법은 동물을 어디까지 보호해야 할까요. 지금 법은 동물보호법으로 학대를 방지하고, 인간과 함께 사는 동물이 타인으로부터 해를 입었을 때 손해배상 청구를 할 수 있는 정도의 역할만 하고 있습니다. 사회적 차원에서 동물이 더 나은 삶, 고통이 적은 삶을 살 수 있도록 하는 장치는 부족하죠. 사람들이 동물과 점점 더 긴밀한 관계를 맺고 가족으로 여기게 되면서 동물을 바라보는 윤리적, 법적 시각엔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균열은 동물을 가족으로 맞이할 때부터 시작됩니다. ‘사지 말고 입양하세요’라는 문구를 종종 들어 보셨을 겁니다. 동물보호단체들은 반려동물 판매 산업의 열악한 실태를 지적합니다. ‘강아지 공장’으로 불리기도 하는 번식농장은 무허가, 즉 불법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많고 위생, 동물 복지 상태도 심각합니다. 모견들은 배설물이 통과하도록 바닥이 망으로 되어 있는 ‘뜬장’에서 생활하며 임신과 출산을 반복합니다. 2017년 법 개정으로 뜬장의 추가 설치는 금지됐지만, 기존 업체들은 계속 교체하면서 사용할 수
있습니다. 여기서 태어난 강아지들이 펫샵으로 가고, 비싼 값에 팔리죠. ‘사지 말고 입양하자’는 구호에 힘이 실려 온 이유입니다.
인간과 함께 살면서 학대당하는 동물도 여럿인데요, 동물보호법이 있지만 제대로 된 처벌이 이루어지지 않고 적극적인 개입도 부족하다는 지적이 나옵니다. 지금까지는 동물이 개인의 소유물로 간주되다 보니 주인으로부터 동물이 학대당하더라도 소유권을 뺏을 수 없고, 소유권을 포기시키는 방식으로만 구조가 가능했습니다. 현행법상 동물을 학대하면 3년 이하의 징역 또는 3000만 원 이하의 벌금에 처할 수 있지만, 실형을 사는 경우는 극소수입니다. 법무부 자료에 따르면 2016~2020년 사이 동물보호법 위반으로 입건된 3398명 중 불기소 처분을 받은 사람이 51.2퍼센트에 달했고 실형이 선고된 경우는 0.3퍼센트에
그쳤습니다. 이번 민법 개정으로 더 적극적인 구조는 가능해지겠지만, 동물 학대를 제대로 처벌하는 건 다른 문제입니다.
동물과 평생을 가족으로 살게 되면서 동물이 먼저 떠나거나, 내가 먼저 떠나게 됐을 때도 법적인 논쟁거리가 생깁니다. 우선 동물의 장례 문제입니다. 현행법상 합법적으로 죽은 동물을 처리하는 법은 쓰레기봉투에 담아 배출하거나 동물병원에 위탁해 의료폐기물로 처리하는 것, 합법 동물 화장장을 이용하는 것 세 가지입니다. 가족을 잃은 사람들 입장에선 화장장을 이용하고 싶은 마음이 크겠지만, 합법 화장장은 경기도 등 일부 지역에 몰려 있고 서울, 제주 지역엔 전혀 없는 상황입니다. 동물이 법적 지위를 확보하면 다른 방식의 사체 처리가 허용될 여지도 있다고 법조계는 보고 있습니다.
반대로 사랑하는 동물을 남기고 먼저 떠나야 한다면 어떨까요. 혼자 남겨질 동물에게 자산을 남기려는 사람들도 늘고 있습니다. 배우 엄앵란 씨가 누구보다 반려견에게 많은 위로를 받았다며 유산을 반려견에게 남기겠다고 말한 적도 있죠. 동물이 법적 주체가 아니다 보니 직접 상속은 불가능하지만, 다른 방법이 등장했습니다. 2016년 KB국민은행은 국내에서 처음으로 ‘펫 신탁’ 상품을 출시했습니다. 유산을 은행에 맡기고 수익자로 반려동물을 관리해 줄 사람이나 단체를 지정해 두는 겁니다. 단, 한국의 경우 반려동물 신탁이 법제화된 게 아니기 때문에, 수익자가 받은 돈을 다른 데 쓰더라도 제재할 방법은 없습니다. 미국, 영국, 독일 등에선 반려동물신탁법으로 수익자에게 반려동물을 돌볼 의무를 부여하고 있습니다.
[1]
고통받지 않을 권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