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의 귀환
 

7월 23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피비가 돌아온다.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던 슈퍼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가 런웨이로 복귀한다. 은밀하게 위대하게. 

피비가 돌아옵니다. 2018년 S/S 콜렉션을 사실상 마지막으로 셀린을 떠났고 패션계를 떠났던 슈퍼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가 런웨이로 돌아옵니다. 왕의 귀환입니다. 3년 만입니다. 벌써부터 글로벌 패션계가 술렁이고 있습니다. 피비 파일로의 귀환은 복수의 해외 언론을 통해 알려졌습니다. 《뉴욕타임스》는 “피비 파일로가 그녀의 개인 브랜드로 패션계로 돌아온다”라며 소식을 전했습니다. 《비즈니스 오브 패션》의 보도는 약간 더 해상도가 높았습니다. “LVMH의 일부 지원을 받아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로 복귀할 계획”이라고 보도했죠. 외신을 종합해 보면, 피비 파일로의 새 브랜드 이름은 피비의 이름을 따게 될 듯합니다. 이건 어느 정도는 예상됐던 일입니다. 피비 파일로와 같은 영국 출신이었고 같은 센트럴 세인트 마틴 출신이었던 알렉산더 맥퀸 역시 LVMH에서 지방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 활약한 다음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론칭했죠. 지금도 우리가 애정하는 알렉산더 맥퀸입니다. 럭셔리 하우스의 수장으로 명성을 쌓은 디자이너가 자신의 이름을 패션 브랜드화하는 건 가장 우아한 피날레입니다.

그동안 피비가 알라이아나 샤넬의 수장을 맡을 거란 얘기도 많았습니다. 알라이아는 창시자 아제진 알라이아가 타계한 뒤로 마땅한 후계자를 찾지 못한 상태였죠. 샤넬 역시 전설적인 칼 라거펠트의 공백을 30년 동안 라커펠트의 오른팔이었던 버지니 비아르가 채우고 있죠. 알라리아와 샤넬의 공백을 채우는 건 피비 입장에선 셀린에서 이미 성공적으로 해냈던 도전 과제입니다. 그보단 자신의 이름을 딴 브랜드를 성공시켜서 아르마니프라다생로랑 같은 패션계의 여러 전설들과 동등한 반열에 오르는 것이 더 도전적이고도 매력적인 길입니다. 이미 살아 있는 전설인 피비 파일로한텐 훨씬 더 피비다운 걸음이죠.

또 셀린 브랜드를 소유하고 있는 럭셔리 제국 LVMH와 어떤 식으로든 연결 고리가 만들어질 듯합니다. 피비가 패션계를 떠난 3년 동안 LVMH의 아르노 회장이 어떻게든 피비를 복귀시키려고 백방으로 노력했다는 건 공공연한 비밀입니다. 피비가 인스타그램을 하지 않는 걸 세상에서 가장 원통해했던 사람이 아르노 회장이라는 얘기도 있었죠. 피비가 어디에서 누굴 만나는지 감조차 잡을 수 없었으니까요. 아르노는 피비가 경쟁사인 케어링 그룹과 손잡을까 봐 노심초사해 왔습니다. 디올과 루이비통에 이젠 티파니까지 거머쥔 LVMH는 강대한 럭셔리 제국입니다. 구찌를 앞세운 케어링 그룹의 추격도 만만치 않습니다. 절대적인 팬덤을 보유한 피비가 케어링과 손잡는다면 힘의 균형이 무너질 수도 있죠. LVMH가 피비 파일로의 새 브랜드에 투자한 건 피비를 묶어 놓기 위한 것일 가능성이 큽니다. 피비는 절대 적으로 만들면 안 되는 존재니까요.


