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 여행자의 노트
1화

프롤로그; 나는 서점을 여행한다

파리의 영미 문학 서점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Shakespeare and Company)에는 숙박이 가능한 공간이 있다. 오래된 서가 사이에 작은 침대와 세면대가 있고, 한쪽 벽에는 작은 거울도 걸려 있다. 주머니 사정이 여의치 않았던 영미 문학의 대가들이 이 서점을 거쳐 갔다. 정해진 기간 없이 원하는 만큼 머무를 수 있다는 방침은 그 옛날부터 지금까지 지켜지고 있다. 숙박객들은 돈을 내는 대신 서점에서 책을 읽고 글을 써야 한다.

서점의 깊숙한 공간으로 들어가면 더 놀라운 모습이 펼쳐진다. 서점 안에서만 읽을 수 있는 훌륭한 고전 도서들이 진열되어 있기 때문이다. 안락한 소파 옆에 있는 타자기로는 언제든 자신의 영감을 기록할 수 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는 단순한 관광 명소가 아니라 영미 문학의 역사와 호흡할 수 있는 박물관이자 도서관이었다. 여행객은 무거운 배낭을 벗어 놓고, 서가 곳곳에 파묻혀 책을 읽고 침대에서 글을 썼다.

단순한 호기심으로 공간을 찾은 방문객을 열성 독자로 만드는 것은 서점의 명확한 가치관, 그리고 이 공간에서만 해볼 수 있는 경험들이다. 오래된 서점인 줄만 알았던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의 숨겨진 매력을 발견한 뒤, 나는 세계 곳곳의 서점을 여행하기 시작했다.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공간이 아니라, 독자와 특별한 이야기를 나누려고 하는 공간을 찾기 위해 여러 도시로 떠났다.

파리에서는 프랑스의 문학과 예술을 전파하는 거리의 서적상을 만났고, 런던에서는 20세기 여성 작가의 잊혀진 작품을 출판하는 서점을 찾았다. 더 멀리 나아갈수록 다양한 목소리로 독자에게 말을 거는 공간을 만날 수 있었다. 개인의 사회적 역할과 책임을 고민하게 하는 공간, 스스로의 취향을 탐색하고 드러내야 하는 공간이 있었다. 할머니의 주방처럼 친숙한 서점, 도시의 응접실처럼 활기찬 대화가 넘치는 서점도 있었다.

뉴욕, 런던, 파리의 개성 있는 서점에서 방문객은 평범한 고객을 넘어 서점의 이웃이자 가족으로, 도시의 시민으로 성장한다. 무엇보다 책을 통해 스스로의 세계를 넓히는 독자가 된다. 세 도시에서 만난 열한 곳의 서점들은 나에게 대화, 연대, 발견, 확장이라는 가치를 알려 주었다. 도시와 시민, 삶과 취향을 다시 한번 생각하게 해 준 소중한 공간, 따뜻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독자 여러분들과 나누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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