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0원의 혁신
 

9월 셋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30원. 카카오톡이 국민메신저가 될 수 있었던 건 30원 때문이었습니다. 2010년까지만 해도 통신3사들은 유료 문자메시지로 폭리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문자메시지의 원가는 2원이었습니다. 소비자한테 청구되는 요금은 문자메시지 1건당 30원이었죠. 무려 15배 장사를 했던 겁니다. 통신3사는 문자메시지로 매년 1조원 가까운 개이득을 거두고 있었죠. 소비자들은 꿀을 빠는 통신3사가 얄미웠습니다. 소비자한텐 통신3사 이외엔 다른 선택지가 없었습니다. 전형적인 독과점의 폐해입니다. 경제학적으로 독과점이 나쁜 건 이렇게 소비자 후생을 훼손하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불편한 서비스를 비싸게 쓰게 강요하죠. 

카카오톡은 2010년 3월에 출시됐습니다. 출시 하루 만에 가입자 3만 명을 모았습니다. 출시 6개월 만에 가입자 100만 명을 돌파했죠. 곧바로 J커브를 그렸죠. 이렇게 J커브 성장세를 그리는 서비스엔 공통점이 있습니다. 소비자가 혁신보다 한발 앞선 경우죠. 불편하고 비싼 서비스를 강요당해온 소비자들의 불만은 시장에 대기 수요를 형성합니다. 서비스가 출시되자마자 수요가 폭발하죠. 카카오톡이 그랬습니다. 네이버에서 밀려난 뒤 4년 동안 온갖 이름의 서비스들로 실패만 거듭했던 김범수 의장은 이때 아예 회사 이름도 카카오로 바꿉니다. 카카오란 이름 석자를 붙여준 것도 결국 소비자들이었던 겁니다. 대가는 단돈 30원이었습니다. 

3000원. 카카오 모빌리티 스마트호출의 평균 가격입니다. 카카오 모빌리티는 택시 호출을 더 빨리 받으려면 소비자가 많게는 5000원까지 웃돈을 내도록 유도합니다. 함정은 일반호출과 스마트호출의 알고리즘입니다. 카카오는 스마트호출의 수요를 늘리기 위해서 일반호출로는 택시를 잡기 어렵게 만들었다고 의심 받습니다. 일반호출 수요자를 우롱한 셈이죠. 카카오 모빌리티의 소비자 가운덴 승객도 있지만 기사도 있습니다. 요즘 택시기사들은 길빵 대신 카카오T서비스에 의존합니다. 길빵은 손님을 찾아 도로를 배회하는걸 말합니다. 카카오T를 이용하면 대기하다 승객의 호출에 응하기만 하면 됩니다. 편리하죠. 덕분에 카카오T는 택시호출시장의 80%를 장악했습니다. 그러자 카카오는 속내를 드러냈습니다. 9만9000원짜리 유료요금제를 선보인 겁니다. 이번에도 알고리즘이 함정입니다. 유료멤버한테만 손님을 몰아주는 콜차별을 조장할 수 있습니다. 한달 100만원 버는 택시기사한테 울며 겨자먹기식 한달 10만원 유료요금제를 강요하는건 분명 횡포입니다. 심지어 카카오는 다른 호출앱을 권유한 택시기사 33명을 일방적으로 제재했습니다. 80% 독과점 기업의 위력입니다. 

3000원 스마트호출와 9만9000원 유료멤버쉽은 지금 카카오 때리기의 트리거입니다. 30원으로 일어선 모바일 시대의 혁신 기업이 3000원 때문에 모빌리티 시대의 독점 기업으로 낙인 찍힌 겁니다. 카카오 모빌리티에서 시작된 카카오 때리기의 불길은 카카오뱅크와 카카오페이로 확산되더니 급기야 카카오의 본진인 케이큐브벤처스까지 옮겨 붙었습니다. 케이큐브벤처스는 카카오가 꽁꽁 숨겨왔던 카카오의 약한 고리입니다. 백여개가 넘는 계열사를 거느린 카카오 지배구조의 정점에 김범수 창업자의 아내와 아들이 따박따박 월급과 배당을 받는 가족회사가 있는 겁니다. 카카오라고 쓰고 재벌이라고 읽게 된 거죠. 모든 게 3000원 때문입니다. 소비자들의 분노를 사면서 규제당국도 언론도 등을 돌려버렸습니다. 

