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그래?
2화

의사들은 왜 필수 의료를 기피할까?

“필수 의료를 선택하는 의사들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매년 국정 감사가 있는 9월부터 10월, 그리고 다음 해 전공의를 선발하는 11월에서 12월이 되면 나오는 단골 뉴스다. ‘필수 의료’, 또는 ‘필수 진료과’란 대개 생로병사가 좌우되는 질병 및 건강 상태를 관장하는 진료 과목으로 통상 ‘내외산소’ 즉, 내과·외과·산부인과·소아청소년과를 의미한다.

현재 전국 수련 병원에서 선발하는 정원에 비해 필수 진료과에 지원하는 전공의 수는 턱없이 부족하다. 2020년 기준 소아청소년과 전공의 지원율은 30퍼센트대로 사상 최악을 기록했고, 전통적 기피 대상 과인 흉부외과도 40퍼센트대에 머물렀다. 필수 진료과 중에서는 내과만이 간신히 100퍼센트를 넘긴 상황이다. 나는 내과 의사다. 아직 경쟁률이 많이 떨어지지 않은, 할 만한 과인 셈이다. 하지만 과연 정말 그럴까? 속내가 조금은 복잡한, 나와 가장 가까운 내과 이야기부터 시작해 보겠다.

 

흔들리는 종합 병원의 중추


내과라고 하면 사람들은 보통 감기나 배탈을 떠올린다. ‘OO 내과 의원’이라고 간판을 내건 곳에서 가장 많이 진료하는 질병이 감기와 배탈이기 때문이다. 조금 나이대가 있는 분이라면 고혈압이나 당뇨 치료를 받으러 가는 곳이 내과이기도 하다. 그렇다면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는 이들은 내과라는 단어에서 어떤 병을 연상할까? 주로 폐렴, 심근 경색, 간경화, 급성 신부전 등 말만 들어도 무시무시한, 생명 보험 약관에나 나올 법한 병들일 것이다. 병원에서 관용어처럼 쓰이는 우스갯소리 중에 “여러 임상 진료과를 크게 둘로 나누면 내과 외 기타 잡과”라는 말이 있다. 내과의 비중과 역할이 얼마나 큰지 보여 주는 하나의 방증이다. 내과는 수술적 치료를 하지 않는 대부분의 병, 그중에서 내부 장기와 관련된 병을 진료한다.

내과 의사들의 무기는 주로 약이며, 종종 내시경이나 심혈관 중재 시술에 쓰이는 가느다란 카테터, 투석 기계, 인공호흡기 등을 사용한다. 규모가 큰 종합 병원에서는 한 사람이 내과 전체를 다루지 않는다. 대개 전문의 취득 후 각자 세부 전공 즉, 분과를 정해서 수련받은 ‘분과 전문의’들이 나눠 맡는다. 최근 코로나19 판데믹으로 관심의 대상이 된 감염내과 역시 내과의 한 분과다. 다시 말해, 감염내과 의사가 되려면 당연한 말이지만 먼저 내과 전문의가 되어야 한다. 병원 안에서 주로 항생제 치료를 담당하지만, 감염병 예방 및 관리라는 눈에 안 보이는 더 큰 역할을 가진 셈이다. 내가 속한 종양내과는 암 환자를 주로 본다. 항암제 치료 및 암으로 인한 여러 증상과 합병증에 필요한 치료를 담당한다. 이렇듯 내과는 우리와 가장 가깝고 흔한 질병부터 사람을 죽음에 이르게 하는 병까지 보는, 임상 의학의 중추 역할을 한다.

