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트 메르켈

9월 28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메르켈 시대가 막을 내린다. 독일 국민은 엄마를 대신해서 로봇을 새로운 리더로 선택했다. 유럽 정치 무대에선 이미 메르켈의 공백이 크다. 

©일러스트: 김지연/북저널리즘
16년을 이어온 앙겔라 메르켈 체제가 막을 내렸습니다. 지난 9월 26일(현지 시각) 독일의 스무 번째 연방의회 선거(Bundestagswahl 2021)가 시작되었고, 여기서 가장 많은 의석을 차지한 제1당의 후보가 메르켈 총리의 뒤를 이어 새로운 독일의 총리가 됩니다. 출구조사와 함께 잠정 집계된 내용에 의하면 사실상 ‘사회민주당(SPD)’의 올라프 숄츠(Olaf Scholz)의 당선이 확실시 되었으며 언론은 숄츠에 대한 보도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한편, 전통적인 ‘기독교민주연합(기민련, CDU)’과 ‘바이에른기독교사회연합(기사연, CSU)’이 뭉친 보수 연합의 공고한 지지율을 깨고 도약한 사회민주당이기에, 이들의 연립정부 구성에도 우려와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이번 선거는 투표 직전까지 한 치 앞도 내다볼 수 없을 정도로 치열해 결과 예측이 어려운 선거였습니다. 전 유럽에 불고 있던 우파 포퓰리즘에 따라 지난 2013년 창당한 ‘독일을 위한 대안(AfD)’[1]은 꾸준히 부상하고 있었고, 지난 4, 5월을 기점으로 안나레나 배어복(Annalena Baerbock)을 총리 후보로 내건 ‘녹색당(Grüne)’은 잠시나마 기민·기사연의 지지율을 넘어서기도 했습니다. 메르켈 총리가 소속된 기민련에서는, 현 바이에른 주총리 겸 기사연의 대표인 마르쿠스 죄더(Markus Söder)와의 단일화에서 진통을 겪은 아르민 라셰트(Armin Laschet)의 언행이 크게 논란이 되어 지지율 하락을 불러오기도 했죠. 두 달 전만 해도 지지율 16퍼센트 정도의 사회민주당이 제1당이 되리라곤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한편, 메르켈 없는 독일은 세계인들에게도 생경하지만, 독일 국민에게는 그야말로 커다란 변곡점이자 상상이 어려운 일입니다. 동독 출신[2]으로 정계에 입문하여 지지율 80퍼센트로 퇴장할 때까지 그야말로 입지전적인 행보를 보여주었지만 그의 리더십은 늘 혹독한 시험대에 놓였고, 어느덧 독일에는 그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던 포스트 메르켈의 시대가 왔습니다. 메르켈이 EU의 실질적 수장과 다름없다는 평가가 있는 만큼, 독일 선거는 향후 EU의 의제 설정에 큰 영향을 끼칩니다. 각종 기후 협약과 대(對)중국·러시아 외교 노선, 좌·우파 포퓰리즘 등, 비단 유럽뿐 아니라 전 세계의 이해관계가 걸린 의제들이지요. 이제 포스트 메르켈의 시대가 왔습니다. 소용돌이 같았던 최근 독일의 정계와 사민당 득세의 의미, 메르켈 시대의 유산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보겠습니다.
 

소용돌이 독일정치

©북저널리즘
독일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기 전에 기본적인 정치 제도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욱 좋겠죠. 독일은 의원내각제이고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입니다. 다만, 투표 방식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구석도 있지요. 독일의 선거 제도는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3]인데요, 우리나라와 같이 원하는 지역구 후보 한 사람과 원하는 정당에 한 표씩을 행사합니다. 지역구 299명, 주별 득표율에 따른 정당 명부 의원 299명을 뽑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정당 득표율보다 많은 지역구 의원을 당선시킨 당이 있으면, 초과로 당선된 그 주의 지역구 의원을 모두 인정해준다는 점입니다.[4] 따라서 매번 국회의원의 총인원이 달라지죠. 의원내각제의 특징은 국회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정당이 대연정(大聯政, Grand Coalition)을 구성합니다.[5] #독일식연동형비례대표제

