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본소득 101

7월 27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이재명의 기본소득이 대선의 쟁점으로 떠올랐다. 이제 진보도 보수도 기본소득을 논한다. 기본소득하면 내 삶에 뭐가 좋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사진: SeongJoon Cho/Bloomberg via Getty Images
기본소득 논의가 뜨겁습니다. 기본소득제를 전면에 내세운 이재명 경기도지사의 존재감 덕분입니다. 기본소득제로 연일 정치권을 뒤흔들고 있는 이재명 경기도지사는 윤석열 전 총장과의 가상 양자 대결, 이낙연 전 총리와의 경선 지지율 모두 우위에 서 있죠. 이 지사의 지지율은 지난 서울 시장 보궐 선거에서 비롯된 여권 지지층의 위기의식과 경기도지사로서 이재명이 보여준 높은 공약 이행률, 그리고 다양한 사안에 대한 이른바 ‘사이다 발언’과 얼마 전 기자회견을 통해 로드맵을 밝힌 ‘기본소득제’가 합쳐진 결과일 것입니다. 여기서 민주당 지지율 하락에 반응한 결집을 제외하고 보자면 말 그대로 ‘원맨쇼’에 가깝습니다. 심지어 이 지사는 민주당 내에서 이렇다 할 정파로 분류되지도 않습니다. 그만큼 이 지사는 오랜 행정과 정치 경험으로, 자신의 지지율을 끌어올릴 줄 아는 프로 정치인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대선 후보 이재명의 정책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요? 이 후보가 정책 외적으로 보인 사이다 행보나, 우수한 토론 능력, 욕설 녹취록 파문은 후보 검증에 큰 도움이 되지만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정책과 공약입니다. 타 후보에 비해 뚜렷한 명분으로 야권에서 큰 기대를 모았던 윤 전 총장이 고전을 면치 못했던 이유에는, 그의 ‘두루뭉술함’이 큰 역할을 했습니다. 각종 현안에 대해 구체적인 답변을 하지 않고, 대권 도전을 외친 기자회견에서도 정책에 대한 로드맵은 없었습니다. 현 정부와 윤 전 총장의 관계에서 기인한 커다란 명분, 법치주의를 강조하는 강직한 성품이 개인의 큰 매력으로 작용했습니다만 후속타가 부족했죠.

대선 전까지 어떤 일이 발생할지 모릅니다만, 현 상황은 말 그대로 ‘이재명이 온다’입니다. 우리는 이재명을 대비할 필요가 있습니다. 대권에 가장 가깝게 다가선 이 지사의 대표 정책, 바로 ‘기본소득제’에 대해 알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기본소득101[1], 즉 기본소득개론이 요구되는 까닭입니다. 다만 이 ‘기본소득제’는 비단 이 지사만 주장하는 것이 아닌데요, 구체적인 방법은 달라도 비슷한 결을 가지고 있는 오세훈 서울 시장의 ‘안심소득제’도 있습니다. 둘은 MBC〈백분토론〉에서 맞붙기도 했죠. 그래서 ‘기본소득’ 대 ‘안심소득’의 논의도 뜨거워지고 있습니다. 진보와 보수의 대표적인 정치인들이 모두 어떤 형태로든 기본소득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죠. 


기본소득의 시대는 온다

기본소득제 도입으로 유명한 대선 후보 앤드류 양이 뉴욕에서 유세 집회를 개최하고 있다. ©Drew Angerer via Getty Images
기본소득은 대전환 시대와 4차 산업혁명에 따라 전 세계적으로 논의되기 시작한 의제입니다. 이 생각의 원류는 르네상스의 사상가나 근대 경제학자들에게 있지만, 기본소득이 현대에 와서 다시 주목받기 시작한 것은 ‘2008 세계 금융위기’ 이후라고 할 수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에 대한 우려가 커지며 새로운 패러다임을 모색하는 과정에서 모두 자본주의 이후의 모습을 상상한 것이죠. 그리고 많은 부분이 현실로 다가왔습니다. 이세돌 9단과 ‘알파고’의 대결이 한국에 충격을 안긴 후 인공지능(AI)이 많은 일자리를 대체하고 노동 시장을 축소할 것이라는 예측이 팽배해졌습니다. 이는 곧 엄청난 실업률과 출생율 저하로 이어지고, 기업이 애써 만든 제품과 서비스는 소비되지 않아 기업은 재투자할 수 없게 되어 산업이 붕괴한다는 불안이 자리 잡게 된 것이죠.

