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테러리스트가 아닙니다.

8월 26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외교부는 한국에 협력했던 현지 아프간인들에 대한 국내 수용을 결정했다. 탈레반과는 다르다고 주장하는 그들을 놓고 여론은 갈라졌다. 난민 수용은 어디까지인가.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8월 24일, 우리 정부는 한국의 아프간 재건 사업에 협력해온 현지 아프간인 380여 명의 구출을 결정했다고 밝혔습니다. 외교부의 발표가 있기 이전부터 상황은 진행 중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작전에는 보안이 중요하기 때문이죠. 심지어 현재 카불 상황이 급격히 나빠져서 외국 민간 전세기가 아닌 군 수송기 3대가 투입되었습니다. 최종문 외교부 2차관은 8월 25일, 오전 브리핑을 통해 이들의 국내 이송을 전격 발표하며, “이들은 난민이 아닌 특별공로자”라고 강조했습니다. 우리 정부가 분쟁지역의 외국인을 국내 이송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공로자로 추켜세운 것 역시 이례적입니다.

오늘 입국 예정인 아프간인들은, 최 차관의 발언에 따르면 수년간 주아프가니스탄 한국 대사관, KOICA(한국 국제 협력단), 바그람 한국병원, 바그람 한국 직업훈련원, 차리카 한국 지방재건팀에서 근무했던 사람들이라고 합니다. 우리나라는 미국이 아프간을 침공한 이후, 아프가니스탄의 토목 재건과 의료 지원을 위해 비전투부대를 파병한 일이 있는데, 바로 의료지원단인 동의부대와 건설공병대인 다산부대입니다. 이들이 ‘샘물교회 선교단 아프간 피랍사건’ 때 교섭으로 인해 2007년 철수한 이후에는 KOICA가 주관하는 아프간 재건사업을 지원하기 위해 아프간 재건지원단이 파병되었지요. 오늘 국내로 이송되는 아프간인들은 주로 이 사업을 도왔던 분들과 그 가족들입니다. 특별공로자라는 표현이 과하지 않습니다.

여론은 크게 나뉘었습니다. 미국이 아프간 난민을 해외의 미국 기지로 이송한다는 보도가 발표되었을 때부터 주한 미군에 난민이 오는 것인지, 재건사업을 도와준 아프간인들을 정부가 받아야 하는지 온라인에서 의견이 분분했습니다. 청와대 국민 청원 게시판에는 현재 난민을 받지 말아 달라는 청원과 아프간 난민들에게 국경을 열어달라는 청원이 나란히 붙어있습니다. 아프간인에 대한 따가운 시선에는 물론 다양한 이유가 있습니다만, 안전에 대한 걱정이나 무임승차 비판과 같은 통상적인 의견 이면에는 내밀한 인종주의나 문화 절대주의, 집단 이기주의가 숨어 있기도 합니다. 현재 국내로 입국하는 아프간인들은 위험한 사람들일까요? 앞으로 발생할지도 모를 난민 수용 문제에 우리는 어떤 자세를 취해야 할까요.
 

우리는 탈레반이 아닙니다. 우리 민족은 달라요.

8월 24일자 〈김종배의 시선집중〉©MBC 라디오
그 이전으로 돌아가 봅시다. 지난 8월 23일, 외교부 앞에서는 재한 아프간 한국 협력자 가족 30여 명이 외교부 앞에서 피켓을 들고 시위를 벌였습니다. 그들은 “아프가니스탄에 사는 가족들이 한국에 협조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죽임을 당할 위기에 처해 가족을 살려달라”고 한국 정부와 국민에게 호소했습니다. 24일에는 한국으로 귀화한 아프간 출신 ‘아짐’씨가 MBC 라디오〈김종배의 시선집중〉에서 “우리는 탈레반이 아니며, 자신이 속한 하자라 민족은 어디를 가든지 빨리 그 문화도 배우고 그 문화대로 산다”고 인터뷰하기도 했습니다. 다행히 외교부는 이미 구출을 진행 중이었고, 한국으로 잘 이송되었지만, 여론은 여전히 이들이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의구심을 거두지 않고 있습니다. 무슬림은 모두 똑같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하자라족은 어떤 민족일까요. 중동과 중앙아시아 지역은 워낙 소수 민족이 많고 이슬람 종파도 다양하지만 우리에게 익숙한 것은 각종 민족보다는 이슬람의 큰 줄기인 시아파와 수니파일 것입니다. 하자라족은 시아파에 속합니다. 아시다시피 탈레반은 수니파 단체죠. 탈레반은 파슈툰족의 조직이며, 다민족 국가인 아프간에서 가장 인구가 많은 것이 파슈툰족입니다. ‘파슈툰왈리(Pashtunwali)’는 파슈툰인의 생활 규범이자 탈레반의 원칙 중 하나이기도 하지요. 그에 반해 하자라족은 아프간에서 약 10퍼센트를 차지하는 상대적 소수 민족입니다. 그리고 그들은 아프간 내에서 엄청난 탄압과 박해를 버텨온 민족이기도 합니다.

