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스전성시대

8월 5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 시장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거금을 들여 슬랙을 인수한 세일즈포스는 승자가 될 수 있을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기업용 클라우드 서비스 업체 세일즈포스(Salesforce.com)가 업무용 메신저 회사 슬랙(Slack Technologies) 인수 절차를 마무리 지었습니다. 작년 12월 인수 계획을 공식 발표한 지 7개월 만인 지난달 22일, 마침내 최종 계약에 서명했습니다. 인수 금액은 277억 달러로 약 32조 원에 달합니다. 세일즈포스 역대 인수‧합병 가운데 최대 규모이자, 2019년 IBM이 레드햇 인수에 쓴 340억 달러에 이어 소프트웨어 업계 사상 두 번째로 큰 수준입니다.

세일즈포스는 그동안 기업용 소프트웨어 사업에 주력해 왔습니다. 기업의 고객 관리를 돕는 게 핵심 비즈니스 모델이죠. 이메일, 웹사이트, 온‧오프라인 매장, 콜센터 등에서 발생한 고객 데이터를 자동 취합하고, 이를 토대로 기업이 초개인화 영업 및 마케팅 전략을 세우도록 지원합니다. 이러한 개념을 일컫는 고객 관계 관리(CRM‧Customer Relationship Management) 분야에서 세일즈포스는 매출 기준 세계 1위입니다.

이런 회사가 왜 굳이 30조 원씩이나 들여 메신저 회사를 인수할까 의아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 돈이면 메신저 몇 개는 개발하고도 남을 테니까요. 세일즈포스는 슬랙과 공통점이 하나 있는데요, 마이크로소프트(MS)가 주요 경쟁자라는 겁니다. 세일즈포스는 고객 관리 서비스와 데이터 시각화 시장에서, 슬랙은 기업용 메신저 시장에서 MS와 각축을 벌입니다. 이번 빅딜은 MS라는 공동의 적에 대항하기 위해 결합을 택한 두 회사의 합작으로 풀이됩니다.
 

소프트웨어는 끝났다

세일즈포스 CEO 마크 베니오프 ©wikimedia
세일즈포스 창업자이자 최고 경영자(CEO)인 마크 베니오프는 일찍이 천재 프로그래머로 이름을 떨쳤습니다. 이미 15세에 게임 회사를 설립해 게임 판매 수익으로 학자금을 마련했습니다. 대학 재학 중에는 애플 매킨토시 사업부에서 인턴으로 일하며 스티브 잡스의 신임을 얻었고, 졸업 후에는 세계 2위 소프트웨어 기업 오라클에 스카우트돼 입사 3년 만에 무려 최연소 부사장 타이틀까지 얻었습니다.

13년간 오라클의 성장을 주도한 그는 1999년 독립해 샌프란시스코의 한 원룸에서 창업 전선에 뛰어들었습니다. 지금의 세일즈포스닷컴입니다. 그의 사업 아이디어는 당시에도 확고했습니다. ‘인터넷으로 기업에 소프트웨어를 빌려준다.’ 이전까지만 해도 기존 MS, 오라클, SAP 등의 기업용 소프트웨어는 3.5인치 플로피 디스켓이나 CD 같은 실물 장치에 담아 라이선스를 파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설치 과정이 복잡하고 관리가 어려우며 가격까지 비싸 일부 대기업에서만 사용했죠.

컴퓨터와 인터넷의 보급으로 기업의 전산화가 이뤄질 것이라 내다본 베니오프는 월간 사용료 65달러짜리 서비스형 소프트웨어(SaaS‧Software as a Service)를 선보입니다. 한 번에 많은 돈을 내고 소프트웨어 장치를 사는 게 아니라 일정 기간 정해진 요금을 내고 사용 권한을 부여받는 구독형 서비스의 시초격입니다. 업데이트, 데이터 관리 측면에서 훨씬 더 유리하다고 자신한 그는 기존의 낡은 방식을 꼬집어 “No Software(소프트웨어는 끝났다)”라는 구호를 전면에 걸었습니다.
 

