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을 먹고
 

9월 둘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마음을 먹고.” 검사들이 꾸민 공소장을 보면 반드시 등장하는 표현입니다. “마음먹었다”고 쓰기도 합니다. “마음이었다”일 때도 있습니다. 율사들이 쓰는 한국어는 우리가 쓰는 한국어와 다를 때가 많습니다. 의사들이 외래어로 이뤄진 의학용어를 구사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전문가 집단은 정보 소통의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자기들만의 전문 용어를 사용하기 마련입니다. 자연스럽게 쓰는 말만으로도 내부인과 외부인이 구별됩니다. 심지어 법조계 안에서도 쓰는 용어로 소속과 출신을 구분합니다. 검사인지 판사인지 변호사인지 혹은 검사 출신인지 판사 출신인지 로펌 출신인지 알 수 있죠. 마음이 대표적입니다. 

마음은 검찰 용어입니다. 법정에서 검사는 범죄 사실을 소명하고 범죄 형량을 구형하는 역할을 합니다. 우리 같은 일반인들은 보통 범죄 사실 소명이 검사의 주된 역할이라고 여깁니다. 검사는 실체적 진실을 밝히는 법질서의 수호자여야 하니까요. 실제 법정에선 많이 다릅니다. 유무죄를 따지는 건 판사의 역할입니다. 검사는 피고가 죄가 있다고 확신하고 기소한 공격수죠. 검사는 무죄 추정의 원칙이 아니라 유죄 추정의 원칙에 따로 행동합니다. 

검사도 공무원이기 때문입니다. 공무원에게 중요한 건 실적입니다. 검찰 공무원의 실적은 기소율과 유죄율 그리고 형량입니다. 검찰의 기소율은 40% 안팎입니다. 검사가 수사한 사건 열 건 가운데 네 건이 재판에 넘겨졌단 말입니다. 사실 기소율은 너무 높아도 너무 낮아도 문제입니다. 너무 높으면 검사한테 찍히면 무조건 법정에 서게 된다는 뜻입니다. 너무 낮으면 검사가 애초에 죄 없는 사람을 마주 찍어서 수사권을 남용했다는 뜻입니다. 지금 기소율로도 열 명 가운데 여섯 명은 억울한 수사를 당한 셈입니다. 기소율 40%가 딱 적당합니다.

정말 경이적인 건 유죄율입니다. 검찰이 기소해서 재판에 넘겨졌을 때 유죄로 판결이 나는 비율입니다. 99%입니다. 검사가 기소만 하면 거의 무조건 유죄가 나온다는 뜻입니다. 재판에서 유죄를 입증할 확신이 있는 사건만 기소하기 때문이라는 게 검찰 측 설명입니다. 북저널리즘의 책 《검사는 문관이다》에서 저자인 검사 출신 임수빈 변호사가 강하게 비판했던 검찰의 무오류주의입니다. 변호사들은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독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반박합니다. 수사 과정에서 유죄를 의심할 만하거나 무죄를 입증할만한 증거가 나와도 무시하기 때문이란 거죠. 

사실 10년 전에만 해도 검찰의 유죄율은 99.5%였습니다. 기소하면 유죄가 나오는 게 백 퍼센트 확실해지자 검찰 공무원 조직은 실적에서 형량을 중시하기 시작했습니다. 죄질이 나쁘다는 걸 입증하면 판사에게 더 높은 형량을 선고해달라고 구형할 수 있습니다. 죄의 질은 의도성 여부를 주로 따집니다. 쉽게 말해 우발적이냐 계획적이냐가 중요해지는 거죠. 바로 여기서 마음이 등장합니다. 

