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자의 신

10월 5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리셀테크가 MZ세대의 새로운 투자 방식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제 리셀은 소수 마니아만의 전유물이 아니다. 

글로벌 1위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가 한국에 공식 진출했다. ©StockX
글로벌 리셀(resell) 플랫폼인 스탁엑스(StockX)가 지난달 27일 한국 시장에 정식 진출했습니다. 리셀은 한정판 스니커즈나 의류, 브랜드 굿즈 등 소장 가치 높은 상품을 구매한 후 웃돈을 얹어 비싸게 되파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6년 중고 스니커즈를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출발한 스탁엑스는 현재 럭셔리, IT, 게임 등 더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포함해 총 12만 개 이상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전 세계 200여 개국 650만 리셀러들이 이용한 스탁엑스의 기업 가치는 약 4조 원이며 연내 뉴욕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진출을 시작으로 스탁엑스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의 비즈니스를 꾸준히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기본적인 한국어 서비스, 원화 결제 시스템 구축은 물론, 특별히 별도의 검수 센터도 설립합니다. 제품의 진품 여부와 기능적 하자를 살피는 검수 센터는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의 주요 전략 기지인데요, 우리나라에 검수 센터를 세워 아시아 물류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방침입니다. 제품 검수를 강화하면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거래 신뢰도를 높이고 저렴한 수수료와 빠른 배송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스탁엑스의 이번 한국 진출은 우리나라 리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베이와 뉴욕 증권 거래소 임원 출신이기도 한 스콧 커틀러 스탁엑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미국 경제 전문 채널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한국 내 거래 규모가 지난해 대비 2.3배 급증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현재 스탁엑스 한국 이용자의 60퍼센트 정도가 올해 들어 처음 구매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그야말로 최근 들어 한국에서 리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겁니다. 리셀과 재테크를 더한 ‘리셀테크’가 코인과 주식을 잇는 차세대 투자 방식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커틀러 인터뷰 영상
 

돈이 되는 신발

소장 가치가 높은 제품에 이른바 프리미엄을 붙여 차익을 얻는 방식 자체는 사실 새롭지 않습니다. 스니커즈 시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리셀 문화가 활발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리셀과 리셀테크에 이토록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쉽게 말해 그 어느 때보다 돈이 된다는 겁니다. 지난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신었던 ‘에어 조던 1’이 6억 9000만 원으로 운동화 경매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는데요, 조던의 황금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방영 이후 스탁엑스에서는 에어 조던 판매가 90퍼센트 급증했고, 3000달러 수준이었던 평균 가격은 7000달러까지 뛰어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가수 지드래곤이 나이키와 협업해 만든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모델이 대표 리셀테크 사례로 꼽힙니다. 이 운동화는 국내 한정 818켤레만 제작한 빨간색 로고 모델, 지드래곤 지인 전용으로 제작한 88켤레의 노란색 로고 모델, 그리고 일반 흰색 로고 모델 등 총 세 종류가 있습니다. 발매 가격이 20만 원대 초반이었던 이 신발은 현재 평균 6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무려 2000만 원에 거래되는 사례까지 있었죠. 지드래곤이 올해 연말에 나이키와 협업해 다시 한번 한정판 스니커즈를 출시할 거라는 소식에 리셀러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주식이나 가상 화폐 투자보다 적은 자본금으로 당장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으니까요.

새로운 스니커즈 판매 방식도 리셀 열풍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기존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한정판 스니커즈를 매장에서 선착순 방식으로 파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며칠씩 매장 앞에 노숙 행렬이 펼쳐지고, 대신 줄 서주는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었죠. 그런데 최근엔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래플(raffle)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도입된 건데요, 추첨식 복권이란 의미의 래플은 추첨을 통해 구매 권한을 부여하는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비뽑기라는 의미의 드로우(draw)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죠. 래플과 드로우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돼 시공간적 제약이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합니다. 또 선착순 방식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던 이들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죠.
 

