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씨라는 늪

8월 11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엔씨소프트는 그동안 어떻게 고래 유저들을 이용해 왔나. 리니지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한국의 게임 문화를 병들게 했나.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한국 게임주는 판데믹 이후 한국 증시의 대표 업종인 이른바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로 불리며 강세를 보여왔습니다. 미국의 경우 페이스북과 아마존, 넷플릭스와 구글을 의미하는 ‘FANG’이 있죠. 여기에 마이크로소프트와 세일즈포스, 이베이, 스타벅스, 프라이스라인을 추가하여 ‘Nifty Nine’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나스닥을 이끄는 이들과 비견되는 한국의 BBIG 종목 중, 게임 분야의 엄연한 대장주는 엔씨소프트라고 할 수 있죠. 넥슨은 현재 일본 증시에 상장한 탓에, 넷마블, 카카오 게임즈 등이 엔씨의 후발 주자로 따라나서고 있으며, 곧 크래프톤의 상장도 주목받고 있습니다.

외부에서 엔씨를 볼 때는 게임주의 절대 강자이지만 내부 실상에 대해서는 매스컴에서 크게 공론화된 적이 없는데요, 물론 엔씨 게임의 문제를 다룬 기사가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이제껏 게임 내에서 불거졌던 문제가 다양한 언론사에서 집중 보도된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논란이 생겨도 게임 시스템에 대한 이해 없이는 이것이 왜 문제인지 파악하기조차 쉽지 않고, 결국 ‘게임은 전자오락이다’라는 정도의 인식이 있기 때문이죠. 다만, 우리나라 앱 스토어와 구글 스토어의 전체 매출 1, 2위는 항상 ‘리니지M 형제(리니지M, 리니지2M)’가 차지하고 있었습니다. 단순히 전자오락이라며 지나칠 수 없는 현상이죠.

당연하게도 기업의 주가는 영업이익의 영향을 받습니다. 상장이나 분기 실적 공개를 앞두고 기업은 최대한의 몸집 불리기를 시도하고, 그 과정에서 무리수를 두기도 하죠. 하지만 거대한 매출을 자랑하는 기업의 영업 모델 자체가 애초에 과도하게 설계되어 있다면, 매출의 측면에서 마치 시한폭탄과 같을 것입니다. 최근 리니지M 형제는 카카오 게임즈의 신작 ‘오딘: 발할라 라이징’에게 매출 1위의 왕좌를 내주었는데요, 한국 게임사의 매출은 대부분 엄청난 고래급 과금 유저들이 담당하고 이들이 흔치 않다는 것을 고려한다면 오딘의 매출 순위는 리니지 유저의 이동으로도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린저씨’라고 불리는 리니지의 코어 유저 층과 엔씨의 불편한 공생 관계, 끊을 수 없는 악순환을 살펴보죠.
 