기민·기사연은 메르켈을 앞세워 연방 공화국 수립 이후 52년 동안 제1당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으며, 위기가 있을 때마다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구성하여 위기를 극복해왔습니다. 다만 메르켈이 정계 은퇴 선언을 한 뒤 총리 후보를 정할 때 잡음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기민련과 기사연 사이의 갈등인데요, 총선을 앞두고 부패 스캔들, 방역수칙 위반, 가족 비리 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르며 기민련의 라셰트는 지지율이 하락하고, 기사연의 후보인 마르쿠스 죄더가 떠올랐습니다. 죄더는 바이에른 주총리였는데, 코로나19 사태 때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시행하여 정계뿐 아니라 대중적인 인기도가 매우 높아진 상태였죠. 하지만 단일화 방법을 정할 때, 여론 조사를 반영하지 않고 기민련 중앙위 표결을 통하는 방법이 채택되어 결국 라셰트가 총리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메르켈의 지지 호소에도 불구하고 라셰트는 지난 7월 독일의 대홍수 피해 현장에서 크게 폭소하는 장면이 찍혀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했습니다. 이는 7월을 기점으로 한 기민련의 지지율 하락과도 이어졌죠. 반면 5월에 녹색당의 반등은 놀라웠습니다. 독일의 녹색당은 각국에서 볼 수 있는 녹색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공동대표는 기민련이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하는 동안 메르켈을 연상케 하는 ‘무티 리더십(Mutti)’[6]을 갖춘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주자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기민·기사연을 잠시 추월할 정도였는데요, 녹색당이 만약 기세를 이어 독일의 제1당이 되었다면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후, 배어복의 저서가 표절 논란에 휩싸이고, 허위 경력 기재 및 소득 신고에서의 편법이 드러나며 녹색당의 지지율은 다시 추락했습니다. #총선이모저모

그런가 하면,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여전히 10퍼센트 대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메르켈 정부의 최대 위기로 거론되는 시리아 난민 140만 명 입국 사태 때, 유럽 전역으로 퍼진 자국민 우선주의의 물결을 타고,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강세가 독일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켈이 없는 총선에 대한 불안감은, 기존에 보수였던 부동층의 표심을 ‘독일을 위한 대안’ 쪽으로 끌고 오지 못했습니다. 이번 선거가 특히 치열했던 이유는, 메르켈의 부재와 상술한 각종 논란으로 선거 직전까지 40퍼센트에 육박한 부동층(浮動層)[7]있었죠. 이제 남은 것은 연립 정부의 구성입니다. 〈INWT Statistics〉에서 다양한 예상 조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중도 좌파인 사민당이 녹색당과 좌파당 등과 연합할 경우 상당한 진보 정권이 들어서는 셈이지만, 자민당이 연정 의사를 밝혔던 만큼, 자민당과 더불어 ‘신호등 연정’[8]이 구성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민당과 유럽의 중도 좌파, 코포라티즘

©북저널리즘
이 소용돌이 끝에 웃은 것은 사민당이었습니다. 이번 독일 연방의회 선거에서 사민당의 선전이 어부지리와 같이 느껴질 수도 있지만, 유리한 후보 선정도 사민당의 총선 승리에 큰 몫을 했습니다. 메르켈의 뒤를 잇게 된 올라프 숄츠는 중도 좌파인 사민당 내에서 보수 성향으로 분류됩니다. 이는 부동층의 표심을 흡수하는 데 강점으로 작용했죠. 또한, 그는 기민·기사연과의 대연정으로 인해 연방 부총리이자 재무장관으로 재임하는 3년 동안 위기에 강하고 실용주의적인 면모를 보여주었습니다. 그가 유력 주간지인 《디 차이트(Die Zeit)》로부터, 로봇이라는 의미로 ‘숄마트(Sholzomat=Sholtz+Automat)’라고 불린 것은, 방역과 재정 관리 등의 국정을 안정적으로 수행했기 때문입니다. 메르켈의 부재로 ‘안정’을 원하는 독일 국민에게 숄츠는 든든한 선택지였던 것이죠.

