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면 명가 농심이 서울 시내 한복판에 비건(Vegan) 레스토랑을 엽니다. 이달 말까지 총괄 셰프를 고용해 메뉴 개발에 착수하고 곧 매장 콘셉트도 확정한다는 계획입니다. 농심의 행보가 다소 의외라고 생각하실 수 있습니다. 코로나19로 외식 수요가 줄어 식품 기업들이 밀키트(Meal Kit)나 가정간편식(HRM·Home Meal Replacement) 사업을 확대 중이고, 우리나라는 아직 비건 시장이 충분히 형성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농심 관계자는 비건 레스토랑을 “농심이 독자적으로 개발한 식물성 대체육 제조 기술을 선보이기 위한 오프라인 채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사실 우리나라 국민이라면 대부분 농심의 대체육을 맛본 경험이 있습니다. 바로 영화 〈기생충〉에 등장해 해외에서도 매출이 급증한
짜파게티입니다. 짜파게티 건더기 스프에 담긴 갈색 고기가 바로 ‘대두(大豆) 단백’입니다. 콩에서 기름과 탄수화물은 걸러내 식물성 단백질만 뽑아낸 뒤 이를 뭉쳐 만든 일종의 콩고기이죠. 짜파게티를 출시한 1984년 당시, 진짜 고기를 동결 건조하는 기술이 없어 콩으로 가짜 고기를 만든 게 시작이었습니다. 즉, 농심은 40년 가까이 대체육을 만들고 있는 셈입니다.
최근 농심은 2세 경영 시대를 열었습니다. 지난 7월, 창업주인 고(故) 신춘호 회장의 장남인 신동원 부회장이 농심그룹 회장직에
올랐습니다. 신동원 회장은 취임과 동시에 변화와 혁신을 통한 ‘뉴(new) 농심’을 청사진으로 제시했는데, 주목할 만한 건 신 회장이 글로벌 시장 점유율 5위 규모인 라면과 더불어 대체육을 차세대 핵심 사업 분야로 선정했다는 겁니다. 농심은 왜 대체육을 미래 성장 동력으로 꼽았을까요? 농심은 대체육 기술력과 비건 레스토랑으로 소비자 취향을 저격할 수 있을까요?
신라면의 명과 암
농심은 올해 들어 본격적으로 비건 사업에 속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사례가 지난 1월 론칭한 비건 식품 브랜드
‘베지가든(Veggie Garden)’입니다. 2017년 시제품 개발 이후 여러 채식 전문가 및 관련 커뮤니티와의 협업을 거쳐 맛과 품질을 높인 결과물입니다. 식물성 다짐육과 패티를 재료로 한 만두, 떡갈비, 너비아니가 대표 제품입니다. 이 밖에 사골 맛 분말이나 카레 같은 각종 양념과 소스까지 총 30종이 넘는 상품군을 확보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에는 채소와 어린이를 더한 ‘채린이’, 채식하고 있다는 의미의 ‘비거닝(Veganing)’ 등의 상표 출원까지
마쳤습니다.
이토록 비건 사업에 적극적인 가장 큰 이유는 사업 다각화에 있습니다. 농심 전체 매출에서 라면이 차지하는 비중은 79퍼센트에
달합니다. 거의 모든 수익이 라면으로부터 발생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지난해 농심 라면 매출은 2조 868억 원이었는데요, 국내 시장 점유율은 55.7퍼센트를
기록했습니다. 사상 최대 매출 및 영업 이익인 동시에 최초의 라면 매출 2조 원 돌파라는 큰 성과였죠. 하지만 라면에 집중된 사업 구조가 고착화하면 할수록 기업 차원에서는 매출 다변화에 대한 고민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라면 매출이 부진하면 기업 전체 수익이 흔들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올 상반기 미국과 유럽 등 해외 시장에서의 실적 성장에도 불구하고 농심 매출은 하락했습니다. 상반기 매출액과 영업 이익이 각각 1조 2823억 원, 456억 원으로 지난해보다 5.4퍼센트, 56.5퍼센트 감소한
겁니다. 지난해 워낙 라면이 많이 팔린 탓에 역기저 효과라고 볼 수도 있지만, 밀가루와 팜유(palm oil) 등 원재료 가격이 크게 오른 영향이었습니다. 지난 3월 박준 농심 부회장은 “원부자재의 비중이 높은 농심은 향후 수익성 보장을 위해 체질 개선과 비용 조정이 필요하다”고 밝히기도
했죠. 최근 라면 가격 인상을 단행한 이유기도 합니다. 여기에 지난 8월에는 경쟁사 오뚜기의 진라면이 제품 충성도 기준 처음으로 신라면을
제쳤습니다. 국내 라면 불변의 1등이라는 아성에도 조금씩 균열이 생기고 있습니다.
사육에서 추출과 배양의 시대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