더 피비 


일단 피비는 친환경성과 지속 가능성에서 자기 브랜드의 정체성을 찾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에코 프랜들리와 서스테이너블은 피비 파일로의 사생활을 관통하는 키워드들입니다. 셀린을 이끌던 시절에도 피비는 삶과 일을 완벽하게 분리했습니다. 피비의 사생활은 화려한 패션계와는 거리가 아주 멉니다. 한 남자와 결혼했고 세 아이를 뒀으며 영국 교외의 농장에서 자연과 벗하면서 아이들을 키웠죠. 셀린은 대표적인 파리 브랜드입니다. 피비는 셀린의 디자인 스튜디오를 런던으로 옮겼습니다. 일을 위해 가족을 떠나고 싶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셀린 수장을 맡는 대신 피비가 내건 조건이었죠. 피비는 셀린 이전엔 끌로에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였습니다. 끌로에를 성공시켰지만 출산을 하면서 육아에 전념하고 싶다는 이유로 브랜드를 떠나버렸죠. 아이를 봐 줄 사람이 없어서 어쩔 수 없이 일을 접은게 아닙니다. 본인이 아이를 직접 키우고 싶어서 일을 정리한 것이죠. 피비한텐 일보다 언제나 가정이 우선입니다. 피비의 패션이 아무리 화려해보여도 그녀의 본질은 담백합니다. 피비의 이름을 딴 브랜드라면 당연히 피비의 삶이 반영될 수밖에 없습니다. 그것이 디자이너의 이름을 딴 브랜드의 특징이죠. 디자이너의 삶이 곧 브랜드의 정체성인 것이니까요. 피비의 새 브랜드가 친환경성과 지속 가능성을 정체성으로 삼는 건 어찌 보면 너무나도 당연한 이야기입니다.

피비의 복귀 시기는 그녀가 셀린으로 돌아왔던 2010년과 묘하게 닮아 있습니다. 당시 세계 경제는 2008년 금융 위기로 몸살을 앓고 있었습니다. 금융 위기는 패션 산업 전체를 위축시켰습니다. 수요가 감소했기 때문입니다. 위기는 언제나 변화의 기회입니다. 패션 산업도 예외가 아닙니다. 기존 패션이 도태되고 새로운 패션이 등장하는 최적기죠. 경제 위기는 소비자들의 마음을 바꿔 놓기 때문입니다. 이때 여성 패션 시장의 중심에 새로운 소비 계층이 등장합니다. 자기 커리어를 개척해 나가는 유능한 멋진 여성들이었죠. 이들은 단단한 소비력으로 무장했고 자신의 정체성을 설명해 주는 패션 브랜드에 아낌없이 돈을 쓸 준비가 돼 있었습니다. 피비의 셀린은 멋진 젠틀 우먼들에게 내가 누구인지를 드러낼 수 있는 패션이었습니다. 2008년 금융 위기는 신사복을 차려입는 월스트리트 남성들한텐 위기였지만 셀린을 즐겨 입는 유능한 커리어 우먼들한텐 기회였습니다. 지금도 경제 위기 상황입니다. 판데믹은 다시 한 번 패션 시장의 판을 흔들고 있습니다. 포스트 코로나 시대엔 분명 새로운 여성 패션 소비자가 등장할 공산이 큽니다. 피비의 뉴 브랜드가 어떤 모습이든 그들을 겨냥할 가능성이 큽니다. 그들을 겨냥해야 할 겁니다. 피비도 그걸 모르지 않겠죠.


피비 이후의 피비 


피비는 안티 디지털로 유명합니다. 인스타그램도 유튜브도 없습니다. 피비 시절 이른바 올드 셀린의 인스타그램은 늘 패션계의 화제였습니다. 너무 못해서요. 에디 슬리먼이 이끄는 뉴 셀린의 인스타그램이 화려한 볼거리로 그득한 것과는 여러모로 대조적입니다. 사실 피비와 에디는 인스타그램만 대조적인 게 아닙니다. 패션의 세계관 자체가 다르죠. 에디가 늘 젊음을 집착한다면 피비는 자연스러움을 지향합니다. 에디가 사람들의 이목을 집중시키는 패션을 원한다면 피비는 타인을 위해서가 아니라 나를 위한 패션을 제시하죠. 본질적으로 나를 타인에게 보여 주고 드러내는 게 목적인 인스타그램은 피비와는 본질적으로 맞지 않습니다. 문제는 시대의 트렌드입니다. 인스타그램이든 틱톡이든 디지털 소통은 패션의 본질이 됐습니다. 당대의 소비자들이 그걸 원하기 때문이죠.

