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ansOffOurBodies

9월 8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9월 1일, 미국 텍사스에서 임신 중절 금지법이 강화되었다. 여성의 목소리는 어디 있는가. 여성의 신체는 왜 쉽게 정치적 도구가 되는가.

지난 5월 텍사스 주청사 앞, 임신 중절 금지법이 통과된 이후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Getty Image
지난 9월 1일, 미국 텍사스에서 임신 중절 금지법이 발효되었습니다. 일명 ‘심장박동법(Heartbeat Bill)’으로도 불리죠. 임신 6주, 통상적으로 태아의 심박이 감지되는 시기부터의 임신 중절을 금지한다는 의미에서입니다. 많은 여성이 임신 20주가 되기까지 임신을 인지하지 못한다는 점을 고려한다면, 사실상 대부분의 임신 중절을 금하는 법안입니다.

해당 법안이 통과된 것은 지난 5월 19일입니다. 공화당 출신 그레그 애벗 주지사는 트위터에서 ‘이제 무참한 낙태로부터 태아들의 생존권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자랑스럽게 연설했죠. 실적용 시점인 9월이 오기까지, 아무도 텍사스를 막지 못했습니다. 조 바이든 대통령은 해당 법안을 두고 ‘반미국적’이라 표현하며 강한 반대 입장을 표명했으나, 대법원은 묵묵부답이었습니다. 젠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9월 2일 기자회견에서 “바이든은 왜 임신 중절을 지지하는가”라는 남성 기자의 질문에 “바이든은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기 때문이다. 당신은 한 번도 임신해본 적 없지 않은가”라는 발언을 해, 오히려 논란이 되기도 했죠.

임신 중절 관련 법안은 지난 60년간, 미국 사회에서 꾸준히 등장한 단골 이슈였습니다. 실제로 오늘날 미국의 45개 주 모두 각각의 임신 중절 관련 법안이 마련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유독 이번 텍사스 임신 중절 금지법이 주목받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우버를 비롯한 기업들은 왜 이번 안건에 반발하는 것일까요. 임신 중절은 왜 정치로부터 자유롭지 못한 걸까요. 우리의 몸에 대한 우리의 의견은 임신 중절 찬성과 반대, 단 두 개의 목소리로 나뉠 수 있을까요.
 

텍사스, 방아쇠를 당기다

2020년 미국 45개 주를 분석한 결과, 29개 주는 임신 중절권에 부정적인 반면 16개 주는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다. /자료 : Guttmacher Institute
텍사스를 비롯해 미국 전역에는 이미 임신 중절 제한법이 존재했습니다. 각 주별로 내용과 정도의 차이를 보이지만요. 여성 이슈 전문 조사 기관 굿마허 인스티튜트(Guttmacher Institute)가 2020년 12월 기준 미국 45개 주 대상으로 각 주의 임신 중절 관련 법안을 분석한 결과, 29개 주는 부정적인 입장을, 16개 주는 지지하는 입장을 보였습니다. 그중에서도 아칸소, 루이지애나, 인디아나(매우 부정적) 등 텍사스(부정적)보다 임신 중절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인 지역들을 보면, 이번에 이슈가 된 텍사스만이 유일한 보수 입장을 취하는 건 아닐 텐데요.

6주 이후의 임신 중절을 금지하는 것 또한 텍사스가 처음은 아닙니다. 조지아, 미시시피, 켄터키, 오하이오주 또한 태아의 심장 박동이 초음파에 감지되는 시점부터는 임신 중절을 금한다는 법안을 통과시킨 바 있습니다. 하지만 다들 위헌 논란을 꺼리며 법안이 통과된 뒤에도 시행은 미루어 왔었죠. 이번 텍사스 임신 중절 금지법이 세계적인 논란이 된 것은, 다들 미뤄만 오던 법안의 방아쇠를 당긴 것이 텍사스였기 때문입니다.
 
이번 텍사스의 임신 중절 금지법은 ‘로 대 웨이드 판례(Roe v. Wade)’에 대한 직접적인 반발입니다. 해당 사건은 1973년 미국 연방 대법원에서 임신 중절 합법화를 결정한 사건이자, 이후 50년간 미국 임신 중절의 위헌 이슈를 다룰 때마다 중요한 판례로 적용되어 왔습니다. 여성의 임신 중절 선택권을 처음으로 헌법상의 권리로 인정한 사건이죠. 노스다코타, 플로리다 등 여러 주가 임신 중절 법안을 통과만 시켜놓고 막상 시행에 옮기진 못한 것도 이 법안 때문이죠. 

