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의 정치 상황을 이야기하기 전에 기본적인 정치 제도에 대한 이해가 있다면 더욱 좋겠죠. 독일은 의원내각제이고 대통령은 상징적 존재입니다. 다만, 투표 방식에서 우리나라와 닮은 구석도 있지요. 독일의 선거 제도는 정당명부식 연동형 비례대표제
[3]인데요, 우리나라와 같이 원하는 지역구 후보 한 사람과 원하는 정당에 한 표씩을 행사합니다. 지역구 299명, 주별 득표율에 따른 정당 명부 의원 299명을 뽑는 것이 원칙이지만, 우리와 결정적으로 다른 것은 정당 득표율보다 많은 지역구 의원을 당선시킨 당이 있으면, 초과로 당선된 그 주의 지역구 의원을 모두 인정해준다는 점입니다.
[4] 따라서 매번 국회의원의 총인원이 달라지죠. 의원내각제의 특징은 국회에서 한 정당이 과반 의석을 확보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는 점이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주요 정당이 대연정(大聯政, Grand Coalition)을 구성합니다.
[5] #독일식연동형비례대표제
기민·기사연은 메르켈을 앞세워 연방 공화국 수립 이후 52년 동안 제1당으로서의 입지를 공고히 했으며, 위기가 있을 때마다 사민당과의 대연정을 구성하여 위기를 극복해왔습니다. 다만 메르켈이 정계 은퇴 선언을 한 뒤 총리 후보를 정할 때 잡음이 있었습니다. 다름 아닌 기민련과 기사연 사이의 갈등인데요, 총선을 앞두고 부패 스캔들, 방역수칙 위반, 가족 비리 등이 수면 위로 떠 오르며 기민련의 라셰트는 지지율이 하락하고, 기사연의 후보인 마르쿠스 죄더가
떠올랐습니다. 죄더는 바이에른 주총리였는데, 코로나19 사태 때 강력한 방역 조치를 시행하여 정계뿐 아니라 대중적인 인기도가 매우 높아진 상태였죠. 하지만 단일화 방법을 정할 때, 여론 조사를 반영하지 않고 기민련 중앙위 표결을 통하는 방법이 채택되어 결국 라셰트가 총리 후보로 선출되었습니다.
메르켈의 지지 호소에도 불구하고 라셰트는 지난 7월 독일의 대홍수 피해 현장에서 크게 폭소하는 장면이 찍혀 지지율이 급격히
추락했습니다. 이는 7월을 기점으로 한 기민련의 지지율 하락과도 이어졌죠. 반면 5월에
녹색당의 반등은 놀라웠습니다. 독일의 녹색당은 각국에서 볼 수 있는 녹색당의 시초라고 할 수 있는데요, 안나레나 배어복 녹색당 공동대표는 기민련이 스캔들로 지지율이 하락하는 동안 메르켈을 연상케 하는 ‘무티 리더십(Mutti)’
[6]을 갖춘 온화하면서도 강인한 주자로 주목받았습니다. 당시 기민·기사연을 잠시 추월할 정도였는데요, 녹색당이 만약 기세를 이어 독일의 제1당이 되었다면 세계적으로 상당한 인상을 주었을 것입니다. 이후, 배어복의 저서가 표절 논란에 휩싸이고, 허위 경력 기재 및 소득 신고에서의 편법이 드러나며 녹색당의 지지율은 다시 추락했습니다.
#총선이모저모
그런가 하면, 극우 정당인 ‘독일을 위한 대안’은 여전히 10퍼센트 대의 지지율을 보였습니다. 메르켈 정부의 최대 위기로 거론되는 시리아 난민 140만 명 입국 사태 때, 유럽 전역으로 퍼진 자국민 우선주의의 물결을 타고, 우파 포퓰리즘 정당의 강세가 독일에서도 이어질 것이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메르켈이 없는 총선에 대한 불안감은, 기존에 보수였던 부동층의 표심을 ‘독일을 위한 대안’ 쪽으로 끌고 오지 못했습니다. 이번 선거가 특히 치열했던 이유는, 메르켈의 부재와 상술한 각종 논란으로 선거 직전까지 40퍼센트에 육박한 부동층(浮動層)
[7]에
있었죠. 이제 남은 것은 연립 정부의 구성입니다. 〈
INWT Statistics〉에서 다양한 예상 조합을 확인할 수 있는데, 중도 좌파인 사민당이 녹색당과 좌파당 등과 연합할 경우 상당한 진보 정권이 들어서는 셈이지만, 자민당이 연정 의사를 밝혔던 만큼, 자민당과 더불어 ‘신호등 연정’
[8]이 구성될 가능성도 있습니다.
사민당과 유럽의 중도 좌파, 코포라티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