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체육 한 마리 몰고 가세요

9월 23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농심이 비건 레스토랑을 열고 대체육 사업을 확대한다. 신성장 동력으로 대체육을 선정한 농심에 필요한 건 무엇일까.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라면 명가 농심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비건(Vegan) 레스토랑을 엽니다. 이달 말까지 총괄 셰프를 고용해 메뉴 개발에 착수하고 곧 매장 콘셉트도 확정한다는 계획입니다. 농심의 행보가 다소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외식 수요가 줄어 식품 기업들이 밀키트(Meal Kit)나 가정간편식(HRM·Home Meal Replacement) 사업을 확대 중이고, 우리나라는 아직 비건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심 관계자는 비건 레스토랑을 “농심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식물성 대체육 제조 기술을 선보이기 위한 오프라인 채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대부분 농심의 대체육을 맛본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기생충〉에 등장해 해외에서도 매출이 급증한 짜파게티입니다. 짜파게티 건더기 스프에 담긴 갈색 고기가 바로 ‘대두(大豆) 단백’입니다. 콩에서 기름과 탄수화물은 걸러내 식물성 단백질만 뽑아낸 뒤 이를 뭉쳐 만든 일종의 콩고기이죠. 짜파게티를 출시한 1984년 당시, 진짜 고기를 동결 건조하는 기술이 없어 콩으로 가짜 고기를 만든 게 시작이었습니다. 즉, 농심은 40년 가까이 대체육을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 농심은 2세 경영 시대를 열었습니다. 지난 7월, 창업주인 고(故) 신춘호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농심그룹 회장직에 올랐습니다. 신동원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변화와 혁신을 통한 ‘뉴(new) 농심’을 청사진으로 제시했는데, 주목할 만한 건 신 회장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 5위 규모인 라면과 더불어 대체육을 차세대 핵심 사업 분야로 선정했다는 겁니다. 농심은 왜 대체육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았을까요? 농심은 대체육 기술력과 비건 레스토랑으로 소비자 취향을 저격할 수 있을까요?
 

신라면의 명과 암


농심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비건 사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월 론칭한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Veggie Garden)’입니다. 2017년 시제품 개발 이후 여러 채식 전문가 및 관련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거쳐 맛과 품질을 높인 결과물입니다. 식물성 다짐육과 패티를 재료로 한 만두, 떡갈비, 너비아니가 대표 제품입니다. 이 밖에 사골 맛 분말이나 카레 같은 각종 양념과 소스까지 총 30종이 넘는 상품군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채소와 어린이를 더한 ‘채린이’, 채식하고 있다는 의미의 ‘비거닝(Veganing)’ 등의 상표 출원까지 마쳤습니다.

이토록 비건 사업에 적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사업 다각화에 있습니다. 농심 전체 매출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79퍼센트에 달합니다. 거의 모든 수익이 라면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농심 라면 매출은 2조 868억 원이었는데요, 국내 시장 점유율은 55.7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사상 최대 매출 및 영업 이익인 동시에 최초의 라면 매출 2조 원 돌파라는 큰 성과였죠. 하지만 라면에 집중된 사업 구조가 고착화하면 할수록 기업 차원에서는 매출 다변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면 매출이 부진하면 기업 전체 수익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올 상반기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의 실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농심 매출은 하락했습니다.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 이익이 각각 1조 2823억 원, 456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5.4퍼센트, 56.5퍼센트 감소한 겁니다. 지난해 워낙 라면이 많이 팔린 탓에 역기저 효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밀가루와 팜유(palm oil) 등 원재료 가격이 크게 오른 영향이었습니다. 지난 3월 박준 농심 부회장은 “원부자재의 비중이 높은 농심은 향후 수익성 보장을 위해 체질 개선과 비용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죠. 최근 라면 가격 인상을 단행한 이유기도 합니다. 여기에 지난 8월에는 경쟁사 오뚜기의 진라면이 제품 충성도 기준 처음으로 신라면을 제쳤습니다. 국내 라면 불변의 1등이라는 아성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육에서 추출과 배양의 시대로

©한국무역협회
이런 상황에서 대체육은 농심에 가장 매력적인 사업 분야입니다. 짜파게티 속 콩고기를 넘어 갈수록 환경, 건강, 동물 복지 등 다양한 관점에서 대체육에 대한 수요가 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 영국 등 채식의 대중화로 대체육이 하나의 산업으로 자리매김한 해외 시장을 고려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성장 잠재력이 높은 시장에서 그동안 라면으로 높여 온 브랜드 인지도를 차별화 전략으로 삼을 수 있고, 또 미국 월마트나 영국 데스코, 독일 레베 등 각국 메이저 유통사를 중심으로 구축해 둔 기존의 영업망도 적극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국무역협회 국제무역통상연구원이 발표한 〈대체 단백질 식품 트렌드와 시사점〉에 따르면, 지난해 1300만 톤이었던 전 세계 대체 단백질 식품 소비 규모가 2035년 9700만 톤으로 일곱 배 이상 급증합니다. 특히 시장성 측면에서 식물성 대체육은 채식주의자 등 일부를 타깃으로 하는 틈새시장이 아닌 주류 시장으로 진입했다는 분석인데요, 오는 2040년에는 대체육이 전 세계 육류 시장의 60퍼센트 이상을 차지해 기존 육류를 뛰어넘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나옵니다.

