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사들은 왜 그래?!
 

9월 넷째 주 프라임 레터

안녕하세요. 북저널리즘 CCO 신기주입니다. 

한빛내과 덕분에 목숨을 건졌습니다. 아파서 죽을 뻔한 적이 있었습니다. 폐에 문제가 생긴 탓이었습니다. 폐는 나빠져도 환자가 자각하기가 어렵습니다. 폐암의 조기 발견율이 20% 남짓인 건 그래서입니다. 위암과 유방암은 60% 안팎이죠. 처음엔 가벼운 감기인 줄 알았습니다. 폐 안에 피고름이 차오르고 있다는 건 생각지도 못했죠. 약국에서 약을 사 먹어도 열이 도통 내리질 않았습니다. 병원에 갈 엄두도 못 냈습니다. 방송이다 뭐다 먹고 살기 너무 바빴거든요. 겨우겨우 동네 병원을 찾았습니다. 

진짜 문제는 이때부터였습니다. 맨 먼저 찾은 곳은 가끔 가던 동네 이비인후과였습니다. 심한 감기 정도일 것이라고 셀프 진단을 했었으니까요. 의사 선생님은 열을 좀 재보더니 해열제를 처방해줬습니다. 역시 감기였구나 생각했죠. 무리해서 생업에 종사했습니다. 며칠 지나자 몸을 가눌 수가 없을 정도가 됐습니다. 절뚝절뚝 동네 내과에 갔습니다. 열이 좀 높다면서 일단 링거부터 맞고 가라고 했습니다. 이번에도 진단은 감기였습니다. 절뚝거리며 집에 돌아왔습니다. 정작 다음날부턴 기침이 멈추질 않았습니다. 가래에 피까지 섞여 나오기 시작했죠. 엉금엉금 다른 내과에 갔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잠시 검사를 하더니 우리 병원에선 진단도 치료도 어려우니 일단 큰 병원부터 가보라고 했습니다. 체온은 이미 39도를 오가고 있었죠. 큰 병이니 큰 병원으로 가라는 안내가 정말 전부였습니다. 솔직히 상급 병원이 어디에 있는지도 몰랐습니다. 어떻게 입원을 해야 하는지도 몰랐습니다. 살면서 이렇게 아파 본 적이 있었어야죠.  

수납을 하고 나오다가 한참을 길거리에 주저앉아있었습니다. 이러다 죽겠다 싶어서 휴대폰으로 주변 상급 병원을 검색했습니다. 대표 번호로 전화했지만 ARS로만 연결됐습니다. 고열로 정신을 가눌 수 없는 상태라 도저히 ARS의 안내를 알아들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길 건너편에 한빛내과라는 병원 간판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기다시피 해서 한빛내과까지 갔습니다. 한빛내과 의사 선생님은 한 눈에 위중하다는 걸 알아보더군요. 일단 맨 먼저 한 일이 폐 엑스레이 촬영이었습니다. 그때 문득 깨달았습니다. 동네 병원을 그렇게 전전했는데 엑스레이 촬영 한번 안 했었다는 사실을요. 기침을 그렇게 하고 숨조차 제대로 못 쉬었는데 말입니다. 엑스레이를 보자마자 바로 알 수 있었습니다. 폐 한쪽이 완전히 망가져 있었습니다. 의사 선생님은 걱정스럽게 물었습니다. “당장 입원해야겠는데. 이렇게 될 때까지 뭐하고 있었어요?” 힘겹게 대답했습니다. “동네 병원들에 가긴 갔었는데 감기라고.” 의사 선생님은 씁쓸한 표정을 지었습니다. 이렇게 진단이 늦어져서 병을 키운 환자들을 여럿 봤던 거겠죠. 한빛내과 의사 선생님은 곧바로 상급 병원으로 입원할 수 있는 방법을 알아봐 주셨습니다. 인연이 있는 대형 병원에 전화까지 넣어주셨죠. 

