는 얘기가 군 내부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위용 있는 문무대왕함을 타고 파병을 나가 작전을 수행하고, 함정과 함께 귀국하며 환영받아야 했을 특수 임무단 장병들이, 임무를 끝까지 수행하지 못하고 공중 급유 수송기로 귀국하며 얼마나 참담했을지 가늠하게 됩니다.

문무대왕함 집단 감염 사태가 군 안팎에서 ‘국제적 불명예’라고 까지 표현되는 것에는 다른 이유도 있습니다. 해외에서도 이와 유사한 사례가 있었던 것인데요, 작년 4월에 프랑스 핵 항공모함인 ‘샤를 드골 호’는 승조원 1706명 중 60퍼센트에 해당하는 1046명이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되었습니다.[2] 이 때는 세계에 백신이 등장하기 전인데요, 생각보다 대응과 조치가 빠르게 이루어진 것으로 보입니다. 샤를 드골 호는 발트해에서 북대서양조합기구(NATO) 연합 작전을 수행하던 중 승조원 일부가 코로나 증세를 보이자, 모항인 프랑스 동남부 연안인 ‘툴롱’으로 예정보다 2주 빠르게 귀환하여 격리 조치하였습니다. 그럼에도 최종 확진이 60퍼센트에 달했다는 것은 그만큼 해상이라는 특수성이 코로나에 취약하다는 것을 의미하죠.

샤를 드골 호 사건 한 달 전인, 2020년 3월에는 미국 핵 항공모함인 ‘시어도어 루스벨트 호’가 승조원 4800여 명 중 1100여 명인 약 22퍼센트가 코로나19에 집단 감염된 사례가 있었습니다. 당시 함장이었던 브렛 크로지어는 코로나19 의심 증상자가 스무 명 넘게 나오기 시작하자 미 해군 지휘부에 감염된 장병들을 격리시켜달라는 긴급 서신을 보냈지만 당국의 대응은 조속히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결국 가까운 괌으로 이동한 루스벨트 호에서는 최종 천명이 넘는 확진자가 발생하였습니다. 크로지어 전 함장은 미 해군의 코로나19 대응을 비판했는데요, 당시 구조 요청을 보낸 서신이 언론에 공개되며 해군장관이 그를 해고하는 일이 있었습니다. 정치권에서는 당시 크로지어 전 함장이 언론 유출을 고려하지 못한 것은 경솔했다는 반응과, 명령 계통을 벗어난 행동을 했어도 중차대한 순간에 지휘관을 경질하는 옳지 못하다는 반응으로 나뉘며 논란이 되었습니다.

샤를 드골 호, 루스벨트 호의 사례와 비교해보았을 때, 우리 문무대왕함은 훨씬 나은 조건에 있었습니다. 앞선 사례들과는 다르게 이미 세계에 코로나 백신이 상용화된 시점이며, 작전 중이긴 하지만 백신이 국내에 도입도 되었고, 코로나 검사 방법이나 대응 매뉴얼 등, 데이터가 훨씬 더 많은 상황이었습니다. 국내에서의 선박 집단 감염 선례도 있었지요. 그런데 청해부대의 대응은 앞선 두 사례보다도 답답해 보입니다. 의심 증상자에게 그냥 감기약을 처방하고, 항원 검사 키트가 아닌 항체 검사 키트로 부적절한 진단을 실시하였으며, 백신 수급의 기회를 충분히 만들 수 있음에도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았죠. 청해부대가 합참에 다수의 ‘감기 증상자’가 발생했다고 처음 유선 보고한 시점은 10일로 알려집니다. 이는 감기 증상자가 선박 내에서 78명으로 급증한 시점입니다. 서욱 국방부 장관도 나중에 한꺼번에 보고가 올라왔다는 반응을 보인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보고 체계의 부실도 여실히 드러나는 지점이죠. 비유가 과할 수 있지만 공수창 감독의 영화 《GP506》이 떠오르기도 합니다.[3]
 

