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기할 용기
 

8월 4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미국의 체조 챔피언 시몬 바일스는 도쿄올림픽 체조 다섯 개 종목에서 기권했다. ‘포기할 용기’가 주목받고 있다.

2020 도쿄올림픽 여자 기계체조 단체전에 참여한 시몬 바일스 ©사진: Laurence Griffiths/Getty Images
미국의 체조 선수 시몬 바일스는 올림픽 금메달만 4개를 보유한 챔피언입니다. 2016년 리우올림픽에서 단체전, 개인종합, 도마, 마루운동 네 개 부문 금메달을 휩쓸었습니다. 전 세계의 주목을 받는 스타기도 합니다. 2013년부터 불과 16세의 나이로 세계챔피언십에서 금메달 두 개를 따면서 유명세를 얻었죠. 바일스가 보유한 세계선수권 금메달만 19개입니다. 동시대 최고의 체조 선수로 인정받는 건 물론이고, 수영의 마이클 펠프스나 육상의 우사인 볼트처럼 그 종목 역사상 최고의 선수를 뜻하는 G.O.A.T(Greatest of All Time)로까지 평가받죠. 2020 도쿄올림픽에선 여자 기계체조에 걸린 금메달 6개를 모두 석권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를 모았습니다.

그런데 바일스는 이번 올림픽에서 다섯 개 종목 결선에서 기권했습니다. 가장 먼저 치러진 단체전에선 네 종목 중 한 종목에만 참가한 뒤 나머지를 포기했죠. 정신 건강(mental health)을 챙기기 위해서라는 이유를 들었습니다. 이후 개인종합, 도마, 이단평행봉, 마루운동 결선에서도 같은 이유로 기권했습니다. 그리고 8월 3일 마지막으로 열린 평균대 경기에는 중압감을 이기고 출전해 값진 동메달을 땄습니다.

마이클 펠프스, 우사인 볼트와 비교될 정도로 최고의 기량을 자랑하던 선수가 마지막일지도 모를 올림픽에서 다섯 종목이나 경기를 포기한 건 충격을 안겼습니다. 그런데 스포츠 팬들은 바일스의 선택에 비난이나 실망보다는 지지와 응원을 보내고 있습니다. 바일스의 스폰서 기업인 애슬레타(Athleta), 비자(VISA) 등도 공개적으로 응원의 메시지를 보냈습니다. 많은 주목을 받는 결선 경기에 출전을 포기한 건데도 말이죠. 비자는 “놀랍도록 용감한 결정”이라고, 애슬레타는 “최고가 된다는 건 자신을 돌볼 줄 안다는 의미”라고 밝히며 바일스를 응원했습니다.

우리는 그동안 스포츠를 보면서 육체적, 정신적 한계를 극복하는 선수들의 모습에 감동받아 왔습니다. 자신을 끝까지 몰아붙이고, 한계에 도전하는 게 스포츠 정신이라고 말하기도 했죠. 스포츠 정신의 의미가 달라지고 있습니다. 포기할 용기, 성과보다 나 자신을 우선할 용기를 낸 바일스에게 팬과 동료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는 겁니다.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기분”

2019년 세계 챔피언십에서 연기하고 있는 시몬 바일스 ©Laurence Griffiths/Getty Images
바일스는 어린 나이부터 주목을 받았습니다. 6살 때 체조를 처음 접했고, 16살에 세계 선수권 챔피언이 됐죠. 2016년 리우올림픽을 기점으론 스타가 됐습니다. 힘과 속도를 더한 뛰어난 기술로 기록도 써내려갔습니다. 2019년엔 남자 선수들만 할 수 있다고 여겨졌던 ‘트리플 더블’도 여자 체조 선수 최초로 성공시켰죠. 바일스는 선수 생활을 하면서 수많은 한계를 극복해 왔습니다. 신장결석에 걸리고도 완벽한 연기를 펼쳐 금메달을 따기도 하고, 양쪽 발가락이 부러진 채로 경기를 하기도 했습니다. 미국 체조 대표팀 전 주치의 래리 나사르가 여성 선수 160여 명에게 상습적으로 저지른 성폭력 사건에서도 피해를 증언하는 용기를 내기도 했죠. 단순히 ‘정신력이 약해서’ 경기를 포기했다고 볼 수 없는 이유입니다.

바일스는 이번 도쿄올림픽 여자 체조 단체전 경기 전 인스타그램에 “세상의 무게를 어깨에 짊어진 기분”이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한 종목에서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지만, 그만큼 큰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압박감이 얼마나 클지 가늠해 볼 수 있는 대목입니다. 정신적인 압박감은 실제로 큰 부상으로 이어질 수 있습니다. 바일스는 경기 전 ‘트위스티(twisties)’ 현상을 겪은 걸로 알려졌습니다. 체조 선수들이 공중에서 기술을 할 때 공간감을 느끼지 못해 순간적으로 신체가 어디에 있는지 인식할 수 없게 되고, 몸을 통제하기 어려운 상태입니다. 고난이도 점프와 기술을 구사하는 체조 종목의 특성상 이런 현상을 겪으면 잘못 착지해 심각한 부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포기할 용기


그럼에도 ‘나는 지금 괜찮지 않으니까 포기하겠다’고 말하는 게 쉬운 일은 아닙니다. 국가 대표로 출전해 메달을 가져오는 목표를 가진 엘리트 선수들은 더욱 그렇죠. 바일스는 그런 용기를 냈습니다. 《뉴욕타임스》는 바일스가 취약함을 드러내면 안 된다는 스포츠 선수들 사이의 금기를 깼다고 평가합니다. 얼마나 큰 압박과 정신적 문제를 겪고 있는지 드러내기 시작했다는 거죠.