하자라족은 아프가니스탄, 파키스탄, 이란 등에 소규모로 퍼져 있습니다만 그나마 아프간에 있는 하자라족이 최대 규모입니다. 이들의 외모를 보시면 어딘가 묘한 느낌이 드실 텐데요, 흔히 아랍인을 떠올리면 생각나는 이목구비보다는 몽골인과 비슷한 얼굴입니다. 이것은 곧 그들이 박해를 받아온 원인과 연결되는데, 그 원인은 바로 ‘혐몽감정’입니다. 과거 중동 지역은 몽골 제국의 침략으로 수니파 최고 종교 지도자인 ‘할리파’가 끔찍하게 처형되고 온 지역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몽골의 후예로 여겨지는 하자라족에 대한 탄압은 불 보듯 뻔한 일이지요. 시아파인 데다가 몽골인의 외모를 하고 있어 원래도 차별이 심했지만, 탈레반이 정권을 잡으면 늘 숙청 대상 1순위가 됩니다.

실제로 과거 1998년 탈레반이 아프간을 장악했을 당시 하자라족은 다른 소수민족들과 함께 학살을 당했습니다. 이들은 이란에서도 파키스탄에서도 늘 차별을 받고 탄압을 당하고 매번 도피성 이주를 감행합니다. 그야말로 과거의 유태인이 떠오를 정도이지요. 즉, 이들에 대한 혐오 감정은 일반적인 이슬람의 종교 분쟁과는 확실히 다른 양상입니다. 아프간에서 내전으로 비화하고 있는 이 싸움에 대해 난다니 데오 미국 리하이대 교수는 “종교적인 것이 아니라, 민족적인 것”이라고 분석하기도 했죠.
 

독특한 무슬림, 하자라 족

카불의 하자라인 노동자 ©Monique Jaques/Corbis via Getty Images
하자라족의 아픈 역사는 알겠지만 결국, 중동에서 흔한 민족 분쟁이 아닌가 싶을 수도 있겠습니다. 그들이 정말 아짐씨가 말한 것 같이 문화에 잘 적응하는, 말 그대로 ‘다른’ 민족인지 살펴볼 필요도 있겠죠. 앞서 미군이 철수할 당시에 아프간 정부군의 훈련 실태가 공개된 적이 있는데요, 본 영상에서는 아프간 인구 중 43퍼센트만 읽고 쓸 수 있으며, 신병 가운데 불과 5퍼센트만 초등학교 3학년 수준 이상의 독해력을 갖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반면 하자라인은 아프간 내에서 가장 교육열이 높기로 유명한 민족입니다. 고학력이 필요한 전문 직종의 대다수가 하자라인입니다. 아프가니스탄의 첫 올림픽 메달리스트 역시 하자라인이죠. 바로 ‘로훌라 니크파이’인데요, 난민 선수단에서 훈련을 시작하여 2008년 베이징 올림픽과 2012년 런던 올림픽에서 연속 동메달을 따며 아프간의 이름을 드높였습니다. 종목은 무려 태권도였습니다. 당시 국내 언론에도 많이 보도되었으며, 아프간 대표팀의 감독은 한국인인 민신학 감독이었습니다.