미래 산업에서 선구적인 위치에 있는 기업가들은, 어쩌면 자본주의의 논리와는 정반대되는 것으로 보이는 기본소득을 찬성하기도 합니다. 일론 머스크나 마크 저커버그 등이 대표적이죠. 그렇다고 기본소득이 단지 미래 산업을 위해서만 주장되는 것은 아닙니다. 앞서 설명한 내용이 기본소득의 경제 정책적 측면이라면, 우리가 보편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복지 제도적 측면도 있습니다.

노동 시장 분절화는 현시대의 중요한 키워드입니다. 단순 노동자와 고도로 학습된 엘리트와의 기술 격차는 날이 갈수록 벌어지고 있죠. 이는 소득 양극화로 이어집니다. 물론 이것은 비단 국가 내에서만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국가 간의 기술 격차는 곧 부익부 빈익빈으로 이어집니다. 심지어 노동 시장이 분절화되며 자국민의 3D 직종 기피 때문에 저숙련 노동자들을 노동 이주로 들여왔던 수용국에서는, 노동 이주자들과 수용 국가의 저소득층 간의 갈등이 일어납니다. 간단한 노동이 기술 발전에 의한 자동화로 감소할수록, 이러한 갈등은 폭발하고 노동 인력의 송출국이었던 저개발 국가는 더욱 설 자리를 잃게 되겠죠.

소득 양극화는 교육, 복지를 포함한 사회 제도의 총체적인 문제에서 기인합니다. 다만, 복지나 사회안전망은 사회나 국가를 구성하기 위한 필수적 요소입니다. 서론에 대전환의 시대를 언급한 것은, 미래의 인간 사회가 맞닥뜨리게 될 다양한 문제 앞에서 우리는 커다란 패러다임의 변화를 요구받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단순히 복지 정책이나 경제 정책 하나로 볼 수 없으며, 인간 사회의 미래에 대한 고민 중 하나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오세훈의 안심소득 모두 본질적으로 지금이 아니라 미래에 어떤 대한민국을 건설할 것인가에 관한 로드맵인 것입니다. 
 

모두가 적게 받는 이재명의 기본소득

이재명 지사가 기본소득 정책 발표 기자 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MBC
7월 22일, 기본소득 정책 발표 기자간담회에서 이 지사는 이제까지 비전으로만 제시했던 기본소득제의 구체적인 숫자를 내놓았습니다. 정책을 준비하고 실행하는 과정에서 세부 조정이 있겠지만 대략적인 단기 목표는 이렇습니다. 차기 정부(이재명 당선 시) 임기 내, 청년에게 연 200만 원, 일반 국민에게는 연 100만 원 지급. 이 돈은 가구당 설정하지 않고 개인별로 계산하여 지급되며, 소멸성 지역 화폐로 지급됩니다. 초기엔 예산 편성의 어려움을 고려하여 연 25만 원이 지급되지만, 차후에는 이 25만 원을 연 4회 이상으로 늘려나간다고 합니다. 농민과 청소년, 문화 예술인에 대한 지원은 추가로 발표한다고 하죠. 이 지사가 목표하는 기본소득의 청사진은 현재 기초 생활 수급자가 수령하는 것과 같은 전 국민 월 50만 원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이를 자신의 대통령 임기부터 시작해서 향후 10~20년 안에 달성하려고 합니다. 대통령으로서 자신은 기본 소득의 초석을 놓겠다는 말이죠. 

