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은 없어졌다

8월 6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올림픽에서 일본이 받아든 성적표와 드러난 민낯. 일본은 한 발짝도 나아가지 못했다. 올림픽이 실패한건 일본이 실패했기 때문이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우여곡절 끝에 8월 8일 폐막을 앞두고 있는 도쿄 올림픽은 결국 일정 조율이나 취소 없이 치러졌습니다. 가뜩이나 판데믹이라는 불운을 안고 1년을 연기한 끝에 열게 된 행사인데, 불필요한 잡음이 끊이지 않았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을 포함하여 각국 정상은 대부분 불참하였고, 올림픽 취소를 요구하는 일본 국민들의 목소리는 높았으며, 개최하기도 전에 각종 추문으로 사퇴가 이어지는 등 일본에게 있어서는 대외적·대내적으로 실패에 가까운 올림픽이었습니다.

비록 잡음은 많았지만 역시 올림픽은 올림픽인가 봅니다. 무관중 경기였지만 세계인들은 선수들을 응원하며 열광했고, 선수들 역시 고된 준비 기간을 1년이나 더 버텨온 탓에 더 열정적으로 경기에 임했죠. 시몬 바일스윈 텟 우 선수와 같이 용기 있는 선택이 우리에게 큰 울림을 주기도 했습니다. 선수촌 시설과 운영에 문제가 많았지만 선수들은 SNS에 웃픈 동영상을 올리며 유쾌한 모습으로 팬들을 위로했습니다.

올림픽 이념은 우정, 결속, 페어플레이 정신을 아우르는 동시에 국적과 문화적 차이를 극복하는 정신과 영혼의 향상이며, 세계 평화와 발전에 이바지 하는 것이라고 올림픽 홈페이지에서 소개하고 있습니다. 또한 2020 도쿄 올림픽만의 세 가지 핵심 가치로는 ‘개인 최고 달성’, ‘다양성 안의 통일성’, ‘내일로의 연결’을 언급하고 있지요. 과연 올림픽을 치러내는 과정에서 일본이 세계에 보여 준 모습은 어땠는지, 이 세 가지 핵심 가치를 기준으로 살펴보려고 합니다.
 

개인 최고 달성이 불가능한 선수촌의 부실 운영과 악조건

400m 남자 계주 경기 ©David Ramos via Getty Images
대회 비전으로서의 개인 최고 달성에 대한 조직위의 설명은 “완벽한 준비와 실행을 통해” 모든 선수가 최고의 성과를 내고 개인 최고 기록을 달성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는 것입니다. 대회 운영과 경기장 개발을 위해 세계 최고의 기술이 사용되고, 일본의 모든 자원 봉사자와 국민이 환대할 것이라고 했죠. 하지만 도쿄 올림픽은, 경기 준비를 위해 도쿄에 온 수많은 선수들을 어리둥절하게 했습니다. 

일단 선수단 숙소에 TV와 에어컨, 냉장고가 없던 것은 물론, 세탁소가 너무 적어서 빨래를 맡긴 뒤 찾아오는 데만 선수들이 1시간 이상 줄을 서야 했습니다. 미국 럭비 대표팀 코디 멜피 선수는 틱톡을 통해 손빨래를 하는 영상을 올리기도 했죠. 카드보드 침대야 친환경적이고 생각보다 튼튼하다는 선수들의 리뷰가 많았지만, 키가 크고 거구인 선수에게 침대는 무척 작아 보였습니다. 화장실 천장도 낮아 키가 큰 선수들은 허리를 굽히고 들어가야만 했죠.

선수촌 시설뿐만이 아닙니다. 트라이애슬론과 마라톤 수영 등 야외 수중 경기가 열리는 오다이바의 수질은 선수들이 악취를 참지 못할 정도로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년 전에도 국제 트라이애슬론 연맹이 정해둔 대장균 기준치의 2배가 넘는 수치가 검출되었었다고 하죠. 《FOX 스포츠》에서는 ‘Swimming in poo’라고 표현하기도 했습니다. 야구와 소프트볼 종목의 보조 경기장인 아즈마 구장이 후쿠시마현인 것도 논란이었죠. 선수촌의 식단에는 후쿠시마산 식자재가 공급될 예정으로 알려졌는데요, 한국이 평소처럼 별도의 급식 지원 센터를 운영하자 일본 측에서는 후쿠시마산 식재료에 대한 불신을 키운다며 항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선수촌의 시설 및 운영도 부실한데, 일본은 올림픽 기간 내내 폭염이었습니다. 습도가 높아 선수들이 체온 조절이 쉽지 않았고, 트라이애슬론 경기에서는 선수들이 탈진하여 쓰러지고 구토까지 하는 등, 야외 종목 선수들은 혹독한 상황 속에서 경기를 치렀죠. 《야후 스포츠》의 칼럼니스트 댄 웻젤은 일본이 IOC에 제안서를 낼 당시, 7~8월은 경기를 진행하기 알맞은 날씨라고 거짓말을 했다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국제 스포츠 행사의 경우 기상 조건이 좋지 않으면 개최 일정을 늦추는 경우도 있지만, 다른 국제 스포츠 행사와 겹치지 않아야 중계권으로 인한 수익이 충분히 보장되기 때문에 일본은 개최를 강행했던 것입니다.

