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군의 나라

8월 19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홍범도 장군의 유해가 봉환됐다. 국가는 나라를 위해 죽어간 국민을 단 한 사람이라도 잊어선 안 된다. 그래야 나라다. 우리나라는 지금 그런 나라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장군이 귀환했습니다. 홍범도 장군은 어제 8월 18일 대전현충원 독립유공자 제3묘역에 안장됐습니다. 홍범도 장군의 유해는 지난 8월 15일 독립을 위해 한평생을 몸 바쳐 싸웠던 고국으로 돌아왔습니다. 장군의 서거 78년 만이자, 광복 76주년 만의 일입니다. 유해 봉환식과 국민 추모식을 거쳐 대전 현충원에서 홍범도 장군 안장식이 거행됐죠. 이 오랜 봉환의 과정은 참 지난 했으며, 잡음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현 정부에 와서 과실을 맺게 되었죠. 물론, 장군의 유해 봉환은 현 정부에서 처음 추진된 것은 아닙니다. 가장 최초로 유해 봉환을 시도했던 것은 북한이었습니다만, 당시 현지 고려인들의 반대로 성사되지 못했다고 합니다.

소련 붕괴 이후 1994년, 문민정부 당시 한국에서는 정부조사단이 홍범도 장군 묘소 조사를 처음으로 실시했습니다. 그 이듬해에는 카자흐스탄 정부 측과 유해 봉환과 관련된 원칙적인 합의를 이뤄냈죠. 30년간 계속된 노력 끝에, 결국 문재인 정부 들어 분위기는 급물살을 탔습니다. 문재인 정부의 신북방정책에 힘입어 카자흐스탄과의 우호적 관계가 이어지자 2019년에 드디어 문재인 대통령은 한·카 정상회담에서 토카예프 카자흐스탄 대통령에게 유해 봉환에 대한 협조 요청을 한 것이죠. 2020년 3.1절 기념사로 선언된 유해 봉환은 판데믹으로 인해 연기되었다가, 올해 광복절에 드디어 장군은 고국의 품에서 영면하였습니다.

우리에겐 너무 자랑스러운 일이지만 장군의 유해 봉환은 다양한 층위의 마찰을 불러일으킬 수 있는 일이었습니다. 외교적으로는 남북관계와 한일관계가 있고, 민족적으로는 현지 고려인 사회의 문제가 있으며, 이념적으로는 장군의 공산당 활동에 따른 논란도 있지요. 그런데도 우리 정부가 강력한 의지로 봉환을 추진하여 최고의 예우로 모시려는 것에는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정치 공학도, 외교적 득실도 아닌, 가장 근본적인 이유를 되짚어 봅니다.
 

장군의 귀환

장군의 귀환 ©대한민국청와대
장군의 귀환이 오래 걸렸던 이유로 청와대 박수현 국민소통수석은 두 가지 이유를 들었습니다. 첫째로 남북이 모두 봉환을 원했으며, 둘째로는 장군이 현지 고려인 사회의 정신적 지주라는 점입니다. 앞서 언급한 것처럼, 북한은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우리 정부보다도 먼저 봉환 요청을 한 바가 있습니다. 박 수석에 따르면 “카자흐스탄은 남북 모두와 수교하며, 장군의 고향이 평양이기 때문”에 카자흐스탄으로서는 난감했던 것이죠. 실제로 북한은 장군의 유해 송환과 관련하여 당연히 수도인 평양으로 모셔와야 한다며 우리 정부를 비난했습니다. 만약 북한이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 데 성공했다면, 한국 독립군의 정통성을 승계하는 격이 될 수 있습니다. 당연히 우리로서도 포기할 수 없는 일이었죠.

중요한 또 하나의 문제는 바로 홍범도 장군이 카자흐스탄 고려인들에게 가지는 의미와 위상입니다. 현재의 독립국가연합(CIS)에서 카자흐스탄에 거주 중인 고려인은 10만 명이 넘고 이는 우즈베키스탄, 러시아 다음가는 숫자입니다. 소수민족이지만 무시할 수 없는 숫자이지요. 그들에게는 아픈 역사가 있습니다. 1922년, 스탈린이 등장한 이후부터 소련으로 망명한 고려인의 운명은 위기에 놓이기 시작했습니다. 1935년에는 소련에서 3년 동안 약 2500여 명의 러시아 극동 지역 고려인을 일본의 간첩이란 혐의로 체포 및 총살했습니다. 당시 일본 첩자와 외모 구분이 쉽지 않기 때문이었죠. 고려인들은 통제가 어렵고 신뢰할 수 없는 ‘적성 민족’으로 낙인찍혀 37년에 강제 이주를 당했습니다.

