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술은 아무나 하나

8월 24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연예인의 작품은 예술인가 상품인가. 예술이란 무엇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만인 창작의 시대입니다. 개그맨 아닌 일반인들이 유머 콘텐츠를 만들어 유튜브에 올리고, 취미로 틱톡에서 춤을 춘 뒤 수익을 얻습니다. ‘전문가’의 장벽이 무너지는 분야들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하지만 ‘예술’은 조금 다른 결일까요. ‘콘텐츠’는 현대사회의 구성원이라면 누구나 만들어낼 수 있는 내용물로 느껴지는 반면, ‘예술’이란 단어엔 어떤 벽이 느껴집니다. 어느 정도의 전문성을 담보해야 할 것 같은 부담도 느껴지고요. 일부 예술가들이 본인을 소개할 때 ‘예술가’란 단어보다 ‘창작자’라는 표현을 선호하는 것도 그 때문이겠죠.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어떤 기준으로 우리는 예술과 예술 아닌 것을 판가름 할 수 있을까요? 이 논쟁에 ‘셀럽’이 끼어들면 문제는 좀 더 복잡해집니다. 단순히 작품성 논의를 넘어 파급력, 인지도, 시장가격과 같은 민감한 부분으로 넘어가기 때문이죠. 일각에선 ‘연예인 프리미엄’이란 말이 나올 정도입니다. ‘전공생들이 싫어해요’라고 솔직하게 말하기도 하고요. 예술을 향유하는 연예인과 그들을 비판하는 미술계, 사태를 바라보는 일반 대중의 시각으로 오랜 논쟁을 살펴보겠습니다.
 

배우 구혜선 vs. 작가 이규원

©[팟빵] 매불쇼
‘구혜선의 그림은 문화센터 취미생 수준이다’. 

지난 5월 유튜브 채널 ‘매불쇼’에서 나온 ‘홍대 이작가(본명 이규원)’의 발언이 일파만파로 번졌습니다. 배우 구혜선을 비롯해 하정우, 솔비, 조영남 등 취미 미술을 하는 여러 스타 연예인들을 조롱 조로 비난한 것이 논란이 되었죠. 연예인들의 미술 활동은 오랜 논쟁거리였지만 이렇게까지 강력하고 직설적인 비판은 처음입니다. 대상이 인스타그램 팔로워 196만의 배우라면 더더욱 민감한 발언이죠.

방송이 올라온 지 4일 뒤, 구혜선의 인스타그램에 게시글이 올라왔습니다. ‘갈 길 가자’는 답변입니다. ‘예술은 판단 기준을 가지고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느끼는 것이기에 객관적일 수 없다’는 입장과 함께요. 이어서 ‘마음먹은 모두가 예술가가 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을 응원’한다며 예술에 관한 본인의 견해를 수 차례 업로드했습니다.

신경 쓰지 말라는 팬들의 댓글이 한가득 달린 것은 예상 가능한 범위고요. ‘매불쇼’ 채널 댓글 창에도 이작가의 무분별한 발언을 두고 네티즌들의 비판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비평과 비판에 (전문적인) 내용이 없어서 불편하다’, ‘그저 우스운 말로 깎아내리는 것에 포커싱되었다’ 등 전문가로서 부적절한 태도를 보였다는 시선입니다.

공방은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작가는 매불쇼에 다시 한번 출연해 보다 건전한 비판을 가했습니다. 구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본인의 창작활동을 지속적으로 SNS에 업로드하고 있고요. 지난 8월 15일에는 ‘곧 예술에 대한 저의 생각과 여러분들의 질문을 받는 라이브 방송을 진행할 예정이여요. 준비를 마치면 공지를 하도록 할게요.’라는 인스타그램 글이 올라와 화제가 되었습니다. 자신을 비판하는 미술계 여론에 맞서 정면승부하겠다는 모습을 보입니다. 꾸준히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연예인과 그들을 배척하는 시선들, 그 배후엔 무엇이 있을까요.
 