지난 8월 11일에는 아프간 북부 발흐 주의 차킨트 군(district)에서는 한 여성 군수가 《가디언》을 통해 소개되기도 했습니다. 살리마 마자리라는 이 여성 군수는 탈레반에 맞서 직접 총기를 들고 저항군을 이끌었는데, 15일에 결국 탈레반에 생포되었다는 가슴 아픈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마자리가 비단 여성이라는 이유만으로 주목받은 것은 아니지만, 아프간에서 박해받는 하자라족이 여성 인권이 상대적으로 열악한 아프간에서 군수에 오른 것도, 군수가 직접 총기를 들고 저항군을 이끌며 자신의 도시를 방어한 엄청난 용맹도 전 세계의 귀감이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개개인뿐 아니라 하자라족은 우리가 흔히 이슬람에 대해 가지고 있는 편견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기도 합니다. 하자라족은 아프간 내에서 바미얀 지방에 주로 모여 살고 있는데, 그들은 과거 쿠샨 제국 때 세워졌다가 탈레반의 만행으로 파괴된 ‘바미얀 석불’ 복원 행사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자신들의 터전에 대한 좋은 인상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종교에 맹목적인 무슬림의 특징을 고려하면, 세계 문화 유산인 불상 재건에 열의를 다하는 것은 매우 놀라운 일이죠. 《뉴스민》의 칼럼에서 엿보이는 하자라인의 모습은 그저 평화를 원하는 따뜻하고 평범한 사람입니다.
 

보트피플과 《그랜 토리노》

June 24 1979 Vietnamese Boat People ©KimVietJewelry
하자라족에 대한 설명이 길었습니다. 이는 한국에 온 이 380명의 특별공로자를 우리가 수용하느냐 마느냐의 논의 이전에 무지에서 오는 공포를 극복해야 한다는 의미에서였습니다. 이들은 한국 정부의 아프간 재건 사업에 도움을 주었다는 이유로 탈레반에게 위협을 당하고 있다고 했고, 우리 정부는 도의적인 책임을 느꼈기에 한국으로 올 수 있었습니다. 이들은 도와달라고 말하기 이전에 피폐해진 아프간의 재건을 위해 나름의 영역에서 노력해왔다고 할 수 있죠. 그들은 무임승차만 해온 것이 아닙니다.

아짐씨는 상술한 인터뷰에서 아프간인 수용으로 우리 국민이 생각하는 문제가 생기면 곧 자신들에게도 문제가 생기는 것이라는 말을 덧붙였습니다. 하자라인에 대해 상술한 내용을 보고 나면 이 말의 무게가 다르게 다가올 것입니다. 탈레반은 《연합뉴스》와의 인터뷰에서 한국에 협조했던 아프간인을 사면하고 한국과 협력을 맺고 싶다고 밝혔지만, 현지에서 하자라족은 여전히 핍박받고 있으며, 탈레반의 공포 정치는 현지인들의 SNS를 통해 걷잡을 수 없이 공개되고 있습니다. 주변 이슬람국에서도 이등 국민 취급당하는 현지 하자라인들에게 한국은 유일한 희망이었던 셈입니다.

여론과 상관 없이 그들은 입국했고, 이제 우리는 그들을 어떻게 받아들이느냐에 대한 갈림길에 서 있습니다. 이번 일이 우리나라에서는 유례가 없지만, 미국에서는 유사한 사례가 있었습니다. ‘보트피플’, 들어보셨나요? 베트남 전쟁으로 베트남 공화국이 패망하고 본국을 떠나온 난민들입니다. 단순히 공산화된 국가가 싫어서 넘어온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은 목숨이 경각에 달려있던 사람들입니다. 한국전 당시 북한이 승리하여 한반도가 통일된 상태에서 국군 활동을 했거나 미국에 협조하였던 우리 국민은 어떻게 될까를 생각해보시면 이들의 처지가 이해될 것입니다.
Gran Torino - Official® Trailer ©
클린트 이스트우드 감독의 영화 《그랜 토리노》에는 미국 내 보트피플, 그중에서도 몽족이 등장합니다. 베트남 전쟁 당시 미국은 북베트남을 공략하기 위해 다양한 소수 민족을 기용했는데, 대표적으로 몽족과 묘족이 있습니다. 몽족은 베트남에 반감을 품고 있던 터라 미군에 적극적으로 협력하여 베트남 전쟁을 도왔죠. 하지만 베트남 전쟁이 끝나고 미국은, 함께 피 흘려준 몽족에 대한 보호도 없이 그냥 철수했습니다. 그렇게 몽족은 보트피플이 되어 베트남을 탈출하는 신세가 되었죠. 하지만 미국에서 난민으로 인정되거나 망명이 허용된 것은 직접 전투에 참여한 부대원 등 극소수에 불과했습니다. 그 외에는 모두 불법 체류자가 되어버렸죠. 심지어 이후에 베트남과 미국의 정식 수교로 국제 관계가 형성되고 난 뒤 몽족의 미국 내 지위는 더욱 열악해졌습니다.