멀티 클라우드 전략


이러한 도전적인 선언에 기존 업체들은 반기를 들고 나섰지만, 결과적으로 베니오프의 예상은 적중했습니다. 세일즈포스는 시장에서 빠르게 저변을 넓혀 2004년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습니다. 지난 10년간 연평균 매출 증가율이 무려 28퍼센트에 달하며 2014년부터 지난해까지는 CRM 분야 7년 연속 매출 1위를 달성했습니다. 22년이라는 짧지 않은 업력을 가진 성숙 기업으로서는 드물게 꾸준히 저력을 보여 주고 있습니다.

현재 세일즈포스는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도요타, 필립스 등 전 세계 15만 개가 넘는 기업을 고객으로 두고 있습니다. 《포천(Fortune)》이 선정한 글로벌 100대 기업의 96퍼센트, 500대 기업의 87퍼센트가 세일즈포스의 고객사입니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 쿠팡 등 600개 넘는 우리나라 기업도 세일즈포스 서비스를 이용하고 있습니다. 작년 기준 세일즈포스의 CRM 시장 점유율은 19.8퍼센트인데요, 2위 기업 오라클의 5.3퍼센트와 비교해 압도적인 수준입니다.

전문가들은 높은 시장 지배력 비결로 끊임없는 혁신을 드는데요, 방법론적으로는 적극적인 인수‧합병이 꼽힙니다. 2006년부터 세일즈포스는 크고 작은 기업 60여 개를 사들였습니다. 이른바 ‘멀티 클라우드’ 전략으로, 서비스 영역을 다각화해 잠재 고객을 확대하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인수 기업으로는 데이터 통합 전문 업체 뮬소프트(65억 달러, 7조 4000억 원), 데이터 시각화 전문 기업 태블로(157억 달러, 18조 원)가 대표적입니다.
 

이메일 킬러 슬랙

슬랙은 2019년 6월 뉴욕증권거래소에 상장했다. ©Drew Angerer/Getty Images
세일즈포스의 다음 전략인 슬랙은 기업용 메신저 즉, 업무용 협업 툴입니다. 저희 북저널리즘팀에서도 사내 메신저로 사용하고 있는데요, 흔히 회사용 카카오톡으로 비유됩니다. 카톡과 다른 점은 단순 채팅 기능 외에 업무에 유용한 다양한 기능이 있다는 겁니다. 주제별로 참여 멤버가 다른 ‘채널’을 만들 수 있고, 최대 20개의 다른 회사가 채널을 공유할 수도 있습니다. 주고 받은 파일은 무기한 저장되는데, 키워드 검색으로 공유 파일을 쉽게 찾을 수 있습니다. 개별 메시지에 댓글 형태로 서로 의견을 교환하는 스레드(thread) 기능도 유용합니다. 

이메일이 주요 커뮤니케이션 수단이었던 기존 방식을 바꿨다는 의미에서 ‘이메일 킬러’라는 별명이 붙은 슬랙은 세일즈포스의 CRM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클라우드 기반입니다. 데스크톱은 물론 모바일, 웹 플랫폼의 최적화된 동기화를 지원해 어디서든 사용할 수 있죠. 2013년 정식 론칭 후 8개월 만에 유니콘 기업으로 급성장한 슬랙은 현재 150여 개 국에서 70만 개 넘는 기업이 이용하고 있습니다. 2019년엔 200억 달러의 몸값으로 나스닥에 직상장했습니다.

코로나19 이후 재택근무가 늘면서 업무용 도구의 필요성은 더욱 높아졌는데요, 이는 슬랙에 기회인 동시에 리스크로 작용했습니다. 유사 서비스들과의 경쟁이 더 치열해졌기 때문입니다. 화상 온라인 회의 플랫폼 줌(zoom)과 메신저 기반 협업 툴 팀즈(Teams)가 대표적입니다. 특히 MS가 세일즈포스보다 앞서 슬랙에 인수(80억 달러 규모)를 제안했다가 거절당한 후 론칭한 팀즈는 지난해 사용자 수가 1억 1500만 명을 넘어서는 등 슬랙을 앞서고 있습니다. 대규모 투자를 단행한 덕이죠. 슬랙이 홀로 MS와 경쟁하기엔 체급 차에서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MS 타도 공동 작전