게다가 코로나 이후 패션 소비의 메인 플랫폼은 이커머스로 전환된 상태입니다. 셀린 시절 피비는 우아하고 세련된 오프라인 플래그쉽 스토어로도 유명했습니다. 셀린의 크리에이티브 디렉터로서 피비는 전 세계 셀린 매장 바닥의 대리석 바닥까지도 직접 골랐죠. 소비자들에게 완벽한 경험을 제공해 주기 위해서였습니다. 지금은 시대가 달라졌죠. 구찌는 메타버스에서 소비자들과 소통합니다. 온라인은 더 이상 오프라인의 대체재가 아닙니다. 오히려 오프라인이 온라인의 대체재죠. 그게 메타버스 2.0 시대입니다. 피비가 적응해야만 하는 시대죠. 과연 피비가 디지털 시대에도 피비일 수 있을까요. 패션 시장의 신흥 강자로 떠오른 MZ세대는 과연 피비의 브랜드에 2010년대의 패션 소비자들이 그랬던 것처럼 열광할까요. 바꿔 말하면 피비가 2020년대의 새로운 소비자들과 소통할 수 있을까요.

확신할 수 있는 건 피비가 이제까지 보여 줬던 패션을 이해하면 누구라도 그녀에게 경의를 표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입니다. 셀린 시절에 피비가 이룬 성취는 크리스찬 디올이나 입생 로랑 같은 여성 패션의 파운딩 파더들과 견주어도 손색이 없습니다. 피비는 여성의 우아함과 세련됨을 패션으로 승화시켰습니다. 멋지다라는 수식어를 남성보다도 오히려 여성에게 더 잘 어울리게 바꿔 놓았죠. 구찌의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추구하는 맥시멀리즘과 대비돼서 미니멀리즘의 여왕이라고 불립니다만 사실 피비의 패션은 미니멀리즘이라는 한 단어로 단순화시키기엔 훨씬 더 다채롭습니다. 2010년부터 2018년까지 피비가 보여 준 셀린 컬렉션들만 봐도 알 수 있죠. 



피비의 올드 셀린 컬렉션들

©Vogue collections
2010 리조트 컬렉션 
피비 파일로는 2010년 리조트 콜렉션부터 셀린을 이끌기 시작했습니다. 이때 그 유명한 셀린의 박스백이 등장합니다. 지금도 거리에서 종종 목격되는 세련된 백이죠. 2010년의 패션씬은 지방시의 고딕과 이자벨마랑의 프렌치 히피와 화려한 패턴의 드리스반 노튼과 소녀스러운 끌로에가 공존하는 혼란스러운 시장이었습니다. 피비는 쉽게 말해서 휴가지 패션이라고 할 수 있는 리조트 콜렉션을 통해 우아한 도시 여성의 여유로움을 보여 줬습니다. 이때부터도 최고급 소재만 쓰는 피비의 집착이 드러납니다. LVMH의 패션 하우스들이 피비나 에디 같은 천재 디자이너들을 유혹할 수 있는 건 돈 때문만은 아닙니다. 최고급 패션 소재를 마음껏 사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2010년 리조트 콜렉션에서 피비는 실크와 새틴부터 울과 양털과 가죽과 벨벳까지 자유롭게 사용했죠. 소재의 향연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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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1 S/S 컬렉션 
피비가 선보인 매우 에스닉한 콜렉션입니다. 과감한 초록색 패턴의 실크 셔츠를 튜닉 스타일로 디자인해서 정말 어디에나 잘 어울리게 만들었죠. 당대의 패션 아이콘인 칸예 웨스트까지 입고 무대에 섰죠. 여성복이지만 남자들한테도 멋지게 보이는 패션을 만든 겁니다. 튜닉 스타일을 허리 아래까지 내려오는 여성용 블라우스를 말합니다. 낙낙한 느낌을 줍니다. 보기에도 입기에도 편안하죠. 피비는 가죽 소재로도 튜닉을 디자인했습니다. 여성을 가장 편안하면서도 자신감 있게 만들어주는 스타일을 제시하기 시작했죠. 



