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화점으로 도망치는 아마존

8월 31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아마존이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연다. 기술 기반의 새로운 오프라인 경험을 제공하고, 온라인 시장에 대한 반독점 규제를 피하기 위해서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미국 이커머스의 40퍼센트를 장악한 아마존이 PC와 모바일 밖으로 나옵니다. 대규모 오프라인 사업을 추가 계획하는 건데요, 《월스트리트저널》 등 외신 보도에 따르면 아마존은 미국 캘리포니아주와 오하이주 두 곳에 백화점과 비슷한 형태의 대형 오프라인 매장을 엽니다. 매장은 3만평방피트(약 845평) 규모로 기존 백화점 크기의 3분의 1 정도 수준인데요, 구체적으로 어떤 브랜드가 입점할지 밝혀지진 않았지만, 아마존 자체 브랜드(PB·Private Brand) 제품들이 주로 선보여질 것으로 보입니다.

온라인의 제왕이 왜 굳이 오프라인 사업에 뛰어드는지 의아하실 수 있습니다. 전통의 유통 강자로 군림하던 미국 내 유명 백화점들이 코로나19 이후 줄줄이 파산 위기를 맞았던 기억을 떠올리면 더욱더 그렇죠. 미국에서 가장 오래된 럭셔리 백화점 로드앤테일러(Lord&Taylor)와 니만마커스(Neiman Marcus), 중저가 백화점 JC페니(J.C. Penney) 등은 작년에 줄도산을 겪은 바 있습니다. 이 밖에 50만 개 넘는 미국 유통 업체가 지난해 파산 보호를 신청하기도 했습니다.

아마존은 기존 오프라인 기반 유통가를 뒤흔들고 무너뜨린 주범입니다. 올해 6월 기준, 아마존의 최근 1년간 누적 소비자 구매액은 6100억 달러(711조 원)로 월마트의 5660억 달러(661조 원)를 넘어섰습니다. 전통의 유통 제왕이라 불리던 월마트를 처음으로 제친 겁니다. 이를 두고 《뉴욕타임스》는 온라인 쇼핑이 오프라인을 넘어선 역사적인 순간이자, 아마존이 사람들의 습관이 됐음을 증명했다고 분석했습니다. 새로운 유통 왕좌가 된 아마존은 왜 오프라인 사업을 확장하는 걸까요?
 

아마존의 실험

아마존이 운영 중인 오프라인 매장 ©Amazon
아마존의 오프라인 매장이 낯설진 않습니다. 비정기적으로 여는 팝업 스토어를 제외하고 다섯 가지 종류의 오프라인 사업을 펼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2015년 문을 연 오프라인 서점 ‘아마존 북스(amazon books)’를 필두로, 무인 결제 상점인 ‘아마존 고(amazon go)’, 아마존고의 식료품 특화 매장인 ‘아마존 고 그로서리(amazon go grocery)’, 신선 식품 전문점 홀푸드(Whole Foods Market) 인수 후 론칭한 ‘아마존 프레시(amazon fresh)’, 아마존닷컴에서 별점 4점 이상 받은 제품을 모아둔 ‘아마존 포스타(amazon 4-star)’입니다.

아마존 오프라인 매장은 지난해 말 기준 북미 전역 611곳, 해외 7곳에서 운영됐습니다. 오프라인 기반 기업이 온라인 전환에 사활을 거는 건 익숙해도 온라인 기반 기업이 오프라인으로 확장하는 것은 다소 생소하죠. 더군다나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는 경우라면 납득하기 더 힘든데, 지난해 기준 아마존 온라인 스토어 매출이 1630억 달러로 전체 매출의 51퍼센트를 차지하는 동안, 오프라인 매장 매출은 겨우 170억 달러로 1퍼센트 수준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아마존에 오프라인은 일종의 실험 무대였습니다. 당장 수익을 기대하기보다 온라인에서 축적한 고객 데이터를 오프라인에서 활용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하려는 거였죠. 가령 온라인에서 높은 평점을 받은 제품을 중심으로 매대를 설계하고, 온라인에서 주문한 제품을 오프라인에서 픽업하게 하며, 온라인으로 수집한 수요 데이터를 오프라인 매장에 반영하는 식입니다. 이러한 오프라인 공간의 실험은 제프 베조스 아마존 창업자가 주주들에게 보낸 서신에서도 읽을 수 있는데요, 2018년도에 그는 아마존의 마일스톤 중 하나로 아마존 고를 꼽았습니다.
 