라이트 유저, 헤비유저... 그리고 린저씨

리니지2M ©엔씨소프트
앞서 언급한 것처럼 엔씨소프트의 주가는 이들의 주력 모바일 게임인 <리니지M>과 <리니지2M>에 달려있고, 이 게임에 가시적인 영업 이익을 보장하는 유저 층은 사실상 게임 내에서 소수에 해당하는 ‘핵과금’ 유저입니다. 이들이 리니지라는 게임에 쓰는 돈은 상상을 초월합니다. 만약 매달 게임에 투자하는 비용이 한 달에 몇 십만 원이라고 한다면 어떤 생각이 드시나요? 일반적인 게임에서는 ‘헤비 유저’로 분류될 수 있겠지만 리니지 생태계에선 소과금으로 즐기는 ‘라이트 유저’일 뿐입니다. 그야말로 린저씨들은 이른바 ‘클라스’가 다르다고 할 수 있는데요, 이는 리니지가 PC게임이던 시절부터 유명했습니다.
NC 통합 우승 후 양의지 선수가 집행검 퍼포먼스를 하고 있다. ©스포츠머그
집행검 3000만 원. 리니지가 1998년 PC버전으로 출시된 이후 약 10년의 가까운 세월동안 게임 내에서 최강급인 이 무기의 현금 거래 가격입니다. 리니지M 형제가 출시된 이후 많은 리니지 유저들이 모바일로 갈아타고 난 후에 가격이 떨어졌지만 여전히 일반인들에게 리니지하면 ‘집행검 3000만 원’이 떠오를 정도로 유명하죠. 이 검은 현재 리니지M에서는 현금 1억 5000만 원 가까이 호가합니다. 문제는 희소성으로 형성된 가격이 아닌, 게임 캐릭터에 쌓이는 능력치와 스킬의 가격, 즉, 엔씨에 돈을 내고 구매할 수밖에 없는 요소들이 말도 안 되는 가격에 판매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과금 요소가 너무나 많지만 숫자로 표현하기 좋은 두 가지 사례를 소개하겠습니다. 일반적인 게임에서 스킬은 캐릭터가 성장하면 자연스레 배울 수 있는 시스템입니다. 하지만 리니지는 웬만한 스킬을 모두 ‘스킬북’을 통해 배워야 하고, 이것을 게임 내 재화 혹은 현금 결제를 통한 뽑기, 제작 등으로 마련해야 합니다. 가장 좋은 등급의 스킬은 ‘전설 스킬’이라고 불리는데요, 한 리니지M 스트리머는 원하는 전설 스킬 한 개를 뽑기 위해 현금 1800만 원 가량을 썼습니다. 그 아래 등급의 스킬을 한 개 가지는데도 100만 원 가까운 돈을 과금해야 한다고 하죠.
리니지M의 문양 시스템 ©엔씨소프트 홈페이지
또 하나의 예로, 리니지에는 문양 시스템이라는 것이 있는데, 결제를 통해 얻은 재화로 윷놀이처럼 칸을 채워가며 문양을 완성할 수 있고, 이 문양은 캐릭터의 각종 능력치를 올려줍니다. 다만 횟수 제한이 있어 모든 독립 시행에서 ‘모’에 해당하는 값이 나오지 않으면 이 문양을 최종적으로는 완성할 수 없는데요, 이것을 결국 완벽하게 하려면 문양 하나당 보통 3000만 원 이상이 들어가고, 이 문양은 총 여섯 개가 있습니다. 고래 유저라면 최소 1억 8000만 원 가량을 들여야 하는 것이지요. 린저씨들은 새로운 시스템이 나올 때마다 이런 충격적인 금액을 엔씨에 지불해왔습니다.
 

그들이 리니지를 하는 이유

리니지 유저들이 리니지를 하는 이유 ©중년게이머 김실장
이쯤 되면 아무리 재력이 있다 하더라도 저 정도의 돈을 게임에 지불하는 것이 어떻게 가능할까 싶죠. 이는 리니지라는 게임의 특성에 기인합니다. 위 영상은 리니지2M의 유저이자 게임 웹진인 《디스이즈게임》에서 근무하는 유튜버 중년게이머 김실장이 린저씨의 입장에서 왜 리니지를 하는지를 설명하는 영상입니다. 쉽게 말해 리니지가 주는 재미를 다른 게임이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상대를 공격하는 것이 주요 목적인 FPS(First Person Shooter, 1인칭 슈팅)게임이 아닌 RPG(Role Playing Game)인데, 게임에 들어서면 다른 유저를 그냥 죽일 수 있고, 강한 유저들끼리 모여 혈맹을 구축하고 조직적으로 서버를 통제합니다.