더 큰 문제는 이제부터였습니다. 대한민국이 입원하기가 이렇게 어려운 나라인지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도무지 병상이 없었습니다. 한국은 결코 병상이 적은 나라가 아닙니다. 오히려 너무 많아서 늘 문제죠. 정작 환자 입장에선 큰 병원에 입원하는 게 하늘의 별따기입니다. 유명 대형 병원 입원은 거의 아파트 청약 당첨 확률입니다. 아무리 응급 환자여도 정문으로 들어가면 외래 예약부터 잡고 오라는 얘기를 듣기 일쑤입니다. 그때 정말로 예약 잡고 한 달쯤 뒤에 오라는 전화 안내를 받았습니다. 당장 숨넘어가게 생겼었는데도요. 그때 의사 선생님이 가르쳐준 마지막 입원 방법이 있었습니다. 119였습니다. 앰뷸런스에 실려서 응급실로 직행하는 비상 수단이었죠. 집까지 어떻게 돌아갔는지 모르겠습니다. 집에서 그대로 들것에 실려나갔습니다. 들것에 실린 채 올려다본 하늘이 노랬던 기억이 납니다. 

생각지도 못한 문제가 생겼습니다. 유명 3차 병원은 입원이 어렵다길래 집 근방 2차 병원을 선택한 게 패착이었습니다. 유명 병원은 아닌지라 응급실은 비교적 한산했습니다. 환자가 적은 만큼 의사도 없었습니다. 응급실 병상에 누운 채 별다른 처치도 받지 못하고 2시간을 넘게 기다려야 했습니다. 기침을 하도 해서 숨이 넘어가기 직전이었죠. 꾸역꾸역 입원에 성공했지만 간호사분들만 오갈 뿐 담당 의사 선생님은 만날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가 하필 연휴였거든요. 의사 선생님인가 싶은 흰 가운을 입은 분이 오갔습니다. 무표정하게 차트에 이것 저것 적을 뿐 진단도 처방도 내려주지 않았습니다. 지금 돌이켜 짐작해보면 아마 전공의분이었던 것 같습니다. 전문의 선생님을 마주하는 데만 정말 며칠이 걸렸습니다. 연휴였으니까요. 정작 연휴 끝에 출근한 전문의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우리 병원에선 힘들겠는데요. 더 큰 병원으로 가보셔야 할 것 같습니다.” 동네 병원을 전전하다가 중병이란걸 아는데도 한참 걸렸습니다. 겨우 입원해서 치료 받기를 기대했지만 아니었습니다. 길바닥에서 응급실에서 병상에서 의사를 기다리느라 시간만 허비하고 병만 키운 꼴이었죠. 결국 다른 병원으로 가보라는 말 밖에 들은 게 없었던 겁니다. 하필 그곳은 제가 태어난 병원이었습니다. 믿고 갔던 이유죠. 이렇게 태어난 곳에서 죽나보다 싶었습니다. 

다시 앰뷸런스에 실렸습니다. 이번엔 하늘이 깜깜했습니다. 전화를 수십 통씩 하면서 사정사정 한 끝에 서울 외곽 큰 병원에서 받아줄 수 있다는 약속을 얻어냈습니다. 일단 대기 순번이라는 단서가 달렸지만 감지덕지였죠. 병원도 은행처럼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한다는 걸 그때 처음 체험했습니다. 병원은 아픈 사람을 당연히 고쳐주는 곳이 아니었습니다. 아픈 사람이 통사정해야 겨우 고쳐주는 곳이었죠. 그렇게 연고도 없는 서울 무슨 구의 3차 상급 병원으로 또다시 실려 갔습니다. 몸은 만신창이였습니다. 기침을 할 때마다 각혈을 했죠. 응급실로 직행했지만 이번에도 기다려야만 했습니다. 아무리 죽을 만큼 아파도 지금 죽는 게 아니면 치료 순서를 기다려야만 했죠. 응급실은 아픈 사람들 천지였으니까요. 응급실 전공의 한 분이 이런  저런 검사를 하고 갔습니다. 그 뒤론 아무도 거들떠보지를 않았죠. 온통 아픈 사람들이 천지였으니까요. 지나가던 간호사한테 매달려봐도 돌아오는 건 기다리라는 말뿐이었습니다. 그곳엔 아픈 사람들이 천지였으니까요. 의료진한텐 그런 케이스 가운데 하나일 뿐이었죠. 응급실엔 오후에 도착했지만 입원실엔 새벽에나 들어갔습니다. 그나마도 10인실의 출입문 바로 앞 병상이었죠. 너무 비좁아서 보호자 보조 침대조차 둘 곳이 없는 자리였습니다. 찬밥 더운밥 가릴 처지가 아니었습니다. 두 번째 입원에 성공한 것만으로도 감지덕지였으니까요. 

