뭐라도 해야지
 

9월 첫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북저널리즘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월요일의 화제는 〈D.P.〉였습니다. 〈D.P.〉는 지난주 금요일 8월 27일에 공개된 넷플릭스 드라마입니다. 김보통 작가의 웹툰이 원작입니다. 탈영병을 추격하는 헌병대 군무이탈체포조의 이야기입니다. D.P는 탈영병 추격자를 뜻하는 Deserted Pursuit의 약자죠. 주말 동안 〈D.P.〉를 정주행한 에디터들이 여럿이었습니다. 하나같이 한 편만 보려고 했는데 여섯 편을 한달음에 봤다고 입을 모았죠. 우연찮게도 모두가 군필자였습니다. 〈D.P.〉의 탈영병들한텐 저마다의 사연이 있습니다. 평범한 20대 청년들은 징집당해 군복을 입자 마자 부조리한 군대 문화에 무방비로 노출됩니다. 개인의 힘으론 어쩔 수 없는 조직의 논리 앞에서 무력할 뿐이죠. 〈D.P.〉에서 그려지는 탈영은 군무이탈이 아니라 생존본능에 가깝습니다. 살기 위해 죽기를 선택하는 겁니다. 북저널리즘의 군필자들도 드라마를 보다가 울음이 터지는 걸 어쩌지 못했다고 고백했습니다. 아마도 군시절의 개인적인 경험들이 떠올랐기 때문이겠죠. 

북저널리즘은 대한민국 군대의 문제점들을 지속적으로 지적해왔습니다. 지난 6월 11일자 데일리 〈군은 가해자부터 지켰다〉에선, 군인권센터 방혜린 팀장과의 인터뷰를 통해 성폭력을 은폐하며 2차 가해를 유발하는 군조직의 일그러진 속성을 해부했습니다. 지난 7월 22일자 데일리 〈군대를 바꿔라〉에선, 최정예 스텔스 구축함에서 코로나가 장병들을 급습하는데도 문제해결을 기피하고 상부보고도 회피한 군리더십을 비판했습니다. 북저널리즘이 군문제에 꾸준한 관심을 기울이는건 이것이 단지 군내부의 문제로 끝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대한민국은 징병제 국가인 탓에 군대와 사회가 직결돼 있습니다. 군의 모순은 고스란히 사회의 모순으로 전이됩니다. 〈D.P.〉를 연출한 한준희 감독도 인터뷰에서 “군대 이야기이기도 하지만 세계 어디서나 공감할 수 있을만한 보편적인 인간 관계의 이야기다”라며 “군대는 거대한 사회의 축소판”이라고 설명했죠. 

솔직히 이번주 데일리에서 어떤 식으로든 〈D.P.〉 이야기를 깊이 다뤄볼 작정이었습니다. 워낙 화제작이니까요. 게다가 북저널리즘의 영역이 정치와 경제와 테크와 금융 같은 경성 이슈 뿐만 아니라 영화나 드라마나 음악 같은 연성 이슈까지 아우른다는걸 독자 여러분들게 설명할 수 있는 타이밍이라고 봤거든요. 사실 레전드리급 앨범으로 평가 받는 카니예 웨스트의 신작 〈돈나〉도 관심사 가운데 하나였습니다. 결과적으론 〈D.P.〉도 <돈나>도 다른 이슈들한테 밀렸습니다. 미디어 비즈니스의 패러독스 가운데 하나가 늘 손은 모자란데 다룰 이슈는 넘친다는 겁니다. 북저널리즘도 미디어 패러독스에서 자유롭진 못하죠. 