내과 의사가 되려면 어떤 과정을 거칠까? 여느 과와 마찬가지로 인턴 1년, 레지던트 3년(2017년 전에는 4년이었다)의 수련을 마친 후 전문의 자격증을 취득하게 된다. 앞서 말한 전공의는 인턴과 레지던트 과정을 합쳐서 그렇게 부르기도 하지만,[1] 보통은 전문 진료과를 정해 수련하는 레지던트 과정을 일컫는다. 이 중 상당수는 분과 전문의가 되기 위한 ‘전임의’ 수련을 2~3년간 거친다. 전문의 자격을 취득한 후에도 병원에서 수련하는 의사들을 전임의, 펠로우(fellow), 또는 임상 강사라고 부른다. 대학원에 빗대자면 인턴은 석사, 전공의는 박사, 대개 포닥(Post Doctoral course)이라 부르는 전임의는 박사 후 연구원 과정으로 각각 비유할 수 있다. 전공의와 박사 과정 대학원생은 면허 또는 학위를 취득하기 위해 저임금을 감수하고 일하는 직종이라는 점에서 닮았다. 또 전임의는 취업 대기 중인 고학력 임시직이라는 측면에서 박사 후 연구원과 유사하다. 이 전공의와 전임의들이 실제 종합 병원이라는 거대한 조직을 떠받치고 있는 사병이자 일개미들인데, 그중에서도 내과의 비중이 가장 크다.

내가 인턴을 마치고 내과 전공의 과정에 지원했던 2000년대 초, 당시 내과 경쟁률은 2 대 1이었다. 엄청난 인기과는 아니었지만, 그렇다고 전공의를 못 구해 애를 먹는 기피 진료과도 아니었던 거다. 의과 대학 수석 졸업자라면 항상 내과를 선택하던 과거의 영광은 그때도 사라진 지 오래였지만(내 졸업 동기 중 수석은 안과를 택했고, 요즘은 대부분 피부과나 성형외과를 선택한다), 그래도 의학의 중심이라 할 수 있는 내과는 많은 의사가 선택하고 싶어 하는 전공이었다. 그러나 이후 내과 전공의 지원율은 계속 떨어져 2014년 결국 미달을 기록했다. 다른 필수 진료과들의 사정은 이미 그 이전부터 심각했다. 흉부외과는 1990년대부터, 외과와 산부인과 등도 2000년대부터 미달이 시작됐다.

2010년대 들어서 내과까지 전공의 모집이 어려워지자 ‘정말 필수 의료가 무너지는 것이 아닐까’하는 위기감이 엄습했다. 대한내과학회는 이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2017년에 선발한 전공의부터 수련 기간을 기존 4년에서 3년으로 줄였다. 박봉에 시달리며 고생하는 수련 기간을 줄인 것은 면허 취득에 드는 기회비용을 낮춰 내과 지원율을 높이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었다. 그 덕에 이후 내과는 전공의 충원에 약간 숨통이 트였고, 최근 수년간 간신히 100퍼센트를 채우고 있다. 그러나 병원 내 업무 부담은 더 커졌다. 4년에서 3년으로 수련 기간을 줄인다는 것은 과거보다 전공의 인력을 4분의 3으로 줄이는 고육지책이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어쩌다 내과가 기피과 반열에 들게 됐을까. 수련이 힘들어서? 수입이 적어서? 소위 말하는 ‘워라밸(Work and Life Balance)’을 추구하는 요즘 세대의 특성 때문에? 의대 정원을 늘려 의사 할 사람이 많아지면, 내과는 과연 과거의 영광을 되찾을 수 있을까?

 

동반자나 수호자가 되고 싶었던 기술자


내가 있는 종양내과는 내과 분과 중 비교적 소규모다. 보통 소화기, 호흡기, 심장내과가 전통적인 주요 분과로 꼽히고 실제로 이 분야를 전공한 의사 수가 훨씬 많다. 그러나 암 환자가 많이 오는 이른바 Big 5 같은 대형 병원(서울아산병원, 삼성서울병원, 서울대학교병원, 세브란스병원, 가톨릭대학교 서울성모병원)에서는 종양내과 덩치가 제법 커진다. 내가 근무하는 병원의 종양내과 입원 환자 수는 약 200명이다. 이는 웬만한 중대형 종합 병원의 전체 입원 환자 수 규모로 이들을 일고여덟 명의 전공의가 담당하고 있다. 전공의 한 명당 20~30명 정도의 입원 환자를 진료하는 셈이다. 가끔은 40명까지 넘어가 업무 과중 상태가 될 때도 있다. 참고로 2013년 미국의 입원 전담 의사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 연구에서 의사 한 명이 담당하는 입원 환자 수의 적정 수준이 15명 정도로 보고된 바 있다. 현재로서는 우리가 좀 더 많긴 하지만 대한민국이 전체적으로 과로하는 나라라는 것을 염두에 두면 크게 나쁘지 않은 수준이다. 단, 낮에만 근무할 수 있다면 말이다.

