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라디오 시대
 

8월 둘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세계 최초의 라디오 뉴스 방송은 1920년 11월 미국의 29대 대통령 선거 개표 결과를 속보로 전달하는 내용이었습니다. 방송사는 웨스팅하우스가 설립한 세계 최초의 라디오 뉴스 스테이션 KDKA였죠. 웨스팅하우스는 오늘날엔 원전 건설업체로 더 잘 알려져 있지만 100년 전만 해도 조그마한 가전제품 회사였습니다. 주력 상품은 라디오였습니다. 웨스팅하우스는 라디오 수신기의 판매를 촉진하려면 라디오 콘텐츠가 필요하다는 걸 알고 있었습니다. 웨스팅하우스가 맨 먼저 주목한 콘텐츠는 뉴스였습니다. 당대의 인기 유튜버라고 할 수 있는 아마추어 무선사 프랭크 콘라드 박사를 진행자로 정치 라디오 방송을 시작했죠. 라디오 저널리즘의 시작이었습니다.

대통령 선거 개표 방송을 하던 프랭크 콘라드 박사는 즉흥적으로 브로드캐스팅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어냅니다. 널리 던진다는 의미죠. 오늘날까지도 브로드캐스팅은 방송을 뜻하는 영어 단어로 쓰입니다. 오늘날까지도 방송의 본질은 달라지지 않았단 말입니다. 지식과 정보를 전파를 사용해서 대중에게 널리 전달하는 일이 라디오 저널리즘입니다.

사실 라디오라는 아이디어를 처음 떠올린 건 전파 황제 데이비드 사노프였습니다. 사노프는 라디오 음악 방송의 상업적 잠재력을 일찌감치 간파했죠. 사노프 역시 라디오의 지식 정보 전달 기능을 인식하고 있었습니다. 음악과 스포츠 브로드캐스팅에 집중하다 웨스팅하우스한테 최초의 라디오 뉴스 타이틀은 빼앗깁니다. 대신 사노프는 1926년 종합편성채널인 NBC방송국을 설립합니다. 라디오 산업의 특이점은 1927년 찰스 린드버그의 대서양 횡단 비행이었습니다. 600만 명이 넘는 사람들이 라디오로 직접 린드버그의 비행 뉴스를 들었습니다. 라디오의 인기 콘텐츠는 언제나 음악 디제잉 방송과 월드 시리즈 중계 방송이었지만 지식과 정보 역시 파괴력이 상당했죠. 린드버그가 증거였습니다. 라디오 저널리즘은 시작부터 정치 그리고 사건과 함께였습니다.

딱 100년이 지났습니다. 북저널리즘도 라디오 저널리즘을 시작합니다. 앞으로 매주 월요일자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선 에디터들의 목소리를 직접 들으실 수 있습니다. 8월 16일 월요일자 데일리부터 시작합니다. 이름은 북저널리즘 라디오입니다. 지난 한 주간 북저널리즘이 다뤘던 데일리의 뒷얘기를 전해드릴 예정입니다. 또 메타버스가 대선 같은 대주제를 중심으로 데일리와 전자책과 종이책을 큐레이션해서 전해드릴 계획입니다. 본격 런칭에 앞서 8월 9일 월요일자 데일리로 준비한 파일럿 방송에선 윤석열식 마이웨이와 도쿄 올림픽 뒷이야기와 사스전성시대를 이야기했습니다. 100년 전 라디오 저널리즘이 태동하던 때처럼 북저널리즘 라디오도 정치와 사건으로 시작한 셈입니다. 8월 16일 월요일에 업로드될 첫 번째 에피소드에선 테슬라와 클럽하우스와 엔씨소프트 같은 국내외 테크 기업들을 이야기했습니다. 글로 쓰여진 데일리 아티클과는 또 다른 말로 전해지는 북저널리즘 에디터들의 분석과 통찰 그리고 전망을 공유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는 여전히 라디오를 듣습니다. 단지 이름이 라디오가 아닐 뿐입니다. 팟캐스트일 수도 있습니다. 팟빵일 수도 있습니다. 오디오클립일 수도 있습니다. 전파 대신 인터넷으로 널리 던져지고 플랫폼별로 다른 이름으로 불릴 따름입니다. 결국 모두가 라디오들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여전히 라디오를 사랑하고 그리워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서 라디오란 말로 지식 정보를 전달하는 저널리즘의 형식을 말합니다. 북저널리즘이 음성화된 지식 정보 콘텐츠를 처음 독자 여러분들게 전해드리는 건 아닙니다. 한동안 말보단 글에 집중해온 건 사실입니다. 우리는 지식과 정보를 글과 말로 습득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미지와 영상은 글과 말에 입체감을 부여하죠. 그래서 보편적 인간에게 지식과 정보를 전달하는 걸 목적으로 하는 저널리즘의 뼈대는 한사코 글과 말일 수밖에 없습니다. 데이비드 사노프는 글에만 의지했던 저널리즘한테 말이라는 무기를 쥐여 줬습니다. 글에 갇혔던 저널리즘은 말을 얻음으로써 도약했습니다.

저널리즘에게 말과 글은 미래와 과거라고 할 수 있습니다. 브로드캐스팅이 널리 말을 던진다는 뜻인 것처럼 말은 현재에서 미래로 던져지는 것입니다. 말은 강한 전망성을 갖기 마련입니다. 반면에 글은 강한 기록성을 갖습니다. 글은 세상의 최종적 의미를 정의내리는 역할을 합니다. 이미 벌어진 일들 가운데 진실이고 유의미한 사실들만 선택해서 글로 기록합니다. 그런 기록이야말로 저널리즘의 첫 번째 미션이죠. 그런데 시대가 변했습니다. 21세기 독자들은 글의 기록성과 말의 전망성을 모두 원합니다. 미디어가 과거에서 현재로 이어지는 트렌드를 정리하고 현재에서 미래로 이어지는 변화를 전망해주길 원하죠. 북저널리즘이 글과 말 모두로 독자 여러분들과 소통하려는 이유입니다.

레거시 미디어에선 글과 말이 엄격하게 분리돼 있었습니다. 글은 신문과 출판의 형식이었죠. 말은 TV와 라디오의 형식이었죠. 디지털 기술은 저널리즘을 글과 말의 기술적 구분에서 해방시켜줬습니다. 말과 글의 디지털 융복합이야말로 뉴미디어의 본질입니다. 신문과 잡지와 라디오와 출판이 하나의 미디어 브랜드에서 어우러지는 것이야말로 뉴미디어의 형식이어야 합니다. 이미 소비자들이 미디어를 그렇게 입체적으로 소비하고 있으니까요. 북저널리즘 역시 뉴미디어로서 새로운 저널리즘의 형식을 탐구해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북저널리즘은 뉴스와 출판을 융합했습니다. 결국 뉴스의 속도와 책의 깊이를 모두 잡았습니다. 그렇지만 실험은 멈춤 없이 계속돼야 합니다. 100년 전 사노프 시대엔 읽는 저널리즘이 듣는 저널리즘으로 확대되는 게 혁신이었습니다. 21세기엔 독자가 읽고 듣고 보고 나아가 직접 쓰고 목소리를 낼 수 있는 융복합 미디어를 만드는 게 혁신입니다. 심리스한 미디어 경험을 제공해줘야 하죠. 지금 북저널리즘이 서 있는 미디어의 최전선입니다. 지금은 북저널리즘 라디오 시대입니다. 
프라임 레터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프라임 멤버분들에게만 먼저 보내 드리는 레터입니다.
북저널리즘 웹사이트에는 매주 금요일 오후 5시에 업로드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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