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 동안 프로-초이스(pro-choice)였지만, 지금은 프로-라이프(pro-life)다”.
2019년 3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당히 밝힙니다. 1999년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난 강력한 프로-초이스 입장이다'라는 발언 이후 10여 년간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였으나, 2011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변화했음을
알립니다.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적 발언이었을까요. 이후 10년간 트럼프는 임신 중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프로-라이프’임을 굳건히 밝히고 있죠. 문현아는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프로-초이스 입장에서 태아의 생명을 지지하는 프로-라이프 입장으로 전환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임신 중절 법안이 미국 선거의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임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사회학자 지아드 문손은 “미국 건국 초창기에 임신 중절은 드물지도, 불법이지도, 논란거리가 되지도 않았다”라고 밝힙니다.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은 언제부터 의료가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지게 되었을까요. 사회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묵인의 대상이 되던 임신 중절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언제부터 논의의 대상이 된 걸까요. 출산적 정의(reproductional justice), 태아 인격체론(personhood of fetus) 같은 용어들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임신 중절을 범죄화하는 인식이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1850년 미국 의사 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가 태아를 ‘살아있는 존재’로 상정하면서부터입니다. 이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미국 여성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결과, 임신 중절은 표심을 움직이는 좋은 정치 안건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최근 텍사스 임신 중절 금지법을 통과시킨 공화당도, 한때 여성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며 임신 중절을 옹호하는 시절이 있었다는 점인데요. 1967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로널드 레이건은 ‘임신 중절은 여성 당사자와 의사의 전적인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펼치며 임신 중절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비록 불과 몇 년 뒤 자신의 임신 중절법 서명은 ‘
실수’였다고 밝히며 새로운 표심을 얻었지만요. 프로-초이스에서 프로-라이프의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닌 거죠.
여성 운동가들의 등장으로 프로-초이스가 1970년대에 얼굴을 내비친 것은 잠깐, 1980년 대선 이후 레이건 대통령의 프로-라이프 시대가 시작됩니다. 민주당은 ‘조건 없는 임신 중절권’을 주장한 반면, 공화당은 ‘임신 중절에서 태아의 인권은 배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결과는 복음주의 기독 단체의 지지를 얻은 공화당의 승이었고, 임신 중절 이슈는 프로-라이프 진영이 장악하였습니다. 임신 중절법이 대선의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안건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임신 중절 법안은 늘 대선과 밀접한 진영 논리에 좌우되어 왔습니다. 이후에도 임신 중절법은 프로-초이스와 프로-라이프 사이를 바쁘게 뛰어 다닙니다.
#BansOffOurBodie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