당연히 이재명의 기본소득은 증세를 필요로 합니다. 그래서 기자간담회에서 재원 마련에 대한 설명이 큰 비중을 차지하기도 했습니다. 간단히 설명하자면 기본소득 도입기에는 일반 재원 및 조세감면 축소분, 긴급한 교정 과제를 재원으로 사용하고, 차차기 정부(이재명 당선 시, 그 이후 정부)에서는 국민적 논의를 거쳐 ‘기본소득 목적세’(기본소득 만을 위해 신설되는 세금)를 만들겠다고 합니다. 

여기서 교정 과세가 무엇인지 잘 모르시는 분들도 있을 텐데요, 이 지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는 “사회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조세를 조정하는 것”으로서, 국토보유세와 탄소세가 이에 해당합니다. 이는 결국 땅을 소유한 사람에게 발생하는 불로소득 혹은 부동산 투기를 통해 얻는 소득, 탄소를 배출함으로써 얻는 소득이 재벌이나 상위 계층에 집중되므로, 이들에 대한 과세가 되는 것이지요. 당연히 조세저항을 줄이는 것이 가장 큰 과제입니다. 이재명 지사는 성남시, 경기도에서 실험해 본 기본소득을 토대로 상당한 자신감을 내비쳤습니다.
 

일부만 많이 받는 오세훈의 안심소득

오세훈 서울 시장과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안심소득을 설명하고 있다. ©오세훈TV
이에 맞서는 오세훈의 안심소득은, 사실 오 시장이 수 년 전부터 주장해온 아이디어입니다. 대한민국 미래 혁신 포럼에서 오 시장의 설명에 따르면, “대한민국 국민을 소득 기준으로 쭉 늘어놓고 반으로 딱 잘라서 중간 아래만 집중 지원하겠다는 것”입니다. 지난 10년간 계층 이동 가능성에 대한 믿음이 떨어져 가고 있다며, 소득 불평등 완화에 초점이 맞췄죠. 계층 이동의 사다리를 만들어야 한다고 계속 강조합니다. 대강의 추청치이긴 합니다만 중위 소득의 기준을 4인 가족 기준 연 6000만 원으로 잡고, 밑으로 내려갈수록 기준치에서 미달하는 양의 50퍼센트를 지급하겠다는 것이 오세훈의 안심소득입니다.

안심소득을 하면 좋은 다섯 가지를 얘기하기도 했는데요, 먼저 소득 격차가 획기적으로 해소되며, 현재의 기초 생활 수급 제도는 일정 소득 이상이 발생하면 수급 자격에서 탈락되지만 안심소득은 비율을 계산하여 지급하므로 근로 유인이 가능하다는 것이 두 번째입니다. 세 번째로, 저소득층의 경우 돈을 받아도 바로 바로 써야 하기 때문에, 유효 수요 창출에 효과가 있으며, 네 번째로 기존의 핀셋 정책 중 몇 가지를 통합하기 때문에 예산 누수가 최소화 된다고 합니다. 이는 아래에서 다루겠지만 증세가 필요 없다는 주장과 연결됩니다. 마지막으로 안심소득은 매우 간단하기 때문에 행정비용이 절약되며 이는 추가적인 재원으로 작용한다는 내용입니다.
 

진보와 보수의 기본소득은 어떻게 다른가

지난 6월 11일에 방송된 백분토론입니다.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논쟁이 다뤄졌습니다. ©MBC 100분토론
이 지사와 LAB2050 이원재 대표, 오 시장과 박기성 성신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참여한 〈백분토론〉을 포함하여, 이제까지 확인된 내용을 토대로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을 총 여섯 가지의 쟁점으로 구분해 보았습니다. 1. 지급 대상은 어떻게 다른가, 2. 재원 마련은 어떻게 할 것인가, 3.  공통 과제를 어떻게 이겨나갈 것인가, 4. 정책 목표를 실현 가능한 시점은 언제인가, 5. 정책 목표, 즉 정책이 해결하거나 이루려는 것이 무엇인가, 6. 정책 비전과 철학입니다.
 

