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 개의 찬란한 태양
 

8월 셋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여성의 이름은 마리암이었을지도 모릅니다. 라일라였을지도 모릅니다. 8월 18일 아프가니스탄에선 한 여성이 탈레반의 총격에 숨졌습니다. 죽은 이한텐 아무 잘못도 없었습니다. 단지 부르카를 입고 있지 않았을 뿐이었습니다. 〈폭스뉴스〉의 보도였죠. 부르카는 머리부터 발 끝까지 전신을 천으로 가리는 이슬람 여성복입니다. 탈레반의 가혹한 여성 인권 탄압을 상징하는 복장입니다. 부르카를 입고선 사회 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교육도 취업도 불가능하죠. 세상 밖으로 단 한 발자국도 나설 수 없습니다. 지난 8월 17일 아프간 전쟁 종전을 선언하면서 탈레반은 “이슬람 율법이 보장하는 한에서 여성 인권을 최대한 존중할 것”이라고 밝혔습니다. 솔직히 아무도 믿지 않았습니다. 실제로 하루 만에 한 여성이 이유 없이 총살 당했습니다. 여성의 부모는 피범벅이 된 딸의 시신을 지켜봐야만 했습니다.

마리암과 라일라는 할레드 호세이니의 두 번째 장편 소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두 여성 주인공입니다. 할레드 호세이니는 아프가니스탄계 미국인 소설가죠. 데뷔작 《연을 쫓는 아이》에선 두 남성 주인공의 시각에서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관찰했다면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두 여성 주인공의 평생을 통해 아프가니스탄의 역사를 관통합니다. 《연을 쫓는 아이》의 남성들은 결국 아프가니스탄을 버리고 미국으로 떠납니다. 미국에서 활동하는 아프가니스탄인으로서 할레드 호세이니의 죄책감과 부채의식이 고스란히 녹아있죠. 반면에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의 두 주인공 마리암과 라일라는 아프가니스탄의 고통을 온몸으로 겪어냅니다. 가부장적인 군주정도 소비에트의 공산주의도 이슬람 원리주의도 행복을 꿈꾸는 마리암과 라일라의 의지를 꺾지는 못합니다. 마리암은 라일라를 아프가니스탄에서 탈출시키다가 탈레반한테 체포됩니다. 결국 사형을 당하죠. 탈레반은 오사마 빈 라덴을 숨겨줬다가 결국 미군한테 축출당합니다. 수도 카불로 돌아온 라일라는 아프가니스탄의 다음 세대를 위한 고아원을 세웁니다. 임신한 라일라는 곧 태어날 아이의 이름을 마리암이라고 짓습니다.

어제 우리의 마리암이 살해당했습니다. 돌아온 탈레반은 20년 전 탈레반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마리암들과 라일라들에겐 이제 희망이 없습니다. 카불 경제는 붕괴 상태입니다. 오직 부르카 가격만 폭등하고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여성들은 자신을 가리고 지워야만 살아남을 수 있는 가혹한 시대를 준비하고 있는 겁니다. 죽지 않으려면 이름을 얼굴을 손을 걸음을 가려야만 합니다. 영혼을 신체를 능력을 자유를 포기해야만 합니다. 모든 인간을 위하지 않는 정권은 그 어떤 신의 이름을 내세운다 해도 부당한 권력입니다.

불행하게도 아프가니스탄엔 부당한 권력을 몰아내고 인권과 정의를 바로 세울 힘이 남아 있지 않습니다. 미군은 철수했고 대통령은 도망쳤습니다. 권력은 공백을 허락하지 않습니다. 부당과 정당도 구분하지 않습니다. 오늘도 내일도 마리암들은 또 살해당할겁니다. 라일라들은 마리암들을 지키기 위해 몸부림칠겁니다. 어느 10대 아프가니스탄 소녀는 트위터를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단지 아프가니스탄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우리는 중요하지 않다. 우리는 이렇게 역사 속에서 서서히 죽어갈 것이다.”