한국 군대는 변할 수 없는가 변하지 않는가

서욱 국방부 장관이 해병대 연평부대와 6여단 현장 지도를 하고있다. ©국방TV
‘청해부대의 대처가 왜 더 빠르고 효율적이지 못했을까‘라고 우리가 반문하게 되는 것은 사실 예방과 대응이 그다지 어렵지 않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판데믹 상황에서 파병 부대가 안전하게 작전을 수행하기 위해 특이사항을 최소화하는 것은, 지휘관에게도, 군 지도부에게도 큰 이익이죠. 결국 문무대왕함에서 발생한 코로나 바이러스가 집단 감염으로 비화된 데에는 군의 권위주의적이고 전근대적인 리더십이 큰 비중을 차지할 것입니다.

이러한 문제는 군 내 소통에서 많은 문제를 야기해왔습니다. 군필자들이 각자 근무한 부대와 병과가 다르더라도 얘기를 털어 놓기 시작하면 한도 끝도 없이 이야기를 이어 나갈 수 있는 이유는, 근무한 시기가 조금씩 다르더라도 보편적으로 한국 군대가 공유하고 있는 특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현재 우리 군대 문화는 격세지감이라고 할 정도로 변화하여 장병들이 휴대폰을 사용하는 시대이지만, 지휘 계통은 크게 변하지 않은 것 같습니다. 이는 곧 군필자들의 안주 거리가 되죠.

정작 변화의 대상으로 여겨졌던 것은 장병들의 병영 문화였습니다. 군 내 괴롭힘, 부조리, 얼차려 등은 옛말이 되어가고 있습니다. 하지만 군필자들은 부사관들 사이에서도 이와 같은 병영 부조리가 늘 있었다는 것에 대부분 공감하실 겁니다. 병영 문화를 개선해야할 지휘관들은 정작 이러한 부조리의 늪에서 자유롭지 못했던 경우가 많죠. 소통 부재, 안일한 대처, 정보 은폐 등. 선진 병영 문화를 대외적으로 홍보하며 대중들에게 우호적인 이미지를 심으려는 군의 답답한 이면은 최근 어떤 사건으로 크게 조명되었습니다.
 

안타까운 죽음에도 군은 왜 변하지 못하나

지난 5월 성추행 피해자인 공군 중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다. ©YTN
2021년 5월, 한 공군 중사가 스스로 생을 마감했던 사건을 모두 기억하실 겁니다. 심지어 공군은 한국 군대 내에서 가장 선진적이고 개방적인 병영 문화로 알려져 있죠. 그럼에도 가해자인 상관 중사의 성추행을 묵인하고 은폐하려고 조직적인 시도까지 일어났습니다. 온 국민은 분노했고, 문재인 대통령도 해당 사건의 피해자를 추모하며 목이 멘 듯한 모습을 보였다고 하죠. 결국 지난 6월 4일에 이성용 참모총장이 사의를 표했고, 서욱 국방부장관은 “매우 송구하다”며 사과했습니다. 이번 청해부대 관련 사과로부터 겨우 한 달 반 전입니다.

이 사건은 비단 가해자 중사만의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이미 사건 이전에도 최소 2건 이상의 별개의 성추행 사건이 있었다고 하며, 피해자의 신변보호조치는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애초에 성추행 사건 자체가 후배 부사관이 운전하는 차량의 뒷좌석에서 이루어진 것이며, 부대 내의 선임들은 가해자를 두둔하였죠. 가해자의 아버지는 피해자에게 합의를 종용하는 듯한 장문의 문자를 보내고, 피해자의 남자친구에게도 압박이 가해지는 등, 군 내부의 폐쇄성과 권위주의적인 체계가 만들어낸 안일하고 부적절한 대응의 총집합이었습니다.