1. 지급 대상 : 전부에게 줄 것이냐 일부에게 줄 것이냐 


먼저 지급 대상의 차이부터 보겠습니다. 기본소득은 보편지급입니다. 이재명 지사가 구체적인 로드맵을 제시하기 전까지 기본소득의 정의로 흔히 알려진 것은 개인 단위로 지급된다는 개별성, 모든 사람에게 지급된다는 보편성, 노동을 요구하지 않는다는 무조건성, 매 시기마다 지급한다는 정기성, 그리고 현금 지급의 원칙이 거론됩니다. 여기서 이재명 버전은 현금지급이 지역 화폐로 수정되었고, 청년은 두 배의 기본소득을 수령한다는 내용이 추가 되었죠. 다만 거론한 특징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보편성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고소득층도, 저소득층도 모두 세금을 내고 모두 받습니다. 금액이 크지 않더라도 여기서는 중요치 않습니다.

반면 오세훈의 안심소득은 선별지급입니다. 2023년 기준 추정치인 가구당 중위소득 연 6000만 원은 실제 정책 적용 시에는 1인당으로 환산 된다고 합니다. 현재의 소득이 중위 소득을 넘어가지 않는다면, 기준 소득에서 인정 소득을 뺀 금액의 50퍼센트를 지원하므로 기본소득보다 지원하는 금액은 훨씬 높습니다. 다만, 기준을 꼭 중위소득으로만 잡는 것은 아니라고 합니다. “안심소득은 평균 소득수준 밑에 있는 사람이 대상이긴 하지만, 다 주는게 아니다. 이 중 80퍼센트가 될지 50퍼센트가 될지는 자문단에서 정할 것”이라는 입장도 내비쳤습니다. 이는 서울시 복지 재원에 따라 유동적으로 운용한다는 의미라고 볼 수 있습니다.
 

2. 재원 마련 : 증세를 할 것이냐 말 것이냐 


기본소득은 지급액에 따라 재원이 큰 폭으로 차이 납니다. 적게는 20조 가량에서 많게는 300조가 넘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기본소득은 재원 마련을 위한 증세를 필수적으로 고려하며, 이 지사 역시 재원을 어떻게 만드느냐가 기본소득의 핵심이라고 말합니다. 재원 마련의 방법으로는 위에 언급한대로, 일반 재원, 조세 감면 축소분, 교정 과세로 이루어지며 차후 기본소득 목적세를 목표하고 있습니다. 다만 이는 한 번에 이루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최초에는 일반 예산을 절감하여 26조 원 정도가 조달 가능할 것이라고 보았고, 차후 기본소득 연 100만 원을 열기위해서는 근로소득공제나 인적공제 등을 폐지하는 조세 감면 축소를, 장기적으로 기본소득 월 50만 원 시대를 위해서는 탄소세와 토지세, 데이터세 등을 포함한 교정 과세를 진행한다는 것이죠.

안심소득은 재원마련에서 기본소득과 큰 차이를 보입니다. 오세훈 시장은 안심소득을 위한 증세가 필요 없다고 주장합니다. 현재 사회 안전망에 해당하는 국민 기초 생활 보장 제도의 7개 급여 중, 생계 급여, 주거 급여, 자활 급여, 그리고 국세청의 근로 장려금과 자녀 장려금을 폐지하고 그 재원을 안심소득으로 사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안심소득 세율, 다시 말해 기준 소득에서 인정소득을 뺀 금액의 몇 퍼센트를 지원할 것이냐의 기준선을 50퍼센트로 정한 이유는 따로 있습니다. 이 제도의 기원을 만든 경제학자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기준입니다. 기본 소득은 노동자의 근로 유인을 낮출 수 있습니다. 생계가 해결되면 애써 일할 이유가 줄어들수 있죠. 밀턴 프리드먼은 근로 유인을 위한 기본 소득의 구조를 제시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안심소득은 현재의 핀셋 사회 보장 제도를 묶어 자율성을 보장하는 것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3. 공통 과제 : 고소득층의 조세저항이냐 저소득층의 복지저항이냐