문제는 밤과 주말이다. 이 인원으로는 주간 근팀과 야간 근무팀을 따로 운영할 수 없다 보니 낮에 일하던 사람들이 밤까지 번갈아가며 연장 근무를 해야 한다. 두 명의 야간 당직자가 200명을 나누어 담당하니 의사 한 명이 하룻밤에 환자 100명의 안위를 책임지는 상황이다. 종양내과에는 중환자가 많다. 밤사이 상태가 나빠져 중환자실로 옮기거나 종종 사망하는 환자까지 생긴다. 그러다 보니 전공의 대부분이 거의 잠을 못 자고 일한다고 보면 되는데, 이렇게 당직을 서도 곧바로 퇴근하지 못한다. 다음날 낮에 자신이 담당하는 20~30명의 환자까지 진료하고 저녁이 되어야 집에 갈 수 있다. 이른바 ‘전공의 특별법[2]’이 생기면서 이제 36시간 이상 연속 근무를 할 수 없게 됐는데, 하루 당직을 서면 정확히 36시간 연속 근무가 된다. 사실 여기까지 말한 근무 환경은 그나마 괜찮은 편이다. 전공의 특별법 시행 전에는 이삼일 연속 당직 서는 경우도 흔했다. 규모가 작은 병원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대형 병원보다 환자 수가 적지만, 의사 수는 그보다 더 줄어들기 때문이다. 전공의법 자체가 지켜지지 않는 등 훨씬 더 열악한 환경도 허다하다.

그렇다면 이렇게 3년간의 수련을 마친 이들은 계속 암 환자를 진료하게 될까? 아마도 대부분은 아닐 것이다. 물론 암 환자를 보는 일이 내과 의사 사이에서도 아주 인기 있는 건 아니지만, 전공의들이 종양내과에 많이 지원하지 않는 주된 이유는 암 환자가 주로 오는 대학 병원의 정규직 전문의 수가 제한되어 있기 때문이다. 즉, 일자리가 많지 않아서다. 대한종양내과학회에 등록된 종양내과 전문의는 약 700명 정도다. 매해 새로 발생하는 암 환자가 20만 명이 넘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의사 수가 한참 부족해 보인다. 암 환자가 이렇게나 많은데 암 환자를 진료하는 의사의 일자리는 왜 이리 적은 걸까? 이유는 간단하다. 외래 진료를 볼 전문의만 정규직으로 뽑고, 응급실과 입원 진료는 인건비가 싼 전공의에게 맡겨도 병원은 돌아가기 때문이다.

코로나19 판데믹으로 심각성이 드러난 우리나라 감염내과 의사 수 역시 마찬가지다. 전국의 감염내과 의사는 275명 정도로, 인구 10만 명당 감염내과 의사 수가 0.5명에 그친다는 연구 결과가 얼마 전 언론에 보도됐다. 그나마 이 수치도 과거보다 많이 늘어난 수준이다. 항생제 처방이야 의사라면 누구나 할 수 있고, 감염내과 의사가 병원 내 감염 환자를 진료할 때 나오는 감염 관리 수가(酬價)[3]는 얼마 되지 않으니 일선 병원에서 감염내과 의사를 고용할 동기가 크지 않았다. 내가 2000년대에 전공의 수련을 받으며 근무했던 몇몇 지역 병원과 서울 시내 공공 병원에는 감염내과 의사가 아예 없었다. 뭐랄까, 감염내과 의사는 한마디로 병원 살림이 좀 나아져야 갖추는 사치품 같은 존재였다. 2015년에 메르스(MERS・중동 호흡기 증후군) 사태를 겪고 나서야 감염 관리 수가가 상향, 신설됐다. 또 당시 감염내과 의사들의 일자리가 약간 늘어나기도 했는데, 코로나19와 같은 신종 감염병에 대응하기에 인력은 여전히 턱없이 부족한 실정이다.

