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가 핑크유니버스의 새로운 주인이 될 것인가

9월 9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이수만의 SM엔터테인먼트를 놓고 카카오와 CJ ENM과 네이버가 서로 으르렁으르렁대고 있다. 콘텐츠 비즈니스의 주도권이 달렸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지난 9월 1일, tvN 프로그램 〈유 퀴즈 온 더 블럭〉에 소녀시대가 출연했습니다. 데뷔 14주년을 기념하기 위한 자리였는데요, 8명이 완전체로 방송에 출연한 건 5인조로 개편되며 사실상 해체한 2017년 이후 처음이었습니다. 많은 사람이 숙녀가 된 소녀들의 이야기를 들으며 그래, 그때 그랬었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소녀들의 라떼 토크에 공감한 것은 이들의 성공 스토리가 한국 대중문화의 신화의 순간이자 신세계였고, 우리 모두 그 순간을 직접 경험한 목격자들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한편으로 소녀시대의 성공 서사는 SM엔터테인먼트라는 기업이 엔터 왕국으로 성장하는 과정과 궤를 같이 합니다. 소녀시대의 성공은 2010년대에 정점을 맞이했는데요, 일본 음악 시장을 정복하고 한류가 세계로 뻗어 나가 하나의 문화 현상으로 자리잡게 되는 그 시기에 SM은 그야말로 맹활약 했습니다. 이날 방송에서 멤버들이 들려준 이야기 중에 인상적인 부분이 있었습니다.

소녀시대가 〈다시 만난 세계〉로 데뷔할 때 군무 연습을 너무 철저하게 해서 정작 첫 방송에서는 긴장감보다 자신감이 넘쳤다는 말이나, 이수만 프로듀서가 자기 파트가 끝나고 각자 자리로 돌아가는 멤버들의 발걸음까지 직접 수정했다는[1] 얘기였습니다.
9월 4일자 〈유 퀴즈 온 더 블럭〉 ©tvN
엔터테인먼트는 여느 사업과 다른 독특한 특성을 지닌 분야입니다. 규격화할 수 없는 사람의 매력을 상품화하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지금은 누구나 아는 아이돌 공식인 ‘카메라를 삼킬 듯 쏘아보는 강렬한 시선’이나 ‘성적 판타지를 불러일으키는 게슴츠레한 눈빛’ 등 대중에 어필하는 매력을 상품화하는 부분에서 이수만 프로듀서는 업계의 선구자였습니다. 제작자로서 그의 진짜 역량은 유명 스타를 발굴해 냈다는 결과에 있다기보다 대중의 판타지를 꿰뚫었다는 것, 또 그들이 무엇에 반응하는지 직감적으로 알고 그것을 무대 위에 구현해냈다는 것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소녀시대가 14주년을 맞이하는 동안 SM엔터테인먼트는 수많은 스타를 탄생시켰고, 그 이면에는 음악 프로듀싱부터 무대 위 사소한 동작 하나까지 코치해 온 이수만 프로듀서의 역량이 있었습니다.

그런 SM엔터테인먼트에서 지난 8월 미디어업계 관계자들을 깜짝 놀라게 한 충격적인 소식을 발표했습니다.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인 이수만 프로듀서가 보유 주식을 전량 매각한다는 내용이었습니다. 이제 SM은 이수만 프로듀서가 없는 시대를 맞이하는 것일까요? 그는 왜 지금 시점에 이런 선택을 한 것일까요?
 

미디어업계 지각 변동, 누가 꿀이 든 성배를 들게 될 것인가?

이수만 프로듀서는 SM엔터테인먼트의 최대 주주로 보유 지분은 18.7퍼센트입니다. 기타 지분 및 그가 100퍼센트 지분 소유하고 있는 라이크기획까지 흡수 합병 하면 총 20퍼센트 이상의 지분을 매각하는 셈입니다. 그가 보유한 지분 가치는 3000억 원 수준이며 시장의 예상 평가는 7500억 원에 달합니다. 미디어업계의 거물들이 인수에 뛰어든 만큼 실제 거래는 이를 훨씬 상회하는 수준에서 이뤄질 것이라는 게 지배적인 예상입니다.