리테일 4.0과 옴니채널


아마존의 이러한 오프라인 매장 실험은 옴니 채널 구축의 일환이기도 합니다. 옴니 채널이란 ‘모든 것’을 의미하는 라틴어 옴니(Omni)와 제품의 유통 경로를 뜻하는 채널(Channel)의 합성어로, 온·오프라인이 결합한 유통망을 뜻합니다. 소비의 중심이 오프라인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한 리테일 3.0시대에서 이제는 온라인 플랫폼과 오프라인 매장이 각자의 한계를 상호 보완하는 이른바 리테일 4.0시대로 접어들었습니다.

아마존이 오프라인 실험을 통해 새로운 고객 경험을 만드는 일에 적극적인 이유이기도 합니다. 오프라인 공간이 단순히 물건을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고객들의 제품, 브랜드 경험을 극대화하는 공간으로 진화하는 셈입니다. 옴니 쇼핑에서는 언제 어디서든 편하게, 원하는 상품을 구매하도록 하는 게 가장 중요한데요, 아마존의 오프라인 매장은 천장에 설치된 카메라로 제품과 고객 동선을 추적하고, 이미지 센서로 소비자가 어떤 제품을 들었다 놓았는지 또 구매했는지 추적하며, 가상의 쇼핑 카트와 자동결제 기술 ‘저스트 워크 아웃(Just Walk Out)’으로 계산대에서의 기다림을 없앴죠.

이러한 새로운 오프라인 경험은 실제 매출로도 연결되는데요, 《하버드 비즈니스 리뷰》에 따르면 옴니 채널 고객은 온라인이나 오프라인 단일 채널만 이용하는 고객보다 오프라인에서는 4퍼센트, 온라인에서는 10퍼센트 더 많이 지출합니다. 또 옴니 채널에서는 단일 채널 대비 재구매 확률도 23퍼센트 더 높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아마존은 여기에 오프라인을 유통 거점 삼아 유료 회원들에게 당일 무료 배송, 회원 전용 할인 등을 제공해 충성도 높은 고객을 더 많이 유치했죠.
 

여전히 강력한 오프라인

미국 이커머스 시장 규모 전망 ©eMarketer
아마존이 오프라인 실험을 계속해 온 이유는 또 있습니다. 아직 미국 내 전체 소매 시장에서 오프라인이 차지하는 비중이 훨씬 더 높다는 겁니다. 즉, 대부분의 쇼핑은 여전히 오프라인 매장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마케팅 시장 조사 업체 이마케터(eMarketer)가 지난해 발표한 결과에 따르면 올해 기준 미국 전자상거래가 전체 소매 매출에서 차지하는 매출 비중은 14.4퍼센트에 불과합니다. 2024년에도 18.1퍼센트로 채 20퍼센트를 넘기지 못한다는 전망이죠. 이보다 앞선 2019년, 글로벌 컨설팅 기업 AT커니는 북미 지역 Z세대의 81퍼센트가 오프라인에서의 쇼핑을 선호한다는 조사 결과를 내놓기도 했었죠. 아마존이 제아무리 온라인 시장의 일인자라도 시장 규모 측면에서 오프라인을 놓칠 수 없는 겁니다.

이는 아마존의 공격적인 PB 상품 개발과도 맞닿아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취약한 오프라인 소매 시장을 노리기 위해서는 자체 개발 상품이 많을수록 유리하니까요. 우리나라에서는 신세계그룹 이마트의 ‘노브랜드(Nobrand)’가 대표적인 사례죠. 아마존은 출판물 외에도 의류, 잡화, 화장품, 헬스케어, 식음료, 강아지 사료, 가전 등 유통 전체 분야로 사업을 확대했습니다. PB 상품의 장점을 최대한 활용하기 위해서인데요, PB 상품은 납품 업체를 거치지 않아 유통비가 적은 만큼 저렴한 가격으로 질 좋은 상품을 내놓을 수 있습니다. 또 해당 기업의 매장 혹은 플랫폼에서만 살 수 있어 고객 유치에도 유리하죠.