공성전이라는 대규모 전쟁(이하 ‘쟁’)은 리니지만의 개성이자 컨텐츠의 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엔씨가 리니지 시리즈로 십수 년간 다른 게임이 넘보지 못할 아성을 만들 수 있던 비결은 바로 공성전에 있으며 이는 분명히 게임성에 해당하는 것이죠. 가령 다른 게임에서 대규모 전투를 한다면 강한 캐릭터가 아군에 많을수록 유리한 단순한 전투가 되겠지만, 리니지 쟁의 핵심은 충돌 시스템입니다. 상대적으로 약한 캐릭터라도 공성전에서 입구를 몸으로 틀어막고 있으면 다른 캐릭터가 뚫고 들어갈 수 없는 구조이기 때문에, 실감나는 전투를 체험하게 되고 각자의 역할이 정해지며, 혈맹은 더욱 끈끈해집니다. 현실 전투와 비슷한 양상을 구현한데다, RPG의 특성상 캐릭터는 곧 나 자신과 다르지 않기 때문에, 몰입감은 더해집니다. 최근 메타버스가 크게 주목받고 있지만, RPG게임을 오랫동안 해보신 분들에게는 별로 새로울 것도 없죠. 어느덧 게임 캐릭터와 혈맹이 아닌, 나와 사람들의 관계가 되어 있습니다.
리니지2M 스페셜 영상 Ⅱ©엔씨소프트
이렇게 어느 정도 세력이 형성되면, 이미 세력 간 전력 분석도 끝나 있습니다. 하지만 어느 날, 나와 비슷한 전력을 가졌지만 늘 내가 이길 수 있다고 자신하던 상대에게 죽임을 당한 순간 유저는 체감하게 됩니다. 내 캐릭터의 ‘스펙’이 떨어졌다라고. 리니지의 헤비 유저들이 캐릭터에게 아주 작은 능력치에도 목을 매고 심한 과금을 하는 데에는, 리니지가 유도하는 경쟁 심리, 혈맹에서 내 몫을 해내야 한다는 책임감, 그리고 결국 능력치 하나의 차이로 승패가 결정 날 정도의 치열함 때문입니다. 따라서 리니지에는 이런 우스갯소리가 있습니다. 리니지 그거 어차피 ‘스탯(능력치)으로 패는 게임 아닌가요?’라고. 결국 위에 언급한 스킬, 문양 등의 시스템 역시 이런 맥락에서 하나라도 더 채우고 싶고 너무나 가지고 싶게끔 게임이 구성되어 있는 것이죠.

물론 린저씨들의 게임 문화가 정상이라는 것은 아닙니다. 이들은 24시간 게임을 실행시키며 게임 내에서 손해 보는 것을 용납하지 않고, 조직 폭력배와 다름없는 혈맹 문화를 동원해 서버 내의 많은 것들을 통제합니다. 리니지류의 게임을 처음 해보는 유저는 갑자기 다가와 보스 몬스터를 건드리지 말라고 하거나, 이유 없이 자신의 캐릭터를 죽이는 리니지 만의 문화에 적응하지 못합니다. 다만 그러한 약육강식의 생태계를 리니지 유저들은 리니지의 특수성이라고 여깁니다. 원치 않으면 ‘중립’을 자처하며 조용히 지낼 수 있겠지만 그것이 안전을 담보하지는 않는 냉정한 세계라고 볼 수 있지요.
 

엔씨의 설계자들, 가지고 싶게 만드는 기술

리니지2M 스페셜 영상 IV에 등장한 엔씨 건물 ©엔씨소프트
엔씨의 BM(Business Model, 경영 모델) 설계는 교묘함과 완성도가 타의 추종을 불허합니다. 업계 최고의 치밀함을 자랑하며, 다른 신생 게임들이 리니지를 베끼는 데 급급한 이유가 사실 이 BM을 적용하고 싶어서라고 말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이들이 구축한 게임성 만큼이나 이들의 BM은 엔씨를 게임 분야의 대장주로 만든 일등 공신입니다. 게임 분야에서의 BM은 주로 수익 모델에 해당하는 유료 결제 상품과 판매 방식을 의미하는데요, 엔씨는 단지 상품 구성을 매력적으로 만드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게임에 대한 높은 이해를 기반으로 최적의 타이밍에 상품을 내놓습니다. 엔씨의 과금 모델 설계에 대해, 위에 인용한 유튜버 중년게이머 김실장 채널에서 관련 영상을 찾아보시면 이들의 악마적인 천재성에 혀를 내두르게 될 것입니다.