다만 사민당은 여느 유럽의 중도 좌파 정당들과 같이 어려운 시기를 보냈습니다. 가디언의 기사를 번역하여 출간한 북저널리즘의 전자책 《합의 정치의 종말》에서는 영국의 중도 좌파 노선인 ‘제3의 길’[9]이 몰락한 과정을 잘 보여주고 있지요. 노동당인 ‘토니 블레어’ 총리는 신자유주의의 흐름을 이겨내지 못했습니다. 마찬가지로 코포라티즘(Corporatism)으로 대표되는 합의와 타협의 기치를 내세운 독일 정치의 전통 역시 사민당의 추락과 극우 정당의 출현으로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특히 사민당은 독일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에서 가장 오랜 역사를 자랑하는 사민주의 정당이자, 북유럽 국가, 영국의 노동당 등과 함께 전후 유럽을 이끌어왔던 정당입니다. 이들은 어쩌다 이렇게 추락하게 되었을까요?

유럽의 중도 좌파 정당은 1930년대의 대공황을 거치며, 노동과 자본의 타협을 이루려는 과정에서 출발하였습니다. 노·사·정의 자발적인 타협과 선순환을 통해 경제 성장을 이루어 말 그대로 풍족한 파이를 평화롭게 나누는 형태였죠. 하지만 2000년대 이후 노동 환경이 세계화, 자동화 등 다양한 변화를 겪으며, 단순히 선한 자본가와 노동자의 협력으로만 해결하려는 형태의 정치는 호소력이 떨어졌습니다. 계급 정체성 자체가 변화한 것이지요. 더군다나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의 여파로 실업률이 올라가고 소득 양극화가 심해지며, 공공 지출을 삭감해야 하는 상황 속에 중도 좌파는 점점 설 곳을 잃어갔습니다. 이러한 시류를 가장 대표적으로 반영했던 것은 그리스 사회주의 정당인 ‘파속(PASOK)’의 몰락입니다. 《가디언》은 지난 2017년의 기사에서 이를 ‘파속화(Pasokification)’라는 단어로 명명하며 유럽 중도 좌파의 몰락을 설명했죠. 

메르켈이라는 정치적 거물과의 연정으로 사실상 소수파 러닝 메이트 신세였던 사민당은, 과거 마르틴 슐츠 전 유럽의회 의장을 총리 후보로 내세웠을 때나 메르켈 이전 총리였던 게르하르트 슈뢰더 시절을 제외하고는 이 흐름에서 자유롭지 못한 채 계속 악화일로였습니다. 당시 독일에선 사민당의 잦은 보수 연정 구성으로 인해 그들의 텃밭인 독일 최대의 공업 지역인 루르 지역에서조차 표심이 이탈하기 시작했는데요, 이들은 심지어 극우 혹은 극좌 성향의 정당으로 이탈하여, ‘고용 없는 성장’의 추세 속에서 자신들의 이권을 찾고자 했습니다. 중도 우파가 좌파의 정책을 일부 흡수하며 표심을 집결시킨 것에 비해, 중도 좌파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드물었고, 오히려 정당의 이념적 구분이 모호해졌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링크한 기사에서는 오히려 좌파의 색채가 뚜렷한 아젠다로 성공한 영국 노동당의 제러미 코빈 대표를 들며, 중도 좌파에게 대안을 제시했지요. 사민당이 처한 상황이 이러했기에, 이번 선거에서의 선전은 괄목할 만한 일인 것입니다.
 

메르켈 시대의 유산

©KBS
메르켈은 애초에 선거에 크게 관여할 생각이 없었습니다. 다만 선거 막바지에 사민당이 급부상하자, 라셰트에 대한 지지를 호소하며 사민당이 집권할 경우 좌파당과 연정을 꾸릴 수 있으며 자신의 집권기와 상황이 아주 달라질 수 있음을 언급하기도 했습니다. 그만큼 보수 연합의 위기는 유례를 찾아보기 힘들 정도이지만, 그것이 메르켈 개인에 대한 평가에 영향을 주진 못합니다. 그 오랜 집권 동안 안정적으로 나라를 이끌며 독일을 G7에 올려놓은, 패전국으로 출발하여 가까스로 연합정부를 구성했던 과거에도 불구하고 독일이 EU의 핵심으로 자리하게 한 지도자. 패권 사이에서 EU의 중심과 품격을 지키고자 노력했던 지도자. 그렇기에 그는 종종 ‘세계 정치 지도자’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메르켈이 지금이라도 마음만 먹는다면 연방 하원의원 선거에서 승리하고 4년 더 총리를 할 수 있을 것이다.”