MS의 협업 지원 툴 팀즈 화상 회의 화면 ©Microsoft
선두를 빼앗긴 슬랙 입장에서야 경쟁력을 높일 수 있는 베니오프의 인수 제안이 반가웠겠지만, CRM 세계 1위 세일즈포스는 왜 30조 원이라는 역대 최고가의 투자를 결심했을까요? 사실 속내를 살펴보면 세일즈포스도 MS와의 경쟁을 신경 쓰지 않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CRM을 포함한 전체 기업용 SaaS 시장을 놓고 보면 시장 점유율과 성장 속도는 현재 MS가 1위이기 때문입니다. 특히 MS는 오피스365 등 기존 오피스 프로그램의 클라우드 전환에 성공했고, 팀즈를 통해 서비스 경쟁력을 계속해서 높이고 있습니다. 

이러한 시장 상황은 세일즈 관리 영역에서 출발한 세일즈포스가 마케팅, 커머스, SNS 등으로 사업 분야를 넓혀온 배경입니다. 세일즈포스 입장에서는 MS와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려면 확장 가능성이 높은 분야를 택해야 했는데요, 그 열쇠를 앞으로의 성장 가능성이 큰 기업용 협업 툴이라는 SaaS에서 찾은 겁니다. 기존에 시장에서 성과를 검증한 바 있는 슬랙을 인수하면 직원 참여 시장에 즉각 진출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슬랙을 인수한 세일즈포스의 비전은 단일 플랫폼 형태로 전 세계 기업의 직원, 고객, 파트너사를 연결하는 것입니다. 세일즈포스는 슬랙의 기존 고객사와, 슬랙은 세일즈포스의 기존 고객사와 접점을 만들어 비즈니스를 키워갈 텐데요, 업계에서는 오피스365를 구독하면 유료 버전의 팀즈를 무상으로 제공해 끼워 팔기 논란까지 일었던 MS의 전략을 세일즈포스가 참고할 것으로 전망하고 있습니다.
 

SaaS 왕좌의 게임

©시장 조사 기관 IDC
SaaS 전성시대는 이제 겨우 막이 올랐습니다. 시장 조사 업체 시너지리서치그룹에 따르면 글로벌 B2B 시장은 최근 10년간 평균 39퍼센트 성장했는데요, 지난해 1000억 달러, 약 119조 원으로 성장한 시장 규모는 오는 2025년 525조 원까지 성장할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옵니다. 전 세계적으로 SaaS 스타트업이 쏟아지고, 특히 북미 시장에서 유니콘 기업의 80퍼센트 정도가 기업용 소프트웨어 서비스 즉, B2B SaaS 기업인 배경이죠.

여기에 코로나19 이후에도 재택근무를 제도화해 유지하겠다는 기업은 계속해서 늘고 있습니다. 재택근무가 판데믹이라는 특수 상황에 따른, 어쩔 수 없는 선택이 아닌 일상으로 자리 잡을 수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또 비즈니스 운영에서 클라우드, AI 등의 기술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는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Digital Transformation) 도입 기업까지 가세하면서 앞으로 클라우드 기반 소프트웨어에 대한 기업들의 의존성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습니다. 

슬랙을 품은 세일즈포스는 CRM을 넘어 전체 SaaS 시장의 왕좌를 꿰찰 수 있을까요? 다른 분석은 차치하더라도 일단 베니오프의 자신감만큼은 대단해 보입니다. 그는 지난해 슬랙 인수 발표 이후 《뉴욕타임즈》와의 인터뷰에서 MS와의 경쟁 구도를 묻는 질문에 이런 답을 내놨습니다. “What’s that company?(그게 무슨 회사죠?)”, “How do you spell it?(그 회사 이름은 어떻게 쓰죠?)” 유쾌하거나 불쾌하거나, 듣는 이에 따라 반응은 다를 테지만 그의 답변은 앞으로 더욱더 경쟁이 치열해질 SaaS 시장에서 전통의 강호 자리를 쉬이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읽힙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세일즈포스가 30조 원을 들여 슬랙을 인수한 이유를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오피스의 재구성》, 《줌에서 보낸 1년》, 《마이크로소프트가 돌아왔다》, 《사무실의 정치학》, 《판데믹 이후의 도시》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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