앞서 ‘가지고 싶게 만드는’ 것은 자사 게임에 대한 높은 이해가 필요합니다. 한 예로, 엄청난 가격의 전설 스킬 중 ‘더블 쇼크’라는 스킬은, 민첩한 ‘이도류’ 직업군이 배울 수 있으며 상대를 몇 초 가량 더 오래 기절시키는 기술입니다. 이 직업군은 공격력은 높지만 상대를 기절(스턴)시킬 수 있는 기술은 많지 않은데, 리니지는 상대를 마구잡이로 공격할 수 있는 만큼 귀환서를 통해 마을로 도망치는 것도 빠르게 할 수 있어서 죽이는 것이 어렵습니다. 엄청나게 강해서 상대를 몇 번의 공격 안에 죽일 수 있는 것이 아니라면 말이죠. 다만 더블 쇼크를 배우면 이 직업군은 상대를 기절시킨 후 강력한 공격력으로 손쉽게 죽일 수 있게 됩니다. 캐릭터가 가진 약점을 이 비싼 전설 스킬이 한 번에 해결한 것이죠. 스킬 효과 자체는 평범하기 이를 데 없지만 게임에 대한 높은 이해를 통해, 엄청난 가격을 감수하더라도 갖고 싶게 만든 것입니다.

타이밍 역시 대단합니다. 그저 무턱대고 값비싼 재화를 높은 가격에 판매하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유저들의 진척도를 파악하며 최적의 시점에 재화를 판매합니다. 가령 얼마 전 규제 법안이 발의되기도 한 ‘컴플리트 가챠’에 해당하는 엔씨의 숙련도 시스템은 능력치를 올려주는 시스템으로 총 아홉 칸을 완성하는 것이 목표인데요, 한 칸마다 뽑기를 통해 능력치가 무작위로 부여됩니다. 능력치 값에 따라 급도 달라지죠. 중요한 것은, 같은 급으로 여러 칸을 맞추면 빙고가 되며 추가 능력 상승이 있는데, 엔씨는 처음부터 아홉 칸을 전부 진행할 수는 없게 만들어놨습니다. 처음 세 칸씩 점진적으로 열었죠. 그 결과, 유저들은 그 세 칸부터 완벽한 빙고를 만들기 위해 노력했고, 결과적으로는 그간 써온 돈이 아까워 아홉 칸 모두 많은 돈을 들이게 됩니다.
 

엔씨와 유저의 끊을 수 없는 악연

리니지에 발생하는 매몰 비용에 대한 영상 ©중년게이머 김실장
어쩌면 치밀하게 짜인 수익 모델의 설계, 독특한 게임성, 고래 유저들의 재력이 맞물린 ‘그들이 사는 세상’으로 보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의 이해관계가 잘 맞아 떨어져 알아서 굴러가는 기업 정도로 외부에서 인식되어 온 것이 사실이니까요. 하지만 실제로 고래 유저들은 엔씨의 경영에 엄청난 불만을 가지고 있고, 이를 쉽게 끊을 수도 없는 악순환을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 지긋지긋한 악연의 대부분은 매몰 비용에서 발생합니다.

매몰의 시작은 간단한 결제였겠지만, 어느덧 점진적으로 무리한 결제를 이어가며 이미 게임에 투자한 비용은 눈덩이처럼 불어납니다. 앞서 언급한 리니지의 특수성으로 인해 세밀한 능력치 하나하나를 갖춰 나가야 하기 때문에, 매번 엔씨가 출시하는 게임 내 패키지 상품을 하나라도 구매하지 않으면 금방 도태되어 버립니다. 이는 혈맹 내에서 자신이 가지는 지위와도 연결되는데요, 같은 혈맹원들과 숨 가쁜 공성전을 치러오며 다져진 끈끈한 관계성의 매몰 때문에, 쉽게 게임을 그만두지도 못합니다.