종양내과, 감염내과 같은 특수한 전공을 택한 전문의들은 대개 상급 종합 병원에서 근무하는 반면, 한 해 600명 정도씩 쏟아져 나오는 내과 전문의들은 대부분 우리가 동네 의원이나 가까운 중소 병원에서 만나는 의사가 된다. 정확한 통계는 없지만, 보건 의료 인력 실태 조사[4]를 통해 유추해 본다면 전공의가 수련하는 큰 규모의 상급 종합 병원 전문의 비율은 전체 전문의 중 15퍼센트 정도다. 나머지 대부분은 작은 규모의 병원 또는 요양 병원의 ‘봉직의’나 ‘개업의’가 된다. 병원이나 검진 센터, 요양 병원 등에 취직해서 월급을 받는 의사를 봉직의 또는 페이 닥터(pay doctor)라고 한다. 개업은 본인이 의료 기관 개설자, 즉 자영업자가 되는 것이다. 이렇게 수련을 마치고 봉직의 시장에 나오거나 개업을 선택하는 것을 의사끼리는 흔히 “강호에 나온다”고 표현한다. 수련 기간을 보낸 상급 종합 병원은 이제 더 이상 나를 보호해주지 않으며, 의료 시장이라는 거친 무림에서 나 자신을 상품으로 팔아 가치를 증명해야 하는 단계다.

그렇다면 내과 의사의 시장 가치는 무엇으로 결정되는가. 모두가 알다시피 우리나라는 환자에게 일차 진료 의사가 지정된 것[5]이 아니라 환자 개인이 원하는 의사를 그때그때 선택해서 찾아가는 시스템이다. 환자를 면밀히 진찰해 적절하게 처방하고, 그의 건강을 지속적으로 관리하는 일은 안타깝게도 현재 우리나라 건강 보험 제도에서는 제대로 보상받지 못한다. 환자들 역시 의사에게 그러한 서비스를 받을 수 있을 것이라 기대하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환자들은 어떤 의사가 진단과 치료를 적절하게 잘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 정보가 없으니 병원의 인테리어와 분위기, 또는 구비해 놓은 의료 장비 등 피상적인 것들로 판단하게 될 수밖에 없다. 의사 입장에서는 내시경, 초음파 등의 검사를 많이 할수록 돈이 벌리고 전문적으로 보이며 검사를 안 해서 진단이 늦어졌다는 환자 불만을 피할 수 있다.

그러니 내과 의사의 상품 가치는 혈압과 혈당을 잘 조절하거나 항생제를 적절하게 써서 환자가 더 잘 회복하게 해주는 데 있지 않다(그런 것은 어차피 평가 자체도 어렵다). 또한, 상급 종합 병원에서 배웠던 것들 즉, 죽어가는 환자를 살리는 기관 삽관 혹은 중심 정맥관 삽입을 할 줄 안다거나 인공호흡기를 다룰 줄 안다고 해서 더 대우받는 것도 아니다. 그보다 내시경이나 초음파를 볼 줄 아는지에 따라 몸값이 달라지고 여기에 미용 레이저까지 다룰 줄 알면 금상첨화이다.

내과라는 전공을 택할 때 젊은 의사 대부분은 만성 질환을 잘 관리해 건강 수준을 높이는 환자들의 동반자(일차 진료 의사)가 되거나, 중증 질환의 위협으로부터 그들을 지키는 수호자(상급 종합 병원 전문의)가 되고 싶었을 테다. 그러나 강호에 동반자를 찾는 곳은 없고, 수호자 역할을 하기에 일자리는 너무도 적다. 강호에서 할 수 있는 남은 역할은 내시경, 초음파 기술자[6]가 대부분이며, 그나마도 그 자리가 점점 포화하고 있다. 2009년 1만 1974명 수준이었던 내과 의사 수는 2019년 1만 8424명으로 50퍼센트가량 증가했고, 이들은 종종 동반자나 수호자의 역할도 하지만, 대개는 기술자다.

