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일스는 어린 나이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6살 때 체조를 처음 접했고, 16살에 세계 선수권 챔피언이 됐죠. 2016년 리우올림픽을 기점으론 스타가 됐습니다. 힘과 속도를 더한 뛰어난 기술로 기록도 써내려갔습니다. 2019년엔 남자 선수들만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트리플 더블’도 여자 체조 선수 최초로
성공시켰죠. 바일스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한계를 극복해 왔습니다. 신장결석에 걸리고도 완벽한 연기를 펼쳐 금메달을 따기도 하고, 양쪽 발가락이 부러진 채로 경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체조 대표팀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가 여성 선수 160여 명에게 상습적으로 저지른 성폭력 사건에서도 피해를 증언하는 용기를 내기도 했죠. 단순히 ‘정신력이 약해서’ 경기를 포기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바일스는 이번 도쿄올림픽 여자 체조 단체전 경기 전
인스타그램에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종목에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지만, 그만큼 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얼마나 클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신적인 압박감은 실제로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바일스는 경기 전 ‘트위스티(twisties)’ 현상을 겪은 걸로
알려졌습니다. 체조 선수들이 공중에서 기술을 할 때 공간감을 느끼지 못해 순간적으로 신체가 어디에 있는지 인식할 수 없게 되고, 몸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고난이도 점프와 기술을 구사하는 체조 종목의 특성상 이런 현상을 겪으면 잘못 착지해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포기할 용기
그럼에도 ‘나는 지금 괜찮지 않으니까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국가 대표로 출전해 메달을 가져오는 목표를 가진 엘리트 선수들은 더욱 그렇죠. 바일스는 그런 용기를 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바일스가 취약함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스포츠 선수들 사이의 금기를 깼다고
평가합니다. 얼마나 큰 압박과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지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거죠.
강력한 의지로 한계에 도전하고, 엄청난 정신력으로 무장한 것만 같았던 프로 선수들이 정신적 고통과 두려움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2위의 스타인 오사카 나오미도 최근 정신 건강을 지키겠다며 프랑스 오픈에서 기권했죠. IOC는 2020년 프로 스포츠 선수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2퍼센트에 달하는 선수들이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에선 선수들의 ‘멘탈 헬스(mental health)’와 ‘멘탈 퍼포먼스(mental performance)’를 구분합니다. 멘탈 헬스는 말 그대로 정신 건강, 즉 건강하고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멘탈 퍼포먼스는 정신적인 수행 능력입니다. 불안과 긴장, 압박을 이겨내고 정신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 걸 말하죠.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정신 건강이 갖춰져야 압박을 이겨내는 능력도 계속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트 운동 선수들은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 멘탈 퍼포먼스 훈련을 중점적으로 합니다. 수 밀리미터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는 사격 같은 종목에서 심박 수 조절 훈련을 하는 게
대표적이죠. 멘탈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훈련이 반드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연마한 침착함과 진짜 건강은 다르다는 거죠. 멘탈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훈련은 빠르게 성적을 향상시켜 주지만 근본적인 자신감이나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높이지는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시몬 바일스는 선수로서의 성과를 생각하기 이전에 진짜 내면의 건강을 돌아보기를 선택했습니다. 도쿄올림픽 기권 후 많은 응원을 받자 “덕분에 나는 내가 이뤘던 성취나 체조 이상의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이전엔 그런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는 메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고 챙기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선수에게도 병가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