정작 입원하고도 답답하긴 마찬가지였습니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며칠 동안 아무런 설명도 듣지를 못했으니까요. 병원에 누워있다 뿐이었습니다. 치료를 받을 수가 없었습니다. 의사분과 간호사분에게 아무리 애타게 물어도 검사 결과가 나오면 교수님께서 잘 설명해 주실 거란 이야기만 반복해서 들었습니다. 중급 병원에서의 악몽이 떠올랐죠. 며칠 뒤 이윽고 교수님이 등장했습니다. 설명했습니다. “환자가 노인이었으면 이 병으로 사망 확률이 매우 높습니다. 수술로 치료할 수도 있는데 이때 자칫 잘못되면 폐혈증이 올 수도 있습니다. 사망 위험이 매우 큽니다. 자칫 폐가 완전히 망가질 수도 있고요. 그래도 아직 젊은 편이시니까 외과적 수술보단 내과적 치료를 권합니다. 몸이 버텨내서 스스로 치유하길 기대할 수밖에 없습니다. 대신 치료 기간이 매우 깁니다. 몇 달 정도 입원해야 할 겁니다. 그 기간 동안 몸이 버티지 못하면 수술을 해야 하는데 그건 아주 위험합니다.” 당연히 선택은 수술이 아니라 장기 입원일 수밖에요. 사망 확률이 매우 높다는 수술을 선택할 수는 환자와 환자 가족은 세상에 없습니다. 일단 살고 봐야하니까요. 

며칠이 흘렀습니다. 열이 좀 내리고 기침이 조금 가시자 병실 상황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온통 노인 환자들 뿐이었습니다. 대부분 폐암 환자분들이었죠. 그곳은 호흡기 내과였으니까요. 그때서야 진짜 문제가 무엇이었는지 알게 됐습니다. 수술을 하기엔 까다로운 환자인데 그렇다고 장기 입원을 해도 암환자처럼 돈이 되는 환자는 아니었던 것이 문제였습니다. 폐병 환자는 맞는데 폐암 환자는 아니었던 것이죠. 가뜩이나 입원 전쟁인 상황에서 베드 하나를 이런 환자한테 내줄 필요가 없었던 거죠. 우리 병원에선 힘들겠다는 중급 병원 의사의 말은 중병이라는 의미가 아니었던 겁니다. 당신을 오래 치료하기 싫다는 말에 가까웠죠. 그렇다고 수술을 하자니 짊어져야 할 리스크가 부담스럽다는 뜻이었고요. 

