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은 2012년 이후 전면적인 빈곤 퇴치 공방전을 펼쳤고, 8년간의 지속적인 노력을 통해 올해 중국의 현행 기준 아래 농촌 빈곤 인구는 이미 모두 빈곤의 모자를 벗었다”
[4] 지난해 12월 15일 자 인민일보에 실린 시 주석의 성과를 기리는 기사 중 일부입니다. 여기엔 함정이 있는데요, 세계은행이 제시한 절대적 빈곤 기준보다 하루 평균 0.21달러 낮은 중국의 기준은 논외로 하더라도 중국 내부의 소득 불균형은 갈수록 심화하고 있습니다. 공산당 서열 2위인 리커창 총리조차 작년 5월 전국인민대표대회 당시 “중국의 1인당 연간 평균 소득은 3만 위안(약 545만 원)에 달하지만 14억 인구 중 6억 명의 월수입은 여전히 1000위안(18만 원)에 불과하다”고
꼬집었죠.
중국의 빈부 격차는 지니 계수에서 명확히 드러납니다. 지니 계수란 소득의 불평등 정도를 나타내는 가장 대표적인 지표로, 0에서 1 사이의 숫자로 표시하는데 완전 평등이 0, 완전 불평등이 1을 가리킵니다. 즉, 1에 가까워질수록 불평등 정도가 높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통상 지니 계수가 0.5를 넘기면 극단적인 사회 갈등이 빚어질 수 있다고
봅니다. 현재 OECD 평균 지니 계수는 0.32인데요, 시 주석이 처음 집권한 2013년 0.473이었던 중국 지니 계수는 2019년 0.495였습니다. 글로벌 투자은행 크레디트 스위스는 지난해 중국 지니 계수가 0.704로 치솟았다고 발표했습니다. 민간 금융사의 집계인 만큼 중국 발표 수준보다 높을 수밖에 없지만, 아무리 낮아도 0.5에 육박할 것이라는 분석이
다수의 의견입니다.
개혁·개방을 시작한 1978년 중국 지니 계수는 0.32였습니다. 물론 나눠 가질 것이 그만큼 없었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소득 분배도 잘 이뤄졌다고 보는 게 더 정확하겠죠. 아무리 그렇다 해도 최근의 계층 간 소득 격차는 심각한 수준입니다. 드라마 〈천녀유혼〉을 찍고 1억 6000만 위안(291억 원)을 번 배우 정솽, 반대로 12시간 동안 중국판 배달의 민족 메이퇀에서 배달 체험에 나섰다 41위안(7100원)을 번 공산당 임원의
일화는 유명합니다. 중국 내부 소득 분포를 보면 상위 1퍼센트가 하위 50퍼센트의 5배를 차지합니다. 중국 500대 부호의 재산을 합치면 1800조 원 규모로 우리나라 1년 예산의 세배를 훌쩍
넘깁니다. 시 주석의 성장 전략으로 꼽히는 ‘
쌍순환’의 핵심 중 한 축은 중산층의 소득을 늘려 소비를 키우는 내수 활성화입니다. 양극화 상황에서는 구조적으로 불가능하죠.
공동 부유라는 정치 구호
호구 제도
[5]로 인한 도시와 농촌 지역 간 격차, 일자리 부족 등으로 인한 도시 노동자 간 격차는 공공의 부와 거리가 멉니다. 불만의 목소리만 키울 뿐입니다. 이는 시진핑 시대에 접어 들어 공산당이 그토록 외치던 ‘위대한 중화 민족의 부흥(伟大中华民族复兴)’ 실현에 가장 큰 걸림돌로 작용합니다. 당장 내 한 끼조차 책임지지 못하는 당과 지도자에 누가 신뢰를 보낼 수 있을까요. 최근 중국 청년들 사이에서 유행한
‘탕핑(躺平)’ 운동은 이러한 불신이 표출된 대표적인 사례입니다. 탕핑은 아등바등 살 필요 없이 집, 차, 결혼, 아이, 소비를 포기하면 모든 게 편해진다는 패배주의적 의식입니다. 우리나라의 N포족을 연상시키죠.
이렇듯 분노를 넘어 열심히 살아봤자 생존 경쟁에서 뒤쳐질 수밖에 없다는 중국 젊은이들의 번아웃 증상은 지속적인 경제 성장은 물론 시진핑의 정치 행보에도 치명적입니다. 현재 사회 모습은 “새로운 시대는 열심히 일하는 사람들의 것이며, 노력만으로 누구나 행복해질 수 있는 사회를 건설하겠다”던 시 주석의
공언과 완벽히 대척점에 있기 때문입니다. 연임을 허용하고 10년마다 국가주석을 교체한다는 규정까지 바꾸면서 3연임이라는 장기집권을 그렸던 시 주석과 이하 당 권력들에게 갈수록 심해지는 양극화 현상은 경제적 리스크가 아닌 정치적 리스크로 더 크게 받아들여졌을지 모릅니다.