둘의 공통 과제는 조세 저항인데, 성격이 좀 다릅니다. 기본소득은 증세를 기본으로 하기 때문에 특히 더 조세 저항이 강력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이 지사도 이 부분을 잘 인지하고 있죠. 그러므로 오 시장과의 토론에서 세금을 부담하는 층에 혜택이 아예 없다면 조세 저항에서 자유롭지 못할 것이라는 입장을 보입니다. 실제 재난 지원금에 대해 말이 많기도 했죠. 부자들에게는 의미 없는 푼돈이 될 수도 있지만 적어도 모두 내고 모두 받는 개념이라면 일말의 수긍 여지라도 있다는 것인데요, 게다가 소멸성 지역 화폐로 지급하기 때문에 나눠준 기본소득은 필연적으로 쓰이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소비 진작 효과로 인해 경제 선순환이 나타나고, 이 혜택을 보는 쪽은 주로 고소득층이기 때문에 조세 저항이 줄어들 수 있다는 이야기를 덧붙이죠.

게다가 이 지사는 우리나라가 조세 부담률이 OECD 평균에 비해 낮은 저부담 저복지 사회라고 설명합니다. 북유럽처럼 고부담 고복지 사회로 가야하며, 국민의 가처분 소득을 늘어나긴 하지만 이를 소멸성 지역 화폐로 지급하니 경제의 중첩적 효과가 있다는 것이죠. 반면 박기성 교수와 오 시장은 이것이 현 정부에서 실패한 소득주도 성장이라며 비판하기도 했습니다. 또한 소멸성 지역 화폐로 지급하는 것은 아니지만 안심소득은 기본 소득에 비해 지원하는 금액이 많은 만큼, 훨씬 더 소비 진작 효과가 크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이 지사는 기본소득을 홍보하며 경제 효과에 큰 역점을 두는데, 조세 저항은 거세면서 실제 수령하는 금액은 적다는 비판이 있습니다.

안심소득이 처한 조세 저항은 조금 다른데요, 오히려 핀셋 복지로 지급되던 것을 폐지함으로 인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저소득층의 상황은 모두 같지 않습니다. 고령이거나, 몸이 불편하거나, 가족 구성에 따라 각기 다른 부양 의무를 지고 있기도 합니다. 이런 핀셋 복지제도를 폐지하고 뭉뚱그리면 기존 복지제도의 장점을 없애는 것과 같은데요, 스웨덴에서는 실제 이와 같은 입법을 진행하려다 실패한 사례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앞서 언급한대로 기존 복지를 폐지하는 것에 대한 반발이었습니다. 이 지사의 표현을 빌리면 “기존의 복지를 대체하게 되면, 정말 필요한 곳을 골라주자는 것에 반하는 자기모순”이 되는 것이죠.

안심소득이 처한 또 다른 과제는 과연 모든 소득을 어떻게 정확히 파악할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LAB2050의 이원재 대표는 자영업자의 경우 실소득 파악이 매우 어려우며, 현재 수요가 많은 배달직종의 경우에는 한달 수입이 100만 원이 되었다가 다음 달에는 500만 원이 되기도 하는 등, 기준을 잡기가 매우 어렵다고 말합니다. 오히려 이를 정확히 파악하는데 행정 비용이 더 든다는 것이죠. 이 대표는 이 지사와 출연한〈백분토론〉에서 ‘송파 세 모녀’ 사건의 진짜 의미는 꼼꼼히 지원금을 다 찾아보지 못할 정도로 삶의 의욕이 없었기 때문에, 핀셋 복지에 더해 보편적이고 정기적인 기본소득이 필요하다는 입장을 내비쳤습니다.
 

