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ose Yourself
 

8월 첫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에미넴과 파파독이 랩배틀을 벌입니다. 파파독은 얼굴이 낯익죠. 요즘은 영화 〈어벤져스〉에서 팔콘을 연기하며 사는 배우 안소니 마키입니다. 최근은 2대 캡틴 아메리카넥스트 레벨이 됐죠. 영화 〈8마일〉의 마지막 대결 장면입니다. 멸망한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의 슬럼가에선 밤마다 랩배틀이 벌어집니다. 무대에 두 사람이 올라갑니다. 랩으로 상대방을 디스하죠. 제한시간은 45초입니다. 타인이 나보다 얼마나 못났는지를 보여주는게 목표입니다. 대중은 누군가 조롱당하는걸 보면서 배설의 쾌감을 느낍니다. 오늘밤은 위너 파파독이 루저 에미넴을 짓밟은 차례입니다. 모두가 에미넴을 조롱거리가 되는걸 구경하려고 모여들었죠. 에미넴이 먼저 마이크를 잡습니다. 파파독을 디스할 차례입니다. 

반전이 일어납니다. 에미넴은 셀프디스를 시작합니다. “난 흰둥이에 이 흑인 동네에선 소수자. 엄마 트레일러에 빌붙어 살지. 내 여자친구는 나를 버리고 바람 났어. 너 같은 놈은 내가 어떻게 살아왔는지 몰라. 난 백인 쓰레기야. 난 그걸 숨기지 않아. 난 이딴 랩배틀에서 이기는거엔 관심 없어. 난 갈 거야. 더 씹어봐.” 에미넴은 파파독에게 마이크를 던져줍니다. 〈8마일〉을 보신 분들이야 다 잘 아시겠지만 파파독은 45초 동안 아무 말도 못합니다. 에미넴에 관해선 디스할게 없죠. 에미넴이 셀프디스로 전부 다 토설 해버렸으니깐요. 그렇다면 파파독도 셀프디스를 하면 됩니다. 내내 타인을 조롱하면서 벼룩만한 우월감을 즐겨온 파파독한테 셀프디스를 할 용기가 있을 리 없습니다. 파파독은 그렇게 가 됩니다. 

직시입니다. 눈길을 피하지 않고 똑바로 바라본다는 뜻이죠. 〈8마일〉에서 에미넴은 시궁창 같은 자기 인생을 직시하게 됩니다. 가난한 소수자라는 정체성을 결국엔 받아들이죠. 세상을 원망하는 짓을 멈춥니다. 남 탓하는 짓도 그만둡니다. 자신의 아픔을 감추려고 타인의 아픔을 들춰내는 짓도 관둡니다. 대신 자기 인생을 솔직하게 이야기하기 시작합니다. 거기에서부터 자기 진짜 인생을 살기 시작합니다. 셀프디스는 자기 인생을 직시한 사람만이 할 수 있습니다. 셀프디스를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쉽게 흔들 수 없습니다. 자신이 세상 사람들의 이목에 어떻게 비칠지에 관해선 얼마간 해탈한 사람이니까요. 인생과 세상을 직시한 사람만이 뚜벅뚜벅 자기 인생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이번주 북저널리즘은,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회를 만났습니다. 이름도 거창한 동북아연구회인만큼 당초엔 도쿄올림픽과 한일관계에 관해 심도 깊은 토론을 나눠보려고 하였습니다. 그건 일정 관계상 북저널리즘에서 긍정충 역할을 맡고 있는 이현구 에디터의 몫으로 남겨뒀습니다. 대신 북저널리즘에서 왕 역할을 맡고 있는 소희준 에디터가 셀프디스를 주소재로 삼는 스탠드업 코미디에 관해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사실 동북아국제구술문화연구원이라는 이름에서 정말 유의미한 단어는 구술이라는 두 글자 뿐입니다. 나의 이야기를 남들 앞에서 구술하는 스탠드업 코미디를 함께 하려고 모인 단체니까요. 그런데 이들이 들려주려는 나의 이야기는 사람들이 선망할만한 것들이 아닙니다. 그딴 건 인스타그램만 가도 차고 넘치니까요. 연구원들은 나의 못난 이야기들을 합니다. 셀프디스를 하죠. 북저널리즘의 인터뷰 꼭지인 톡스에서 연구원 중 한 분은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우리가 하는 코미디의 소재는 각자의 결핍이나 아픔, 힘들었던 일이다. 코미디로 만드는 과정에서 그 일을 진짜로 받아들이게 된다. 문제라고 생각하는 걸 넘어서 소화, 승화를 시키는 것 같다.” 다른 분은 이렇게 덧붙였죠. “스탠드업 코미디는 좋은 자기 객관화의 툴이라고 생각한다.” 

셀프디스는 십중 팔구는 듣는 이의 웃음을 유발합니다. 두 가지 이유 때문입니다. 하나는 어쩔 줄 몰라서죠. 타인의 본격 TMI 앞에서 잘 배운 사회적 동물로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미소 짓는 것이죠. 다른 하나는 공감의 웃음입니다. 나의 불행을 본인 스스로 웃으면서 자백하는 셀프디스 앞에서 우리는 공감의 위안을 얻습니다. 우리는 모두 저마다의 이유로 불행합니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방식으로 행복을 가장하죠. 행복한 척 하는 위선을 벗어던지고 불행하다고 웃으며 말하는 건 어마어마한 스펙타클입니다. 그런 광경 앞에서 우린 웃을 수밖에 없죠. 그렇게 유발된 웃음이야말로 각자각자의 가슴 속에 남아 인생이 바뀌는 원동력이 됩니다. 더 이상 행복을 가장하지 않고 불행을 직시하고 내 인생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게 되니까요. 〈8마일〉에서 에미넴이 그랬던 것처럼요. 

그런데 말입니다. 〈8마일〉의 숨은 반전은 따로 있습니다. 에미넴은 셀프디스로 랩배틀에서 승리했습니다. 오늘밤만큼은 축배를 들만도 하죠. 에미넴은 무대에서 내려오자마자 곧장 공장으로 야근을 갑니다. 무대 위의 화려한 승자는 자신의 진짜 현실이 아니라는 걸 알기 때문입니다. 이제 에미넴은 현실을 직시 할 만큼 성숙해졌죠. 출근하는 에미넴의 뒷모습을 배경으로 랩으로는 최초로 아카데미 주제가상을 받은 〈Lose Yourself〉가 흐릅니다. 사전적으로 루즈 유어셀프의 뜻은 자신을 잃어버릴 만큼 무언가에 몰두한다입니다. 영화를 다 보면 좀 다른 뜻으로도 읽힙니다. 너 자신을 버려라. 셀프디스죠. 세상이 쥐어준 나를 버릴 수 있는 사람만이 진짜 나로서의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너무 늦기 전에요. 인생은 길고도 짧으니까요.
프라임 레터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프라임 멤버분들에게만 먼저 보내 드리는 레터입니다.
북저널리즘 웹사이트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업로드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