최근 기업과 유명 자본가들에게 자발적 기부 형태를 한 사실상의 수탈을 일삼는 것도 결국 민심을 수습해 내년 가을에 열릴 당 대회에서 무난히 3연임에 성공하기 위한 포석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입니다. 내부적으로 그동안 당국의 비호 아래 천문학적인 부를 축적한 빅테크 기업과 부동산 재벌들을 단속함으로써 민생 개선과 완전한 빈곤 퇴치라는 명분을 내세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대외적으로는 치열해지는 미국과의 체재 경쟁에서 차별화된 자신들만의 발전 모델을 제시해 중국식 사회주의의 우월성을 입증할 필요성이 높아지고 있습니다. 이제 시진핑 시대의 중국을 이해하는 키워드는 중국몽(中国梦)이 아닌 공동 부유입니다.
부의 분배 또는 문화대혁명 2.0
지난 6월, 공산당은 공동 부유의 시범 구역으로 상하이시 아래에 있는 저장성을 선정했습니다. 성(省) 정부 소재지인 항저우시로 대표되는 지역이죠. 저장성은 전 세계에서 미국 캘리포니아주 다음으로 부호를 많이 배출한
곳입니다. 공산당의 주요
감시 대상인 마윈의 출신지이자 알리바바 본사가 위치한 곳이기도 하죠. 저장성 인구는 중국 전체의 5퍼센트 수준인데 이곳 주민의 자산은 중국 전체의 무려 15퍼센트 가량을 차지합니다. 시 주석의 공동 부유를 실험하기에 최적화된 장소라 할 수 있습니다. 알리바바 기부액의 5분의 1에 해당하는 200억 위안이 이곳 저장성에 투입됩니다. 새로운 분배 실험을 위한 비용이죠.
저장성은 중국에서 도농 간 수입 격차가 가장 낮은 축에 속하기도 합니다. 향후 공동 부유를 중국 전역으로 확대하기 위해서는 확실한 성공 사례가 필요한데, 이러한 정치적 명분을 위해서라도 이미 어느 정도 부가 축적된 지역을 골랐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공산당이 6월 발표한
‘저장성 공동 부유 시범구 건설 지지에 관한 의견’에 따르면, 2025년까지의 도입기를 거쳐 2035년 공동 부유의 ‘기본적 실현’을 이루는 게 목표입니다. 이를 위해 일차적으로 최저 임금 조정, 유급 휴가 도입, 중산층과 하류층이 투자할 수 있는 금융 상품 확대 등을 실험합니다. 또 독점과 부정 경쟁 등으로 축적한 부를 회수하고 지나치게 높은 수입은 조정합니다. 부자 기업과 개인들에게 자선 사업 및 기부를 유도한 후 세제 혜택 등도 제공합니다.
중국 전역을 휩쓸고 있는 공동 부유를 두고 내외부로 비판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습니다. 저명한 경제학자이자 베이징대학교 교수인 장웨이잉은 온라인상에 “시장 경제는 공동 부유로 가는 외나무 다리이며, 계획 경제는 공동 빈곤으로 가는 햇빛 찬란한 고속도로”라는 내용의 글을
올렸습니다. 물론 지금은 삭제됐지만요. 블룸버그는 지난달 28일 공동 부유라는 미명 아래 자행되는 각종 규제가 마오쩌둥이 1966년부터 10년간 이끈 극좌 운동, 문화 대혁명을 연상시킨다고
지적했습니다. 시 주석의 장기 집권을 위한 사전 작업임이 자명한 상황에서 이달부터 중국 국가 교육과정에 정식 교과목으로 채택된 ‘시진핑 사상’은 맹목적으로 시 주석을 숭배하는 21세기 홍위병
[6]을 양산할 거라는 지적도 나왔죠.
권력과 이념 투쟁이었던 문화 대혁명의 결과는 참혹했습니다. 한 번 반동분자로 낙인찍히면 살아남을 수 없다는 공포감 속에 학생과 노동자들은 마오 사상을 강요받았고, 정적 숙청 과정에서 셀 수 없는 희생이 발생했습니다. 단순히 더 많이 가진 자를 탄압해 덜 가진 자에 돌려줘야 한다는 논리로 결집한 이들은 필연적으로 자본에 대한 분노와 편 가르기에 혈안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공동 부유는 선부론에서 공부론으로, 시장 경제에서 계획 경제로, 덩샤오핑에서 마오쩌둥으로의 회귀입니다. 지금 중국은 공존과 공멸의 기로에 섰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