과연 인수전의 승자는 누가 될까요? CJ ENM과 카카오엔터가 치열한 경쟁을 하고 있고, 미디어 시장의 큰손 격인 네이버가 뒤이어 합류했습니다. 현재 미디어 시장을 선도하고 있는 방시혁의 하이브도 인수를 제안한 것으로 알려졌지만, 동종 분야의 경쟁사에 가까운 두 회사가 손을 잡기는 어려울 것이라는 평가가 많습니다. 어느 쪽이 되었던 SM을 손에 넣는 자, 미디어업계의 절대 강자로 올라서게 될 것이 분명해 보입니다. 경영 악화 등의 기업 부실로 인한 매각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엔터, 미디어업계에서 SM의 힘은 여전히 강력합니다. 한 예로 이번 달 17일에 발표될 NCT 127(그룹 NCT의 다국적 유닛)의 음반은 예약 하루 만에 132만 장을 돌파했습니다. 자회사인 SM C&C는 강호동, 신동엽, 이수근 등 막강한 아티스트 라인업을 구축하고 있으며 〈아는 형님〉, 〈효리네 민박〉, 〈투유 프로젝트 - 슈가맨〉, 〈나만 믿고 따라와 도시어부〉, 〈놀라운 토요일〉 등 인기 프로그램을 제작하며 방송가에 지대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또한 자사 콘텐츠를 활용한 다양한 IP(지적재산권) 사업을 진행하며 안정적인 수입을 올리고 있습니다. 향후 인수전의 승자는 이 모든 것을 품에 안게 될 것입니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왜 그래?

그렇다면 이수만 프로듀서는 왜 이 시점에 SM 지분 매각을 결정했을까요? 다양한 분석이 있습니다. 가장 먼저 언급되는 것이 그의 나이입니다. 그는 올해 정확히 70세가 되었습니다. 급변하는 미디어 시장에서 엔터테인먼트 사업을 계속 이끌기에 너무 고령이라는 것입니다. 은퇴할 때가 되었다는 것이죠. 하지만 그는 지난해 메타버스 세계관을 결합한 컨셉의 걸그룹 에스파를 선보이며 다시 한번 시장을 선도했습니다. 에스파는 데뷔 초 멤버들의 사생활 논란으로 위기를 맞이했지만 〈Next Level〉을 기어이 올해 최고의 히트곡으로 만들면서 SM 불패 신화를 이어갔습니다. 나이는 들었지만 대중의 욕망과 판타지를 읽어내는 그의 감각은 전혀 늙지 않았습니다.

두 번째 이유는 경영권 세습이 어렵다는 점입니다. 그에게는 두 아들이 있는데, 그중 장남 현규씨가 SM엔터를 승계할 것이란 전망이 많았습니다. 실제로 경영권 승계 작업이 진행되기도 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현규씨는 2016년에 SM 산하 퍼블리싱업체 컬쳐테크놀로지그룹아시아의 사내이사로 취임했습니다. 하지만 경영 능력에 대한 의문이 내외부에서 지적되면서 그는 이사직에서 물러나게 됩니다. 경영권 세습이 어려운 것은 위에 언급한 엔터 산업의 특징과 관련이 있습니다.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프로듀서(제작자)의 역량이 기업의 가치와 직접적으로 연결됩니다. 재미에 대한 대중의 변화무쌍한 요구를 포착하는 동물적인 감각이 없으면 제대로 프로듀싱 할 수 없고 결국 회사의 가치가 떨어지게 됩니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가족에게 기업을 물려주기보다 외부에서 기업을 맡아줄 적임자를 찾아 나섰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이 그가 인생을 바쳐 이룬 SM을 존속하는 데 더 옳은 방법이라 판단한 것이 아닐까요?

세 번째 이유는 급변하고 있는 미디어, 엔터 산업의 구도입니다.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은 전 세계를 시장으로 전개되는 치열한 머니게임으로 번져가고 있습니다. 지금 엔터사들은 BTS를 비롯한 K-POP 스타들이 열어 놓은 세계 시장에서 지속적인 수익을 올리고 그것을 보다 항구적인 시스템으로 구축하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핵심은 IP 사업입니다. 이수만 프로듀서는 지난 6월 주최한 SM CONGRESS 2021에서 사업의 핵심 비전으로 음악, 웹툰, 영상 등 콘텐츠 전반에서 라이프스타일까지 아우르는 SMCU(SM Culture Universe)에 대한 구상을 밝힌 바 있습니다. 엔터사들은 기존의 아티스트 매니지먼트, 방송 제작을 넘어 다양한 아티스트 IP 사업을 전개하며 수익성을 극대화하고 있습니다. 캐릭터 사업을 비롯한 하이브의 팬 커뮤니티 ‘위버스’, SM의 프라이빗 메신저 서비스 ‘디어유 버블’  등의 플랫폼 사업이 그것입니다. SM이 아티스트 IP 사업을 통해 SM 컬쳐 유니버스를 연결하고자 한다는 점에서 이번 지분 매각은 이수만 프로듀서의 경영 일선 퇴진이 아니라 기업의 사업성을 더욱 확고히 하기 위해 파트너를 찾는 공개 오디션이라 보는 것이 정확할 것입니다.
5월 2일 인포맥스라이브 ©연합인포맥스


누가 가장 어울릴까?


이번 인수전에서 누가 가장 유리한 고지에 있을까요? 아니 누가 SM과 제대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파트너일까요? 이번 판의 플레이어들을 간단히 소개하겠습니다.