영화는 미국 내에서 차별에 시달리는 몽족 가족, 그리고 그들과 관계가 생기며 가치관의 변화를 경험하여 결국엔 그들을 지켜주려는 한국전 참전 용사 ‘월트’의 이야기를 담고 있습니다. 영화의 메시지는 다소 동화주의적인 면이 있습니다만, 영화 내에서의 몽족이 딱 지금 한국에 들어온 하자라인들과 맞아떨어집니다. 심지어 몽골계통이라는 점까지 닮았죠. 현재 국내로 들어온 아프간인들에 대해서는 일단 단기 비자(C-3)가 발급되고 추후엔 장기 체류 비자로 전환될 예정입니다만, 정치권에선 정의당 장혜영 의원 정도를 제외하면 대부분 장기 체류에 대해서는 부정적입니다. 그들은 돌아갈 곳이 없는데 우리는 벌써 이들에게 심리적 장벽을 세우고 있는 것입니다.
 

그들을 어디까지 받아들여야 하나

카불 학교 폭탄 테러 희생자를 추모하는 하자라족 ©Afriadi Hikmal/NurPhoto via Getty Images
지난 2018년에 있던 제주 예멘 난민 사태를 기억하실 겁니다. 엄청난 국민적 반대가 있었고, 반대 집회가 세 차례나 열리며, 정치권에서도 예멘 난민에게 난민 지위 혹은 인도적 체류 허가를 내준 정부를 강도 높게 비판했습니다. 방송에 나와 예멘 난민에 대한 지지를 요청한 배우 정우성씨는 숱한 댓글로 ‘예멘 난민은 정우성 씨 집에나 들여라’라는 말을 들어야 했습니다. 예멘 난민에 대한 우려가 크던 이유는 지금의 논란과 같습니다. 그들의 종교가 이슬람이기 때문입니다.

하자라인도 마찬가지입니다. 만약 우리 정부의 재건 사업에 도움을 준 경우가 아니었다면, 이번 이송 작전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미 들어온 아프간인에 대한 처우 문제와, 우리와 아직은 접점이 없지만 나중에 발생할 수도 있는 난민 수용에 대한 문제에 대해 우리 사회는 언제나처럼 ‘이슬람의 위험성’을 이유 삼아 마음의 벽부터 세울 것입니다. 흔히 얘기하는 ‘타자화’는 적어도 대상에 대한 이해가 수반된 경우를 의미하지만, 무슬림이라는 이유로 이해부터 거부한다면 판데믹 이후 국제적인 반중정서로 인해 한국인이 이유 없이 아시아 혐오 범죄의 타겟이 되는 것에 대해서는 뭐라고 할 수 있을까요.

난민 지위를 얻느냐 마느냐 이전에 난민의 의미에 대해 다시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난민은 본국으로 돌아갈 시 커다란 정치적 박해나 구금, 신변과 생명의 위협을 받을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너희 나라로 돌아가라’, ‘너희 나라의 운명은 너희가 결정해라’라는 말은 엄청난 폭력인 셈입니다. 한국인들이 유독 이런 반응을 보일 수 있는 것에는 우리가 실제로 전쟁으로 피폐해진 나라에서 시작하여 군부독재를 이겨내고 민주화를 직접 이루어 성공적인 민주국가로 탄생한 배경이 자리합니다. 