프라임 레터에서 〈D.P.〉 이야기를 대뜸 꺼낸 이유입니다. 에디터들의 웰메이드 데일리보단 못하겠지만, 프라임 레터로나마 독자 여러분과 〈D.P.〉 이야기를 나누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7월 넷째 주 프라임 레터 〈그들만의 리그〉에서 국방부 시계 이야기를 다뤘던 터라 잠시 주저했습니다. 군대에서 축구 한 이야기만 나오면 채널부터 돌리고 보는 독자분들도 계시다는걸 아니까요. 그만큼 군은 개인적 경험에 따라 눈물을 쏟게 만들수도 하품이 나게 만들 수도 있는 극과 극 이슈입니다. 그래서 다음 주에 북저널리즘이 깊이 다룰 인앱강제결제방지법이나 고승범 금융위의 가계부채전쟁 이야기를 미리 해볼까도 고민했습니다. 결국 최종 선택은 〈D.P.〉였네요. 저 역시 어쩔 수 없는 대한민국 육군 병장 만기전역자인거죠. 
“뭐라도 해야지.” 〈D.P.〉의 마지막 대사입니다. 저마다 울음 포인트가 달랐겠지만 저를 눈물 흘리게 만든건 바로 이 대사였습니다. 모두가 군이 바뀌어야 한다는 걸 압니다. 장군도 장교도 병사도 다 압니다. 몰라서 안 바뀌는게 아니죠. 단지 다들 군대는 절대 안 바뀐다고 믿는 겁니다. “원래 군대는 이래.” 군복무 중에 가장 많이 듣게 되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이 안 바뀌면 내가 바뀌는 수밖에 없습니다. 개인의 선택은 셋 중 하나입니다. 가해자가 되거나 방관자라는 이름의 암묵적 동조자가 되거나 아니면 피해자가 되는 겁니다.〈D.P.〉를 보며 군필자들이 눈물을 흘리는 건 그들이 결국 셋 중 하나가 됐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대한민국에선 아무도 군폭력의 굴레에서 완전히 자유로울 수가 없습니다. 원래 군대는 이래라는 말은 원래 세상은 이래라는 말로 이어집니다. 군대가 바뀌지 않았다는걸 알아버린 군필자들은 세상도 바뀌지 않는다고 생각해버립니다. 그렇다면 군대에서와 마찬가지로 세상에서도 선택지는 3가지 뿐입니다. 가해자가 되거나 방관자가 되거나 피해자가 되거나. 악순환입니다. “뭐라도 해야지.” 피해자의 마지막 말은 마지막 비명이지만 마지막 희망입니다. 누구라도 뭐라도 좀 하지 않으면 정말 아무것도 바뀌지 않으니까요. 누구라도 뭐라도 한다면 희망이 생깁니다. 

뭐라도 했었습니다. 뻔하게도 우리 부대에도 가해자가 있었습니다. 그나마 다행히도 〈D.P.〉의 가해자처럼 악마는 아니었습니다. 대충 내무반의 동네 건달 수준이었죠. 저는 방관자였습니다. 피해자로 전락하지 않으려고 노력하는 소시민이었죠. 그래도 언젠간 무언가는 바꿔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이윽고 내무반 건달이 전역을 앞둔 시기였습니다. 내무반의 권력이 교체됐죠. 저는 병장이 됐고 견장을 달았습니다. 권력을 쥐자마자 건달과 충돌했습니다. 말년 건달은 내심 바라는 게 있었습니다. 부대 앞 가게에서 파는 20만 원 상당의 기념품이었습니다. 당시 사병 병장 월급이 수천 원이었습니다. 20만 원 상당의 기념품은 내무반원 전원이 갹출을 해야 겨우 살 수 있었습니다. 값비싼 기념품은 부대의 오랜 전통이었습니다. 앞서 전역한 병장들도 모두 받아서 나갔죠. 저는 내무반의 최고참으로서 건달만큼은 이걸 받을 수 없다고 선언했습니다.

사실 기념품은 단순한 기념품이 아니었습니다. 일종의 면죄부였죠. 부대원들이 돈을 모아서 사 온 선물은 피해자가 가해자한테 건내는 화해의 표식이었던 겁니다. 가해자는 반성도 사죄도 하지 않았는데 피해자가 먼저 용서하고 화해를 빌게 만드는 모순된 전통이었죠. 그렇게 군대는 폭력을 정당화해왔던 겁니다. 화해를 강요해왔던 겁니다. 결국 건달은 기념품을 받지 못했습니다. 아무도 건달과 화해할 생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건달은 용서 받지 못한 자가 됐습니다. 잠시나마 저 역시 뭐라도 했다고 생각했습니다. 무언가 바뀌었다고 여겼죠. 