“마음을 먹었다”는 건 의도적이고 계획적이라는 뜻입니다. 마음을 강조해서 구형량을 높이기 위해 검찰은 공소장의 형식도 개선했습니다. 과거의 공소장은 사실관계부터 시작했습니다. 그다음에 관련 법리를 썼죠. 다음은 관련 판례였습니다. 변호사들이 소장을 쓸 때도 대체로 이런 논리 순서로 씁니다. 요즘 검찰의 공소장은 사실관계로 시작하지 않습니다. 사실관계나 법리나 판례는 이미 99% 유죄율로 입증된 무오류한 내용이니까요. 대신 범행 의도와 목적이 우선합니다. 피의자의 마음부터 먼저 따지는 겁니다. 의도성을 강조해서 죄의 질부터 공격하는 것이죠. 자연히 공소장의 조문에도 마음이 종종 등장할 수밖에 없습니다. “마음을 먹었다”거나 “마음이었다”거나 “마음먹고” 같은 문구들이 전형적인 검찰 용어인 건 그래서입니다. 마음을 먹었다는 걸 입증하면 검찰은 구형량을 양껏 높일 수 있습니다. 높은 구형량은 검사가 기소한 죄의 무거움을 입증합니다. 죄의 질이 무거울수록 검찰 공무원의 실적도 높아집니다. 검사는 마음을 먹고 삽니다. 

“이를 통해 윤 총장과 검찰 조직에 대한 국민 불신을 증폭시켜 문재인 정부와 여당의 지지율 회복을 도모하기로 마음먹었다.” 지난 2020년 4월 총선 직전 손준성 당시 대검 수사정보정책관이 김웅 당시 미래통합당 국회의원 후보자에게 전달한 것으로 의심되는 고발장 내용의 일부입니다. 손준성 검사는 지금은 대구고검 인권보호관입니다. 김웅 의원은 이젠 국민의힘 소속 국회의원이죠. 대선정국의 블랙홀로 떠오른 이른바 고발사주 의혹의 키맨들입니다. 손준성 검사는 “전혀 사실이 아님을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고 했습니다. 김웅 의원은 “기억이 나지 않는다”고 했죠. 부인과 망각 탓에 현재로선 작성자와 전달자를 특정할 순 없습니다. 사건의 본질만큼은 명백합니다. 누군가 마음을 먹고 총선에 영향을 미칠 목적으로 야당을 통해 검찰에 고발을 사주하는 행위를 했었다는 것이죠. 질문의 핵심은 누가 마음을 먹었느냐입니다. 단서는 마음입니다. 법조계는 쓰는 용어로 안팎과 소속과 출신을 구분하는 세계입니다. 법조인들이 문제의 고발장에서 “마음먹었다”를 읽자마자 검사가 쓴 것이라고 확신하는 이유입니다. 마음먹고 보면 쓴 사람이 마음이 보이는 겁니다. 검사거나 검사 출신이 썼을 확률이 99.5%입니다.   

정말 마음을 먹는 자가 검찰 관련자라면 죄질은 무량해집니다. 검찰이 수사권을 남용하려고 했다는 의심해야 하니까요. 사실이라면 대한민국 검찰이 수사권과 기소권을 이용해서 민주주의를 훼손하려고 했다는 말이 됩니다. 게다가 이번에 그랬다면 이전에도 그랬을 수 있다는 합리적 의심도 가능해집니다. 이제까지 고소고발로 시작됐던 정치인에 대한 검찰의 수사는 모두 공정성을 의심받게 됩니다. 그 중엔 검찰개혁을 내세우며 검찰과 대립했던 조국 전 법무부 장관에 대한 수사도 포함됩니다. 재임 시절 아들 병역 문제에 연루됐던 추미애 전 법무부 장관에 관한 수사도 마찬가지입니다. 검찰이 검찰개혁을 방해할 마음을 먹고 수사권과 기소권을 남용한 것은 아닌지 다시 의심할 수밖에 없습니다. 