 

급여와 비급여


이상하다. 의대생 정원은 2006년 동결 이후 늘지 않았다. 그런데 어떻게 내과 의사 수는 불과 10년 사이에 50퍼센트나 증가할 수 있었을까? 다른 진료과의 정원이 줄어서 내과로 온 걸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거의 모든 진료과 정원은 같이 증가했고, 그 이유는 전공의를 수련시키는 병원이 늘어났기 때문이다. 2000년대 초반 3000~3400명 정도였던 전국의 레지던트 수는 2010년대 들어 4000명에 이르렀는데, 주로 암 진료 보장성이 확대되면서[7] 대형 병원들이 앞다퉈 암 병동을 증축하고, 대학 병원들이 분원을 신설하면서 일어난 일이었다. 전문의들의 일자리가 늘었지만, 더 많이 늘어난 것은 값싼 인력인 전공의 일자리였다. 졸업하는 의대생 수는 매해 3000~3500명 정도인데 레지던트 정원이 4000명이 넘어가니, 과거라면 전문의 면허를 따지 않고 일반의로 활동했을 이들이 전공의 수련을 받고 전문의 면허를 따게 된 게 전문의 수 증가의 원인이다.[8]

레지던트 정원 증가와 함께 소위 인기 진료과를 선호하는 이들의 선택권은 넓어진 대신 기피과에 지원하는 이들은 더욱 줄어들었다. 안 그래도 사람이 없어 힘들어하던 흉부외과, 일반외과 등은 인력난이 더욱 심해졌고, 인기과와 기피과의 중간 정도에 있던 내과는 인력이 과잉 공급되면서 봉직의 시장에서 전문의 몸값이 상대적으로 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지원 인원이 줄어들어 기피과로 전락하는 수순을 밟게 된 것이다.

대학 병원의 중환자 진료를 전담하다시피 하다가 강호에 나와서는 감기, 배탈 환자를 주로 보고 내시경 기술자로 살게 되는 이들은 대학 병원에서 헐값에 쓰다 버려지는 소모품 같은 느낌을 받게 된다. “전문의 면허를 따니 쓸데없는 고퀄(high quality)이 되었다”라는 자조적인 언어유희도 이제 낯설지 않다. 물론 경증 환자를 진료하는 것이 가치가 떨어지는 일은 아니지만, 수련 기간에 익힌 것과 수련 이후 실제 하게 되는 업무가 너무 다른, 이른바 잡 미스매치(job mismatch)는 이전부터 문제로 지적됐다. 게다가 대형 병원이 몸집을 불리면서 환자를 흡수하는 사이, 동네 의원과 중소형 병원은 환자가 줄어 경영이 어려워지고 서비스 질은 떨어지며, 갈수록 환자가 더 줄어드는 악순환을 최근 십수 년간 겪고 있다. 자연스럽게 대형 병원에서 수련을 받고 나와 봉직의 시장이나 개업 시장에 나오는 것에 대한 경제적 위험도 점점 커지고 있다.

개원가에서 이러한 경제적 위험을 상쇄할 수 있는 수단은 ‘비급여’다. 우선, ‘급여’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일부 진료비를 부담하는 진료 항목을 의미한다. 급여 진료의 가격은 건강보험공단에서 결정한다. 감기에서부터 폐렴, 당뇨, 심장병, 암 등의 필수 진료는 당연히 대부분 급여 진료다. 반면, 비급여는 미용 성형과 같이 건강 유지에 필수적이지는 않거나 비용 효과가 떨어지는 진료 항목을 뜻한다. 건강보험공단이 비용을 부담하지 않고 전액을 환자가 부담하며, 가격은 공급자인 병·의원에서 정한다. 급여 진료의 보상이 적절하지 않을 때, 비급여로 눈을 돌리게 되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라고 할 수 있다.

비급여의 대표 격인 미용 성형 의료의 성장은 눈부시다. 서울 시내 지하철 광고판은 최근 10년 새 모두 미용 성형 업계 광고로 뒤덮였다. 2020년 8월 조선일보 보도에 따르면, 대한의사협회가 추산한 미용 성형 의료 종사자 수는 3만여 명이다. 물론 이들 중 상당수가 전문의가 아닌 일반의일 것으로 추정된다. 내과 의사가 1만 8000명 정도인데 이보다 미용 성형 종사자들이 더 많다는 것은 아이러니로, 사실 이 3만 명 중에는 상당수의 내과 의사가 포함됐을 것으로 추정된다. 네이버와 카카오에 연재되고 있는 《내과 박원장》이라는 웹툰 속 주인공은 심장내과 수련을 받고 강호에 나왔지만 정작 병원을 운영하기 위해 미용 레이저 기계를 사고 관련 강좌를 들으러 다닌다. 급여 진료에 대한 보상이 충분하지 않다는 것은 대부분 알고 있지만, 그것이 문제라고 생각하는 이들은 많지 않다. 대부분 ‘진료비가 저렴해도 의사들의 소득이 충분히 높으니 더 올릴 필요가 없다’라고 생각한다.

