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활한 코닥, 분발할 코닥

9월 30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망했던 코닥이 부활한다. 옷을 만들고 약을 만들고 소프트웨어를 만든다. 끝없이 부상하는 후지필름에 맞서, 코닥의 부활은 성공할 수 있을까.

©Kodak Apparel
코닥은 망했습니다. 필름 브랜드로서의 130년 명성이 무너진 건 순식간이었습니다. 업계 최고의 정통함이 구시대적 가치로 하락할 줄을 누가 알았을까요. 2000년대 디지털 카메라의 출범으로 흔들리던 코닥은 결국 2012년 1월, 파산 보호 신청을 합니다. 이듬해 인쇄 및 그래픽 커뮤니케이션 분야만 남기고 필름 및 카메라 사업부는 매각했죠.

이후 코닥은 늘 후지필름의 비교 대상이었습니다. 코닥과 달리 필름 산업의 퇴행을 예감한 후지필름은 발 빠르게 방향을 틀었기 때문이죠. 제약 산업에 뛰어든 것이 시작이었습니다. 지난 10년간, 후지필름은 성공적인 피벗 사례로 언론에서 주목을 받아 온 반면 코닥은 늘 기업 경영의 실패 사례로 소개되었습니다. 2016년 스마트폰 시장에 뛰어들었을 때도, 2018년 가상화폐 발행을 발표해 잠시 주가가 급등했을 때도 코닥을 대하는 세간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그랬던 코닥이 다시 일어납니다. 레트로 감성을 저격한 알록달록한 의류를 만들며 이목을 끌고 있습니다. 후지필름에 이어 제약 산업에도 뛰어들었습니다. 다시 돌아온 아날로그 열풍에 힘입어, 한때 사그라들었던 필름 산업에도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지난 10년간 비교와 조롱의 대상이었던 코닥에게, 두 번째 전성기를 기대해 봅니다. 코닥 어패럴은 어떻게 젊은 층의 감성을 사로잡았을까요? 코닥 본사는 어떻게 신약 회사를 차렸을까요? 돌아온 필름 카메라 열풍 속 코닥은 어떤 위치에 있나요? 끝없이 도약하는 후지필름에 맞서, 코닥의 화려한 부활은 성공할 수 있을까요?
 

감성을 입다, 코닥 어패럴

마음을 움직이는 순간, 정해인 코닥 어패럴 광고영상 ©Kodak Apparel 공식 유튜브 채널
“순간을 담다, 마음을 입다.”

 2019년 10월 론칭한 ‘코닥 어패럴’이 내세우는 캐치 프레이즈입니다. 코닥 어패럴은 한국 하이라이트브랜즈가 미국 회사 코닥으로부터 라이선스를 구매해 론칭한 패션 브랜드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코닥’이라는 이름만 사서 국내 업체가 아예 새로운 패션 사업을 시작한 것이죠.

그런데 이 브랜드가 생각보다 잘 풀립니다. 코닥 어패럴은 벌써 국내 87개 오프라인 매장으로 확장은 물론, 작년 목표 매출액 100억 원을 훌쩍 넘은 매출액 160억 원을 기록하였습니다. 푸마, 뉴발란스 등의 국내 인기 스포츠 브랜드를 거친 하이라이트브랜즈 이준권 대표만의 운영 비결일까요. 시선을 사로잡는 높은 채도의 의류들이 코닥 어패럴만의 차별화된 디자인으로 꼽힙니다. 코닥 로고의 개나리색과 붉은색, 두 시그니처 색상에서 풍기는 레트로 감성이 코닥 어패럴에 고스란히 옮겨졌습니다. 거기에 모델이 정해인이라면, MZ세대의 이목을 끌기 충분합니다.

편한 소재와 형태 또한 코닥 어패럴이 내세우는 강점입니다. 슬리브리스 셔츠, 기능성 반바지 등이 진열된 코닥 어패럴의 오프라인 매장을 구경하노라면 흡사 파타고니아, 더노스페이스 등 한국에서 한 번쯤 유행을 휩쓴 기록이 있는 스포츠 브랜드들이 떠오릅니다. 가볍고 실용적이면서 감성까지 챙기고 싶어 하는 젊은 세대의 마음을 공략하는 데에 성공한 걸까요. SNS에선 이미 코닥 어패럴 패션 아이템을 착용하고 등산, 캠핑을 즐기는 사용자들의 사진 또한 쉽게 찾아볼 수 있습니다. #코닥어패럴

타 스포츠 브랜드엔 없으나 코닥 어패럴에만 있는 것이라면, 바로 카메라와 관련된 굿즈입니다. 카메라의 실제 크기를 반영해 필름 카메라 전용으로 패션 아이템을 낸 브랜드가 또 있었나요? 수동카메라 모양을 본따 만든 ‘카메라 줌 백’, 똑딱이 필름 카메라가 쏙 들어갈 법한 ‘비건 스몰 레더 백’ 등 코닥 어패럴의 카메라 가방은 컴팩트한 디자인만으로도 마니아층의 마음을 사로잡습니다. 하지만 코닥이 부상하고 있는 것은 부단 국내 패션 업계에서만이 아닌데요.
 