또한 PC 온라인 게임이 대부분을 차지하던 시절엔 게임 내 거래소를 통해 유저 간 거래가 활발했기 때문에, 대부분의 재화를 유저 거래로 획득할 수 있어, 거의 재테크 수준으로 활용하는 유저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모바일 시장으로 대부분의 게임이 넘어간 현 상황에서는, 게임 내 대부분의 재화를 유저 간 거래로 획득하는 것이 아닌 게임 내 확률형 아이템으로 갖춰나가야 하는 차이가 있지요. PC 리니지에서 집행검을 얻었다면 3000만 원에 팔 수 있었겠지만, 지금은 게임 내 재화인 다이아로 거래해야 하고, 그 다이아는 결국 현금화 할 수도 없습니다. 즉, 발생한 매몰 비용을 회수하는 방법이라곤 계정 거래밖에 남지 않는 상황이 됩니다.

하지만 그 계정을 누가 살 수 있을까요? 이미 해당 계정의 캐릭터들을 육성하기 위해 쓰인 돈은 천문학적이기 때문에, 수요는 거의 없고, 매우 낮은 가격에 판매할 수밖에 없죠. 엔씨는 로또 1등보다 낮은 확률을 자랑하는 뽑기 시스템과 각종 결제 모델을 적시에 출시해 계속해 고래 유저들이 게임을 접을 수 없는 상황을 만듭니다. 이를 지금이라도 관두지 못하는 고래 유저들도 문제이지만, 엔씨의 길들임 앞에서는 장사가 없는 것이죠.
 

엔씨의 위기

성난 ‘린저씨’…불매운동에 트럭 시위까지 ©SBS
리니지에서는 최근 ‘문양 업데이트 롤백 사건’과 기존의 극심한 과금 유도 방식이 도마 위에 오르며, 게이머들 사이에서 엄청난 논란이 되었습니다. 내용이 복잡해 본 글에서 설명할 순 없지만, 그간 엔씨의 무리한 운영에도 참고 결제해오던 고래 유저들이 화가 크게 날만한 사건이었죠. 요새 게임 업계에서 유저들이 시위할 때 자주 사용하는 방식인 트럭 시위가 엔씨에도 이어졌습니다. 특히, 한 리니지 게임 스트리머는, 위에 언급한 롤백 사건으로 인해 1억 6000만 원에 가까운 현금을 손해 보았음에도 엔씨로부터 계속 외면을 당했고, 본사로 항의하고자 찾아갔다가 고발을 당하기도 했습니다.

단어가 자극적입니다만, 리니지 코어 유저들은 이른바 ‘개돼지 해방 전쟁’을 선포, 엔씨에게 더 이상 동물처럼 온순하게 당하지 않겠다는 의지를 표명하며, 불매 운동을 이어갔죠. 실제 엔씨는 해당 사건으로 인해 매출에 큰 타격을 입고 주가가 급락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5월에는 영업이익이 76퍼센트 급감했으나 엔씨 측은 리니지M 불매 운동의 영향은 없으며 인건비와 마케팅비가 증가한 탓이라고 설명했는데요, 쉬이 납득하기는 어렵습니다. 그런데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습니다. 바로 지난 5월 20일에 발표된 엔씨소프트의 신작 <트릭스터M>으로 인해, 엔씨는 다시 한번 큰 위기를 맞이합니다.
트릭스터M 플레이 화면 ©엔씨소프트
트릭스터M을 출시하기 전 엔씨의 관계자는 홍보물에서 이 게임은 ‘귀여운 리니지’가 될 것이라고 발언했으며, 과금 요소 역시 귀여운 수준일 것이라 호언했습니다. 트릭스터는 오래전의 PC게임이 원작이고, 리니지와는 다른 귀여운 일러스트와 분위기를 가진 게임입니다. 그런데 트릭스터에 향수를 가지고 있던 유저들이 몰려든 오픈 첫 날, 유저들은 경악했습니다. 뚜껑을 열어본 트릭스터M은, 대부분의 능력치 구성과 기술, 사냥 시스템, 과금 시스템이 리니지와 아예 동일한 수준에 가까웠습니다. 패키지 상품의 가격은 리니지와 비슷하거나 상회하는 경우도 있었으며, 심지어 게임 내 능력치에 대한 설명은 리니지와 토시 하나 틀리지 않고 같은 경우도 있었습니다. 결정적으로 이벤트 안내 페이지에서 리니지에 사용했던 이벤트 안내를 일러스트만 바꾸어서 내놓았다가 내용 수정이 덜 되어 리니지 아이템 이름이 노출되기도 했습니다. 확인 사살이죠.