좀처럼 그 이상 논의가 진척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 사회의 불평등 이슈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가진 자들에게 더 주자’는 프레임이 되어 버리면 설득력을 얻기 어렵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한다. 그러나 급여 진료비는 의사만의 소득이 아니고 간호사와 의료 기사 등 병·의원 노동자들의 소득이기도 하다. 이것이 지나치게 저렴하면 급여 진료의 질을 높이기 어렵고, 급여 진료를 할 유인책 자체가 사라지게 된다. 전형적인 급여 진료 업종인 내과 의사보다 미용 성형 업계에 종사하는 의사가 더 많은 것이 이러한 현실을 반영한다. 미용 성형 외에도 영양 수액 치료, 도수 치료 등 비급여 치료로 도피하는 병・의원들이 늘고 있고, 어차피 전문의 자격을 취득해도 이런 비급여 치료가 주된 업이 될 것이라고 예상한다면, 전공의로서는 급여 진료를 하는 필수 진료과를 선택하는 대신 피부과나 성형외과 등 비급여 진료를 주로 하는 전문의 자격을 취득하는 것이 합리적 선택이 될 것이다.

요약하자면, 내과 등 필수 진료과를 선택하는 의사가 줄고 있는 것은 대형 병원의 팽창으로 전공의가 과잉 공급된 이후 벌어진 자연스러운 현상이자, 개원가의 비급여 진료 경향 강화로 필수 진료를 하는 의사에 대한 수요 감소가 동시에 작용한 결과다. 입원 진료의 대부분을 전공의가 떠받치고 있는 현실에서 외래 진료 및 수술, 시술을 담당할 전문의만 선발하면 됐던 병원은 일자리를 충분히 늘리지 않았으며, 전공의들은 면허 취득 후에 시장의 매물이 되어 시장이 원하는 비급여 진료에 종사하게 되는 한국 의료의 기이한 지형이 이러한 난맥상을 낳았다.

 

전공의 지원율과 출산율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이 문제가 되자 흉부외과, 산부인과 등의 기피과는 전공의에게 지원금을 주어 가며 해당 과 지원을 독려한 시기가 있었다. 그러나 기피과 지원을 늘리는 효과를 보지 못했다는 평가 끝에 이 지원금 제도는 2020년을 기점으로 폐지되었다. 전공의 수련을 받는 4년간의 월급만 오르는 이 제도에 젊은 의사들이 호응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자신의 전문 과목을 결정하는 것은 향후 수십 년간의 전망을 고려해야 하므로 어찌 보면 당연한 결과다. 외과와 흉부외과의 급여 진료에 대한 보상 금액을 늘리는 ‘수가 가산 제도’ 역시 전문의 확보에 큰 영향을 주지 못했다는 평가와 비판을 받고 있는데, 수가 가산을 받은 병원들이 기존 의료진에게 인센티브를 제공했을 뿐, 새로운 일자리는 만들지 않았기 때문이다. 기피과로 대표되는 필수 의료에 ‘앞으로 해 볼 만하다’라는 가능성과 전망을 제시해 주지 않는 이상 젊은 의사들을 끌어들일 수 없을 것이다. 기피과 문제는 저출산 문제와 닮아있다. 출산을 하면 인센티브를 받는다고 해도 육아, 교육, 취업 등의 장기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데 여성들이 아이를 낳으려 할까? 비슷한 맥락이다.

