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대로변에 100미터 가까이 늘어선 육견 매장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게마다 여느 고기처럼 부위별로 손질이 된 것부터, 온전한 형태로 불에 그슬린 채 매달린 것까지 가득 진열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모란시장에 갔을 때 동행한 반려인인 친구는 그쪽 근처도 가지 않겠다며 걸음을 돌렸습니다. 돌아가는 내내 시장 쪽을 바라보며 힘들어하던 친구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반려인들은 반려견을 위해 헌신합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산책을 시키고, 때마다 예방접종 주사를 맞히고, 좋은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팝니다. 반려견과 같이 살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감수합니다.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반려견과 산책하는 동안 보신탕집을 종종 지나칩니다.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과 개를 먹는 사람이 한 공간을 점유합니다. 물론 반려견은 즐겁기만 하겠지요. 하지만 반려인은 씁쓸합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미안하고, 불쾌감과 혐오감이 들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마음을 추스르고 산책을 이어갑니다.
반려인들이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아도 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지난 9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간 시민단체나 국회 차원의 언급은 여러 번 있었지만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개 식용 금지’를 이야기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향은 무척 컸습니다. 주요 정당과 정치 인사들이 즉각적인 입장을 발표하고, 동물단체와 육견협회가 다시 충돌하고 있습니다. 개고기 식용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보던 익숙한 풍경이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던 만큼 결과가 다를까요? 아니면 잠깐의 이슈로 떠올랐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가고 말까요? 야당의 말처럼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불과한 것일까요?
정치권은 때아닌(?) 개고기 논쟁
대통령의 발언에 정치권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여권의 주요 후보들이 일제히 찬성 입장을 드러낸 가운데,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이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응했습니다. 그는 ‘다수가 원하니 국가가 개입하겠다, 고 주장하는 건 대중영합주의’라며, 대통령의 발언을 ‘포퓰리즘’이라고 폄훼했습니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윤석열 후보도 “개고기는 선택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가 비난을 받은 건 SNS에 강아지를 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애견인으로서 어필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때아닌 개고기 논쟁에 휘말린 건 미묘한 시점 때문입니다. 지난 북저널리즘 데일리에서 설명했듯,
2030 세대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는가가 다음 대선의 핵심적인 이슈인 상황에 대통령의 개고기 발언에 대해 정치권은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1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반려인들의 표심도 걸려 있습니다. 중앙일보에서 ‘펫심이 표심’이라는 취지의 분석기사를 발행한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동물권 부분은 대선주자들과 정당들의 주요 관심사인 것입니다. 보수 야당은 일단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청와대도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며 수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전혀 정치적일 것이 없는 개고기가 가장 정치적인 사안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자신의 지지율, 넓게는 여권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노림수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 맥락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던 29일은 국무회의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민법이 통과된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반려동물 등록률 제고, 실외 사육견 중성화 사업 추진 등의 동물권 보호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고, 이때 문 대통령이 “개고기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시기”라고 언급했는데요, 이것이 전략적이건 아니건 이는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동물권 보호를 개선하고 법제화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개고기 문제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동물권과 개고기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계속 개를 먹는 한 진정한 의미의 동물권 개선은 이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 이슈, 한국의 개고기 문화
국내에서의 논란과 별개로,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한 외신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가디언,
BBC,
워싱턴포스트 등 전 세계의 주요 외신들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주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포경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활동을 예의 주시하듯이 서방의 주요 국가와 시민들은 우리나라의 개 식용 문제를 심각하고 불편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선진국 진입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으로서 전 세계에서 비난하는 개고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선진성이 음식 하나에 결부되진 않지만 우리가 먹는 것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개’라면 문제가 다릅니다.
우리는 딜레마 혹은 선택의 순간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와 상관 없이, 우리나라가 공식적인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시점에 모두가 비난하는 관습 또는 문화를 이어가야 하는가 하는 것인가, 한 단계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에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거나 논의를 회피하며 개고기를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신중히 검토해야 할 때’라는 발언은 우리가 더이상 미루기 힘든 선택의 순간에 처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 갈등이 된 개고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