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8월 25일 새벽 4시, ‘언론중재 및 피해구제 등에 관한 법률(이하 언론중재법)’이 법제사법위원회(이하 법사위)를 통과했습니다. 더민주당 측에서 단독으로 진행한 것이죠. 게릴라전을 노렸는데, 국회 본회의까지 통과하진 못했습니다. ‘자정이 지나 의결된 법안은 당일 본회의에 상정할 수 없다’는 국민의힘의 문제 제기 때문입니다. 미뤄진 본회의는 다가오는 8월 30일로 예정되었습니다. 그날만큼은 ‘밀렸던 안건을 처리하고 합의하겠다’지만, 극한 대치 상황을 고려하면 본회의가 또 한 번 연기되더라도 놀랄 일은 아닙니다.
국회는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불신으로 똘똘 뭉친 국민 여론과 표현의 자유를 외치는 언론인들 사이에서 괴로울 것입니다. 강행하는 민주당과 비난하는 국민의힘, 논란의 중심에 언론중재법이 있습니다. 언론중재법은 과연 언론개혁의 발판이 될 수 있을까요.
우리나라에서 ‘언론=개혁의 대상’이라는 방정식은 이제 당연해진 걸까요. 로이터저널리즘연구소에서 발행한 디지털뉴스리포트 2020에서 ‘뉴스 전반을 신뢰하는가’라는 질문에 한국인 응답자의 고작 21퍼센트가 ‘그렇다’고 응답했습니다. 조사대상국 40개국 중 40위를 기록했죠. 불신을 조장하는 허위정보의 출처가 어디라고 생각하냐는 물음에, 응답자의 23퍼센트는 ‘언론’이라 답했습니다. 조사대상국들의 전체 평균 수치(13퍼센트)에 비해 유독 높습니다. 전 세계 IT 강국으로서 엄청난 정보량이 유통되는 나라, 하지만 정작 그 정보를 신뢰하는 국민은 소수인 나라입니다. 홍보성 기사에 ‘기레기’라는 댓글을 달아도 모욕죄로 처벌받지 않는 사회가 되었습니다. 국민의 알 권리를 수호하는 이상적인 언론의 이미지는 어디로 간 걸까요.
개혁이 필요한 시점입니다. 그런데 방법론이 ‘언론중재법’이어야 하는가에 대한 의견은 분분하죠. 이렇게까지 극과 극의 여론이 엇갈리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민주당이 부릅니다, ‘가짜뉴스 방지법’. 국민의힘이 부릅니다, ‘언론재갈법’.
언론중재법에서 가장 주목받는 조항은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입니다. 고의·중과실로 허위·조작 보도 했을 시 피해자에게 손해액의 최대 5배를 배상하는 것이죠. 2020년 6월 첫 발의 당시 피해액의 3배 금액으로 규정되었으나 최근에는 5배로 수정된 만큼, 더욱 강력해진 개정안입니다. 이외에도 모든 정정 보도는 원시 보도와 같은 시간 및 분량, 크기로 발행되어야 한다는 점, 인터넷 뉴스 피해를 입은 자는 해당 사업자에게 열람 차단을 청구할 수 있다는 조항 등이 해당 법안의 주 내용이었습니다.
언론중재법이 단시간에 입법 절차를 밟을 수 있었던 것엔 한국 언론을 바라보는 국민적 공감대가 작용했을 것입니다. 십 수년간 실망스러웠던 언론의 행보를 지켜보며 차근차근 누적되어 온 반감이죠. 하지만 그만큼 본 정책은 포퓰리즘에 대한 우려가 큽니다. 특히 대선을 앞둔 현시점, 언론중재법은 더욱 좋은 PR 감이 될 수 있습니다. 민주당 측에선 언론중재법이 내년 3월 대선이 끝난 이후 4월부터 시행 예정이기에, 본 정책이 당리당략과는 무관하다는 입장입니다. 대신 입법 통과를 서두르는 이유는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 발생을 하루빨리 근절하기 위함이라고 합니다. 어느 정도 신뢰할지, 판단은 국민의 몫입니다.
가장 큰 우려는 언론 위축에 있습니다. 징벌적 피해 보상이라는 규제 하에, 정보 전달과 권력 감시 등 언론의 본 기능이 순수히 지켜질 수 있을까요. 언론인들 사이 해당 법안은 위헌이자 언론의 입을 틀어막는 ‘언론재갈법’이라는 비판이 쏟아져 나오는 이유입니다. 비판을 의식해서인지, 8월 17일 개정안에는 ‘고위 공직자와 기업 임원의 징벌적 손해배상 청구 제외’라는 조항이 추가되었습니다. 정치권력과 자본권력으로부터 언론탄압이 발생할 문제를 구조적으로 방지하려는 시도로 보입니다. 그러나 일각에선 ‘그러면 임원 말고 임원 가족은 소송 걸어도 되냐’며 사각지대에 대한 비판을 제기했습니다. 구차한 비판이긴 하지만, 사회적 합의가 좀 더 필요한 법안임을 시사합니다.