반대로 정부 정책이 기피과의 지원율을 끌어올린 좋은 예는 응급의학과다. 물론 지금도 근무 환경이 좋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수가 인상과 규제를 적절히 활용해 일자리를 늘린 결과, 예전보다는 전공의 충원율이 높아졌다. 정부가 응급 환자 사망률을 낮추기 위해 응급 의료 체계 개선에 착수한 2013년 이후 권역 응급 의료 센터의 수가가 올라갔고, 전문의를 다섯 명 이상 의무적으로 채용하도록 기준을 강화했다. 병원이 전문의 채용을 늘릴 수밖에 없는 당근을 제시한 결과 수요가 늘었고, 자연스럽게 응급의학과 전문의들의 몸값은 껑충 뛰었다. 응급의학과는 높은 직무 스트레스에도 불구하고 일정 부분 일자리가 보장되고, 연봉이 높은 편이라는 장점에 힘입어 선호도가 올라갔는데, 50~70퍼센트 정도에 불과했던 전공의 충원율은 일자리와 소득이 늘어나면서 90~100퍼센트 수준에 근접했다. 아직 충분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흉부외과나 산부인과에 비해서는 양호한 편이다.

응급 의료 체계 개선은 전공의를 위한 것이 아니라 국민의 건강을 위한 정책이었다. 그것이 응급의학과 의사의 장기적인 전망도 더 나은 것으로 만들었다. 다른 진료과도 마찬가지다. 단순히 심장 수술의 수가를 올리는 것만이 아니라, 수술을 더 안전하고 효율적으로 하기 위해 의사를 더 많이 채용하도록 인력 기준을 마련한다면 흉부외과 의사의 전망이 더 나아지면서 이 일을 하려는 이들도 늘어날 것이다. 밤새 응급으로 심장 이식 수술을 하고 다음 날 아침 바로 판막 수술에 들어가야 하는 대학 병원 흉부외과 의사에게 그를 대신할 수 있는 동료를 만들어 준다면 말이다.내과 의사 역시 마찬가지다. 코로나19 이후 새로운 판데믹 시대를 대비할 감염내과 의사 수를 늘리려면 감염 관리 수가를 올리고, 병상당 감염 내과 의사 인력 기준을 강화해야 하며, 감염 질환을 보는 공공 병상을 더 늘려야 한다. 지금은 감염 내과 수련을 마쳐도 취직할 곳이 부족하니 지원자도 많지 않고, 종합 병원에 취업하지 못하면 개업하기도 려운 전공이라 감염내과 전문의가 너무 많이 배출되지 않도록 이른바 ‘산아 제한’을 하는 상황이다.

미국 유수의 병원들은 한 병원에 감염내과 전문의만 50~60명 이상씩 있지만, 우리나라에서는 10명을 넘기는 병원 찾기도 어려운 실정이다. 병원마다 80~100명에 달하는 종양내과 전문의도 국내의 경우 Big 5 병원에서도 10~20명대 수준이다. 병상을 1500개 이상 보유한 전 세계 50여 개 의료 시설에는 우리나라 병원도 세 곳이나 포함되는데, 이런 규모에서조차 인력 수준이 이 정도이니 질 높은 의료 서비스를 기대하기란 어려울 수밖에 없다. 짧은 진료 시간에 대한 불만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합리적인 수준으로 진료를 제공할 수 있는 인력 기준을 정하고 여기에 맞춰 병원들이 전문의들을 더 고용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이 과연 불가능한 일일까? 물론 낮은 수가와 높은 인건비라는 큰 장벽이 존재하지만, 언제까지나 이 상태로 방치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강호로 떠날 필요가 없도록


지금까지 언급한 필수 의료 기피 현상을 해결하기 위해 의대 정원을 늘려야 한다고 말하는 분들이 많다. 지난해 코로나19 판데믹 한가운데서 한 달이 넘는 전공의 파업이라는 재앙을 불러일으킨 민감한 사안이 된 논쟁적 주제라 말을 얹기가 쉽지는 않다. 개인적으로는 늘릴 필요가 있다고 생각하지만, 위에서 말한 진료과 간 편중 문제, 그리고 여기서 언급하지는 않았으나 마찬가지로 심각한 지역 간 편중 문제를 해결하려면 더욱 설득력 있는 대책이 먼저 제시되어야 한다. 그 대책은 필수 진료과의 일자리다.