아니었습니다. 견장을 단 분대장으로서 이번 기회에 기념품을 상납하는 전통 자체를 없애버리려고 했습니다. 일단 저부터 받지 않겠다고 선언했죠. 저는 내무반원 전원이 쉽게 찬성할거라고 여겼습니다. 그때 저는 너무 어렸습니다. 사람을 몰랐습니다. 세상에 어두웠습니다. 건달이 받는 건 기꺼이 반대했던 내무반원들은 자신들은 받아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이건 전통을 넘어 권리라고 여겼던 겁니다. 그동안 갹출했던 기념품비를 겨우 보상 받을 소중한 기회를 빼앗긴다고 여겼죠. 이윽고 저도 전역을 앞둔 말년 병장이 됐습니다. 더 이상 내무반 일에 왈가왈부 할 수 없는 아저씨가 됐죠. 건달을 밀어낼 땐 환호했던 내무반원들은 기념품을 두곤 반기를 들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기념품 전통은 제 눈 앞에서 보란듯이 부활했습니다. 부대에서 기념품을 받지 못한 채 전역한 병장은 단 2명 뿐이었습니다. 건달과 저였죠. 뭐라도 했지만 근본적으로 바뀐 건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기념품의 악순환을 폭력의 악순환으로 바꿔 이해해도 크게 틀리지 않습니다. 피해자들은 권력을 쥐는 순간 기꺼이 가해자가 돼서 자신들이 받은 폭력을 순환시킵니다. 그걸 잠시나마 끊어낼 순 있습니다. 끊어졌던 폭력은 이내 다시 엉겨붙고 이어집니다. 군개혁이 거듭 실패를 거듭하는 건 이것 때문입니다. 군은 국가의 무력을 수행하는 집단입니다. 무력을 빈틈없이 수행하기 위해 군은 조직을 수직서열화시킵니다. 수직화된 군을 움직이는 진정한 동력은 전투기도 잠수함도 탱크도 아닙니다. 군인 개개인끼리의 권력 관계입니다. 계급과 군번으로 촘촘하게 계층화된 개개인은 미세한 권력의 유불리로 상대방을 조종합니다. 그걸 군은 명령이라고 부릅니다. 개인도 이내 권력에 길들여집니다. 상대가 약하면 물고 강하면 짖는 권력의 개가 됩니다. 개의 날. 바로〈D.P.〉의 부제입니다. 

어느 부대 무명 분대장이 잠깐 시도했던 하찮은 군개혁은 그렇게 허무하게 실패했습니다. 그때의 실패는 많은 교훈을 남겨줬습니다. 사람이란 어떤 존재인지 깨닫게 해줬죠. 인간의 본성을 들여다보는 습관을 갖게 됐습니다. 사람이 만든 조직들은 왜 하나 같이 이딴 모습일 수밖에 없는지도 통찰하게 해줬습니다. 이때 생긴 인간 군상에 대한 흥미와 사람 집단에 대한 관심이 제가 저널리스트가 되는 동기가 됐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적어도 저널리스트로서 인간이 빚은 기업 조직을 깊이 취재하게 만든 동기가 된 건 분명합니다. 군대와는 대비되는 개방적인 리더와 수평적인 조직은 도대체가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너무 궁금해졌거든요. 이것만 봐도 확실히 군대와 사회는 연결돼 있습니다.

기묘하게도 실패의 기억과 깨달음은 어차피 안 바뀐다는 좌절보단 오히려 뭐라도 해야겠다는 용기를 줬습니다. 군대가 그러니 세상도 그러리라는 실망보단 군대는 달리지지 않아도 세상은 달라질 수 있다는 희망을 부단히 찾게 됐죠. 무슨 근거가 있었던 건 아닙니다. 단지 세상마저 군대 같으면 세상이 너무 재미 없을 것 같았거든요. 그런 근거 없는 희망은 작지만 터무니 없는 믿음으로 진화했습니다. 군대는 원래 그래도 세상은 원래 그러지 않을 수도 있다는 근거 없는 낙관이 생겨버린 겁니다. 세상을 바꿀 생각을 가진 사람들과 올바른 목적을 갖고 제대로 방법을 찾는다면 뭐라도 해볼 수 있다는 낙천적인 신념 같은 게 생겼습니다.

물론 현실과 사회와 세상의 벽은 언제나 높았습니다. 군대와 도긴개긴이었죠. 나이브하고 치기 어리고 낭만적인 시도들은 정말 백만 가지 이유로 번번이 실패를 거듭했습니다. 그럴 때도 낙천적인 믿음만큼은 별로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뭐라도 해야 한다는 생각이 전혀 흔들리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뭐라도 하면 무언가 쉽게 바뀔거라서가 아닙니다. 어차피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할 게 없었으니까요. 세상이 이렇다고 뭐라도 하지 않으면 아무것도 시작되지 않고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는다는걸 잘 아니까요. 뭐라도 하는 순간 세상에 희망이 생겨납니다. 희망은 당장은 아무것도 해결해주지 못하지만 결국엔 세상 모든 것의 해결책이 됩니다. 군대는 원래 그럴지도 모릅니다. 세상은 그렇지 않을 수 있습니다. 지금 우리가 뭐라도 하면 됩니다. “뭐라도 해야지.”

P.S.
다음주 프라임 레터에선, 군대에서 축구한 이야기를 해볼까요?! 헤딩하기가 싫어서 높은 로빙볼을 발로 찼다가 중대장의 얼굴을 가격해버린 이야기입니다. 
프라임 레터는 매주 목요일 오후 5시 프라임 멤버분들에게만 먼저 보내 드리는 레터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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