4. 정책 목표 실현 가능 시점 : 장기적이냐 중기적이냐 

이 지사가 주장한 기본소득의 청사진은 전 국민 월 50만 원이었죠. 하지만 이 금액을 듣고 ‘우리나라에 저런 돈이 어딨냐’라고 하는 사람들에게 이 지사는 “향후 10~20년이 걸리는 장기 계획이다”라고 설명합니다. 다시 말해 상당한 장기 계획입니다. 게다가 완벽한 계획을 처음부터 세우려면 시간이 많이 소요되므로, 점진적인 방식으로 접근할 것임을 공표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초기엔 지원금이 매우 적고 효과도 미비하죠.

판데믹으로 소비 진작이 즉각적으로 필요한 현 시점에서 기본소득을 시행할 것이라면 효과도 즉각적인 것이 좋습니다. 또한, 한국 정치의 특성상 정권 교체 시에 이전 정권에서 시행했던 정책이 많이 파기되고 노선도 크게 달라지는 경향을 보이죠. 그렇기에, 차차기 대선에서 기본소득에 반대하는 후보가 당선된다면 기본소득은 성과도 보이지 못한 채 폐기될 가능성이 있습니다.

반면 오 시장의 안심소득은 보다 정책 목표 실현 가능 시점이 이른 편입니다. 오 시장은 앞서 언급한대로 서울시의 재정상황을 보며 집행해야 하는 만큼, 공언한대로 바로 실행하는 것은 아니라고 하였지만, 적어도 증세가 없는 방식이고, 안심소득의 확실한 수혜계층은 그 수가 적더라도 존재하는 것이므로, 이 점에서는 중기 정책으로서의 이점이 있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5. 정책 목표 : 삶의 만족도냐 양극화 해소냐 


다음 쟁점은 정책 목표입니다. 기본소득의 정책 목표에는 물론 소득 격차의 해소도 있겠습니다만, 사실상 소득 구분 없이 동일한 돈을 쥐어주게 되면 양극화의 해소에는 큰 보탬이 없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본소득이 양극화를 해소하는 방식은 증세에서 드러납니다. 불필요한 행정 비용을 줄이는 것을 넘어, 교정 과세와 조세 감면 축소분은 분명 고소득자를 향해 있죠. 다만 고소득자가 기꺼이 증세에 동의하도록 만들 기본소득의 유인책은 소멸성 지역 화폐를 통한 경제 선순환이고 그 수혜자는 고소득층입니다. 그렇다면 기본소득이 저소득층에 가지고 있는 생각은 무엇일까요?

이 지사는 기본소득이 절대 생활에 필요한 최소한의 금액에서 넘어가선 안 된다고 주장합니다. 안심소득과 마찬가지로 근로 동기를 저해해서는 안된다는 생각 때문인데요, 대신 이 지사가 주장하는 기본소득의 순기능은, 소득이 많지 않아도 가치 있는 일자리에 오히려 사람들이 도전할 수 있고, 삶의 만족도가 높아진다는 데에 있습니다. 거의 ‘신분 상승’으로 표현되는 사다리와 계층 이동을 갈구하는 우리 사회는 다소 공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 지사가 농민, 청소년, 문화 예술인에 대한 추가 지원을 발표하겠다고 한 것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귀농을 하거나 양육을 하거나, 예술 활동을 하는 등, 이제껏 자본주의 논리에서는 펼칠 수 없던 꿈을 기본소득이 이룰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종합해보면, 소득 양극화의 직접적인 해소와는 다소 거리가 있습니다.