그런 고려인들에게 홍범도 장군은 성경 속 모세와 같았습니다. 레닌에게 신임받았던 그는 독소전쟁이 발발하자 고령에도 불구하고 참전 의사를 밝혔습니다. 노구를 무시하던 당시 공산당원 앞에서 동전을 던져 바로 권총 사격을 성공시키며 함구시켰다는 일화도 있지요. 장군의 빨치산 활동과 항일 운동의 공은, 고려인 전체에게 찍힌 낙인을 극복하는 데 유일한 희망이 되었습니다. 장군은 그야말로 카자흐스탄 고려인의 역사 그 자체이자 정신적 지주이지요. 오슬로 대학에서 한국학을 가르치는 박노자 교수는 이번 봉환이 카자흐스탄 고려인 사회의 여론을 고려하지 않았다며, 페이스북을 통해 쓴소리하기도 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교민들의 섭섭함을 이해한다며, 기존의 묘역을 공원화하는 등 후속 작업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했죠. 장군의 존재는 그의 발이 닿은 곳마다 참 거대한 발자국을 남겼습니다.

한편 다른 의미로 기분이 나쁜 국가도 있을 겁니다. 일제를 상대로 맹위를 떨치던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광복절에 봉환한다는 것은 일본에게는 불편한 일이자 한일 관계에 있어 외교적 위험이라고 할 수 있지요. 의미도 의미이지만 정치인들이 유해 봉환을 계기로 반일 정서를 자극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장군은 이렇게 각각의 이해 관계자에게 서로 다른 의미가 있는 인물이며, 최종적으로 한국이 유해 봉환에 성공했다는 것은 과거에 비해 크게 성장한 국력 때문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우리나라의 입장에서는 예우를 통해 장군의 정신을 계승하고 기림으로써 애국심 고취와 더불어 국가 정체성을 포괄적으로 다질 수 있다는 이점이 있습니다.

장군의 귀환에 걸린 문제들, 특히 고려인 사회에 대한 존중이 부족했다는 점은 아쉬운 부분이지만, 장군이 항일 무장 투쟁으로 독립시키고자 한 것은 한반도이자 한민족입니다. 여기서 한반도는 대한민국만을, 한민족은 한국 국민만을 뜻하는 것은 아니지만, 에스니시티(Ethnicity)와 민족 정서를 포괄적으로 담을 수 있는 그릇으로 한국도 나름의 지리적, 역사적 정당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유해 봉환보다 문제가 되어야 할 것은, 소련 해체 이후 오랫동안 고려인들을 외면해온 정부와 해당 지역의 국가 유공자들 자녀에게 간이 귀화 절차도 제공되지 않는다는 점일 것입니다.
 

유공자를 예우한다는 것

한국전 참전 용사 명예훈장 수여식 ©Stefani Reynolds/The New York Times/Bloomberg via Getty Images
국가유공자 등 예우 및 지원에 관한 법률, 약칭 ‘국가유공자법’ 1조는 법의 목적에 관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 법은 국가를 위하여 희생하거나 공헌한 국가 유공자, 그 유족 또는 가족을 합당하게 예우(禮遇)하고 지원함으로써 이들의 생활 안정과 복지향상을 도모하고 국민의 애국정신을 기르는 데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고 나와 있죠. 물론 몇 개의 굵직한 사건을 거치며, 한국의 국가 유공자 예우의 제도적 허점이 드러나기도 했습니다만, 적어도 법의 목적은 이렇습니다.