심지어 리니지 게임을 해본 유저들은 트릭스터M이라는 게임이 처음 공개된 날부터 어디에 무엇이 있는지 UI를 완전히 알고 있는 모습을 보여 많은 사람을 충격에 빠뜨렸습니다. 결국 출시 된지 3개월 만에 유저의 97퍼센트가 빠져나가며 트릭스터M은 존폐 위기에 놓이게 되었죠. 이 게임을 서둘러 낸 이유도, 상반기 영업실적 공개를 앞두고 리니지와 같은 BM을 통해 이제껏 감소한 매출을 상쇄하고자 하는 의도로 비춰지고 있으며, 그간 리니지 BM을 유사하게 답습한 신작 게임들에 사람들이 학을 떼던 터라 엔씨는 돌이킬 수 없는 불신을 안게 되었습니다.

현재 엔씨는 하반기에 나올 ‘블레이드 앤 소울2’로 이를 다시 만회하려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폐쇄적인 리니지 내에서의 과도한 운영 방식이 트릭스터M을 통해 대중적인 게이머들에게 알려져 충격을 안긴 상태에서, 과연 블소2에 뛰어들 고래 유저들이 얼마나 있을까요. 오딘 역시 리니지 만큼은 아니더라도 결국 비슷한 수준의 엄청난 과금 유도가 이루어지고 있는데, 이미 오딘에 정착한 유저들을 엔씨는 데려올 수 있을까요?
 

집행검을 든 난민, 방주로 가다.

로스트아크 현금 1000만 원 투자하면 사냥할 수 있나요? ©유튜브 쵸튜브[쵸피]
게이머들이 과금에 무감각해진 것은 그리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과거 PC게임이 주류를 이루던 시절, 그러니까 부분 유료화라는 획기적인 BM의 등장으로 과금에 대한 유저의 심리 장벽이 낮아지기 이전에는, 유료 온라인 게임이 정액제로 한 달에 1만 9000원 정도를 내라고 해도 손사래 치는 사람이 많았습니다. 차라리 몇 만 원을 주고 CD게임을 구매하여 즐겼죠. 게임사들은 명작을 만들어내기 위해 엄청난 노력을 기울였습니다. 온라인 게임으로 출시된 리니지 역시 첫 시작은 유저들이 경험해 보지 못한 충격을 안기며 명작 반열에 올라섰죠.

하지만 모바일을 통해 결제가 쉬워지고, 리니지식 패키지 상품이 등장하고 난 뒤에는 게임이라는 것 자체가 결국 패키지 상품을 팔기 위한 그럴듯한 도구나 구실에 지나지 않게 되었다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과거에 명작 게임을 만들고도 적당한 수익 모델이 없어 고전을 면치 못하다가 폐업한 회사도 많죠. 게임사도 기업이고 이윤을 추구하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요새 이어지는 트럭 시위를 보면, 게임사에게 유저와 공존하기 위한 고민이 부족해보이는 것이 사실입니다.