 
©Vogue collections
2012년 리조트 컬렉션 
피비의 콜렉션 가운데 가장 실험적입니다. 꽃패턴을 과감하게 위아래 수트에 활용했죠. 아주 빳빳한 자카드 소재를 만든 스커트나 베스트도 선보였습니다. PVC소재에 그라데이션 염색을 한 트렌치 코트와 꽃무늬 패턴을 믹스앤매치 시켰습니다. 무엇보다 피비는 셔츠를 사랑합니다. 셔츠를 입은 여성이야말로 피비 패션의 시그너쳐한 이미지죠. 2012년 리조트 콜렉션에선 남성용 턱시도 셔츠를 여성 패션으로 재해석합니다. 그때까진 남성적 전유물로 여겨졌던 멋스러움을 여성의 것으로 만든 것이죠. 턱시도 셔츠에 가죽 장갑과 가죽 바지를 스타일링해서 강함과 세련됨을 조화시켰습니다. 형광 컬러도 위트 있게 사용합니다. 골드 장식도 과감하게 사용하죠. 비비드한 형광색과 골드 장식은 다니엘 리의 보테가 베네타에서도 빠지지 않는 요소죠. 피비 패션을 단순히 미니멀리즘이라고만 규정할 수 없는 요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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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 F/W 컬렉션
피비 특유의 오버사이즈 코트가 처음 등장한 콜렉션입니다. 발렌시아가의 뎀나 즈바살리아 이후 오버사이즈 코트는 하나의 물결을 이루게 됩니다만 원조는 역시 피비였습니다. 뎀나의 오버사이즈 코트가 어딘지 입는 이를 엉거주춤해보이게 만든다면 피비의 오버사이즈 코트는 입는 이의 몸매 선을 감추면서도 드러내는 묘한 매력을 보여 줍니다. 아빠 옷장에서 빌려 입은 것 같은 큰 옷이 아니라 그 사람한테 딱 맞는 듯한 큰 옷인 거죠. 이때부터 파워 오버사이즈 숄더에 둥근 어깨선을 가졌는데 길이는 발목까지 내려오는 롱코트가 대유행하게 됩니다. 당시 지드래곤도 피비의 셀린 오버사이드 코트를 즐겨 입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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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S/S 컬렉션
피비 패션의 우아한 멋스러움이 완성돼 가기 시작한 콜렉션입니다. 소재는 실크와 새틴을 주로 썼습니다. 이건 매우 여성적인 소재들이죠. 컬러 역시 아이보리와 네이비와 블랙이 주를 이뤘습니다. 이것도 아주 여성적인 색깔들이죠. 그런데 신발들이 충격적이었습니다. 드레스업한 스타일인데 털이 수북하게 달린 슬리퍼를 신었다거나 새빨간 페디큐어를 한 발가락이 그려진 힐을 신는 식이었죠. 최고급 소재의 원피스 밑단은 모두 자연스럽게 올이 나가게 만들어서 자유로움을 드러냈죠. 여성스러운 드레스업에 강렬한 5대5 생머리를 스타일링하고 귀고리나 팔찌도 볼드하고 강렬한 것들만 스타일링했죠. 이렇게 머리 끝부터 발 끝까지 드레스업한 여성을 단 하나의 포인트로 흐트러뜨리면서 자유분방함을 표현했죠. 피비의 패션 세계에서 여성은 늘 이런 존재입니다. 설사 외모는 전형적으로 보이더라도 내면엔 강렬한 파격을 숨기고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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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 F/W 컬렉션과 2014 S/S 컬렉션 
두 콜렉션에서 피비 파일로는 극과 극의 패션을 선보입니다. 2013년 F/W에선 파스텔톤의 우유빛 컬러가 테마였죠. 군더더기 없이 정갈했죠. 반면에 2014년 S/S에선 원색적이고 원초적인 콜렉션을 선보입니다. 파인아트에서 영감을 받아서 추상미술품처럼 보이는 패션을 보여 줬죠. 도저히 같은 디자이너의 콜렉션이라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다릅니다. 피비는 여성 패션의 매력은 이런 다양성이라고 봅니다. 오늘의 출근룩과 내일의 출근룩은 얼마든지 다를 수 있습니다. 그것이 나를 바꾸는 패션의 힘이죠. 남성과 달리 여성은 패션의 힘을 자유자재로 다룰 줄 압니다. 피비는 그걸 보여 주고 싶었던 거죠. 피비는 컬렉션 전반에 걸쳐 많은 운동화를 선보였습니다. 그 시작은 슬립온이었습니다. 지금이야 어글리 슈즈부터 온갖 운동화가 주요한 패션 아이템이 된 지 오래입니다만 이때만 해도 파격이었죠. 피비는 운동화에 LOVE나 LIFE 같은 레터링도 넣습니다. 지금처럼 레터링이 대유행하기도 전에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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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S/S 컬렉션 
피비의 노출 패션입니다. 노출은 언제나 패션의 주요한 변수입니다. 노출은 잘못 다루면 촌스러워집니다. 그렇다고 노출을 기피하면 답답해집니다. 피비는 노출에서도 우아함과 세련됨을 지켜냅니다. 과감한 컷팅을 통해서입니다. 허리 라인이나 어깨 라인을 둥글게 커팅한 스타일을 선보였죠. 은근하게 드러냅니다. 노출 의상을 입기 위해 억지로 살을 뺄 필요도 없죠. 패션을 통해 여성이 자신의 몸을 긍정하게 해줍니다. 에디 슬리먼과 피비 파일로가 대비되는 지점이죠. 에디 슬리먼은 끊임없이 젊음을 갈구합니다. 에디에게 젊음이란 군살 없는 몸매와 같은 말이죠. 한강에서 치맥을 먹어도 치킨이 살찌고 우리는 살이 안 찌던 젊은 시절 말입니다. 디올 옴므 시절부터 뉴 셀린까지 에디의 패션은 우리가 스스로의 몸을 과도하게 의식하게 만듭니다. 다이어트를 유도하죠. 요즘 에디의 셀린은 과연 에디답게 청키하고 발랄하지만 피비가 그랬던 것처럼 여성을 있는 그대로 자신감 있게 만들어주진 않습니다. 피비의 귀환에 패션계가 열광하는 이유죠. 피비가 패션의 조류를 바꿔줄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하는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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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 프리폴 컬렉션 