왜 늘 추상화인가

©솔비/사진: 솔비 인스타그램

연예인들의 취미 미술 논란은 하루 이틀 일이 아니죠. 가수 솔비이자 작가 권지안은 미술계의 혹독한 비평에도 십 년 넘게 활동을 이어오고 있습니다. 배우 조영남이 화투패를 활용해 그린 그림은 높은 가격에 경매되었으나 대작(代作)으로 논란을 일으켰고요. ‘한국의 피카소’로 불리는 배우 하정우의 유화가 천만 원대에 낙찰되었다는 기사 또한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세간의 시선이 곱지만은 않습니다. 대중들 사이에서부터 평이 갈립니다. 이상하게 유명 연예인들의 작품 중엔 하필 추상화가 많습니다. 직관적인 해석이 어렵다 보니 전문지식이나 경험이 적은 대중의 입장에서 그들 작품을 평가할 때 두 모순이 발생할 수 있습니다. 우선 과대평가의 소지가 있습니다. 연예인들은 전문교육을 받고 난 뒤 화가로 활동하는 것이 아닙니다. 사물을 정확하게 그려내는 정물화보단 추상화나 퍼포먼스를 통해 강렬한 느낌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은 것도 그 때문일까요. 작품성과는 무관하게, 대중들의 시선에 화려해 보이는 작품이 높은 가격에 경매되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하물며 작가가 유명 연예인일 경우 그 가격은 배가 될 수 있죠. 

반대로 과소평가되기도 합니다. 추상화를 감상하는 일반인들은 작가가 무얼 표현하려는 지조차 모르겠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하죠. 소위 말해 ‘이건 나도 그리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러다 보니 작가의 의도나 진정성과는 관계없이 단순히 표현방식만으로 평가절하되기도 합니다.

과대평가든 과소평가든, 대중의 시각은 작품 감상자 혹은 소비자로서의 ‘취향’의 문제로 받아들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더욱 문제가 되는 것은 동료 예술가들의 시선입니다.
 

연예인 프리미엄인가 아카데미즘인가

©구혜선/사진: WE ART

미술계의 시선이 따갑습니다. 일각에선 취미로 그림을 그리는 연예인들을 경시하는 풍조가 있죠. 평생을 바치며 예술을 해도 모자랄 판에 취미로 미술을 하는 사람들이 곱게 보이진 않을 것입니다. 일부 미술계 관계자들도 이런 풍조를 두고 ‘전형적인 아카데미즘의 시각’이라 비판하기도 하죠. 

작가들은 왜 그렇게 연예인 예술가를 미워할까요. 우선 작품성입니다. 오랜 세월 스케치, 채색과 같은 기초적인 단계부터 교육 받은 전문가들의 경우, 취미 미술가들의 작품은 기본기가 없다고 비춰질 수 있습니다. 혹은 작가만의 창의성, 작품 속 비유가 응당 갖춰야 할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평할 수 있습니다. 홍대 이작가가 두 번째로 ‘매불쇼’ 채널에 나와 드디어 ‘건전한’ 비판을 했을 때 언급한 것도 그 부분입니다. 그는 구혜선의 추상화를 보며 무언가를 표현하려는 노력은 보이지만 ‘작품으로서의 설득력이 부족하다’고 평합니다.

창작 환경에 대한 반감도 있습니다. 십수 년간 학비를 비롯해 큰 비용을 들여 예술에 전념하는 전업작가들, 혹은 시간제 아르바이트를 겸업하며 어렵게 창작활동을 이어가는 예술가들이 많습니다. 대다수 무명입니다. 반면 유명 인플루언서들은 비교적 유복한 환경에서 창작할 수 있습니다. 작가 권지안이 300평대 작업실로 화제가 된 것도 그런 이유겠죠.

최종적으로 그림 가격이 매겨질 때도 마찬가집니다. 유명 연예인의 작품이 고가에 낙찰되었다는 소식을 흔히 접할 수 있습니다. 작품의 가치를 매길 때 작가의 경력이나 인지도를 고려하는 것이 관행이지만, 무명작가 입장에선 연예인 작가가 부러워지는 순간입니다. 한 인터뷰에서 구혜선은 ‘예술은 내게 그저 시간을 보내는 놀이’라 답했죠. 시간을 보내는 놀이인데, 한 번 팔리면 수백, 수천만 원의 가치를 얻습니다. 단순히 놀이라고 하기엔 스케일이 좀 다르죠. 생계형 아르바이트를 병행하며 어렵게 창작활동을 유지해가는 배고픈 예술가들에게, 배우의 말은 어떤 무게로 다가올까요. 
 

연예인화가가 싫은 게 아니라


‘매불쇼’에 나온 홍대 이작가의 태도를 두고 ‘자격지심 아니냐’는 반응이 많습니다. 어쩌면 정확히 짚은 거죠. 홍대 이작가 또한 쉽게 대중들의 주목을 받는 작가 권지안(가수 솔비)을 두고 실제로 ‘질투 난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유명 인사에 대한 질투가 무분별한 비난의 유일한 동기는 아닐 것입니다.