강력한 의지로 한계에 도전하고, 엄청난 정신력으로 무장한 것만 같았던 프로 선수들이 정신적 고통과 두려움을 말하기 시작했습니다. 여자 테니스 세계 랭킹 2위의 스타인 오사카 나오미도 최근 정신 건강을 지키겠다며 프랑스 오픈에서 기권했죠. IOC는 2020년 프로 스포츠 선수 4000여 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32퍼센트에 달하는 선수들이 정신 건강 문제를 겪고 있었다고 밝혔습니다.

스포츠 심리학에선 선수들의 ‘멘탈 헬스(mental health)’와 ‘멘탈 퍼포먼스(mental performance)’를 구분합니다. 멘탈 헬스는 말 그대로 정신 건강, 즉 건강하고 행복하게 선수 생활을 하는 것이라면 멘탈 퍼포먼스는 정신적인 수행 능력입니다. 불안과 긴장, 압박을 이겨내고 정신력을 발휘해 성과를 내는 걸 말하죠. 두 가지는 밀접하게 연관돼 있습니다. 정신 건강이 갖춰져야 압박을 이겨내는 능력도 계속 키울 수 있습니다. 그런데 엘리트 운동 선수들은 뛰어난 성과를 내기 위해 멘탈 퍼포먼스 훈련을 중점적으로 합니다. 수 밀리미터 차이로 승패가 결정되는 사격 같은 종목에서 심박 수 조절 훈련을 하는 게 대표적이죠. 멘탈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훈련이 반드시 정신 건강에 도움이 되는 건 아니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성과를 내기 위해 연마한 침착함과 진짜 건강은 다르다는 거죠. 멘탈 퍼포먼스를 끌어올리는 훈련은 빠르게 성적을 향상시켜 주지만 근본적인 자신감이나 회복 탄력성(resilience)을 높이지는 않는다는 지적입니다.

시몬 바일스는 선수로서의 성과를 생각하기 이전에 진짜 내면의 건강을 돌아보기를 선택했습니다. 도쿄올림픽 기권 후 많은 응원을 받자 “덕분에 나는 내가 이뤘던 성취나 체조 이상의 존재라는 걸 깨달았다. 이전엔 그런 사실을 믿을 수 없었다”는 메시지를 인스타그램에 올리기도 했죠. 목표를 향해 끊임없이 노력하고 한계에 도전하는 스포츠 선수들이 정작 스스로를 돌아보고 챙기기는 어렵다는 사실을 시사하는 것 같습니다.
 

선수에게도 병가가 필요하다

2021 호주 오픈 경기에 참여한 오사카 나오미 ©Darrian Traynor/Getty Images
스포츠 정신은 이제 끝까지 최선을 다하되 성과보다 내 건강을 우선하는 것으로 변화하고 있습니다. 목표를 이루는 것보다 노력하는 과정에 있는 내가 더 중요하다는 거죠. 끊임없는 압박과 스트레스를 이기는 게 당연하게 여겨졌던 이상적인 스포츠 선수의 이미지에도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나오미 오사카는 경기 후 의무적으로 참석해야 하는 기자회견이 너무 큰 정신적 압박을 준다며 거부하고, 결국 2021년 프랑스 오픈 경기도 포기했는데요, 이 사건과 관련해《타임》에 칼럼을 기고했습니다. 칼럼에선 스포츠 선수에게도 정신적인 휴식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보통 사람들이 아프면 직장에 개인적인 사유를 모두 공개하지 않고도 병가를 내고 쉬는 것처럼, 선수들도 언론에 증상을 공개하지 않고 쉬게 해달라고 말이죠. 선수들도 때론 나약해지고, 개인적인 일에 골몰하는 인간이라는 메시지입니다.

팬들이 경기를 포기하는 선수들에 응원과 지지를 보내는 건 그들이 겪는 압박과 불안에 공감하기 때문일 겁니다. 스포츠 선수들은 늘 팬에게 영감을 주고 용기를 불어넣어 왔는데요, 그 메시지의 내용이 달라지고 있습니다. 매 순간 최선을 다했더라도 실패할 수 있다는 걸 인정하고 과정에서 의미를 찾자는 이야기로요. 스포츠 정신에 생기는 변화가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시몬 바일스의 기권을 통해 달라지고 있는 스포츠 정신을 읽었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레전드는 슬럼프로 만들어진다》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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