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산총액 2조 원 이상인 상장 법인의 경우 이사회의 전원을 특정 성의 이사로 구성하지 아니하여야 한다.”
작년 개정된 ‘자본시장과 금융투자업에 관한 법률’의 일부입니다. 현재 2년 차의 유예기간을 거치는 중이고요. 내년 8월 5일부터 의무적으로 시행됩니다.
이른바 '여성 임원 할당제'의 실제 적용까지 1년 남은 셈입니다. 그런데 국내 상장 기업들의 1분기 보고서를 살펴보니 실행률이 저조합니다. 지난 8월 5일 여성가족부 발표에 따르면 상장 기업 중 여성 임원 선임 기업, 즉 ‘여성 임원이 한 명이라도 있는 회사’의 비율은 36.3퍼센트(2246개 회사 중 815개)에
그칩니다. 그나마 작년(33.5퍼센트)에 비하면 조금 높아진 수치입니다.
‘전체 임원 중 여성의 비율’을 놓고 보면 더욱더 낮습니다. 올해 이코노미스트가 발표한
유리천장지수 보고서에 따르면 OECD 평균 여성 임원 비율은 25.6퍼센트입니다. 반면 국내 상장 법인(2246개)의 전체 임원 중 여성 비율은 5.2퍼센트입니다. 5배가량 차이 나는 수치죠. 그나마 한국은 29위를 기록하며 간신히 이코노미스트 리포트에 올랐으니, 다행인 걸까요.
남은 1년 동안 어떤 변화가 일어날지 궁금합니다. 1년 뒤엔 여성 임원 선임률이 100퍼센트를 달성할까요? 한국은 ‘유리천장지수가 낮은 선진국’이라는 프레임을 벗게 될까요? 단순히 권고 수준에만 미치던 여성 임원 할당제가, 법적 효력까지 갖게 된 배경은 무엇일까요.
여성 임원 할당제? 양성 고용 평등제?
엄밀히 말하자면 한국에는 ‘여성 임원 할당제’가 없습니다. 정부는 '임원 중 여성을 몇 퍼센트 이상 고용하라’라고 명시한 바 없기 때문입니다. 대신 특정 성이 이사회를 독점하는 경우, 최소한 한 명의 이성을 포함해 다양성을 확보하자는 것이 해당 법안의 취지입니다.
반면 해외에서는 문자 그대로 ‘여성 임원 할당제’가 시행되고 있습니다.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여성 임원 할당제를 시행 중인 노르웨이가 선두주자였습니다. 2003년 세계 최초로 임원의 40퍼센트를 여성으로 할당하는 법안을 제정하였고, 이를 불이행할 시 해당 기업의 해산까지 가능하도록 ‘회사법’ 또한 강력히 개정하였죠. 그 결과 2002년 기준 7퍼센트에 머무르던 노르웨이의 여성 임원 비율은 10년 만에 40퍼센트를
달성하였습니다.
후발주자로 스웨덴, 핀란드, 스페인, 프랑스 등 또한 40퍼센트의 여성 임원 할당제를 도입하였습니다. 스페인은 페널티 대신 정부와의 계약우선권을 제공하는 등 법안 준수 기업에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을 택했고, 미국 캘리포니아주는 이사회 규모에 따른 여성 비율을 준수하지 않을 시 벌금을 부과한다는 방침을 발표했죠. 독일의 경우 메르켈 총리는 여성 임원이 적은 것에는 비판적인 반면 할당제에는 부정적인 입장을 취해 논란이
됐었는데요. 그러나 작년 11월, 임직원이 2000명 이상인 기업을 대상으로 여성 임원 비율을 30퍼센트 이상으로 지정하는 법안이 합의되며 독일 또한 할당제를 시작했습니다.
할당 비율, 법적 제재는 각기 다르지만 고위층에 여성 인사를 포함하자는 움직임은 세계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양성평등’이든 ‘여성 할당’이든, 사회 고위층의 ‘다양성’과 관련된 법안들이 꾸준히 이슈가 되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다양성 높은 기업이 일도 잘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