신발만 있는 건 아니다

지난해 스타벅스가 사은품으로 제공한 ‘서머 레디백’ ©스타벅스커피코리아
리셀은 스니커즈에 한정되지 않습니다. 최근엔 제품 카테고리가 다양해졌고, 심지어 특정 브랜드의 프로모션 굿즈를 비싼 값에 사고파는 일도 흔합니다. 스타벅스를 떠올리면 쉽습니다. 지난해 여름 스타벅스는 시즌 음료 17잔을 마시면 ‘서머 레디백’을 증정하는 프로모션을 진행했는데, 매장에 재고가 떨어지자 각종 중고 거래 플랫폼에 10만 원이 훌쩍 넘는 가격으로 가방이 등장하기 시작했습니다. 가방을 많이 받으려 음료 300잔을 주문하고 음료는 버린 뒤 가방만 챙겨 가는 사람까지 있었죠. 지난달에는 음료 주문 시 스타벅스 50주년 기념 리유저블(재사용)컵을 공짜로 증정하는 이벤트를 진행했는데, 다시 한번 리셀 대란을 재현했습니다.

키덜트족이라면 하나쯤 있다는 레고도 대표적인 리셀 품목입니다. 레고는 대게 시리즈당 생산 기간이 2년 정도 됩니다. 즉, 이후에 해당 시리즈가 단종되면 소장 가치가 높아진다는 거죠. 재료가 플라스틱이라 신발이나 옷처럼 보관 상태가 나쁘다고 가격이 하락할 걱정도 없습니다. 레고 피겨(figure) 53개가 담긴 박스 모양 세트가 이베이에서 1억 3000만 원에 팔리는가 하면, 33만 원 선에서 팔리던 레고 타지마할과 에펠탑이 수백만 원에 거래됩니다. 블록 수가 7500개에 달하는 110만 원 상당의 레고 스타워즈 밀레니엄 팔콘 모델은 2017년 출시 이후 경매 사이트에서 네 배 이상 높은 가격에도 거래되고 있습니다.

럭셔리 브랜드에서는 샤넬이 리셀의 대표 주자로 꼽힙니다. 명품의 대명사인 샤넬 가방은 시간이 흐르면서 오히려 몸값이 오르는 현상을 자주 보여왔는데요, 여기에 올해 7월 샤넬이 인기 백(bag)들의 가격을 12퍼센트 이상 인상하겠다고 밝히면서 리셀러들을 매장으로 끌어모았습니다. 가령 샤넬의 베스트셀러 ‘클래식 미디움 플립백(클미)’이 가격 인상으로 967만 원이 되면 차액 100만 원가량에 판매가의 10퍼센트에 해당하는 프리미엄을 붙여 약 200만 원의 수익을 올릴 수 있었습니다. 매장 문을 열기 전부터 길게 줄을 서 있다가 오픈하는 순간 매장으로 달려 들어간다는 의미의 오픈런(open run) 현상은 리셀 수요가 높은 샤넬, 에르메스, 롤렉스 등 명품 브랜드 매장의 시그니처가 되고 있습니다.
 

우리나라 리셀은 어디쯤?

리셀, 리셀테크는 일시적인 현상이 아닌 장기적인 측면에서의 트렌드로 자리매김할 예정입니다. 특히 Z세대가 리셀 시장의 주축이라는 점을 감안하면 더욱 그렇습니다. 미국 중고 거래 업체 스레드업에 따르면, 지난해 기준 280억 달러(32조 원) 수준이었던 전 세계 리셀 시장 규모는 5년 후인 2025년에 640억 달러(74조 원)까지 성장합니다.

현재 약 5000억 원 정도로 추정되는 국내 리셀 시장 규모도 꾸준히 확대할 것으로 보입니다. 미국 여론 조사 기관 해리스가 한국 성인을 대상으로 한 조사에 따르면, 응답자의 36퍼센트는 한정판으로 스니커즈를 샀거나 1년 이내에 구매할 계획이 있습니다. 이들 가운데 다섯 명 중 두 명꼴인 38퍼센트는 투자가 목적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한국소비자원이 SNS 데이터 분석 플랫폼 썸트렌드 비즈(Sometrend Biz)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지난 2018년부터 지난해까지 3년간 Z세대의 리셀테크 관련 언급이 1만 5247건에서 2만 1802건으로 꾸준한 증가 추세를 보였습니다.