팬데믹 시대의 제약회사로 거듭나다

오늘날 코닥이 추진하는 사업들 ©Eastman Kodak
지난해 7월, 코닥은 미국 국제개발금융공사로부터 7억 6천 5백만 달러(약 9천 2백억 원)를 대출받았습니다. 지는 별, 코닥에게 어마어마한 액수의 대출이 가능했던 것은 팬데믹의 영향이었죠. 의약품 제조에 필요한 인원이 부족하다는 국가적 판단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인쇄 사업과 더불어 몇 년간 제약 원료 물질을 만들어 온 코닥은 곧 백신 제조에 필요한 원료를 생산하는 제약회사로 투입되었습니다. ‘코닥 필름’이 아닌, ‘코닥 제약회사(Kodak Pharmaceuticals)’로 출범한 것입니다

코닥이 진출한 사업은 의료 분야뿐이 아닙니다. 의복 염료, 패브릭 코팅 기술, 항균성 은을 활용한 제품 등 재료과학 분야에서 다양한 개발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레이저를 이용한 철판 인쇄술 등 과거에 주력하던 인쇄산업에서도 신기술을 도입하며 새로운 성장세를 노리고 있죠. 그뿐인가요, 최근에는 프린터 자동 솔루션, 데이터 분석 소프트웨어를 출시하는 등 너도 나도 뛰어드는 플랫폼 산업에 코닥도 발을 들였습니다. 변화를 두려워하던 20년 전과는 확연히 다른 모습입니다.
 

내 몸엔 아직 노란 피가 흐른다

Kodak: Behind the Scenes ©studio.c41 인스타그램 캡쳐
그럼 코닥에서 필름 산업은 이제 막을 내린 건가요? 아닙니다. 내릴 뻔했다가 다시 올렸습니다. 최근 젊은 층을 중심으로 번진 아날로그 열풍 덕인지, 필름 시장에 대한 관심이 두드러지기 시작했죠. 필름 카메라의 경우 새로 생산되는 대신 중고 현금거래로 대다수 구매가 이루어지기 때문에, 매출 혹은 시장점유율을 디지털카메라와 비교하는 것은 어렵습니다. 하지만 디지털카메라에선 구현할 수 없는 필름 카메라만의 색감, 질감, 분위기를 주창하는 것이 이젠 다소 진부할 정도로 필름 카메라는 아날로그의 대표 아이콘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주목할 점은 이런 필름 카메라에 들어가는 작고 동그란 ‘필름 롤’의 수급이 어렵다는 것입니다. 과거엔 1롤당 2~3천 원 대에 가장 흔하게 구할 수 있었던 C200을 포함해 수많은 후지필름 롤들은 단종되어 수급이 어렵거나 혹은 매우 비싼 가격에 한정 수량으로만 구할 수 있습니다. 소비자들은 선택의 폭이 좁아졌지만, 이제 코닥이 그 덕을 보고 있습니다. 아예 아날로그 필름 산업과의 종전을 선언한 후지필름과 달리, 그나마 꾸준한 생산을 유지해 온 코닥이 국내에선 필름 롤 시장을 거의 점유하고 있습니다. 코닥의 흐릿한 색감보다 후지필름만의 쨍한 색감을 좋아하는 소비자라 하더라도, 울며 겨자 먹기로 수급이 원활한 코닥사의 필름을 구입하는 것입니다. #네이버쇼핑‘필름’검색

코닥이 미는 제품은 사진 필름만이 아닙니다. 코닥 공식 홈페이지에선 영화 촬영용 필름을 판매하고 있습니다. ‘나만이 볼 수 있는 세계 그대로를 포착하고 싶은 감독들을 위한’이라는 문구에선 살아본 적 없는 시대를 그리워하게 만드는 감성이 느껴집니다. 요새 누가 아날로그 필름으로 영화를 찍냐고요? 넷플릭스에도 올라와 있는 바키타키스 감독의 <Mater of None>이 대표적인 예시입니다. 아날로그 필름 촬영을 고수하는 예술인들에게, 코닥은 이 시대에 몇 남지 않은 소중한 제조업체일 것입니다.