피비는 아노락을 여성 패션에 접목시켰습니다. 아노락은 2차 대전 시절 군복으로 주로 쓰였던 전형적인 남성복 아이템이죠. 등산복 디자인에서도 종종 활용됩니다. 피비는 아노락을 롱스커트와 매치시켰죠. 그렇게 여성적인 우아함과 남성적인 강인함을 동시에 지닌 패션을 만들어냅니다. 신발 디자인은 더욱 놀랍습니다. 언뜻 투박한 통굽 웨지힐처럼도 보입니다. 가죽 소재를 세련되게 활용해서 투박해보이지만 여성스럽죠. 노출이 있지만 야하지 않고 여성적으로 우아하지만 남성적으로 강인하고 투박하면서도 세련된 서로 상반되는 느낌을 하나의 패션에 녹여낸 겁니다. 오직 피비만이 할 수 있는 마법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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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 S/S 컬렉션 
레이스 슬립 드레스를 선보였습니다. 슬립 드레스하면 관능적인 인상이 강하죠. 그런데 피비는 여기에 가죽 부츠를 매치시킵니다. 올백머리 헤어스타일로 여전사 룩을 만들어버리죠.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일 수 없는 요소들을 하나로 융합해버리는 피비의 패션 연금술이 이때도 빛을 발했죠. 여기에 허리는 강조되고 어깨는 과장된 코트를 무심한 듯 쉬크하게 스타일링합니다. 이렇게 한없이 관능적이면서도 스스로의 관능미엔 한없이 무심한 여성을 그려냅니다. 그것이야말로 저항할 수 없는 세련미라는 걸 보여 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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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S/S 컬렉션 
피비 셀린의 막바지 전성기를 보여 주는 콜렉션입니다. 이브 클라인의 그림을 사서 그걸 패션으로 만들었죠. 이브 생 로랑이 몬드리안의 그림을 패션으로 만들었던 것처럼요. 화이트 슈트에 시스루 실크를 덧댄 독특한 스타일링도 선보였죠. 꽃을 연상시키는 플로럴 패턴도 많이 눈에 띕니다. 이때 셀린의 유명한 클래스프백도 처음 등장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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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 F/W 컬렉션 
모델들이 담요를 들고 런웨이를 걸었죠. 셀린의 로고를 디자인한 피터 마일스와 협업한 담요였습니다. 이때 담요 패션이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죠. 침대 축구는 들어봤지만 담요 패션은 정말 신개념이었죠. 피비는 담요를 손에 걸치고 셔츠는 코트 밖으로 묶는 안팎이 뒤바뀐 패션을 보여 줍니다. 이때쯤 되면 피비 팬덤도 탄탄하게 자리잡게 됩니다. 피비가 팥으로 메주를 쑨다고 믿을 사람들이었죠. 이때 피비는 알파벳 이니셜이 달린 목걸이를 내놓습니다. 정말 순식간에 완판돼버렸죠. 피비의 쥬얼리 액세서리는 사실 다른 패션 디자이너가 따라하기 어려울 정도로 완성도가 높습니다. 구찌의 알렉산드로 미켈레가 쥬얼리 디자이너에서 패션 디자이너가 된 경우라면 피비는 패션 디자이너가 쥬얼리 디자인까지 마스터한 경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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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S/S 컬렉션 
피비의 마지막 컬렉션입니다. 2018년 F/W에선 쇼를 열지 않고 룩북으로 이미지만 공개했죠. 2018년 S/S가 정식으로 런웨이를 통해 공개된 마지막 콜렉션이죠. 피비의 마지막 콜렉션은 피비의 최고 콜렉션으로 평가 받습니다. 마지막 작품이 최고의 작품인 경우는 흔하지 않죠. 패션계에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의 교체는 디자이너로서 노쇄화됐기 때문인 경우가 많습니다. 한마디로 밀려나는 거죠. 피비는 달랐습니다. 최고의 자리에서 미련 없이 떠나버렸죠. 이 콜렉션에서 피비는 걸작 중의 걸작인 이중 트렌치 코트를 선보입니다. 두 개의 트렌치 코트가 겹쳐 있는 스타일이죠. 과감한 커팅으로 턱시도를 재해석한 슈트도 선보였죠. 하늘하늘한 플리츠 스커트인데 상의 자켓의 비대칭성 덕분에 여성미와 분방함이 대비되는 룩도 보여 줬죠. 이때 피비는 PVC로 만든 가방을 만들어서 완판시켜버립니다. 모두가 가죽 가방도 아닌 PVC 가방을 못 구해서 난리였죠. PVC 가방은 지금 생각해보면 피비의 위트였습니다. 그런데 피비가 웃자고 한 일을 소비자들은 사자고 덤벼들었죠. 그만큼 피비의 영향력이 대단했단 말입니다. 2018년 S/S 콜렉션은 피비 패션의 완성형입니다. 우아함과 세련됨과 여성성과 남성성과 화려함과 단정함이라는 대조적인 가치들이 피비를 통해 하나의 패션으로 조화를 이뤘죠. 

