졸업
 

8월 넷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1997년 3월 2일이었습니다. 양재동 교육문화회관에선 전람회의 마지막 콘서트가 열렸습니다. 요즘은 동률옹이라고 불리며 어르신 대접을 받지만 당시 전람회의 보컬이었던 김동률은 스물세살이었습니다. 대학졸업을 앞둔 나이였죠. 마침 전람회도 3집 〈졸업〉 앨범과 〈졸업〉 콘서트를 끝으로 해체할 예정이었죠. 전람회는 김동률과 서동욱이 대학가요제를 준비하면서 만든 프로젝트 그룹의 성격이 짙었습니다. 김동률은 음악을 계속할 뜻이 있었지만 서동욱은 공부를 계속할 생각이었죠. 그렇게 각자의 인생행로가 갈릴 즈음 전람회는 해체를 선택했습니다. 이제 둘이 함께 했던 시간들을 졸업해야 할 시간이었습니다. 

마지막 콘서트의 마지막날 마지막 공연은 울음바다였습니다. 동률옹도 부르다 울다를 몇 번이나 거듭했죠. 특히 3집 앨범 〈졸업〉의 타이틀곡인 〈졸업〉을 부를 땐 감정을 주체하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졸업〉은 전람회 마지막 앨범에 수록되긴 했지만 사실 김동률이 고등학생 시절에 작곡했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고등학교 졸업식을 떠올리며 작곡한 노래를 대학 졸업을 앞군 시기에 전람회 졸업에 맞춰서 부르게 됐던 겁니다. 지난 졸업의 노래가 이번 졸업과 다음 졸업에 불려지게 된 것처럼 우리 삶에서 졸업은 거듭됩니다. 과거를 졸업하고 현재에 입학해서 미래의 졸업을 준비하는 게 어쩌면 인생입니다. 

인생의 한 시기가 끝나는건 순리입니다. 학창 시절이 지나갔듯 첫 직장에서의 신입사원 시기도 지나가고 두 번째 직장에서의 이직 시기도 지나갑니다. 그때마다 우리는 졸업을 합니다. 회사를 졸업하거나 업계가 졸업하기도 합니다. 사는 도시나 나라를 졸업할 수도 있겠죠. 누군가는 결혼이나 연애를 졸업합니다. 그렇게 졸업할 때마다 우리의 인생은 달라집니다. 다음 페이지로 넘어가죠. 

그렇게 살면서 졸업을 거듭하다보면 변화에 익숙해집니다. 어떤 면에선 둔감해지죠. 졸업하느라 바빠집니다. 첫 졸업식에서 흘렸던 눈물의 의미를 까맣게 잊게 되죠. 우리가 졸업식에서 눈물을 흘렸던 이유는 사람 때문입니다. 인생의 한 페이지를 함께 했던 사람들과 헤어지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한때 동창이었던 동료였든 동지였든 동업자였든 이제 더 이상 너와 나는 우리가 아니게 되니까요. 졸업하고 시간이 흐르면 그 시절의 우리는 지금의 우리와 다른 우리가 됩니다. 서로가 기억하는 우리는 추억 속에만 남게 되죠. 시간은 그렇게 잔인합니다. 결코 변하지 않을 것 같았던 사람조차 반드시 변화시키죠. 그렇게 졸업과 변화를 거듭하다보면 졸업과 이별에서 더 이상 눈물 짓지 않게 됩니다. 만나고 헤어짐을 인생의 밀물과 썰물처럼 받아들이게 되니까요. 
이번 주 북저널리즘엔, 두 개의 졸업식이 겹쳤습니다. 이다혜 에디터는 대학을 졸업했습니다. 이다혜 에디터는 4학년 2학기를 마치자마자 북저널리즘에서 저널리스트 경력을 시작했습니다. 통찰력과 문장력은 나이가 무색할 정도로 훌륭합니다만 이제 사회 초년생인것도 사실이죠. 이다혜 에디터의 대학 졸업식은 솔직히 북저널리즘 입장에선 기쁜 일입니다. 삶의 지난 시기를 졸업하고 우리와 함께 하는 다음 시기를 시작하는 순간이니까요. 이다혜 에디터 입장에선 동기들과 헤어져서 동료들과 만나는 변화의 시기죠. 언젠간 이다혜 에디터도 인생이 졸업의 연속이란걸 알게 될 겁니다. 속 깊은 이다혜 에디터는 이미 알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다른 하나의 졸업은 슬픈 일입니다. 오랜 동안 북저널리즘의 든든한 기둥 역할을 해왔던 소희준 에디터가 졸업을 합니다. 북저널리즘을 떠납니다. 소희준 에디터가 그동안 퍼블리싱한 종이책만 십여권이 넘습니다. 데일리와 라디오와 전자책과 종이책까지 북저널리즘의 모든 영역에서 탄탄한 기량을 보여줘온 에디터입니다. 함께 해온 시간만큼 함께 해나갈 시간이 길기를 바랐지만 헤어질 시간이 오고 말았습니다. 소희준 에디터도 대학을 졸업하고 입사한 첫 직장이 북저널리즘이었습니다. 북저널리즘에서 저널리스트 경력을 시작했죠. 20대를 북저널리즘에서 보냈습니다. 이젠 인생의 다음 챕터로 나아가보고 싶다는 소희준 에디터의 주장을 끝내 꺾지 못했습니다. 그렇게 졸업에 졸업을 거듭하며 어딘가로 나아가는 것이 인생이라는걸 잘 알기 때문입니다. 우리에게 가장 소중한건 각자의 인생이니까요. 그래서 소희준 에디터의 선택을 존중합니다. 

그동안 동료를 만나고 떠나보낸 기억은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이미 익숙하지만 너무 익숙해지진 않으려고 애쓰고 있습니다. 졸업과 변화는 기쁨일 수도 슬픔 일 수도 있지만 사람이 갈리는걸 일상으로 여겨선 안 된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저마다의 인생 행로는 졸업이라는 전환점을 통해 갈립니다. 그래도 우리는 각자의 삶 속에서 어떤 기억으로 영원히 남게 됩니다. 함께 일했던, 같은 목표를 추구했던, 같이 밥 먹었던, 서로 싸웠던, 그 모든 순간들이 우리 인생의 전부인지도 모릅니다. 우리는 인생의 한 챕터에서 서로의 인생을 채워준 소중한 존재들입니다. 사람과의 만남과 헤어짐엔 익숙해져도 사람의 소중함까지 잊고 싶진 않습니다. 소희준 에디터의 졸업도 이다혜 에디터의 졸업도 모두 소중한 이유입니다. 

가끔씩 1997년 3월 2일 전람회의 마지막날 마지막 콘서트 영상을 유튜브로 다시 돌려봅니다. 그날 그곳에서 함께 눈물 흘렸던 기억을 잊고 싶지 않아서입니다. 그날 콘서트에 함께 갔던 친구는 지금 어디에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는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졸업식을 하지 못했습니다. 외환위기로 나라가 망했거든요. 그래도 전람회 콘서트에서 우리만의 졸업식을 함께 했던 기억만큼은 인생의 일부가 돼 있습니다. 그래서 김동률이 그렇게 노래했었나 봅니다. “우리의 꿈도 언젠가는 떠나가겠지. 세월이 지나면. 힘들기만 한 나의 나날들이 살아온 만큼 다시 흐를 때, 문득 뒤돌아보겠지. 바래져 가는 나의 꿈을 찾으려 했을 때 생각하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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