2005년부터 16년이라는 세월을 투표로써 정당성을 부여받은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만약 현재 사민당이 연정 구성에 시간이 더 소요되어 메르켈의 총리직이 올해를 넘어간다면, 그를 정계에 입문시켰던 그 유명한 헬무트 콜 전 총리를 넘어서는 집권 기간을 갖게 되는 셈입니다. 심지어 헬무트 콜은 선거 패배로 총리직에서 물러났지만, 메르켈은 자진 사퇴로 박수칠 때 떠나는 총리가 되었죠. 위 영상에서 독일국민들이 말하는 메르켈의 리더십은 ‘안정’ 그 자체입니다. 물론 메르켈의 모든 행보가 박수받았던 것은 아닙니다. 하지만 신중하고 포용력 있는 이른바 ‘무티 리더십’으로 영국의 강경 우파 ‘마거릿 대처’와는 다른 색다른 여성 지도자의 면모를 보여주며 대체로 안정적으로 이끌어왔다는 것이 중론입니다.

메르켈른(merkeln)’. 그의 신중함은 비판의 대상이 되기도 했지만, 메르켈은 필요한 곳에서 꼭 자신의 목소리를 낼 줄 아는 지도자였습니다. 간혹 그것이 메르켈의 정치적 위기로 이어질지라도 말입니다. 2009년 유로존 부채 위기 때 메르켈은 유로존 위기가 발발한 그리스와 스페인에 대해 강도 높은 긴축재정을 요구하며, 내정 간섭이라는 비판 속에서도 유로존을 구해냈습니다. 난민 문제는 메르켈 지지율 하락의 대표적인 원인으로 꼽힙니다. 메르켈이 속한 기민련은 난민 문제에 대해 대체로 부정적이었지만, 당론에도 불구하고 메르켈은 시리아와 이라크의 내전으로 인해 발생한 100만 명 넘는 난민 수용을 결정했습니다. 난민과 유럽인들의 갈등이 격화되며, 지지율이 크게 하락하기도 했지만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과 우파 포퓰리즘의 득세는 다시 한번 메르켈에게 힘을 실어준 계기가 되기도 했습니다.

메르켈은 사민당으로 대표되는 유럽 중도 좌파가 시대의 변화에 발 빠르게 적응하지 못했던 것과 달리 좌우를 아우르는 포용의 리더십을 보였다는 점에서 큰 의의가 있습니다. 신자유주의의 확산에도 좌우 포퓰리즘이나 기존 지지층에만 기대지 않고, 중도 우파이면서도 독일의 코포라티즘적 융합과 타협을 끌어낸 것이죠. 상술한 메르켈의 리더십이 없이는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입니다. 필요하면 중국이나 러시아와도 협력하는 실용주의 외교와 기후 위기 해결을 위한 국제 레짐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는 모습은 우리가 패권이라 부르는 미국에선 찾기 어려운 모습이기도 합니다. 트럼프 정부에서 탈퇴한 기후 협약에 바이든 정부는 언제 회귀할지 알 수 없고, 떠오르는 패권인 중국은 차이나 리스크를 유발하고 있지요. 메르켈 시대가 ‘안정적이었다’라고 평가되는 것은 숱한 위기 상황 속에서 그가 보여준 대안적 리더십에 대한 찬사인 겁니다.
 

‘엄마’에서 ‘기계’로, 포스트 메르켈 올라프 숄츠

총선 승리 후 꽃다발을 들어 올리는 올라프 숄츠 ©Photo by Sean Gallup via Getty Images
이제 독일은 포스트 메르켈 시대를 맞이했습니다. 독일의 리더십이 ‘엄마’에서 ‘기계’로 바뀌었지만, 독일 국민이 원하는 최소한은 노련함과 안정성일 것입니다. 현지 언론인 《도이치벨레(DW)》는 판데믹이 시작된 이후 숄츠의 모토는 독일이 위기에 재정적으로 대처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며, “(판데믹은)큰 일이지만, 우리는 해낼 수 있다”라는 숄츠의 발언을 소개했습니다. 그 역시 타 후보자와 동일하게 검증 과정에서 의혹이 제기되었으나, 숄츠와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정치적 타격 없이 당선된 것으로 보입니다. 과거, 별다른 대안 없이 문제 제기에만 열중했던 중도 좌파와는 다르게, “실용적이지만 미래적인 것”을 추구한다는 그는, 정치 무대에서 활약한 30년간 딱딱하고 고루한 관료이지만 확실한 위기관리 능력을 보여왔습니다.