안심소득은 반면 소득 양극화를 정책 목표로서 정 조준하고 있습니다. 오 시장의 말에 따르면 ‘특효약’이라고 하죠. 너무나 당연한 얘깁니다. 저소득층이 수령할 수 있는 돈이 실질적으로 커지면 양극화는 적게라도 해소되니까요. 안심소득을 이용하면 이렇게 응집시켜 지원할 수 있는 금액이 생기는데 현재의 복지제도로 돈이 뿔뿔이 흩어지는 것이 아쉽다는 얘기도 합니다. 복지 사각지대에 있는 사람들에게 분명히 좋은 제도임이 틀림없지만 무언가 이상한 느낌을 지울 수 없는 것은, 매년 복지 예산의 증가를 단순히 더 효율적으로 배분하는 것만으로 별다른 증세 없이 양극화가 해소될 수 있느냐라는 질문에서 기인합니다. 어쨌든 오 시장이 계산한 바에 따르면, 확실히 기본소득보다 양극화 해소에는 탁월합니다.
 

6. 정책 비전 : 노동할 권리냐 경쟁할 자유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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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책 목표와 정책 비전은 비슷해 보이지만 구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책의 문제의식과 철학의 차이라고 볼 수 있죠. 기본소득의 원류는 16세기 토머스 모어가 쓴 《유토피아》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다만 이 때는 르네상스가 태동할 때이고, 다소 철학적 논의에 가까운 것이었습니다. 현재의 기본소득에 대한 보다 구체적인 생각은 1975년에 토머스 페인이 쓴 《토지정의(Agrarian Justice)》에서 나타났습니다. 

이 책에서 괄목할만한 점은, 토지를 단독 보유하고 있는 사람은 그 자체로 사회에 빚을 지고 있다는 생각입니다. 페인은 이를 ‘지대(Land rent)’라고 표현했습니다. 땅을 빌려 쓰고 있다는 것이죠. 그러므로 지대에 따라 세금을 부과하여 모든 사람에게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는 주장을 한 것입니다. 토지가 발생시키는 ‘불로소득’의 개념을 만든 것이죠. 

무언가 떠오르지 않았나요? 바로 이 지사가 기본소득의 재원으로 탄소세와 함께 강조한 국토보유세와 유사합니다. 토머스 페인은 땅이 없는 자들은 사유제의 희생양이라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이들이 독립적인 생존을 담보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것이죠. 미국 사회 보장국(SSA)는 그를 기본소득/시민배당을 제안한 미국인의 시초로 봅니다.[2] 기본소득에 대한 논의는 여기서 멈추지 않았습니다. 1920년대에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전쟁으로 피폐해진 빈곤층을 위한 다양한 생각들이 줄을 이었습니다. 그 중 ‘찻주전자 비유’로 유명한 영국의 버트런드 러셀은 당대 엄청난 영향을 끼치는 수학자이자 철학자였는데, 그 역시도 1918년 출간한 저서《자유로 가는 길(Proposed Road to Freedom)》에서 무상 교육이나 기본소득과 같은 이상주의적 견해를 제시했습니다. 

한편 기본소득 논의에서 가장 유명한 밀턴 프리드먼은 그 유명한 ‘음의 소득세(Negative Income Tax)'를 제안했습니다. 그가 제안한 내용은 굳이 설명할 필요도 없이 오 시장의 안심소득과 대부분이 일치합니다. 밀턴 프리드먼이 기본소득의 창시자로 소개되는 경우가 많은데, 그의 생각은 이 지사보다는 오 시장의 것과 유사합니다. 즉, 한국에서 현재 일어나고 있는 각종 기본소득에 대한 생각들을 볼 때는, 정책 철학을 살펴봐야 합니다. 프리드먼은 사회 보장 제도를 받아들이는 신자유주의를 견지한 인물이며, 그에게는 이 지사가 주장하는 ’생산성은 낮지만 삶의 만족도가 높은 일자리‘는 고려 대상이 아닐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안심소득의 정책 비전은 어디까지나 신자유주의를 전제하고 있습니다. 모두가 공정한 출발선에 설 수 있도록, 교육 격차와 소득 격차를 공격적으로 해결하여 경쟁의 장에 나오도록 하는 것입니다. 반면, 기본소득의 정책 비전은 패러다임의 전환에 가깝습니다. 철학적 배경은 버트런드 러셀입니다. 이를 설명하기 위해서 버트런드 러셀의 《게으름에 대한 찬양(In Praise of Idleness)》을 간단히 언급하자면, 이 책에서는 인간의 삶의 의미를 조명하며, 인간은 노동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냐 반문합니다. 러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하는 것은 생계유지 활동으로서의 노동이 아닌 여가라고 주장하며, 이러한 여가가 곧 자신의 직업이 되어 가치 있는 활동을 할 수 있도록 지나치게 자본에 예속되어 살지 않은 것을 권장하죠.