바이든 대통령은 “후회는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대통령으로서 바이든의 선택은 확실히 후회 없는 합리적 선택입니다. 미국이 2001년 10월부터 2019년 9월까지 아프가니스탄에 쏟아부은 돈은 천문학적입니다. 우리돈으로 1000조원에 육박합니다. 20년 동안 사망한 미군 병사는 2440명이 넘습니다. 그런데도 탈레반을 괴멸시키거나 아프가니스탄을 정상 국가로 만들지 못했습니다. 실패한 전쟁이었죠. 이제 미국은 한시바삐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서 빠져나와야만 합니다. 중동에서 힘을 빼서 중국에 힘을 써야만 하니까요. 게다가 탈레반의 아프가니스탄은 중국한테도 골칫거리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은 중국의 신장웨이우얼자치구와 접경해 있습니다. 탈레반이 신장자치구의 분리 독립을 주장하는 동투르키스탄 이슬람 운동을 지원할 수도 있습니다. 중국한텐 악몽이고 미국한텐 로또입니다. 경우에 따라선 소련과 미국에 이어 중국이 아프가니스탄의 수렁에 빠질 수도 있습니다. 아프가니스탄이 패권국들의 무덤이 되는 셈이죠.

과연, 평생을 민주주의와 인권을 위해 싸워왔다고 자부하는 정치인 바이든에게도 후회가 없을까요. 상원의원으로서 바이든이 가장 자랑스럽게 여기는 경력은 1993년 여성폭력방지법 입법입니다. 당시 상원 법사위원장으로서 바이든은 직접 여성 폭력 실태보고서 《여성폭력 : 미국에서의 일주일》을 작성했습니다. 조사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당시 미국 전역에서 매주 최소한 2만 건 이상의 여성 대상 범죄가 미국 전역에서 보고되고 있었습니다. 바이든은 보고서 서문에 이렇게 썼습니다. “시민들이 여성 폭력의 참상을 완전히 깨닫지 못한다면 여성 폭력의 추이를 바꿀 수 없을 것이다. 오늘 우리는 ‘일주일간의 여성 폭력’이라는 인간의 비극을 생생하게 보여 주는 보고서를 발표한다.” 대통령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의 마리암과 라일라를 야만의 지옥에 내던짐으로써 정치인 바이든의 신념과 업적 그리고 약속을 배신했습니다. 미국 여성들을 폭력의 악순환에서 구원하려고 노력했던 조 바이든은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 대한 폭력에는 눈을 감아 버렸습니다. 바이든은 자서전 《지켜야 할 약속》에서 스스로 할아버지한테 직접 배웠다고 밝힌 정치학의 제1원칙을 저버렸습니다. 약속은 반드시 지켜야 한다는 원칙이죠. 바이든은 다름 아닌 자기 자신과의 약속을 어겼습니다.

이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에게 남은 희망은 세계의 관심입니다. 탈레반도 아프가니스탄을 통치하려면 최소한 국제 사회의 눈치를 봐야 한다는 현실을 압니다. 문제는 탈레반도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세력 내 파벌과 군벌을 통합하려면 이슬람 원리주의에 더 집착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도 카불의 마리암과 라일라가 역사 속에서 서서히 죽어가도록 방치하지 않으려면 국제 사회의 지속적인 관심 말고는 다른 방도가 아직 없습니다. 이젠 탈레반도 반군이 아니라 정부니까요. 국제 사회의 관심엔 우리나라의 관심도 포함됩니다. 대한민국은 자타공인 G8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을 미국의 시각이 아니라 우리만의 시각으로 바라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미국한텐 아프가니스탄의 비극에 원죄가 있습니다. 미국의 철군은 전략적일진 몰라도 야만적입니다. 아프가니스탄 철군으로 미국은 사실상 세계 경찰로서의 배지를 반납했습니다.

일부 언론은 미군의 아프간 철군과 주한 미군 철군을 연계시킵니다. 국민들의 안보 불안을 자극합니다. 우리나라가 정말 선진국이라면 지금 이 순간 정말 걱정해야 할 건 따로 있습니다. 미국과 바이든이 포기한 아프가니스탄 여성들의 생명과 안전입니다. 한국 여성의 인권이 지켜져야 하는 건 한국의 여성이기 때문만이 아닙니다. 모든 여성의 인권이 지켜져야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장애우를 배려하고 인종 차별을 반대하고 성적 지향으로 타인을 멸시하지 않는 것도 우리가 한국인이라서만이 아니라 인간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아프가스탄 여성의 인권도 우리의 당연한 관심사여야 합니다. 그들의 인권이 짓밟히는 건 우리의 인권이 짓밟히는 것과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은 카불의 다른 이름입니다. 17세기 페르시아 시인 사이브 에 타브리지는 카불의 아름다움을 하늘에 천 개의 태양이 떠 있는 것과 같다고 노래했죠. 지금 탈레반 치하의 카불은 단 하나의 태양도 없는 암흑 천지입니다. 우리의 시대에 야만의 시대가 시작되고 있습니다. 어제 마리암이 죽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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