숄츠의 주요 공약은 EU 내 역할 확대와 인프라 투자, 최저임금 인상이었는데요, 이는 실제로 숄츠의 지지율 상승에 효과를 주었습니다. 전통적인 사민당 지지층을 겨냥한 최저임금 이외에도 EU 내 역할 확대는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이는 곧 독일과 EU의 외교 정책, 그리고 기후 위기에 대한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메르켈 체제에서는 실용주의 외교에 따라 중국과의 관계가 유동적이었습니다. 오히려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과 자국 보호주의 무역에 대한 비판으로 미국과 관계가 호의적이지 않았죠. 독일은 여타 유럽 국가들과 같이 중국에 대해서도 신장·위구르 문제에 대해서는 비판의 목소리를 내기도 했습니다. 바이든 정부가 들어서며, 동맹국에 대한 대중국 압박 수요는 다른 양상으로 전개되고 있어, 숄츠의 판단은 더욱 중요해졌습니다. 독일의 선택은 신냉전 양상 속에 유럽과 미국의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이번 정책 토론회에서, 각 후보의 정치 성향에 상관없이 거론된 기후에 관한 정책 역시 지켜볼 부분입니다. 독일 내 환경에 대한 위기의식은 녹색당에 대한 지지율로도 나타나고 있으며, 숄츠 체제에서도 가장 중요한 의제가 될 것입니다. 연정 구상에 녹색당이 포함될 가능성이 크고, 경쟁자였던 라셰트 후보가 다름 아닌 대홍수 현장에서의 폭소로 부진을 겪었기 때문에 노련한 숄츠는 기후 관련 문제에서도 더욱 뚜렷한 목소리를 낼 것입니다. 메르켈 시대의 후광이 너무나도 강렬했습니다. 숄츠의 행보는 일거수일투족 메르켈과 비교를 면치 못할 것입니다. 다만 오랜 부진을 깨고 집권한 독일의 중도 좌파 정당과 노련한 새 총리가 그려갈 독일과 유럽의 미래가 기대됩니다. 과연 포스트 메르켈 시대는 어떤 모습으로 기록될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최근 총선을 치른 독일 정계와 사민당 득세의 의미, 메르켈 시대의 유산과 앞으로의 과제를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독일의 미래는 녹색이다>, 《합의 정치의 종말》, 《유럽 의회, 달라진 세상에 답하다》, 《유럽을 흔드는 극우 정당》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1]
Alternative für Deutschland
[2]
서독 함부르크에서 태어났지만 어릴적 아버지를 따라 동독으로 이주하여 유년기와 청소년기를 동독에서 보냈기에 동독 출신으로 분류합니다.
[3]
Mixed-Member proportional(MMP, 혼합형 비례대표제)
[4]
초과의석(overhang). 독일식 정당명부제의 특징이며 다수당에게 유리합니다. 통상적으로 초과 의석으로 인한 표의 등가성 침해를 보완하는 차원에서 보정의석(Ausgleichsmandate)의 개념으로서 도입되었지만, 계산이 복잡하고 선거 예측이 어려워 논란이 되고 있습니다.
[5]
의원내각제는 다수당이 정부를 구성합니다. 하지만 과반 의석을 확보한 당이 없을 경우 군소 정당, 혹은 세력이 비슷한 당과의 연합을 통해 연립 정부를 구성하여 행정부를 꾸립니다.
[6]
독일어로 엄마를 뜻하는 Mutter의 애칭으로 Mutti라고 부릅니다.
[7]
선거나 투표 따위에서, 어느 쪽을 선택할지 결정하지 못했거나 바꿀 생각이 있는 계층. 유동(流動)층으로 자주 혼용되는 단어입니다.
[8]
사민당은 적색, 자민당은 황색, 녹색당은 녹색을 대표하기에 이러한 연정 형태를 신호등 연정이라고 부릅니다.
[9]
제3의 길(Third Way)은 일부 사회자유주의자와 사회민주주의자들이 주장한 이념 노선입니다. 이론적으로는 사회민주주의를 기반으로 경제적 자유주의를 조화한 중도좌파적 이념으로 자리잡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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