<로스트아크>라는 게임이 있습니다. 2016년 클로즈 베타 서비스를 시작으로 2018년 11월에 정식 출시한 이 게임은, 이름처럼 기존 게임사의 횡포에 지친 이른바 난민 유저들이 앞 다퉈 탑승하는 방주로 묘사됩니다. 최근 게임 내 아이템 확률 조작 사태로 크게 홍역을 치른 메이플 스토리의 유저들도 상당수가 이동한 것으로 알려져 있죠. 스마일게이트의 로스트아크가 유저들의 방주로 불리우는 것에는 별다른 비밀이 없습니다. 그 답은 진솔한 ‘소통’에 있습니다.
 

게임사와 유저가 공생하는 건강한 게임 문화 

로스트아크 간담회 금강선 디렉터 어록 모음 ©ASHSTORM
해당 게임의 디렉터는 출시부터 쭉 금강선이라는 인물이었습니다. 팬들로부터 ‘빛강선’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는데요, 제작 발표회나 유저와의 간담회 등에서 매번 준비된 그럴듯한 말만 하는 여타 게임사의 디렉터와는 달리, 금강선 디렉터는 개발 방향이 잘못 설정되었거나 유저가 크게 불편을 느낀 사항에 대해서 명료하게 발언합니다. “저희 설계 미스입니다.” 심지어 금강선 디렉터는 자신이 직접 로스트아크를 플레이하며 유저들이 불편을 겪는 부분을 동일하게 경험하고, 그 내용을 토대로 간담회를 이끌어갑니다. 또한 무작정 유저 요구만 맞추는 것이 아닌, 어쩔 수 없는 부분도 솔직하게 털어놓고 당당히 양해를 구합니다.

진솔함은 간단합니다. 최고의 영업 이익을 위해 유저를 시스템에 길들이고, 불건전한 게임 이용 문화를 만들고, 사행성을 조장하는 것 보다 간혹 이러한 진솔함이 큰 힘을 발휘할 때가 있는 법이지요. 로스트아크는 한동안 리니지 이탈 유저와 메이플 스토리 이탈 유저로 인해 접속 대기열이 생기기도 했는데요, 위에 첨부한 사진처럼, 과금에 익숙해진 타 게임 유저들의 모습을 보고 로스트아크 유저들은 충격을 받음과 동시에 게임 내 시세 변동으로 인해 홍역을 앓기도 했죠.

우리나라 모바일 게임 시장에서 엔씨소프트 리니지M 형제의 BM은 어느 게임사라도 따라하고 싶을 정도의 성공적인 케이스였으나, 이젠 유저들이 돌아서기 시작했습니다. 분명한 것은 이는 엔씨만의 문제도, 그렇게 과금을 하는 고래 유저들만의 문제도 아니라는 것입니다. 한국 증시를 이끄는 게임 분야의 성공에 어울리게, 게임·IT 강국이라는 타이틀에 어울리게, 유저와 게임사는 서로를 이해하며 관계를 지속할 필요가 있습니다. 유저를 게임의 늪에 빠지게 해선 게이머도 게임사도 지속 가능하지 않습니다. 

흔히 과금 유도 논란은 늘 소비자에 대한 손가락질로 갈무리되어 왔습니다. “돈을 쓴 사람이 바보지”, “무과금으로 진행이 어려운 게임이면 안 하면 되잖아”라는 말은 당연하게도 틀린 말이 아니지만, 근본적인 문제에 접근하기 어렵게 합니다. 산업 분야에 따라서 기업 윤리를 크게 저버린 사측이 비난의 대상이 되는 경우도 있지만, 유독 게임사에만 싫으면 접으란 말이 강조되죠. 게임사는 유저가 돈을 낸 만큼 정성스러운 서비스로 보답하고, 유저 역시 과몰입을 경계하며 게임을 생산적으로 즐길 수 있는 건강한 문화가 보편화되길 바라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엔씨가 그동안 어떻게 리니지의 고래 유저들을 이용해왔는지, 리니지의 비즈니스 모델은 어떻게 한국의 게임 문화를 병들게 했는지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
Clos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