하지만 모든 나라가 같은 조건일 수 없고, 같은 조건이라 해도 늘 성공할 순 없습니다. 우리는 분단과 전쟁을 겪었지만 적어도 같은 민족 정체성을 유지한 상태였습니다. 하지만 내전이 일반화된 중동 지역은, 상술했듯 비단 이슬람 종교의 특성뿐 아니라 서구열강에 의해 갖은 민족 분열이 일어나며 처음부터 다민족 국가로 구성된 경우가 많습니다. 국민이 국가의 운명을 결정할 수 있는 상태가 애초에 아니죠. 앞선 주장은 중국이 서방의 경계를 받는 각종 독재 국가를 옹호하며 내세우는 논리와 같습니다. 

중동의 부족주의가 우리나라 탓은 아니지만, 적어도 자국을 지키지 못했다는 무조건적 비판이나, 무슬림이라는 편견 속에서만 사고하는 것은 지양할 필요가 있는 것이지요. 우리 정부를 도와 아프간 재건에 힘썼던 아프간인들의 장기 체류마저 거부할 정도로 우리에게 여유가 없는 것일까요?
 

자국 보호주의로 포장된 인종주의


한국에 협력한 아프간인들의 입국에 대해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를 도운 아프가니스탄인들에게 도의적 책임을 다하는 것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이고 또 의미 있는 일”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의미에는 국제 관계의 무게가 담겨있습니다. 우리가 더 큰 국가로, 더 큰 국제 레짐을 향해 나아가기 위해서는 동맹을 끝까지 책임질 수 있어야 하고, 헌법 이데올로기에 부합하는 가치를 위해 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합니다.

국민적 반대가 있는 이유는 분명히 있습니다. 이슬람 문화는 문화 상대주의로 쉽게 수긍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율법 가치는 국제법과는 한참 동떨어져 있는 것이 사실이죠. 탈레반이 실제로는 아프간에서 탄압을 자행하면서도 국제적으로 유한 이미지를 제고하려 했던 이유는 그들 역시 엄청난 간극을 인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슬람 문화권의 이주자들이 범죄율이 높다거나 그들의 종교적 특성이 한국의 문화와 큰 차이를 보인다는 두려움 역시 근거 없이 탄생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양혜우 연구원의 <누가 혐오를 생산하는가? - 인종적 위계의 하층에 배치된 외국인들>이라는 논문에서는 한국에서 외국인 혐오가 발생한 원인에 대해 노동 이주 정책의 미흡함을 꼽기도 했습니다. 인종적 위계가 노동 시장과 가족 구조 내에 구조화되었고, 신고, 단속, 추방의 억압적 국가 권력이 작동한 결과 인종주의와 혐오가 싹트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다문화 혐오에 대한 근거로 주장되는 것들이, 혹시라도 필요에 따라 노동 이주로 받아들인 약소국 외국인들에 대한 방치와 억압적 제재의 산물은 아닐지 고민해볼 필요도 있습니다.

난민의 입국을 반대하는 청원에는 우리나라 경제가 여유롭지 않다는 것, 아프간인들은 자국 보호를 위한 의지가 없었다는 것, 타국도 난민을 받지 않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 테러의 위협이 있다는 것 등이 적혀 있습니다. 다소 과격한 청원이지만 한편으로는 난민 수용 반대 여론을 잘 응축한 것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돌아갈 곳 없는 난민이라도 수용국의 여론과 국민적 합의 없이는 결국 상술한 보트피플처럼 될 것이 자명하므로 모든 의견은 존중될 필요가 있습니다. 

다만 자국민이 먼저라는 의견을 피력할 때, 우리는 아프간보다 훨씬 잘살고 있진 않은지, 자국 보호와 재건에 힘쓴 아프간인이 정말 없는지, 난민을 받지 않겠다는 타국이 결국은 우리가 닮고 싶은 선진국만을 이야기하는 것은 아닌지, 무슬림 전체를 테러리스트로 보는 것은 아닌지 생각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어쩌면 자국 보호주의 이면에 우리 사회는 약소국의 국민들에 대한 내밀한 인종주의를 숨기고 있는 것일지도 모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한국 정부에 이송된 하자라족 아프간인과 난민 수용에 대한 입장 차를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중동 라이벌리즘》, 《아포칼립스 인 아프가니스탄》, 〈전쟁은 여자의 얼굴을 하지 않았다〉, 〈20년 전쟁의 40년 역사〉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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