아무리 전화를 돌려도 입원이 어려웠던 건 입원 경쟁이 치열해서도 있었지만 질병의 수익률이 하위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받아봤자 오래 침상만 차지하고 돈도 안 되는 환자여서 서울 중심가 유명 병원들이 하나 같이 고개를 저었던 것이죠. 동네 병원을 전전하면서 제대로 된 진단을 받는 데까지 일주일이 넘게 걸렸습니다. 호흡기 질환은 일단 감기로 진단하고 말아버리는 분위기 탓이었죠. 오래 전 동네 내과에서 감기로 오진 받았다가 결국 백혈병으로 사망한 가까웠던 어느 소녀가 생각나더군요. 별다르지 않았습니다. 중급 병원과 상급 병원을 전전하면서 말 그대로 입원 구걸을 해야만 했습니다. 위험하지만 죽을 병은 아니고 치료가 가능하지만 까다롭다는 이유에서였죠. 길바닥에서 한빛내과 의사 선생님을 만나지 않았더라면 마찬가지로 치료가 더 늦어졌거나 치료 시기를 놓치고 죽었겠죠. 정말로 입원 병실의 담당 교수님도 조금만 더 늦었어도 치료 시기를 놓쳤을 거라며 혀를 차더군요. 한 마디로, 대한민국 의료 시스템의 사각지대에 던져졌던 겁니다. 

입원해보면 회진 때마다 서글퍼집니다. 의사가 그야말로 구세주로 보이죠. 의료 피라미드 최상단의 포식자처럼 보입니다. 회진 땐 조금이라도 교수님을 붙잡고 한 마디라도 더 들어보려는 환자 가족들의 애걸복걸이 이어집니다. 갈 길 바쁜 의사 선생님들은 말을 끓으려고 애쓰고 한 시가 급한 환자 가족들은 말을 이으려고 애쓰죠. 서글픈 장면입니다. 그러다가 못 참고 다른 병원으로 가버리는 경우도 많습니다. 같은 병실을 썼던 노인분이 계셨습니다. 70대라는 나이가 믿겨지지 않을 정도로 풍채가 당당하셨죠. 폐암 4기 진단을 받고 입원한 지 얼마 안 된 상태였죠. 병실에서 당구 중계 방송을 즐겨 보시던 기억이 납니다. 환자는 당구대 위에서 이리 치이고 저리 치이는 볼 같은 신세라는 걸 모르셨던 모양입니다. 입원한 내내 의사 코빼기도 볼 수 없다고 불평하다가 결국 다른 병원으로 떠나버렸습니다. 그 병원 사정도 별 다르지 않다는걸 몰랐던거죠. 이 병원만의 문제가 아니라 모든 병원의 문제라는 걸 처음 아파 본 환자가 알 도리가 없습니다. 더 슬기로운 의사가 어딘가에 있으리란 막연한 희망을 품지만 그런 의사는 도무지 만나지지를 않습니다. 

살다 보면 우리 모두 아플 수 있습니다. 죽을 고비를 넘길 수도 있습니다. 아무런 준비도 대비도 없이 환자가 돼서 겪게 되는 대한민국 의료시스템은 온통 모순 투성이입니다. 동네 병원과 중급 병원과 상급 병원으로 이어지는 대한민국 의료 체계엔 구멍이 숭숭 뚫려 있습니다. 적잖은 동네 병원이 환자한테 무관심합니다. 일상적인 약 처방만 해주고 중환자를 집에 돌려보내기 십상이죠. 일부 중급 병원은 상급 병원한테 책임을 떠넘기면서 직무유기를 합니다. 환자들이 어중간한 중급 병원보다 일단 무조건 상급 병원부터 찾는 이유가 되죠. 그 탓에 상급 병원은 전국에서 몰려드는 환자들 때문에 환자 하나 하나한테 신경 쓰기가 어렵게 됩니다. 병상이 그렇게 많은데도 언제나 병상이 부족해집니다. 그나마도 멤버드급 규모를 유지하기 위해 그 많은 병상을 돈이 되는 환자로 채워야 한다는 조직적 강박에 시달리죠. 그러다 환자는 운이 나쁘면 의료 체계의 사각지대에 버려지게 됩니다.  
9월, 북저널리즘은 종이책 신간 한 권을 퍼블리싱했습니다. 《의사들은 왜 그래?》입니다. 《의사들은 왜 그래?》는 현직 의사가 직접 쓴 의료 현실에 대한 자기 고백서입니다. 책을 준비하면서 환자이던 시절의 기억이 소환되는건 어쩔 수가 없었습니다. 솔직히 의료 시스템의 사각 지대에 버려질 뻔했던 피해자 입장에선 비판적으로 읽을려면 한도 끝도 없습니다. 아직도 입원 구걸을 하러 병원을 떠돌던 기억이 생생하니까요. 