위에서 말했듯 이른바 ‘콘텐츠 크리에이터’의 장벽이 낮아졌습니다. 누구든 노래하고 춤추고 이야기보따리를 푸는 영상을 소셜 미디어에 올려 수익을 얻을 수 있습니다. 직업의 경계 또한 전보다 훨씬 희미해졌습니다. 가수가 예능 프로그램에 나오고, 올림픽 선수가 CF를 찍습니다. 콘텐츠 생산에 있어선 과거와 달리 눈에 띄게 경계가 희미해진 사회입니다. 그러니 2021년 현재, ‘미술은 연예인이 할 일이 아닌데’라 생각했다면 시대착오적인 질투일 겁니다. 질투의 근원을 다른 곳에서 찾아 보겠습니다.

예술이란 무엇인가에 관해 이런저런 담론은 많지만 객관적인 기준은 여전히 부재합니다. 그러다 보니 마지막으로 책정된 작품의 가격이 작가 본인의 가치로 직결되는 분야가 예술입니다. 전업 작가들이 진짜로 싫어하는 건 ‘취미로 미술하는 연예인’들이 아니라, 보다 근본적으로, 철저하게 성과주의인 미술계의 구조 아닐까요. 그 과정에서 얼마나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갔는지는 중요한 평가 기준이 아니죠.

무명 예술가들이 질투하는 대상은 비단 인지도를 팔아 고가에 그림이 낙찰되는 연예인들 뿐만이 아닐 것입니다. 경제적으로 여유롭기에 풍부한 작품활동을 할 수 있는 작가들, 혹은 혈연, 지연, 학연을 통해 고가에 그림이 팔리는 작가들이 있죠. 우연한 기회에 미디어를 타거나 스폰서가 생겨 빠르게 유명해지는 경우도 있습니다. 그들에게서도 좋게 말하면 부당함, 나쁘게 말하면 자격지심을 느낄 수 있습니다. 주목할 것은 전업작가든 연예인이든 그들의 직업보다도 업계 특성상 평가기준의 모호함과 불공정함에서 나오는 ‘박탈감’입니다. 시간이 흘러 ‘콘텐츠’에 있어선 만인 크리에이터 시대가 도래했는데, ‘예술’은 그런 보이지 않는 위계나 부당함으로부터 자유롭지 못합니다. 작품으로 시작했으나 결국은 상품으로 끝나야 하는 운명들에겐 보다 깊은 설움이 담겨 있습니다.


담론을 넘어
 

다시 질문을 던지겠습니다. 유명 연예인들의 작품은 예술이라 할 수 있을까요? 혹은 명성을 팔아 이익을 창출하는 상품인가요? 애초에 예술이란 무엇인가요?

톨스토이는 예술이란 자기감정의 외면부호라고 했습니다. 하이데거에 따르면 예술이란 은폐된 삶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앤디 워홀은 돈을 버는 것이 예술이고, 일하는 것도 예술이며, 사업을 잘하는 것은 최고의 예술이라 했습니다. E.H.곰브리치는 다만 예술가만 있을 뿐, 예술은 없다고 했습니다. 예술에 대한 정의는 수백 년간 뒤바뀌었고 여전히 합의되지 않고 있습니다.

보편적인 기준이 없다는 것은, 결국 어느 시점의 우리에겐 불필요한 논쟁임을 암시하는 바 아닐까요. ‘예술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서 이제는 조금 벗어날 필요가 있습니다. 예술이든 창작물이든 콘텐츠든, 새로운 작품을 생산하기 위한 개인들의 진심과 노력을 한 단어 속에 담는 것은 이제 무리한 시도로 보입니다. 예술은 ‘아무나 하는’ 시대가 왔기 때문입니다.

언어적 울타리 안에 갇혀 있다간 좋은 작품들을 놓치게 생겼습니다. 연예인 예술가들이 창작활동의 진지함을 갖길 바라는 것도, 일반 예술가들이 공정한 구조에서 인정받길 바라는 것도, 감상자에게서 비판적인 관심을 기대하는 것도 그 때문 아닐까요. 우리의 관심은 예술을 정의하는 것이 아니라, 좋은 예술이 더 많이 나오는 것에 있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연예인의 작품 활동과 이에 대한 다양한 시각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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