“일반 국민의 일자리도 부족한데 의사 일자리까지 정부가 만들어야 하냐”고 묻는다면 최근 코로나19 유행 중에 화두가 되었던 공공 의료 강화가 결국은 일자리 정책이라고 답할 수 있겠다. 아마 이번의 전 지구적인 위기를 통해 많은 분이 알게 되었으리라 생각한다. 필수 의료를 선택하는 의사가 줄어들고 있다는 뉴스가 나와 전혀 상관없는 일이 아니라는 것을. 미용 성형, 마늘 주사, 영양 수액을 처방하러 강호로 떠나는 의사 중 일부라도 필수 진료에 붙들어 놓아야 한다. 과로에 지쳐 병원을 떠나는 간호사들 역시 붙잡아야 한다. 그러려면 정부가 공공 병원에 양질의 의료인 일자리를 만들고, 민간 병원들이 전공의 인력으로 버티기보다 필수 진료과의 정규직 일자리를 창출하도록 유인책이나 규제를 만드는 것이 필요하다. 공공 의대를 설립한다 해도 그 졸업생들 또한 필수 의료를 선택하지 않고 강호로 빠져나간다면 아무 소용없지 않은가.
[1]
지난해 파업의 주축이 된 대한전공의협의회는 20~30대의 전국 수련 병원 인턴과 레지던트가 소속된 젊은 의사 단체이다.
[2]
‘전공의의 수련 환경 개선 및 지위 향상을 위한 법률’이다. 전공의 최대 연속 수련 40시간 초과 금지, 야간 당직 주당 3회 초과 금지, 주당 평균 1회 이상의 유급 휴일 부여 등의 내용이 담겨 있다.
[3]
수가는 건강 보험에서 정한 의료 서비스의 가격을 의미한다. 우리나라 같은 공보험 체제에서는 의료 서비스 가격이 시장에서 정해지지 않고, 공급자와 수요자, 정부로 구성된 건강보험정책심의위원회에서 결정된다.
[4]
2017년 기준 전문의 수는 8만 1041명이다. 이 중 상급 종합 병원에 15퍼센트(1만 2059명), 종합 병원과 병원, 요양 병원 등에 37퍼센트(3만 363명), 의원에 46퍼센트(3만 7307명)가 근무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2020.2.5.
[5]
환자가 맨 처음 만나는 동네 의사가 그 환자의 건강 문제를 지속적이고 포괄적으로 관리하는,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주치의 역할을 할 때 이를 일차 의료라고 부른다. 공적 의료 보험 제도를 운용하는 선진국 대부분은 환자마다 일차 진료 의사(Primary care provider)를 지정해 계속 한 사람에게 진료를 받도록 하고 있지만, 우리나라는 그런 제도를 운용하지 않고 전 국민 건강 보험을 운영하는 독특한 나라다.
 
[6]
‘기술자’라는 호칭을 쓴 것에 대해 일차 의료에 종사하는 개원의 및 봉직의 입장에서는 당혹스러울 수 있겠다. 사람 몸에 대한 이해를 바탕으로 정확하고 안전한 시술과 검사를 하는 전문가의 역할을 기술자의 영역으로 부르는 것에도 어폐가 있다. 다만 의료의 수익 모델이 지나치게 시술과 검사에 치중되어 있다 보니 의사의 역량과 업무 역시 환자를 진찰하고 상담하는 것보다는 시술과 검사에 좌우되는 측면이 많음을 지적하기 위해 부득이하게 이 단어를 사용했다. 
[7]
‘보장성 확대’라는 말은 환자가 내는 진료비에서 건강 보험이 부담하는 비율이 늘어나 환자의 본인 부담은 줄었다는 의미다. 암 산정 특례 제도가 대표적인 보장성 확대 정책으로, 현재 암 환자들은 진단 후 5년간 암 진료비의 5퍼센트만 본인 부담금으로 낸다. 일반적으로 외래 진료비의 50퍼센트, 입원 진료비의 20퍼센트가 본인 부담금이니 혜택이 크다고 할 수 있다. 환자 입장에서는 가격이 떨어지니 수요 또한 늘어나게 되는데, 전에는 비싸서 못하던 검사와 치료를 더 많이 하게 된 것이다.
[8]
2001년 전체 의사 중 전문의 비율은 65퍼센트였고, 2018년 기준으로는 73퍼센트로 증가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보건의료인력 실태조사〉, 2020.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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