그러나 텍사스를 계기로, 임신 중절 금지법을 묵혀온 다른 주들에게도 기회가 찾아왔습니다. 오래전 마련되었던 방아쇠 법[1]을 발효시킬 기회죠. 지난 7월 대법원에게 ‘로 대 웨이드 판례’ 기각을 요청한 미시시피 주에게, 텍사스의 임신 중절 금지법 시행은 더욱 희소식입니다. 말하자면 위헌이 두려웠던 이들에게 텍사스는 좋은 본보기가 되었습니다.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사회

지난 9월 1일 텍사스 주청사 앞, 임신 중절 금지법에 반대하는 시민들이 시위를 벌이고 있다. ©Getty Image
이번 법안에서 가장 문제시되는 부분은 ‘조력자(who aids or abets)’ 처벌 조항입니다. 임신 중절 당사자뿐 아니라, 임신 중절 유도 및 비용 지급, 수술 시행을 비롯해 의도적이든 아니든 그에게 도움을 준 어떤 조력자도 처벌된다는 것이죠. 수술을 진행한 의사도, 의료 상담을 도운 상담사도, 임신 여성을 병원까지 태워준 택시 기사도 처벌 대상이 됩니다. 이에 세계적인 모빌리티 기업 우버(Uber)와 리프트(Lyft)가 해당 법안에 반발하며 ‘운전자 법적 방어 기금’을 만들어 여성의 법률비용을 충당하겠다는 발언을 하여 이슈가 되기도 했죠.

또 다른 충격은 법안의 단속 방식에 있습니다. 해당 법안에선 ‘임신 중절을 행하거나 도와주는 사람을 신고할 경우, 건당 최소 1만 달러의 포상금을 수여 한다’는 조항을 확인할 수 있습니다. 특별한 권한이 없더라도, 임신 중절 당사자와 아무런 관련이 없더라도 불특정 다수가 신고할 수 있는 제도죠. 법안 발효 이후, 익명으로 즉각적인 신고까지 가능한 웹사이트까지 만들어졌습니다.

이쯤 되면 공화당이 법안을 만들고 단속하는 방식에 자주 등장하는 패턴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테네시에선 이미 ‘트랜스젠더와 화장실을 같이 쓰게 하는 학교는 학생, 교사, 교직원들이 고소할 수 있다’는 법이 시행되고 있습니다. 플로리다에선 ‘트랜스젠더 선수가 운동 경기에 참여할 경우 학생들이 학교를 고소할 수 있다‘’는 법이 있습니다. 이제 텍사스에선 누구나 임신 중절 관계자를 익명으로 고소할 수 있습니다. 바이든 대통령의 비유에 따르면, ‘자경단(vigilante system)’같은 법안입니다.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구조가 법제화되었습니다.
 

임신은 언제부터 정치의 영역이 되었나

How America politicised abortion ©The Economist
“10년 동안 프로-초이스(pro-choice)였지만, 지금은 프로-라이프(pro-life)다”.

2019년 3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가 당당히 밝힙니다. 1999년 한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난 강력한 프로-초이스 입장이다'라는 발언 이후 10여 년간 일관된 입장을 고수하였으나, 2011년 인터뷰에서 자신의 가치관이 변화했음을 알립니다. 2012년 대선을 염두에 둔 전략적 발언이었을까요. 이후 10년간 트럼프는 임신 중절에 대한 자신의 입장은 ‘프로-라이프’임을 굳건히 밝히고 있죠. 문현아는 ‘여성의 선택을 존중하는 프로-초이스 입장에서 태아의 생명을 지지하는 프로-라이프 입장으로 전환한다는 트럼프의 발언은, 임신 중절 법안이 미국 선거의 ‘득표’에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변수임을 드러낸다’고 말합니다.

사회학자 지아드 문손은 “미국 건국 초창기에 임신 중절은 드물지도, 불법이지도, 논란거리가 되지도 않았다”라고 밝힙니다. 그렇다면 임신과 출산은 언제부터 의료가 아닌 정치의 영역에서 다뤄지게 되었을까요. 사회에서 관심을 불러일으키기는커녕 오히려 묵인의 대상이 되던 임신 중절과 여성의 자기 결정권은 언제부터 논의의 대상이 된 걸까요. 출산적 정의(reproductional justice), 태아 인격체론(personhood of fetus) 같은 용어들이 처음부터 있었던 건 아닐 텐데 말이죠.