아주 최소한의 생계만이라도 유지 된다면 삶의 만족도가 오르며 가치 있는 노동을 창출하지 않겠냐는 것이 러셀의 아이디어이자, 이 지사의 청사진이라고 생각됩니다. 이는 최근 핀란드에서 일어난 실험의 결과와도 이어집니다. 헤이키 히일라모 교수는 청년 장기 실업자 10만 명 중 2000명을 선정하여, 기존에 취업 교육 이수 및 상시 보고가 필수였던 실업 부조 75만 원을, 말 그대로 채찍 없이 자율 사용하게 했습니다.

이 ‘당근 그룹’에서 히일라모 교수는 내심 사람들이 그래도 유급 노동을 할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는데 결과는 반대였죠. 오히려 무급 노동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자녀와 시간을 보내고, 지역 커뮤니티에서 봉사 활동도 하는 등, 생산성은 없지만 가치 있는 노동이죠. 이들은 삶의 질이 올라가고 만족도가 높았다고 합니다. 물론 만족도가 상대적으로 올라갔는지 여부는 실험 이전의 대조군이 없어 입증이 되었다고 보긴 어렵습니다. 결론적으로,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정책은 비슷한 모양새를 하고 있지만 그 이면의 정책 비전은 크게 다를 수 있음을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기본소득은 기본철학의 차이


결국 기본소득과 안심소득의 논쟁은 세상을 어떻게 바라보는지, 어떻게 진단하는지에 따라 전혀 다른 결론에 도달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경제학의 커다란 두 물줄기인 케인즈 학파와 시카고 학파의 차이처럼 말이죠. 소득의 양극화가 나타나더라도, 이 것을 애초에 ‘해결해야 할 것’으로 인식하는 것과, ‘자연스러운 것’으로 인식하는 것은 정책 구상의 출발선부터 다른 것입니다. 

그래서 기본소득과 안심소득 두 정책 가운데 단순히 어떤 것이 더 우월한 복지인지에 대한 논의하는 것은 소모적일 수 있습니다. 격변하는 시기에 미래를 어떻게 설계할지를 놓고 벌이는 치열한 경제 정책 논쟁이기 때문입니다. 정파적이고 소모적인 논쟁을 하기 전에 각자 어떤 청사진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해야만 하는 이유입니다. 3차 산업 혁명이 전세계를 자본주의화시켰듯이 4차 산업 혁명은 전세계 자본주의를 변화시킬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모두 가보지 않은 길을 걷게 될 겁니다. 그렇다면 해보지 않은 정책이라도 먼저 국민적 논의를 시작하는 쪽이 유리합니다. 그것이 미래를 대비하는 기본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이재명의 기본소득과 오세훈의 안심소득을 비교하며, 기본소득의 기본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노동 4.0》 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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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1은 학문적 분류에서 기초적 개론을 뜻합니다. 건축학개론은 건축학101이고, 경제학개론은 경제학101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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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인은 영국 출신이지만 미국 독립을 주장하며 미국에서 생을 마감한 사상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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