합의가 늦어지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언론중재법의 취지는 언론개혁입니다. 그리고 피해자 구제입니다. 이낙연 전 대표는 해당 법안이 ‘피해자 구제에 획기적 진전’이 될 것이라지만, 구제책으로서의 실효성이 불분명합니다. 그뿐인가요. 사후 손해배상을 모토로 내건 해당 법안이 언론개혁에 얼마나 순풍을 불어넣을지가 더 큰 의문입니다.
언론중재법을 두고 서울대학교 팩트체크센터 정은령 센터장은 ‘질 낮은 보도’와 ‘허위보도’에 대한 비판이 혼재된 시각이라고 평했습니다. 언론에 대한 불신이 만연한 사회입니다. 사실확인도 제대로 하지 않은 채 기사를 작성하고, 자극적인 소재를 구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 있는 것이 전형적인 ‘기레기’의 이미지죠. 막상 그런 기사를 눌러 보면 이미 어디선가 봤던 내용이 빈약한 길이로 옮겨져 있습니다. 정 센터장에 따르면 ‘질 낮은 저널리즘’입니다. 하지만 이는 의도적인 허위보도와는 별개의 문제입니다. ‘언론이 썩었다’는 비판의 또다른 핵심타겟은 정치권 혹은 기업의 입김이 서려 있는 뉴스입니다. 말하자면 전자는 역량 부족에 직무태만까지 겸비한 언론인의 문제고, 후자는 언론이 정치권력 혹은 자본권력과 유착되어 있는 구조의 문제입니다. 둘 다 언론의 부패라는 공통의 면모를 보이나 각각의 대응책은 달라야 할 것입니다. 언론인의 자성도 중요하지만 언론 생태계의 혁신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현 법안은 두 요소를 혼재하여 내놓은 부적절한 대응책은 아닌지요. 시기나 숙성도의 문제도 있겠지만, 해당 법안의 방향성 자체에 대한 논의가 부족해 보입니다.
언론중재법이 통과되면 질 낮은 보도와 허위 보도, 둘 중 하나라도 제대로 해결될까요. 말하자면 징벌적 손해배상제도가 생긴다고 해서, 기레기라 불리던 언론이 하루아침에 마음을 다잡고 좋은 기사를 쓰진 않습니다. 나쁜 저널리즘과의 이별은 희소식입니다. 하지만 우리가 원하는 것은 더 좋은 저널리즘입니다.
국회는 시간을 끌고 있습니다. 언론중재법의 통과 여부는 오리무중입니다. 법안의 미숙함, 포퓰리즘으로서의 가능성을 지적하는 수많은 반대 여론은 계속 쏟아집니다. 그렇다면 해당 법안의 논리적 허점을 체계적으로 보완해 대선에 영향을 미치지 않는 시점에 발의한다면, 손쉽게 반대 여론을 설득할 수 있을까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언론중재법은 미디어산업이 시시각각 변화하는 현 사회를 잘못 읽은 시대적 오류이기 때문입니다.
<김현정의 뉴스쇼〉에서 이낙연 전 대표에게 지적한 바와 같이, 유튜브 채널과 같은 신 미디어는 어떻게 통제할 수 있을까요. 언론사 기자에겐 차라리 직업윤리라도 요구할 수 있으나, 각종 인터넷 방송과 개인 SNS 채널 등 1인 미디어들은 걷잡을 수 없습니다. 예컨대 마녀사냥으로 논란이 된 240번 버스 사건의 최초유포자 또한 언론이 아닌, 사설 커뮤니티에 글을 올린 개인이었죠. ‘언론’이 독점적으로 담당하던 정보시장은 이제 수많은 생산자가 뛰어든 뉴미디어 산업으로 전환되었습니다. 만약 ‘허위보도로 인한 피해자’를 보호하는 것이 언론중재법의 최우선적인 목표였다면, 이와 같은 인터넷 미디어는 빼놓고 생각할 수 없는 부분일 텐데요. 이러한 미디어 또한 법제화의 반열에 올려놓아야 할까요. 새로운 미디어 시장이 열린 만큼, 미디어에 대한 책임과 규제 또한 새롭게 정의되어야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