요즘 카카오는 네이버와 비교 당하고 있습니다. 네이버가 10년 전에 겪었던 성장통을 지금 카카오가 겪고 있다는 얘기죠. 원조 골목상권 침해자는 네이버입니다. 지금의 카카오처럼 성장에만 몰두하다 인심을 잃었죠. 기업은 소비자의 지지를 잃으면 규제의 단두대 앞에 서게 됩니다. 대다수 혁신가들은 규제의 단두대를 극혐합니다. 혁신은 시장의 자율성과 효율성에서 비롯되기 때문입니다. 정치인들이 표심을 잡기 위해 기업을 재물로 삼는다고 생각하죠. 한쪽 눈으로만 세상을 보는 시각입니다. 겉보기에 규제를 요구하고 실행하는 건 정치권이나 규제당국처럼 보입니다. 실제론 혁신기업의 소비자들입니다. 소비자라고 쓰고 유권자라고 읽어도 됩니다. 기업과 시장에 대한 권위적 규제와 민주적 규제는 크게 다릅니다. 

이번주 북저널리즘에서, 중국공산당의 공동부유론을 중점적으로 다룬 이유입니다. 전찬우 에디터와 이현구 에디터가 〈공동부유론의 정치학〉과 〈공동부유론의 경영학〉에서 입체적으로 분석한 것처럼, 중국의 기업 규제는 중국 인민의 요구에 기반하고 있지 않습니다. 시진핑 체제 강화가 목표죠. 중국 기업들 역시 중국 소비자보다 중국 공산당의 눈치를 더 봅니다. 민주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이 공산주의와 자본주의의 결합보다 우위에 있는 까닭입니다. 유권자이자 소비자인 시민의 민주적 자본주의 통제가 정부의 규제라는 형태로 나타나게 되니까요. 단두대에 선 기업들이 소비자들 앞에서 죄를 뉘우치고 회개를 하게 되는 건 그래서입니다. 단순히 규제의 칼날이 무서워서가 아닙니다. 규제에 반박할 경제적 논리들은 얼마든지 있습니다. 규제가 시장의 효율성을 저해하는건 사실이니까요. 민주적 자본주의 통제의 원리를 깨우친 기업가라면 진짜 두려운 건 정치인이나 관료가 아니란 걸 압니다. 정말 무서운건 소비자의 마음이죠. 민심입니다. 유권자의 인심입니다. 시민입니다. 네이버도 어렵게 배운걸 카카오도 이제야 힘들게 배우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카카오가 마냥 악덕 재벌인건 또 아닙니다. 한때 네이버는 스타트업들한텐 공포의 대상이었습니다. 괜찮은 창업 아이템을 구상해놓고도 네이버가 내부적으로 고려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하면 자체 검열을 해버리기 일쑤였죠. 어차피 네이버라는 빅테크한테 시장을 빼앗길테니까요. 스타트업의 좋은 창업 아이디어들은 네이버 탓에 묻혀 버렸습니다. 악순환이었습니다. 스타트업 생태계가 풍요로워지려면 중간 엑시트가 활발해져야만 합니다. 기업을 대중에게 공개하는 IPO는 창업자라면 모두가 꿈꾸는 궁극의 엑시트입니다. 쿠팡처럼요. 쉬운 일이 아닙니다. 현실적인 대안은 어느 정도 회사가 성장했을 때 더 큰 회사에 인수되는 것입니다. 중간 엑시트죠. 

실리콘밸리에선 구글이나 아마존 같은 빅테크들이 수시로 스타트업들을 인수합니다.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기술과 인력을 원하기 때문이죠. 스타트업들도 빅테크들에 합병되면 자본과 인력의 제한에서 자유로워지고 더 큰 포부를 펼칠 수 있습니다. 이게 가능한건 불문율이 있기 때문입니다. 빅테크는 스타트업의 사업 아이디어를 함부로 빼앗지 않습니다. 대신 스타트업에 온전한 대가를 지불하고 아이디어와 기술과 인력을 구매합니다. 빅테크들도 생태계 전체가 번영하는 것이 결과적으로 자신들한테 유리하다는걸 아는 겁니다. 과거의 네이버는 몰랐죠. 지금의 카카오는 압니다. 

지난 10년 동안 카카오는 대한민국 스타트업 생태계의 중간 인수자 역할을 톡톡히 해왔습니다. 카카오의 계열사가 115개에 달하게 된 배경입니다. 계열사 숫자만 놓고 보면 SK그룹에 이어 2위죠. 카카오 그룹이라고 불려야 마땅한 수준입니다. 대신 카카오는 스타트업의 아이디어와 기술과 인력을 부당하게 빼앗기보단 정당하게 사들였습니다. 적잖은 창업자들을 상당한 부자로 만들어졌죠. 스타트업 생태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줬단 뜻입니다. 2021년 상반기에만 카카오가 M&A하거나 전략적 투자자로 참여한 스타트업은 15개가 넘습니다. 패션이커머스 지그재그가 대표적이죠. 더군다나 카카오는 플랫폼입니다. 소비자의 가려운 곳을 긁어주는 스타트업들의 발랄한 아이디어와 결합하면 시장 파괴력이 커지죠. 