이러한 악조건 속에서도 올림픽을 기다려 준 팬들을 위해 최고의 모습을 보여 주려고 노력해준 선수들은 제각기 멋진 기량을 보여 주었지만 이는 일본이 “완벽한 준비와 실행”을 통해 노력한 결과는 아닐 것입니다. 결국 도쿄 올림픽은 선수들에게도, 선수들을 응원하는 세계의 팬들에게도 큰 상처를 주고 말았죠. 국제적인 불신 속에서도 일본이 도쿄 올림픽을 과거 1964년처럼 성공적인 행사로 기록하고 싶었다면 더욱 철저한 준비가 필요했습니다. 판데믹과 더불어 개최가 1년 연기된 상황을 감안하더라도 이해하기 어려운 부실 운영이었죠. 무엇보다, 이번 올림픽을 통해 일본 사회의 민낯이 드러났다는 점은 치명적입니다.
 

다양성 안의 통일성. 현실은 추문 릴레이.

오야마다 케이고 학폭 논란으로 사퇴 ©MBC
앞서 7월 20일의 데일리에서 일본 정치의 세대교체 둔화 및 자민당의 장기 집권으로 정치·사회적 고령화가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음을 언급한 적이 있습니다. 아니나 다를까 이번 올림픽은 일본 사회에 깊이 뿌리박힌 차별과 혐오 정서, 비리가 가감 없이 드러나는 계기가 되고 말았습니다. 세계가 알던 선진국 일본과는 너무나도 다른 구시대적인 모습은 도쿄 올림픽 조직위가 올림픽을 제대로 시작하기도 전에 드러나 버렸습니다. 지난 2월 전임 일본 총리였던 모리 요시로 도쿄 올림픽 조직 위원장은 일본 올림픽 위원회 평 위원회에서 “여성이 많은 회의는 (말이 많아) 시간이 오래 걸린다”는 둥, 몰상식한 여성 비하 발언을 했다가, 엄청난 비난을 받고 사퇴했습니다.

이것은 시작에 불과했습니다. 모리 전 위원장이 사퇴 전 위원회를 거치지 않고 후임자를 발표하는 바람에 밀실 인사 논란이 일었고, 결국 하시모토 세이코 전 일본 정부 올림픽 담당상이 선출되었죠. 하지만 일본 주간지 <슈칸분슌>에서 지난 2014년 소치 동계 올림픽 폐막식 후 뒤풀이 자리에서 세이코 위원장이 술에 취해 피켜 스케이팅 선수에게 무리하게 키스를 했던 것을 사진과 함께 공개하여 성추행 파문이 일었습니다. 구시대적인 성차별 발언에 이어 위계에 의한 것으로 보이는 성추행까지 이어지며 도쿄 올림픽 조직위원회는 대회가 시작하기도 전에 큰 오명을 뒤집어쓰게 되었죠.

사퇴 릴레이는 계속되었습니다. 바로 다음 달인 3월에는 도쿄 올림픽·패럴림픽 개·폐회식 총괄책임자인 사사키 히로시 크리에이티브 디렉터가 개회식 연출안을 팀원들과 라인으로 공유하는 과정에서 와타나베 나오미의 외모를 돼지로 비하한 내용의 연출이 있던 것으로 밝혀져 거센 비난과 함께 사임했습니다. 이 역시 <슈칸분슌>의 보도였죠. 와타나베 나오미는 코미디언이자 엄청난 영향력의 패셔니스타이며 국민적인 인기를 누리는 연예인입니다. 그는 오히려 논란 이후 “각자의 개성과 생각을 존중하고, 서로 인정해 즐겁고 풍요로운 세상이 되길 바란다”며 멋지게 대응했죠. 결국 사사키의 후임은 정해지지 않은 채 도쿄 올림픽은 개·폐회식 총괄 책임자도 없이 진행되고 말았습니다.

성추문만 있던 것이 아닙니다. ‘코넬리우스’라는 1인 밴드이자, 지난 7월 도쿄 올림픽 개회식 음악 감독을 맡았던 뮤지션 오야마다 케이고는 과거 한 인터뷰에서 학교 폭력 가해자였음을 자랑하듯 고백한 적이 있는데, 이것이 다시 수면 위로 떠올랐습니다. 비록 과거의 일이지만 장애를 가진 친구에게 인분을 먹이는 등 차마 언급조차 하기 힘든 만행이었습니다. 조직위는 그를 해임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는 자진 사퇴로 물러났습니다. 일본 콩트 그룹인 ‘라멘즈’ 출신으로, 이번 개막식의 연출을 담당했던 코바야시 켄타로는 과거 홀로코스트를 개그 소재로 사용한 것이 논란이 되며 조직위로부터 해임되었습니다. 하지만 개막식 수정도 없었죠.