CJ ENM

방송 인프라와 콘텐츠 제작 역량, 모기업 CJ그룹을 통한 사업 영역의 확장성이 가장 큰 강점입니다. tvN을 비롯한 다수의 채널을 보유하고 있으며, JTBC와 합작해 설립한 OTT 서비스 ‘티빙’ 또한 매력적이고요. 특히 산하의 제작사 스튜디오 드래곤은 애플TV, 넷플릭스 등에 작품을 공급하며 놀라운 실적을 올리고 있습니다. 국내 스트리밍 서비스 시장 점유율 2위인 지니뮤직의 2대 주주입니다. 그동안 CJ ENM과 SM이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제작해왔다는 점도 플러스 요인이 되지 않을까요?

카카오엔터

모기업의 영향력은 말할 것도 없이 카카오는 치밀하고 공격적으로 미디어 사업을 진행하고 있는 기업입니다. 업계에선 진격의 카카오라는 말이 나올 정도인데요, 국내 1위 음원 스트리밍 업체 멜론을 1조 8000억 원에 인수한 것을 시작으로, 최근에는 웹툰, 웹소설 시장에 뛰어들며 콘텐츠 IP 확보에 열을 올리고 있습니다. 카카오TV의 성공적인 론칭과 더불어 방송채널사용업(PP) 진출을 예고해 OTT와 자체 방송 채널 보유한 CJ의 대항마로 급부상했습니다.

네이버

네이버의 강점 역시 포털의 강력한 영향력, 풍부한 자본, 네이버 웹툰 등 풍부한 IP를 꼽을 수 있습니다. 네이버는 신중하게 접근하지만 필요할 땐 화끈하게 투자하면서 다양한 사업 제휴와 협업으로 콘텐츠 확보에 공을 들이고 있습니다. 최근 네이버는 CJ ENM과 티빙에 대한 6000억 원 상당의 주식을 교환했으며, 올해 3월에는 자사의 브이라이브를 양수하면서 하이브와 팬 커뮤니티 ‘위버스’ 합작 회사를 설립하기도 했습니다. 어쩌면 SM 인수전에서 가장 절실한 건 네이버일 수도 있습니다.
 

키는 이수만 프로듀서의 손에

팬과 아티스트가 메시지를 주고받는 플랫폼 서비스 ‘디어유 버블’ ©디어유
통상적으로 이러한 거래는 매입하는 측 중심으로 논의가 진행되지만 이번 경우는 다릅니다. 협상의 키는 이수만 프로듀서 손에 있습니다. 회사를 넘기는 것이 아니라 사업성 극대화를 위한 최적의 파트너를 찾는 것이니까요. 주식을 전량 매각하더라도 이수만 프로듀서는 당분간 총책임자로서 SM을 이끌어갈 것으로 예상됩니다. 나이가 많더라도 아직은 회사의 구성원들 그리고 시장이 그가 없는 SM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지 않는 것 같습니다.

SM 주식을 둘러싼 각축전은 CJ ENM과 카카오엔터가 한발 앞서 있다는 것이 업계의 전망입니다. 앞서 설명대로 SM이 IP 사업을 통한 SMCU(SM 컬처 유니버스) 활성화에 방점을 두고 있다면 전통적인 콘텐츠 사업은 강하지만 IP 사업 경험이 적은 CJ ENM보다 카카오엔터에 무게가 실릴 것으로 예상됩니다. 카카오는 IP 사업을 중심으로 음악, 영화, 웹툰, 웹소설, 미디어(방송, OTT)를 연결하는 생태계를 구축하고 있습니다. 여기에 SM의 아티스트 및 콘텐츠가 결합하면 시너지가 상당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한편, 카카오의 공격적인 사업 확장을 리스크로 판단할 경우 보다 안정적인 파트너와 손을 잡게 될 수도 있습니다. SM과 CJ ENM은 오랜 기간 다양한 콘텐츠를 함께 제작하며 쌓아 온 신뢰가 있습니다. 이것은 향후 사업을 전개하는 과정에서 SM이 보다 많은 권한과 재량을 위임받을 수 있음을 의미합니다. 이수만 프로듀서 중심인 SM의 구조를 생각할 때 간과할 수 없는 부분입니다.

과연 누가 SM과 손을 잡을까요? 아니 이수만 프로듀서가 누구의 손을 들어줄까요? 이 순간에도 SM을 품기 위해 기업들 사이에 물밑 협상과 치열한 눈치작전이 벌어지고 있을 것입니다. 선택의 시간이 멀지 않았습니다. 모두가 그의 선택을 숨죽이며 지켜보고 있습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SM 이수만 프로듀서의 지분 매각과 이를 둘러싼 미디어업계의 동향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등하는 케이, 팝, 하이브와 케이팝의 다음 챕터와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1]
“너희는 발이 땅에 닿으면 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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