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에 식용개는 없다

10월 1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문재인 대통령의 '개고기 금지' 발언에 대해 정치권의 논쟁이 뜨겁다. 정말 표심을 노린 포퓰리즘일까, 동물권 개선을 이끌어낼 전진일까. 그리고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일러스트: 유덕규/북저널리즘
성남 모란시장에 가면 대로변에 100미터 가까이 늘어선 육견 매장을 볼 수 있습니다. 가게마다 여느 고기처럼 부위별로 손질이 된 것부터, 온전한 형태로 불에 그슬린 채 매달린 것까지 가득 진열되어 있습니다. 언젠가 모란시장에 갔을 때 동행한 반려인인 친구는 그쪽 근처도 가지 않겠다며 걸음을 돌렸습니다. 돌아가는 내내 시장 쪽을 바라보며 힘들어하던 친구의 모습이 선하게 떠오릅니다.

반려인들은 반려견을 위해 헌신합니다. 퇴근 후 지친 몸을 이끌고 산책을 시키고, 때마다 예방접종 주사를 맞히고, 좋은 먹을거리를 구하기 위해 발품을 팝니다. 반려견과 같이 살기 위해 상당한 노력과 비용을 감수합니다. 이유는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반려견과 산책하는 동안 보신탕집을 종종 지나칩니다. 몇 미터를 사이에 두고 개를 사랑하는 사람과 개를 먹는 사람이 한 공간을 점유합니다. 물론 반려견은 즐겁기만 하겠지요. 하지만 반려인은 씁쓸합니다. 자신이 잘못을 저지른 것처럼 미안하고, 불쾌감과 혐오감이 들지만 아무 일도 아니라고, 어쩔 수 없는 거라고 마음을 추스르고 산책을 이어갑니다. 

반려인들이 이런 딜레마에 빠지지 않아도 되는 날이 다가오고 있는 걸까요? 지난 9월 29일 문재인 대통령은 김부겸 국무총리와의 주례회동에서 “이제는 개 식용 금지를 신중히 검토해야 할 때가 되지 않았느냐.”라고 언급했습니다. 그간 시민단체나 국회 차원의 언급은 여러 번 있었지만 대통령이 공식적으로 ‘개 식용 금지’를 이야기한 적은 없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반향은 무척 컸습니다. 주요 정당과 정치 인사들이 즉각적인 입장을 발표하고, 동물단체와 육견협회가 다시 충돌하고 있습니다. 개고기 식용 논란이 벌어질 때마다 보던 익숙한 풍경이긴 합니다만, 이번에는 대통령의 발언이 있었던 만큼 결과가 다를까요? 아니면 잠깐의 이슈로 떠올랐다가 다시 평소대로 돌아가고 말까요? 야당의 말처럼 인기에 영합하는 포퓰리즘에 불과한 것일까요?
 

정치권은 때아닌(?) 개고기 논쟁


대통령의 발언에 정치권은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습니다. 여권의 주요 후보들이 일제히 찬성 입장을 드러낸 가운데, 국민의힘 양준우 대변인이 페이스북 글을 통해 대응했습니다. 그는 ‘다수가 원하니 국가가 개입하겠다, 고 주장하는 건 대중영합주의’라며, 대통령의 발언을 ‘포퓰리즘’이라고 폄훼했습니다. 야권의 유력한 대선주자인 윤석열 후보도 “개고기는 선택의 문제”라는 입장을 밝혔는데, 그가 비난을 받은 건 SNS에 강아지를 안고 있는 사진을 올리며 애견인으로서 어필했던 전력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정치권이 때아닌 개고기 논쟁에 휘말린 건 미묘한 시점 때문입니다. 지난 북저널리즘 데일리에서 설명했듯, 2030 세대의 표심이 어디로 향하는가가 다음 대선의 핵심적인 이슈인 상황에 대통령의 개고기 발언에 대해 정치권은 민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기에는 젊은 세대뿐만 아니라 1500만 명으로 추정되는 반려인들의 표심도 걸려 있습니다. 중앙일보에서 ‘펫심이 표심’이라는 취지의 분석기사를 발행한 적이 있는데요, 그만큼 동물권 부분은 대선주자들과 정당들의 주요 관심사인 것입니다. 보수 야당은 일단 '개인의 권리를 침해하는 것'이라며 대통령과 대립각을 세우고, 반대 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청와대도 사회적 파장을 의식해 “당장 시행되는 것은 아니다”며 수위를 조절하고 있습니다. 전혀 정치적일 것이 없는 개고기가 가장 정치적인 사안으로 변질되고 있습니다. 