그런데 《의사들은 왜 그래?》는 단언컨대 환자가 의사 입장을 역지사지로 이해할 수 있게 해주는 책입니다.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하고 의료 현장에 들어온 의사분들이 왜 동반자나 수호자가 되지 못하고 기술자로 전락했는지를 알려줍니다. 중병을 감기로 오진했던 동네 의사들이 왜 우리의 질병을 찬찬히 살펴주는 동반자가 되지 못했는지 말해줍니다. 중병과 싸우는 수호자가 되고 싶어서 상급 병원을 열망했던 의사분이 애매한 중급 병원에서 환자를 이 병원 저 병원으로 트랜스퍼하기만 하는 의료 공무원이 됐는지도 이해하게 됩니다. 수호자가 됐지만 밀려드는 환자들에 치여 표정조차 잊어버린 의사분의 입장도 알게 됩니다. 의사들이 사실 강호라고 불리는 의료 시장에서 살아남아야 하는 의사 면허증을 가진 자영업자들이란 현실도 직시하게 되죠. 전찬우 에디터가 정리한 《의사들의 왜 그래?》의 부제는 가성비 의료가 양산한 기술자들입니다. 그리곤 이렇게 묻죠. 지속 가능한 의료의 조건은 무엇인가.  

《의사들은 왜 그래?》에서 그려지는 의사들은 병든 의료 시스템을 치료할 겨를이 없습니다. 대형병원 의사들은 밀려드는 환자에 치여 삽니다. 중형병원 의사는 부족한 장비와 예산 탓에 치료조차 시도하지 못하고 환자를 전원시키기 바쁩니다. 동네병원 의사는 매일 월세와 약값과 직원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강호의 자영업 낭인입니다. 의사도 환자도 병든 시스템 탓에 고통 받느라 제대로된 진단도 처방도 치료도 할 엄두를 못 냅니다. 그때 그때 대증요법에 급급할 수 밖에요. 

《의사들의 왜 그래?》는 결코 의사들을 위한 허튼 변명이 아닙니다. 현직 의사인 저자는 의사들이 빠져 있는 번아웃 증후군을 담담하게 인정합니다. 또한 상급 병원과 동네 병원 그리고 환자의 입장을 고루 반영해서 쓰려고 노력했습니다. 덕분에 환자 입장에서도 이해할 만한 구석이 많습니다. 의사들이 왜 그렇게 밖에 할 수 없었는지 통찰하게 되니까요. 그리고 그런 문제들이 한때 환자였거나 언젠가 환자일 수도 있는 우리들한테 절대 무관한 문제가 아니라는 걸 깨닫게 해줍니다. 역설적이지만 환자가 변화를 요구해야 의료가 바뀝니다. 아플 때만 스쳐 지나가는 환자는 의료 시스템의 영원한 손님일 수밖에 없으니까요. 의사가 아닌 우리들도 《의사들은 왜 그래?》를 통해 한번 쯤 대한민국의 병든 의료 시스템에 관해 문제 의식을 가져봐야 하는 이유입니다. 지속 가능한 의료는 의사와 환자가 함께여야 만들 수 있습니다. 

한빛내과 덕분에 살았습니다. 엉망진창인 의료 시스템 속에서도 조용히 동반자 역할을 해준 의사 선생님 한 분이 계셨기 때문입니다. 수개월의 입원 기간 동안 자기 인생이 갈리면서 돈 안 되는 환자를 돌봐 준 전공의 선생님들과 간호사분들 덕분에 살았습니다. 이토록 모순투성이 시스템도 그렇게 슬기로운 분들이 있기에 굴러갑니다. 시스템을 떠받치는 건 제도가 아니라 사람인 것이죠. 우리는 그걸 한빛이라고 부릅니다. 희망이라고 부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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