은밀하게 그리고 위대하게


피비가 셀린을 지휘한 2010년부터 2018년까지 셀린의 매출은 2억 유로에서 7억 유로로 늘어났습니다. 피비는 디자인적으로도 상업적으로도 모두 셀린을 성공시켰죠. 피비의 복귀에 패션계가 들썩이는 건 그래서입니다. 피비가 다시 한 번 패션의 트렌드를 바꾸고 패션 산업의 지형도를 바꿀 것이라는 기대감이 크기 때문이죠. 피비 파일로는 2010년대 여성 패션을 상징하는 이름입니다. 우아하고 세련되면서 남성적인 강인함과 여성적인 단아함을 겸비한 일과 삶의 균형을 결코 잃지 않는 멋있는 여성이라는 이미지를 창조했죠. 무엇보다 피비 파일로 자신이 그렇게 멋있는 삶을 보여 줬죠. 최고의 순간에 최고의 작품을 남기고 사랑하는 가족과의 시간을 보내는 선택을 했죠. 2020년대로 돌아온 피비는 우리에게 어떤 패션과 어떤 삶의 모습을 보여 줄까요. 피비가, 돌아옵니다. 은밀하게 그리고 위대하게.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슈퍼 디자이너 피비 파일로의 패션계 복귀가 지닌 시대적 문화적 의미를 분석해 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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