대통령의 발언이 자신의 지지율, 넓게는 여권의 표심을 공략하기 위한 노림수인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그러한 이야기가 나오게 된 맥락은 충분히 이해할 만합니다. 문 대통령의 언급이 있었던 29일은 국무회의에서 동물의 법적 지위에 대한 민법이 통과된 다음 날이었습니다. 이 자리에서 반려동물 등록률 제고, 실외 사육견 중성화 사업 추진 등의 동물권 보호에 대한 보고가 이어졌고, 이때 문 대통령이 “개고기 금지를 신중히 검토할 시기”라고 언급했는데요, 이것이 전략적이건 아니건 이는 매우 자연스럽게 느껴집니다. 동물권 보호를 개선하고 법제화 하는 과정에서 우리는 결국 개고기 문제와 마주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동물권과 개고기는 양립할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가 계속 개를 먹는 한 진정한 의미의 동물권 개선은 이뤄질 수 없는 것입니다.
 

세계적 이슈, 한국의 개고기 문화


국내에서의 논란과 별개로, 대통령의 이번 발언에 대한 외신의 관심은 놀라울 정도입니다. 가디언, BBC, 워싱턴포스트 등 전 세계의 주요 외신들이 문 대통령의 발언을 주요 뉴스로 다뤘습니다. 우리가 일본의 포경 행위에 대해 비판하고 활동을 예의 주시하듯이 서방의 주요 국가와 시민들은 우리나라의 개 식용 문제를 심각하고 불편한 사안으로 인식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개고기를 먹지 않은 것이 선진국 진입을 위한 사회적 비용이라는 의견도 있습니다. 우리나라도 이제 선진국으로서 전 세계에서 비난하는 개고기 문제를 해결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한 나라의 선진성이 음식 하나에 결부되진 않지만 우리가 먹는 것이 전 세계인의 사랑을 받는 ‘개’라면 문제가 다릅니다. 

우리는 딜레마 혹은 선택의 순간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개고기를 먹는 것이 옳은가 그렇지 않은가와 상관 없이, 우리나라가 공식적인 선진국 대열에 접어들고 국제적 위상이 높아지는 시점에 모두가 비난하는 관습 또는 문화를 이어가야 하는가 하는 것인가, 한 단계 선진화된 사회로 나아가야 하는 시기에 기존의 입장을 고수하거나 논의를 회피하며 개고기를 먹을 것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한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 문 대통령의 ‘신중히 검토해야 할 때’라는 발언은 우리가 더이상 미루기 힘든 선택의 순간에 처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회 갈등이 된 개고기

농림축산식품부 조사 결과 우리나라 반려동물 양육가구는 5000가구 표본조사 결과 26.4퍼센트, 전국 가구로 환산시 592만 가구에 이르는 것으로 발표되었다.©농림축산식품부
반려동물을 양육하는 592만 가구 중 반려견을 키우는 가구는 83.9퍼센트에 달한다.©농림축산식품부
영화 <누렁이>는 우리나라의 식용견 문제를 정면으로 다루고 있는 다큐멘터리 영화입니다. 외국인 감독의 눈으로 본 우리나라 식용견 문제를 비교적 균형 있는 시각에서 다루고 있는데, 현재 온라인에 무료 공개되어 큰 반향을 얻고 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한국의 육견업계는 점차 위축되고 있긴 하지만 여전히 거대한 산업을 이루고 있습니다. 국내에서 사육·유통되고 있는 식용견에 관한 공식적인 통계는 없지만 2017년 이정미 전 국회의원과 동물보호단체 카라가 집계한 자료에 따르면 국내 식용 개농장은 2862곳이며, 농장 소유의 개는 78만1740마리, 집계에 잡히지 않는 소규모 개농장을 합해 추산하면 연간 100만마리의 개가 식용으로 유통되는 있는 것으로 추정됩니다.. 개농장의 뜬창이나 불법적인 도살 등 동물권 침해 사례는 더 거론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그 사이에 반려인구는 1500만 명을 넘어섰습니다. 농림축산식품부가 발표한 '2019년 동물 보호에 대한 국민 의식 조사'에 의하면 전국적으로 약 600만 가구가 반려동물을 키우고 있고 그중 83퍼센트가 반려견을 키우고 있습니다. 개고기에 대한 시민들의 인식에도 많은 변화가 있었습니다. 동물복지문제연구소 어웨어의 ‘2021 동물보호·복지 정책개선 방향에 대한 국민인식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성인 남녀 2천 명을 표본으로 78.1퍼센트가 ‘개, 고양이의 식용 목적 도살과 판매를 법으로 금지해야 한다’고 답했습니다. 