한편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국가 유공자나 베테랑(퇴역 군인, 참전 용사)에 대한 예우와 복지가 뛰어난 것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이를 보훈 정책이라고 하는데, 미국이 강한 국력을 가지는 바탕이 되기도 하죠. 간혹 이에 대한 근거를 미군의 전쟁 역사와 모병제에서 찾는 경우가 있습니다. 하지만 미국군은 모병제이기 때문에 복지가 좋을 수밖에 없다는 식의 논리는 매우 위험합니다. 한 국가의 군대는 복지가 좋아야 지원자가 생겨서 굴러가는 시장 논리로 유지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 희생을 하지 않으면 국가는 생존할 수 없죠. 이 대상이 징병제로 정해지든 모병제로 정해지든, 그들의 공헌은 모두 가치 있는 일입니다.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에서 복지는 어쩌면 부차적인 문제입니다. 중요한 것은 명예이지요. 그런 점에서 정부가 지난 6월 24일 국가 유공자 및 보훈 가족 50여 명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대할 때, 타국의 대통령을 맞을 때와 같은 의전인 ‘국빈급’으로 대접한 것은 큰 화제가 될만한 일이었습니다. 문재인 대통령은 위의 사진처럼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 직전에 열린 한국전 참전 용사 명예훈장 수여식에서 랄프 퍼켓 예비역 대령 옆에 바이든과 함께 무릎을 꿇고 기념 촬영을 하기도 했는데요, 이러한 사진은 어떤 말이나 보상보다 영예롭고 큰 파급력을 가지게 되지요.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도 중요하지만, 유공자를 선정하는 기준 역시 중요할 것입니다. 위에 언급한 한국의 국가유공자법에서 4조는 국가 유공자를 크게 18개의 분류로 구분합니다. 홍범도 장군과 같은 분이 ‘순국선열’에 해당한다면, 연평도 포격전 당시 사망한 국군 장병의 경우 ‘전몰군경’에 해당합니다. 작전 중 생존했지만, 사회 생활에 지장이 있을 정도의 신체적·정신적 문제가 있는 경우 ‘상이 등급’인지 판단하여 ‘전상군경’으로 분류되지요. 하지만 천안함 폭침 사건 생존 장병들의 경우 제대 이후 극심한 PTSD를 겪고 있는데도, 이것이 이른바 상이 등급에 해당하지 않아 유공자로 인정되지 않는다거나, ‘천안함 46용사’에 해당하는 문영욱 중사는 직계 가족의 신청이 없어 유공자 등록에서 오랫동안 누락이 된 일도 있습니다. 부끄러운 일이지요.
 

그들의 이야기는 아무도 듣지 않았다.

천안함 생존자 “우리의 입을 막은 건 언론과 여론이었다” ©한겨레TV
국가 유공자와 관련한 문제는 지나치게 과열되거나 묻혀버립니다. 과열되면 고루한 문제로 탈바꿈되기 쉽고, 묻히면 국가 유공자들은 고통 속에 살아가게 되죠. 때로 너무나 단순한 문제가 정치 논쟁으로 번져 사회 갈등을 만들고, 2차 피해를 양산하는 것을 보면 위에 박노자 교수가 비판한 것처럼 민주주의의 고질병을 고민하게 되고, 한편으로는 한국의 국력과 지정학적 특수성의 한계를 체감하게 됩니다. 

대표적으로 천안함 폭침 사건은 일일이 거론할 수도 없을 정도로 정치 쟁점화가 극에 달한 사건입니다. 침몰 원인을 명백히 밝히는 것은 중요하지만, 이미 민군 합동 조사단의 발표가 있었고, 다국적 연합 정보 분석 TF에 의해 폭침 정황 증거 역시 확인할 수 있는데도, 이 사건의 해석을 두고 숱한 정치적 이해관계가 난입합니다. 그동안 희생자와 유족들은 등한시되거나 심지어 매도되기도 합니다. 연평도 포격전 당시에도 이를 포격 도발 혹은 포격전으로 명명하는 문제로 정치권이 대립했고, 과거 연평해전은 한일 월드컵 결승전 관람 때문에 김대중 대통령이 전사장병 영결식에 참여하지 않자 한동안 이를 둘러싸고 정치권의 갑론을박이 이어지기도 했습니다. 