무엇보다 이커머스 플랫폼으로서는 고객의 구매 데이터를 활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PB가 매력적입니다. 고객 데이터를 바탕으로 타기팅을 보다 명확하게 할 수 있고, 구매 데이터를 기반으로 제품의 맞춤형 마케팅 전략도 세울 수 있죠. 아마존은 지난 2018년 4분기에만 7개의 PB를 론칭했고, 150개 브랜드와는 아마존에서만 상품을 판매하도록 독점 계약을 맺었습니다. 당시 아마존이 직접 출시한 상품의 브랜드 종류만 135개였고, 독점 계약을 맺은 브랜드까지 합치면 450여 개에 달했습니다. 제품 종류는 2만여 개에 달했죠. 결국 이러한 확장 전략으로 온라인 시장 점유율을 빠르게 끌어올리는 동시에 오프라인 진출의 토대를 마련할 수 있었던 셈인 겁니다.
 

아마존을 향한 칼날

아마존닷컴에서 고객 평점 4점 이상인 제품들이 아마존 포스타에 진열돼 있다. ©Amazon
그런데 최근 아마존의 PB 사업에 빨간불이 켜졌습니다. 특정 기업의 독과점을 우려하는 미국 사회 내 분위기가 확산하고 있는 건데요, 구글, 애플, 페이스북, 아마존 등 이른바 ‘GAFA’라 일컫는 거대 플랫폼 기업들에 대한 불공정 독점 규제가 가시화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15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컬럼비아대학교 로스쿨 교수인 32세 리나 칸을 최연소 연방거래위원회(FTC) 위원장으로 임명했는데요, 빅테크 기업의 독점 문제에 비판적인 인물로 ‘아마존 킬러’라는 별명까지 있습니다. 그의 2017년 예일대학교 로스쿨 졸업 논문이 〈Amazon's Antitrust Paradox(아마존의 반독점 역설)〉이었죠.

여기에 24일 미국 하원 법사위원회는 공룡 기업들의 시장 지배력 억제를 위한 플랫폼 독점 종결법을 가결했습니다. 플랫폼이나 포털 검색 결과에서 자사 제품 혹은 광고를 우선 노출하는 등 부당하게 우위를 점해왔다는 그동안의 지적이 받아들여진 셈입니다. 구글은 온라인 검색 광고, 애플은 모바일 운영 체계 및 앱스토어, 페이스북은 SNS 시장에서 독점력을 발휘한다는 판단인데요, 아마존은 온라인상거래에서의 독점을 지적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지적이 처음 있는 일은 아닙니다. 해당 빅4 테크 기업에 대한 반독점 조사는 2019년 6월부터 본격적으로 시작됐는데요, 지난해 7월에는 하원 법사위가 반독점 청문회에 애플의 팀 쿡, 구글의 순다르 피차이, 페이스북의 마크 저커버그 그리고 아마존의 제프 베조스를 소환해 장장 6시간 동안 압박하며 반독점법 개정 가능성을 시사하기도 했었습니다. #미국 하원 플랫폼 독점 종결법

해당 법은 플랫폼 업체가 독점을 유지하는 특정 사업에서 아예 손을 떼도록 할 만큼 강도가 높습니다. 다소 급진적인 성격을 지닌 만큼 최종 통과 여부에는 의문을 제기하는 시각도 있지만, 만약 이 법안이 현실화되면 아마존은 아마존닷컴에서 앞으로 자사 PB 제품을 판매하지 못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면 PB 상품을 판매할 오프라인 판매처 마련이 더욱 중요해질 수밖에 없겠죠. 온라인 고객 데이터를 적용해 새로운 오프라인 매장 경험을 제공하겠다는 아마존의 명분 이면에는 반독점 규제에서 살아남기 위한 생존 전략도 깔려 있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아마존의 오프라인 매장 확대 배경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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