물론 모든 부대가 그렇다는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군 내부의 문제점은 그 특유의 폐쇄성으로 인해 외부로 잘 공개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러한 사건이 벌어질 때마다 우리는 한국 군대의 현주소를 실감하게 되는 것입니다. ‘선진 병영’. 우리 군대가 강조하는 이 개념은 2005년 ‘530 GP 사건’과 ‘논산 육군 훈련소 인분 사건’이 큰 계기로 작용하여 만들어진 용어입니다. 햇수로 벌써 16년차입니다. 우리 군의 지휘 계통은 왜 변화하지 못하고 있을까요?

우리나라의 국방부 장관은 군인 출신이 앉게 되는 임명직입니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에 제대로 된 문민정부가 들어선 것은 생각보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죠. 휴전 국가인 우리나라 특성 상, 싸울 줄 아는 사람이 군대를 다뤄야 한다는 생각에 많은 분이 동의하실 겁니다. 일례로, 6.25 전쟁 당시 우리나라의 2대 국방부장관은 문민 출신이었는데, 6.25 전쟁 초기 대응에 크게 실패했죠. 그 이후로 군인 출신이 국방부 장관이 되는 것은 관례였습니다. 다만 이로 인해 우리 군은 문민 통제에서는 다소 멀어져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가뜩이나 정치의 손길이 닿기 어려운 기관인데, 정치적 무관심까지 더해져, 군 지휘 계통 내의 문제점은 잘 사라지지 않습니다.

한국군은 사실 미국 군대의 권위주의적 모델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기 때문에, 애초에 상명하복을 기본으로 하여, 명령을 즉각적으로, 효율적으로 수행하기 위한 군인을 기르는 것에 초점이 맞춰져 있고, 그것이 매우 중요한 덕목으로 여겨집니다. 민주적인 절차를 상당 부분 무시할 수밖에 없는 군 조직의 특수성은 군부 독재 시절의 잔재와 뒤섞여, 결국 군대 내 뿌리 뽑히지 않는 악습과 권위주의적인 명령 체계, 소통의 부재로 나타나게 됩니다.
 

안 되면 되게 하라


군에 대한 이런 식의 묘사는 언제나 의견이 분분합니다. 우리는 너무나 안타까운 사건들을 숱하게 목도하였고, 언론에 공개되지 않고 은폐되는 사건들도 많을 것입니다. 물론, 군의 보안과 기율이 효율적인 작전 수행에 있어 얼마나 중요한지 공감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나라는 휴전 국가이고, 미중 패권 경쟁의 구도에서 지정학적으로 최전방이자 완충 지대의 역할을 하고 있으며, AI와 자율 무기가 투입되는 현대전의 기술력을 고려해 보았을 때, 우리 군이 경쟁력을 갖추기 위해서 다양한 방법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습니다.

선진 병영의 개념이 2005년부터 대대로 홍보된 이후, 이명박 정부에서 북한이 지속적인 대남 도발과 함께 남북 관계에 마찰을 일으키자, 선진 병영에 대한 목소리는 다소 수그러들기도 했습니다. 이는 ‘22 보병 사단 총기 난사 사건’과, ‘28 보병 사단 의무병 살인 사건’을 기점으로 군에서 다시 강조되다가 최근 ‘자가 격리 군 장병 부실 급식 사건’부터 성추행 피해 공군 부사관 사망 사건, 청해부대 사건까지 겹치며 단어의 진정성마저 의심 받는 상황입니다. 북한의 도발이 선진 병영의 목소리를 잠재웠다는 것이 참 아이러니 합니다. 강한 군대와 선진 병영은 배치되는 것이 아니라 상호 보완 관계일 수도 있는데 말이죠.