역설적으로 이런 중간 엑시트 시장 조성자로서의 역할은 카카오한텐 양날검이 됐습니다. 플랫폼과 결합력이 높은 스타트업들 위주로 인수하거나 투자하거나 창업하면서 골목상권까지 지네발을 뻗치게 된 겁니다. 지금 창업 트렌드는 단연 O2O입니다. 온라인과 오프라인의 결합이죠. 오프라인의 서비스를 온라인에서 유통시키는 겁니다. 배달업이 대표적이죠. 숙박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요즘 창업자들은 온라인화 할 수 있는 오프라인 서비스를 찾아서 두 눈 부릅뜨고 신발이 닳도록 골목길을 헤매고 있습니다. 카카오에 중간 엑시트 이후에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연히 다음 목표는 상장이 됩니다. IPO에 성공하려면 비싼 가격으로 사들인 창업 아이템을 더 비싸게 만들어야 합니다. 성공만 하면 중간 엑시트와는 비교할 수 없는 돈방석 위에 앉게 됩니다. 매출과 영업이익에 집착하게 됩니다. 카카오 모빌리티처럼 가격을 올리고 카카오페이처럼 금융상품을 사실상 판매하게 되고 카카오톡에서 헤어샵 수수료 20%를 받아챙기게 됩니다. 탐욕스러워지는 것이죠. 성공을 위한 적당한 탐욕은 창업의 원동력입니다. 돈을 향한 무한한 탐욕은 기업을 악하게 만듭니다. 예전 구글을 말했죠. “Don’t be Evil.” 카카오는 과잉 탐욕으로 악해졌던 겁니다. 

시장의 기업이 민주적 규제의 단두대 앞으로 끌려 나오는 순간은 기업 스스로 내부의 탐욕에 집어삼켜질 때입니다. 그러면 30원으로 열광하던 소비자들은 3000원으로 분노하면서 유권자로 돌변합니다. 이때 민주주의의 작동 원리에 의거하여 정치와 관료가 규제의 칼을 꺼내들기 시작합니다. 앞으로 국감 시즌입니다. 우리는 카카오한텐 한없이 너그러웠던 금융위와 공정위가 표변하는 상황을 목격하게 될 겁니다. 기관장들도 국감장에 끌려 나와서 국회의원들한테 감시 받을 시기니까요. 국감장에 이해진 네이버 창업주가 나와야 한다거나 김범수 카카오 창업주가 나와야 한다는 식의 소모적 논쟁은 분명 눈에 거슬립니다. 그래도 본질은 선명합니다. 민주주의가 자본주의를 통제하는 현장입니다. 지금 우리가 목격하고 있는 여론의 카카오 때리기까지 포함해서 그렇습니다. 

혁신 기업을 키워내는 것도 혁신 기업을 죽여버리는 것도 결국 소비자입니다. 10년 전 30원으로 소비자들의 마음을 얻었던 카카오는 3000원을 욕심 내다가 소비자의 마음을 잃었습니다. 결국 김범수 창업주 일가로까지 사정권이 넓어졌죠. 여당과 금융위 그리고 공정위까지 나섰다는 건 사실상 행정부가 모조리 카카오 때리기에 나섰다는 의미입니다. 카카오뱅크를 핀테크 혁신으로 추켜세우던 금융당국도 하루 아침에 규제에 앞장서기 시작했습니다. 규제당국이 돌아선 건 소비자의 마음이 돌아섰기 때문입니다. 진짜 문제는 규제가 아니라 시장인 것이죠. 그래서 카카오는 솟아날 구멍도 역시 소비자한테서 찾아야만 합니다. 소비자 후생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다. 카카오가 미움 받는 건 더 싸고 편리해져야 하는데 더 비싸고 불편해졌기 때문입니다. 소비자가 돌아서면 온 세상이 돌아섭니다. 지금 카카오가 겪고 있는 일입니다.

어제를 버려라》. 김범수 카카오 창업자의 자서전 제목입니다. 김범수 창업자가 자주 하는 말이 재정의입니다. 문제를 해결책을 찾으려면 문제를 재정의해야 한다는 시각이죠. 카카오의 문제도 문제를 재정의해야 해결됩니다. 성장이란 문제를 풀기 위해 소비자의 호주머니를 터는 건 답이 아닙니다. 어떻게 소비자한테 이익이 돌아가게 할까라는 문제로 문제를 재정의하면 성장이란 문제는 자연히 풀립니다. 그러자면 탐욕스러운 어제부터 버려야 합니다. 결국 30원의 초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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