이러한 가운데 최원일 전 천안함 함장은, 전역 후 《한겨레》와 가진 인터뷰에서 “나는 정권도 보수·진보도 아닌 천안함 생존 장병 편이다”라는 말로 큰 울림을 주었습니다. 해당 인터뷰에서 최 전 함장은 사건이 왜곡된 것은 결국 정치 때문이라고 생각한다며 정치권이 이들을 외면하거나 이용한 것에 대해 일갈했습니다. 그 과정에서 생존 장병에 대한 외면과 냉대가 그들을 얼마나 고통스럽게 했는지 고스란히 전하고 있지요. 장병들은 국가의 부름에 응답했지만, 장병들이 지키고 온 국가는 그들을 두고 입씨름하기에 바빴던 것이 사실입니다.
 

국가는 무엇 위에 세워졌나

백령도에서 철책을 확인 중인 해병대 ©SeongJoon Cho/Bloomberg via Getty Images
근대 많은 서구 국가는 시민혁명 위에서 탄생했습니다. 제2차 세계 대전의 결과로 광복을 맞은 수많은 국가가 도구주의적 관점에서 열강들의 선 긋기로 재편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처절한 독립운동 위에서 꽃피운 일도 있습니다. ‘초국가주의’가 대두되는 시대이지만 이 역시 ‘국가’를 기반으로 이를 초월한 레짐에 대한 설명일 뿐입니다. 우리가 현재 살아가는 국가는 누군가의 희생으로 세워졌고, 지금도 누군가의 희생 속에서 유지되고 있습니다.

국가 안보를 강조하는 것은 매우 진부한 이야기처럼 들려옵니다. 혹은 듣기 거북한 이야기로 비치기도 하죠. 그 이유는, 너무나도 당연한 이 이야기가 정치적으로 해석되는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의 문제도 마찬가지입니다. 여기에 이념과 정쟁이 낄 자리는 없습니다. 제네바 협약과 헌법 가치 아래 운용되는 군대, 그리고 국내의 치안을 유지하는 경찰 및 소방 공무원이 직무 중 상해를 입는 일이 발생했다면 우리는 마땅히 그들의 명예를 바로 세우고, 충분한 보상을 해주어야 할 것입니다. 이들의 희생은 정치적으로 계산해서는 안 되는 숭고한 것이니까요.

우리 마음속에서는 마땅히 아는 일이지만, 아직 갈 길은 멉니다. 정치 쟁점으로 비화시키는 것이 가장 문제라고 위에 제시했지만, 제도적 미흡 역시 만만치 않습니다. 생존 장병에 대한 유공자 인정 문제와 ‘이중 배상 금지’ 문제가 대표적이죠. 이중 배상 금지란 헌법 제29조 2항으로 군인이나 경찰 등의 공무원이 직무 중 순직하여도 국가에 손해배상을 청구할 수 없고, 법정 보상금만 받게 되는 것입니다. 천안함 사건 당시 크게 조명이 되었지만, 이 조항은 아직도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국가유공자법 1조 1항의 목적을 다시금 돌이켜 보면, 이런 상황에서 누가 애국심을 가지고 안보의 험지에 갈 수 있을까요?

홍범도 장군의 유해를 봉환하는 것은 정치·외교적 이해득실을 따졌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을 겁니다. 하지만 이를 초월하여 특별히 광복절에 순국선열을 모셔옴으로써 우리는 국군이 독립군을 정식 계승한 군대라는 점을 더욱 확실히 하고, 한민족의 의미를 포괄적으로 아우르면서도 국가 정통성을 강화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유공자에 대한 예우는 곧 국가 정체성과 애국심(Patriotism)을 다지는 근본적인 의미가 있는 것이지요. 단일민족국가였던 특수성 때문에 이러한 이야기가 다소 민족주의적인 뉘앙스로 읽힐 수 있지만, 다양한 민족이 함께하는 다문화 사회로의 진입을 앞두고 이제는 인종과 혈통에 상관없이 모든 국민이 내 나라라는 자부심을 가질 수 있도록 국가 유공자에 대한 예우를 확실히 할 때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홍범도 장군의 유해 봉환과 국가 유공자 예우의 의미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군대를 바꿔라》《전쟁터의 여성들》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다음 이야기가 궁금하신가요?
프라임 멤버가 되시고 모든 콘텐츠를 무제한 이용하세요.
프라임 가입하기
추천 콘텐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