뉴욕 로체스터 지역에 위치한 ‘코닥 파크(Kodak Park)’ 공장에선 오늘도 수많은 필름이 생산되고 있습니다. 필름이 만들어지는 전 과정을 볼 수 있는 공장 견학 프로그램도 신청 가능합니다. 필름의 원료가 되는 물질을 가열하고, 화학물질을 첨가한 뒤 마지막 컷팅까지 필름이 만들어지는 수고로운 과정에선 코닥사의 자부심이 엿보입니다. ‘내 몸엔 아직 노란 피가 흐른다’고 말하는 팬층이 여전히 있을 정도로 코닥의 필름은 죽지 않았습니다. 코닥이 최근 아날로그 열풍의 덕을 보고 있는 것은 맞지만, 언젠가부턴 다시 아날로그 열풍을 이끌어갈 선두주자가 될지 모릅니다.
 

과연 후지필름을 꺾을 수 있을까

후지필름 공식 홈페이지. 메인 화면만 보아도 필름 산업 대신 바이오 산업을 주력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FUJIFILM 홈페이지 캡쳐.
하지만 코닥은 안심할 수 없습니다. 10년 전 어깨를 나란히 했던 불후의 경쟁사, 후지필름 때문입니다. 코닥이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던 시점, 후지필름은 일찍이 피벗 과정에 성공했습니다. 사진 필름을 만들던 기술력을 살려 화장품, 제약, 의료 분야로 당차게 진출한 것이죠. 현재 후지필름은 바이오산업의 대가라는 명성에 만족하지 않습니다. 최근엔 소프트웨어 시장까지 나섰는데요. 사진 저장 서비스를 제공하는 후지필름만의 클라우드, ‘포토뱅크’가 지난 2019년 출시되었습니다. 비록 ‘구글 포토’, ‘아마존 포토’와 같은 글로벌 플랫폼들에 밀려 빛을 발하진 못했으나, 후지필름은 포기하지 않습니다. 후지필름 비즈니스이노베이션(구 후지필름 제록스)은 2015년부터 문서관리 소프트웨어 ‘도큐웍스’를 꾸준히 출시해 오고 있습니다. 파일 변환 서비스 등 사용자에게 최적화된 작업환경 시스템을 구축하겠다는 것이 후지필름 도큐웍스의 목표입니다. 이미 시장을 장악한 구글 문서와의 경쟁력은 불분명하지만, 후지필름이 오피스 솔루션을 비롯해 다양한 분야로 진출하고자 하는 야심만은 입증되었습니다.

그래서 ‘코닥은 후지필름을 꺾을 수 있을까’라는 질문은, 1~2년 전만 해도 우문이었습니다. 코닥은 여전히 스마트폰과 가상화폐 사이에서 길을 헤매는 중이었고, 한국에 출범한 코닥 어패럴은 후지필름과는 완전히 분야가 다른 패션 브랜드였으니까요. 하지만 지금의 코닥은 후지필름과 견주어 볼 만합니다. 두 브랜드 모두 필름 회사의 경계를 넘어 재료공학과 소프트웨어 산업에 도전한다는 공통점이 생겼기  때문이죠. 또 만약 레트로 열풍이 지금보다 거세져 필름 산업에 대한 수요를 확신한다면, 후지필름도 가만있지는 않을 것입니다. 언제 필름 생산을 재개할지 모르는 일이죠. 코닥보다도 예쁜 카메라 가방을 덜컥 출시해 버릴지도 모르는 일입니다. 코닥이 잘하는 분야라고 해서 코닥만이 해야 하는 분야는 아니니까요.

결국 코닥의 부활은 더 신중히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디지털이 아날로그를 잡아먹었다고들 말하지만 그때 사람들에게 더 필요했던 것이 디지털이었던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후지필름이 코닥을 잡아먹은 것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사업을 그땐 후지필름이 더 많이 했을 뿐입니다. 그렇다면 코닥 부활의 관건 또한 세상을 읽는 기민함에 있겠죠. 브랜드 로얄티가 옛말이었던 것처럼, 레트로 감성도 한순간일 수 있습니다. 한 분야를 130년간 장악했던 코닥의 비참한 말로에서 우리는 이미 확인했기 때문입니다. 이제까진 부활이었다면, 이제부턴 또 다른 분발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최근 후지필름에 맞서 다양한 사업 분야를 시도하는 코닥의 부활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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