개고기 산업이 여전히 건재한 상황에서 이러한 대중의 인식변화는 개고기를 둘러싼 양측의 갈등을 불러올 수밖에 없습니다. 영화 누렁이에는 2018년 모란시장에서 한 동물단체가 시위를 벌이는 장면이 나옵니다. 신념을 건 동물단체 사람들과 생존이 걸린 가게 주인과의 싸움은 치열하고 격렬합니다. 영화는 양쪽을 선과 악으로 구분하지 않습니다. 개를 먹는 사람도, 파는 사람도 그들만의 이유가 있고 뜬장에 개를 키우는 농장주도 먹고 살아야 하는 한 개인일 뿐입니다. 그래서 그들이 펼치는 기적의 논리, 식용견과 애완견은 다르다는 주장은 오히려 그들이 얼마나 절박한지 느껴지게 합니다.
동물단체가 육견 판매 시장 앞에서 항의하고 있다.©누렁이/Nureongi 유튜브 공식 채널

세상에 식용개는 없다


이 영화에 빠져 있는 것이 있습니다. 정부의 정책적 조율입니다. 개고기 반대에 대한 사회적 여론이 커지는 동안에도 정부는 이 사안에 대해 침묵하고 있었습니다. 민간 동물단체가 전국 곳곳의 불법 개농장을 돌며 폐쇄를 종용하고 농장주에게 후원금을 모아 돈을 주고 개들을 구입하고 있습니다. 정부가 커지는 사회적 갈등을 방관하고 있다는 비난을 면하기는 어렵습니다. 

물론 그동안 법제화 노력이 없었던 것은 아닙니다. 표창원 의원은 2018년에 개 도살을 막을 수 있는 ‘동물보호법 개정안’을 발의했는데, 당시 육견 산업 종사자들의 강력한 항의에 부딪쳤고, 결국 법안은 지금까지 국회에 계류되어 있습니다. 그 사이 개를 먹는 것에 대한 우리 사회의 혐오감은 훨씬 커졌지만 이 나라에선 매년 100만 마리가량의 개들이 도살되고 있고 보신탕집은 오늘도 문을 엽니다. 

과연 이번 논란이 개고기 금지라는 우리가 한번도 도달하지 못한 사회적 합의, 법제화로 이어질 수 있을까요? 이미 사안이 정치적 논란으로 번진 만큼 쉬워 보이지는 않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대로 또 다시 긴 시간을 흘려보내야 하는 걸까요? 동물권이 정치인의 인기와 표심의 미끼로 전락하지 않도록 시민들이 강력하게 요구하고 이번을 계기로 변화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지 않을까요? 

또한 그 결과가 어느 한쪽의 희생을 강요하지 않도록 정치적 합의를 유도하는 것 또한 중요할 것입니다. 다큐멘터리에서 육견업계 종사자들은 한결 같이 개고기 산업이 사양 사업이라는 것, 멀지 않아 사라지게 될 사업이라는 걸 인정했습니다. 그들도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종사자들의 생존권을 보호하는 정부의 정책과 단계적인 변화로의 사회적 합의가 진행되어야 할 것입니다. 파퓰리즘? 아닐 수도, 맞을지도 모르죠? 중요한 것은 시민 의식이 한결 성숙했고, 사회적 여론이 형성된 만큼 이번만큼은 개고기 논쟁이 정치적 소란으로만 끝나서는 안 됩니다. 애초부터 이것은 정치적인 사안이 아니라 동물 보호에 대한 우리의 의무,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세상에 대한 것이었으니까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최근 정치권의 이슈가 된 개고기 논란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멍멍 으르렁 왈왈 니야옹 (동물 친구와 함께 사는 법)>, <그렇게 해서 2030의 표를 살 수 있을까?>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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