임신 중절을 범죄화하는 인식이 사회에 퍼지기 시작한 것은 1850년 미국 의사 협회(AMA, American Medical Association)가 태아를 ‘살아있는 존재’로 상정하면서부터입니다. 이에 대한 반발이 20세기 미국 여성 운동으로 이어지게 된 결과, 임신 중절은 표심을 움직이는 좋은 정치 안건으로 자리 잡기 시작했습니다. 놀라운 점은 최근 텍사스 임신 중절 금지법을 통과시킨 공화당도, 한때 여성 개인의 자유를 주장하며 임신 중절을 옹호하는 시절이 있었다는 점인데요. 1967년 캘리포니아 주지사 시절 로널드 레이건은 ‘임신 중절은 여성 당사자와 의사의 전적인 판단에 따라야 한다’는 의견을 펼치며 임신 중절 관련 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비록 불과 몇 년 뒤 자신의 임신 중절법 서명은 ‘실수’였다고 밝히며 새로운 표심을 얻었지만요. 프로-초이스에서 프로-라이프의 입장으로 돌아선 것은 트럼프가 처음이 아닌 거죠.

여성 운동가들의 등장으로 프로-초이스가 1970년대에 얼굴을 내비친 것은 잠깐, 1980년 대선 이후 레이건 대통령의 프로-라이프 시대가 시작됩니다. 민주당은 ‘조건 없는 임신 중절권’을 주장한 반면, 공화당은 ‘임신 중절에서 태아의 인권은 배제되었다’고 주장합니다. 결과는 복음주의 기독 단체의 지지를 얻은 공화당의 승이었고, 임신 중절 이슈는 프로-라이프 진영이 장악하였습니다. 임신 중절법이 대선의 결과를 좌우하는 핵심 안건은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대로, 임신 중절 법안은 늘 대선과 밀접한 진영 논리에 좌우되어 왔습니다. 이후에도 임신 중절법은 프로-초이스와 프로-라이프 사이를 바쁘게 뛰어 다닙니다.
 

#BansOffOurBodies

텍사스 임신 중절법 반대 캠페인 ‘#BansOffOurBodies’ 캡쳐 © 인스타그램
레이건은 태아의 생명권을 다룬 에세이 <임신 중절과 국가적 양심(Abortion and the Conscience of the Nation)>을 출판했습니다. ‘임신 중절에 대한 연방정부 차원의 재정지원’은 오바마 케어의 핵심이었습니다. 트럼프까지 ‘프로-라이프’를 외치는 시대가 되었고, 질세라 바이든은 지난 9월 1일 텍사스 임신 중절 금지법을 두고 반대 성명을 발표했습니다. 미국 임신 중절법은 정치적 변곡점으로부터 독립되어 온 적 없습니다. 늘 정치적 이슈로부터 자유롭지 못했고, 여전히 정치적입니다.

오늘날 미국의 45개 주 모두 임신 중절 관련 법안을 시행 중이고, 그중 38개 주는 ‘태아 살인 금지법’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그 속에 일반 여성의 목소리는 얼마나 섞여 있나요. 유산 후 태아 살인죄로 기소되는 여성들이 있습니다. 생후 1분을 버티지 못할 태아를 임신한 여성들도 있습니다. 이들을 비롯해 임신과 임신 중절의 모든 과정에서 망설이는 여성들에게 필요한 것은 프로-초이스도, 프로-라이프도 아닌 그들과 함께 고민하는 현실적인 제도입니다.

한 텍사스 고등학교의 졸업생 대표가 ‘텍사스 임신 중절 금지법은 내 몸에 대한 전쟁’이라며 목소리를 냈습니다. 한 LA 예술가는 ‘텍사스는 여성이 바이러스보다 자유롭지 못한 곳’이라며 마스크 의무화를 반대하는 한편 임신 중절을 추진하는 텍사스 정부를 저격했습니다. 1천 명이 넘는 사람들이 여성의 결정권을 지지하는 ‘#BansOffOurBodies’ 캠페인에 온라인으로 참여했고 이는 오프라인 시위로도 이어지고 있습니다. 두 갈래 정치인들의 목소리에선 들을 수 없던 진심을 이들의 목소리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신체적 권리를 주장하는 여성과 생명을 존중하는 사람들, 이들을 대립 구도로 몰고 가는 건 언제까지 계속될까요. 임신 중절의 찬성과 반대를 구분하는 것이 해당 이슈를 다루는 출발점이어야 할 필요는 없습니다. 임신과 출산에 필요한 것은 사회적 제도의 마련이지 정치인들의 탁상공론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여성의 몸이 텍사스의 정치 담론으로부터 자유로워져야 하는 이유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텍사스 임신 중절 금지 법안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여성은 출산에서 어떻게 소외되는가》, 《일할 수 없는 여자들》, 어떻게 유리천장을 깨부술 것인가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1]
Trigger Law. 실행 불가능한 법률이지만, 상황의 주요 변화가 발생할 경우 집행 가능성이 있는 법률을 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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