대선이나 올림픽과 같은 커다란 이벤트를 앞두고 관련자들이 논란으로 사퇴하는 일은 종종 있습니다. 하지만 일련의 사건들이 올림픽에서, 그것도 성추문과 비리, 학폭, 역사 인식 등으로 얼룩져 있다는 것은 일본 사회에 더욱 뼈아픈 일일 것입니다. 그들이 폭력을 가한 대상이 여성, 위계상 아래에 있는 약자, 장애인, 다른 민족 등이라는 사실은 도쿄 올림픽이 추구하고자 했던 다양성의 가치에 정면으로 반하는 것이었죠. 그들은 결국 스스로 주장한 “서로를 받아들이는” 것과는 거리가 먼 모습을 보여주었습니다.
 

내일로의 연결, 그러나 재현하지 못한 과거의 영광

2020 도쿄 올림픽 1000일 카운트 다운 행사 ©Tomohiro Ohsumi via Getty Images
미래를 위한 유산을 남긴다는 부제목과 함께, 도쿄 올림픽은 이 가치를 1964년 도쿄 올림픽을 언급하며 부연하였습니다. 일본의 경제 성장을 전 세계에 알릴 수 있었던 올림픽이었다고 말이죠. 하지만 이번 도쿄 올림픽을 통해 일본의 ‘잃어버린 30년’이 종식되었다고 단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었을까요? 일본과 올림픽 위원회는 올림픽 취소라는 커다란 적자를 피하기 위해 선수들의 안전과 불안한 방역 상황을 애써 외면했는데 말이죠. 

지금 이 시간에도 도쿄의 코로나19 확진자는 증가하고 있습니다. 일본의 버블 방역은 실패했고, 지난 4일에는 결국 올림픽 선수촌에서 첫 코로나 집단 감염이 일어났습니다. 우려했던 일이 결국 현실로 다가온 것이죠. 일본은 그 이외에도 미래를 위한 유산이라는 말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행보를 보였습니다. 《BBC》는 일본이 올림픽을 앞두고 노숙자들을 코로나19에 취약한 보호소로 강제 이동시켰다고 보도했습니다. 올림픽 시설 조성을 위한 강제 철거를 64년 올림픽에 이어 두 번 당한 노인도 있었지요. 국제적 행사를 앞두고 일본의 건재함을 보여 주려는 의도와는 달리 숨기기에 급급한 모습에 예의 바르고 시민 의식이 높은 일본의 모습은 없었습니다.
 

올림픽이라는 관문

장대 높이 뛰기 ©Richard Heathcote via Getty Images
올림픽이라는 관문을 통과하며, 오랫동안 곪아 있던 일본 사회의 뿌리 깊은 악·폐습이 지금이라도 쏟아져 나온 것은 다행일지도 모릅니다. 잘못한 것에 대해 밖에서 비난하는 것은 참 쉽지만, 우리나라 역시 안심할 수 없는 올림픽이었습니다. <MBC>의 개막식 중계 사진 논란과 선수를 향한 도 넘은 인신공격, 아직도 ‘태극 낭자’, ‘얼음 공주’등의 낡은 표현으로 보도하는 일부 언론사들 역시 우리 사회가 나아가야 할 길이 멀다는 것을 보여 주었습니다.

한때 일본의 성장 동력으로 여겨지던 것들이 어느덧 일본의 발목을 잡고 있는 상황을 보면, 그 어느 것도 견제되지 않은 채 영속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밀려옵니다. 그래서 우리 사회는 늘 더 나은 방향은 없을지 토론을 멈춰서는 안 되고, 고쳐야 할 부분이 있다면 과감히 공론화하고 개선의 물꼬를 터야 하는 것이죠. 일례로, 중국의 사회 통제 체계는 매우 공고하지만, 공산당 역시 온라인을 통해 퍼져나가는 신공민 운동으로 골머리를 앓고 있습니다. 더 나은 사회를 만들기 위해 때로는 토론이, 때로는 쟁의가 될 수도 있지만 이러한 노력들은 민주주의의 근간이 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2022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앞두고 있습니다. 올림픽과 판데믹이라는 두 관문을 동시에 통과해야 했던 일본이 처참한 모습을 보인 것처럼, 벌써부터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둘러싼 논란이 터져 나오고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에 미운털이 박힌 중국은, 홍콩 보안법과 소수민족 탄압 문제와 더불어 많은 나라의 표적 선상에 있죠. 무엇보다 미국 내에서는 이를 근거로 베이징 동계 올림픽을 보이콧해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오고 있습니다. 과연 베이징 동계 올림픽은 80년 모스크바 올림픽의 재현이 될지, 개최된다면 중국은 방역과 각종 사회 문제에서 자유로울 수 있을지 우리 모두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도쿄 올림픽이 드러낸 일본 사회의 민낯과 현재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스가는 왜 올림픽을 포기하지 못하나》, 《가면 뭐하니?》, 《아베는 어떻게 일본을 바꿨나》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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