코로나 악재로 수많은 분야에서 리더십의 위기를 겪고 있습니다. 곪아 있던 문제는 위기를 만나면 쉽게 터져 나오기도 합니다. 바로 청해부대처럼 말입니다. 한국은 아직 징병제인 만큼, 장병들을 체계적으로 관리하고 그들이 국가와 사회에 공헌하고 있다는 자긍심을 고취시키는 것이 필요한데, 한국의 군 조직은 여전히 소통 부재와 권위주의적 리더십, 전근대적인 마인드에 머물고 있다는 것을 다양한 사건을 통해 실감하게 됩니다. 코로나 바이러스라는, 수치화 가능한 재난 앞에서 청해부대 34진 문무대왕함이 받아든 성적표는 가히 암울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하버드대 국가 준비 리더십 이니셔티브를 이끄는 레너드 마커드는 《매일경제》인터뷰에서 코로나가 바꾼 리더십에 대해 언급하며, 현재와 같은 상황에서는 ‘위기 관리자(Crisis Manager)’가  아닌 위기 이후를 내다보고 폭넓게 대처하는 ‘위기 리더(Crisis Leader)’가 되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또한 현 글로벌 위기 상황에서 리더는 데이터를 따라야 한다고 하죠. 《이코노미 조선》의 칼럼에서는 위기 사태에서 “리더는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을 정확히 파악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소통의 중요성도 강조하죠.

물론 이는 코로나 위기 상황에 대처하는 리더에 대한 보편적인 제언입니다. 하지만 이번 청해부대의 대응을 돌이켜보면 의미가 남다르게 느껴집니다. 최초로 의심 환자가 발생한 시점부터 사태 이후를 내다보지 못했던 지휘관, 신속 항원 검사 키트가 아닌 신속 항체 검사 키트만 보급한 국방부와 합참의 안일한 처사, 백신을 수급할 수 있었음에도 장기간 백신 미 접종 상태로 작전을 수행하게 한 지휘부. 만약 장병과 증상에 대해 확실히 소통하고, 대응 매뉴얼을 확실히 갖추었더라면, 데이터를 바탕으로 세밀하게 본부에 보고하고, 예방을 위해 본부에서도 적극적으로 청해부대를 지원하였다면, 이번과 같은 대참사로 이어지진 않았을 겁니다.

보수적인 군 조직은 하루아침에 바뀔 수 없습니다. 이미 장기간 군 생활을 함께한 장성들로 이루어진 우리 군에는 새로운 인력이 충원되어야 하고, 이에 따라 유연한 리더십을 발휘할 줄 알아야 합니다. ‘유연하고 개방적인 것은 약하다’는 인식에서 벗어나 더욱 선진화되고 효율적인 조직이 돼야 합니다. 그것이 대한민국 국민이 원하는 대한민국 군대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청해부대 소속 문무대왕함에서 일어난 코로나19 집단 감염과 군 지휘 계통의 전근대적 리더십이 불러일으켰던 문제들, 그리고 군 조직에 필요한 리더십은 무엇일지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군은 가해자부터 지켰다》 《전쟁터의 여성들》그들만의 리그〉 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1]
Anaphylaxis. 아나필락시스는 극소량의 특정 물질에도 몸에서 과민 반응을 일으키는 알레르기 반응을 의미합니다.
[2]
한국 언론에서 샤를 드골 호의 확진자 비율을 47~48퍼센트로 보도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이는 총 승조원의 수를 2,300명 정도로 추산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마다 승조원의 수가 다르게 보도되어, 본 글에 적은 수치는 위키피디아에서 가장 최근의 종합적 분석결과가 나와 있는 ‘Aftermath’ 부분을 참고하였습니다.
[3]
공수창 감독의 영화 《GP506》은 GP(최전방 감시초소)에서 일어나는 미스테리한 사건을 수사하는 형식의 군대 공포 영화입니다. 좀비 바이러스가 최초 발생하였지만 지휘관인 소대장이 군 내 고위급인 아버지에게 성과를 인정받기 위해, 바이러스의 확산을 은폐하고 장병들에게 독선적으로 행동합니다. 결국 GP의 폐쇄성으로 인해 바이러스 확산이 쉬웠던 점, 보고를 누락하고 최대한 은폐하려고 노력했던 점, 지휘관 자신도 결국 바이러스에 감염된 점 등, 일부 비슷한 내용이 있어 소개하였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