그동안 대체육은 육류 생산 과정에서 발행하는 전염병, 생태계 파괴, 기후 변화의 대안으로 인식돼 왔습니다. 지속 가능성에 대한 고민이었죠. 여기에 코로나19 이후 대형 육류 가공 공장의 가동이 중단되면서 육류 공급이 부족해지고 가격이 치솟자, 식물 추출 외에 동물 세포 배양, 미생물 발효 등 다양한 방식의 대체육들이 주목받고 있습니다. 빌게이츠가 투자한 임파서블푸드(Impossible Foods)의 식물성 소고기 패티가 2019년 CES에서 가장 영향력 있는 제품으로 선정되는가 하면, 대체육 기업 비욘드미트(Beyond Meat)가 나스닥에 상장하고, 푸드테크 스타트업 잇저스트(Eat Just)가 실험실에서 배양한 닭고기의 판매 승인을 받는 시대입니다.
 

모두를 위한 대체육

©KOTRA
해외와 비교해 아직 우리나라에선 대체육에 대한 소비가 활발하지 않습니다. 한국채식연합이 추산하는 국내 채식 인구 비중은 전체 인구의 1~3퍼센트 수준인 250만 명 규모이고, 이 중 완벽한 채식주의자로 분류되는 비건 인구는 5분의 1인 50만 명 정도입니다. 특히 코트라(KOTRA·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가 발표한 국가별 대체육 시장 규모를 보면 미국과 영국이 각각 10억 달러, 6억 1000만 달러로 성장세를 이끄는 가운데 우리나라는 2000만 달러 정도로 최하위권에 머무릅니다. 인구 규모를 고려하더라도 아직 채식이나 대체육에 대한 문화가 확산하지 않았음을 알 수 있습니다.

전체 시장 규모가 작아 판매처가 부족하고, 이로 인해 제품 가격이 높은 것이 가장 큰 원인으로 꼽힙니다. 이렇다 보니 대체육에 대한 접근성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이와 별개로 채식에 대한 인식 및 배려가 부족한 우리 사회의 분위기도 대체육 시장 성장의 발목을 잡습니다. 채식하는 사람을 유별나고 예민하다고 취급하거나 고기를 안 먹으면 건강에 문제가 생길 거라며 육식을 강권하기도 합니다. 심지어 식물은 고통을 못 느끼겠냐며 대체육을 조롱하기까지 합니다. 건강이나 환경, 종교 등 다양한 이유로 행하는 넓은 개념의 채식과 동물 착취 반대가 핵심인 비건을 구분하지 못한 탓입니다.

대체육은 채식주의자 혹은 비건만을 위하지 않습니다. 공장식 축산이 온실가스 배출과 기후 변화의 온상지라는 체감하기 어려운 이야기가 아니더라도, 당장 우리 주변에서 소화에 어려움을 겪는 중장년층이나 특정 질병 때문에 육류 섭취를 할 수 없는 이들에게 대체육은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일반인들에게는 체중 조절이나 몸매 관리의 수단으로 활용될 수 있겠죠. 대체육 기술과 일반 외식 메뉴를 접목한 농심의 비건 레스토랑은 새로운 식문화 경험으로 대체육과 채식에 대한 인식을 개선하는 계기가 될 수 있을까요?
 

먹거리 전쟁의 키, 영양학 기술

©Impossible foods
글로벌 식품 기업들의 대체육 주도권 싸움은 이미 본격화된 양상입니다. 대중화까지 갈 길이 먼 우리나라에서도 기업들의 시장 진입이 한창입니다. 2019년 롯데푸드가 처음 개발한 냉동 대체육 식품 2종은 국내 최초로 한국비건인증원의 인증을 받아 현재까지 6만여 개가 팔렸습니다. 동원F&B는 2019년 비욘드미트와 독점 계약을 맺고 식물성 패티로 만든 ‘비욘드버거’를 선보여 15만 개 넘게 판매했습니다. 신세계푸드도 지난 8월 대체육 브랜드를 론칭한 후 자체 기술로 만든 대체육 햄을 내놨습니다. 이밖에 SPC삼립이 잇저스트와 독점 계약으로 국내 생산 및 유통 권한을 얻었고, 미원으로 유명한 대상은 오는 2025년까지 배양육 공정을 확립한다는 계획입니다.
 
대체육 상업화에 성공한 국가는 물론 우리나라처럼 아직 대체육이 익숙하지 않은 국가 모두에서 결국 맛과 영양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먼저 잡는 기업이 식탁 위의 새로운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맛과 관련해 농심은 자체적으로 개발한 HMMA(High Moisture Meat Analogue, 고수분 대체육 제조 기술) 공법을 무기로 내세우고 있습니다. 관계자에 따르면 HMMA는 현존하는 대체육 제조 방식 중 가장 진보한 기술로, 실제 고기를 먹는 것 같은 맛과 식감은 물론 고기를 씹을 때 나오는 육즙까지 구현할 수 있다고 합니다.

다만 영양학 측면에서 아직 고기를 완전히 대체할 수 있는 대체육은 찾을 수 없는 상황입니다. 최근 미국 듀크대학교 연구진이 기존 고기와 대체육을 비교 조사한 결과, 주요 영양소 함유량은 비슷하나 우리 몸에 작용하는 대사물질 성분은 전혀 다르다는 사실이 밝혀졌습니다. 예를 들어 염증 억제나 면역 조절에 중요한 글루코사민, 오메가3 지방산 등은 기존 고기에만 혹은 기존 고기에 대부분 들어 있는 식입니다. 지금까지 농심을 비롯한 글로벌 식품업계가 대체육 맛의 전쟁을 치뤘다면, 이제 대체육의 영양학 기술까지 확보한 기업이 승자가 될 수 있습니다. #《Scientific Reports》에 실린 듀크대학교 연구 결과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농심이 비건 레스토랑을 여는 이유와 그 이면에 담긴 대체육 시장 현황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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