게다가 이 모든 의심의 끝엔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가 있습니다. 이 모든 사건을 수사한 검찰의 당시 총장이었으니까요. 문재인 정부 들어서 진행된 검찰 수사의 배후에 검찰총장이 있다고 믿는 유권자들에게 윤석열은 절대 악입니다. 고발사주 사건으로 심증은 확신이 됐습니다. 특정 검사가 수사권을 이용해서 여당에 불리한 사건을 기획할 마음을 먹었다. 직접 고발장을 작성하고 야당에 전달했다. 특정 검사가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 예비 후보의 검찰총장 시절 오른팔이었던 손준성 검사였다. 대선판이 요동칠 이슈입니다. 당장 윤석열의 자격부터 물어야 하니까요. 목적을 위해 권력을 남용할 수 있다면 누구라도 청와대의 주인이 될 자격이 없습니다. 

정치권에선 이번 사건이 미궁에 빠질 수밖에 없다고 봅니다. 여의도에선 이미 온갖 권모술수가 난무하고 있습니다. 쇼펜하우어 논쟁술이 총동원되고 있죠. 누구는 큰소리를 칩니다. 누구는 궤변을 늘어놓습니다. 누구는 터무니없이 확대해석합니다. 누구는 프레임을 전환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메신저 공격도 빠질 수 없습니다. 보도한 매체의 신뢰성을 깎아내리거나 제보자의 신빙성을 훼손하는 방식이죠. 가장 효과적입니다. 공익신고자가 된 제보자가 누구인지는 여의도 정가에선 암암리에 알려져 있습니다. 이런저런 정당 이력을 갖고 있죠. 여러 가지 제보 사건과 연관돼 있습니다. 공격받을 요소가 많죠. 

정치권이 권모술수로 진실을 덮고 안개만 키울 거라면 남은 방법은 수사뿐입니다. 수사는 오래 걸립니다. 공수처가 하든 검찰이 하든 마찬가지입니다. 수사 결과가 제법 빨리 나와도 법적 정치적 공방은 계속될 수밖에 없습니다. 대선 정국이니까요. 진실보다 선거가 우선하는 혼탁한 계절입니다. 내년 대선 이전까지 유권자 모두 납득할만한 명명백백한 결과가 나오긴 어렵죠. 경우에 따라선 무자격 후보가 선택지 중 하나가 되는 최악의 대선이 될 수 있습니다. BBK 논란으로 얼룩졌던 2007년 대선처럼 말입니다. 역대 최저 투표율을 기록했죠. BBK는 결국 유죄로 드러났습니다. 

분명 누군가 마음을 먹었습니다. 검사의 흔적이 명백한 고발장은 증거로서 검찰 측을 가르키고 있습니다. 누군가 검찰의 기소권과 수사권을 이용해서 민주적 선거를 흔들려는 마음을 먹었습니다. 사건 자체는 정치적인 미궁에 빠질지도 모릅니다. 민생현안이 떠오르면서 힘을 잃었던 검찰개혁은 이번 사건으로 다시 동력을 얻을 수밖에 없습니다. 공수처 설치라는 제도 개혁만으로는 부족했던 겁니다. 게다가 검찰총장 출신이 대선 주자로 나선 대선판입니다. 전 검찰총장이 다시 검찰개혁을 수면 위로 소환한 셈입니다. 《검사는 문관이다》에서 임수빈 변호사는 이렇게 썼습니다. “검찰은 자신들의 방식엔 오류가 없다고 믿고 있다. 아니, 그렇게 믿고 싶은 것 같다. 검찰은 ‘무오류의 신화’ 속에 살고 있다. 그러다 보니 ‘잘못했다’는 자기반성을 절대로 하지 않으려 한다.” 그런데 검찰은 계속 오류투성이였습니다. 오류를 인정하고 고칠 마음을 먹지 않아서입니다. 결국 다시 검찰개혁입니다. 먹고 살기 너무 힘겹지만, 민주주의는 지켜야 한다는 마음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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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S. 9월 13일 월요일자 북저널리즘 라디오에선, 전찬우, 이현구, 이다혜, 김현성 에디터 그리고 진행자 신기주 CCO가 대선주자로서 윤석열의 자격에 관해 토론했습니다. 프라임 레터 독자 여러분들을 위해 먼저 공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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