지난해에는 한정판 운동화를 대상으로 하는 조각 투자 움직임도 나타났습니다. 국내 미술품 경매 업체 서울옥션은 리셀과 공동 구매의 개념을 더한 자체 플랫폼 소투(SOTWO)를 출시해 스니커즈를 정식 투자 상품으로 취급하고 있습니다. 혼자는 비싸서 못 사는 수백만 원 대의 한정판 스니커즈를 쪼개 구매하고 이후 리셀로 얻은 수익을 투자자들이 나눠 갖는 방식입니다. 최소 투자 단위를 단돈 1000원으로 크게 낮춘 게 특징입니다. 그런가 하면 실물 배송 없이 한정판 스니커즈의 소유권만 사고팔 수 있도록 하는 플랫폼 리플(REPLE)도 등장했습니다. 배송이나 보관 과정에서 발생할 수 있는 훼손을 최소화해 소장 가치를 더 오래 보존하기 위한 목적입니다. 상품 대신 권리증을 발급하는 형태라 판매금 정산도 더욱 빠르다는 장점이 있습니다.
 

막 오른 리셀 전쟁

중고 거래 플랫폼 번개장터가 더 현대 서울에 오픈한 스니커즈 컬렉션 브그즈트 랩 ©번개장터
이제 막 개화기에 접어들었다고 평가받는 국내 리셀 시장은 스탁엑스 진출로 경쟁이 본격화할 것으로 보입니다. 역시 스니커즈가 핵심입니다. 스타트업은 물론 유통 대기업들도 리셀에 직접 뛰어들거나 투자를 늘리며 시장 선점에 나서고 있는 상황인데요, 현시점에서 국내 리셀의 대표 주자는 네이버와 무신사입니다. 네이버와 무신사는 지난해 3월과 7월에 각각 크림(KREAM), 솔드아웃(SLDT)이라는 플랫폼을 론칭했습니다. 두 곳 모두 한정판 스니커즈가 주요 상품입니다. 크림은 지난해 기준 누적 거래액이 2700억 원으로 월평균 거래액 증가율 121퍼센트를 달성했습니다. 솔드아웃은 지난해 기준 누적 다운로드 수 25만 건을 기록한 이후 올해 무지하게 신발 사진 많은 곳의 자회사로 분사했습니다.

유통 기업도 빠질 수 없는데요, 현대백화점은 올해 2월 여의도 더 현대 서울에 번개장터와 협업해 오프라인 스니커즈 매장인 브그즈트 랩(BGZT Lab)을 열었습니다. 롯데백화점도 지난달 초 국내 최초 스니커즈 거래 플랫폼인 아웃오브스탁(OUTOFSTOCK)과 손잡고 영등포점에 플래그십 스토어를 오픈했습니다. 국내에 재고가 없거나 구하기 어려운 모델을 직접 체험하고 구매할 수 있다는 점이 강점인 만큼, 온라인 플랫폼과 얼마나 차별화 될 것인지가 관전 포인트입니다.

공신력 있는 사업자나 플랫폼이 없을 때만 하더라도, 리셀은 터무니 없는 가격에 개인 간 이뤄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던 터라 눈총을 받아 왔습니다. 구매자도 비싼 돈을 주고 가짜 상품을 사는 건 아닌지, 직거래나 배송 과정에서 사고는 일어나지 않을지 마음을 졸여야 했죠. 일각에서는 과도한 차익이 탈세를 부추긴다는 지적도 합니다. 일회성이 아니라 주기적으로 리셀 소득을 얻으면 소득 신고를 해야 하는데, 개별 추적이 쉽지 않다는 시장의 특성을 악용해 신고를 안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입니다. 리셀이 점점 특정 상품이나 브랜드 마니아들만의 고유한 문화가 아닌, 젊은 세대의 새로운 쇼핑 혹은 투자 방식으로 인식되자 플랫폼 경쟁에 속도가 붙고 있습니다. 스탁엑스가 짧은 시간 내에 성장할 수 있었던 건 스니커즈에 시세를 붙여 마치 주식처럼 사고파는 콘셉트의 플랫폼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국내 기업들이 스탁엑스와의 경쟁에서 살아 남기 위해서는 기술 기반의 거래 안정성과 사용자들의 신뢰도 제고가 우선입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글로벌 리셀 플랫폼 스탁엑스의 국내 진출과 리셀테크 열풍을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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