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리셀(resell) 플랫폼인 스탁엑스(StockX)가 지난달 27일 한국 시장에 정식
진출했습니다. 리셀은 한정판 스니커즈나 의류, 브랜드 굿즈 등 소장 가치 높은 상품을 구매한 후 웃돈을 얹어 비싸게 되파는 것을 의미합니다. 2016년 중고 스니커즈를 거래하는 온라인 플랫폼으로 출발한 스탁엑스는 현재 럭셔리, IT, 게임 등 더 다양한 카테고리의 제품을 포함해 총 12만 개 이상의 제품군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올 상반기에만 전 세계 200여 개국 650만 리셀러들이 이용한 스탁엑스의 기업 가치는 약 4조 원이며 연내 뉴욕 증시 상장을 목표로 하고
있습니다.
이번 진출을 시작으로 스탁엑스는 앞으로 우리나라에서의 비즈니스를 꾸준히 확대한다는 계획입니다. 기본적인 한국어 서비스, 원화 결제 시스템 구축은 물론, 특별히 별도의 검수 센터도 설립합니다. 제품의 진품 여부와 기능적 하자를 살피는 검수 센터는 글로벌 네트워크 확장의 주요 전략 기지인데요, 우리나라에 검수 센터를 세워 아시아 물류 네트워크의 거점으로 삼겠다는 방침입니다. 제품 검수를 강화하면 판매자와 구매자 간의 거래 신뢰도를 높이고 저렴한 수수료와 빠른 배송 등 다양한 부가 서비스도 제공할 수 있습니다.
스탁엑스의 이번 한국 진출은 우리나라 리셀 시장의 성장 가능성을 의미합니다. 이베이와 뉴욕 증권 거래소 임원 출신이기도 한 스콧 커틀러 스탁엑스 최고경영자(CEO)는 지난달 미국 경제 전문 채널 CNBC와의 인터뷰에서 올해 한국 내 거래 규모가 지난해 대비 2.3배 급증했다고 밝혔습니다. 특히 현재 스탁엑스 한국 이용자의 60퍼센트 정도가 올해 들어 처음 구매를 시작한 사람이라고 설명했는데요, 그야말로 최근 들어 한국에서 리셀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늘고 있는 겁니다. 리셀과 재테크를 더한 ‘리셀테크’가 코인과 주식을 잇는 차세대 투자 방식이라는 말까지 나옵니다.
#커틀러 인터뷰 영상
돈이 되는 신발
소장 가치가 높은 제품에 이른바 프리미엄을 붙여 차익을 얻는 방식 자체는 사실 새롭지 않습니다. 스니커즈 시장에서는 오래전부터 용어를 사용하지 않았을 뿐 리셀 문화가 활발했습니다. 그런데 최근 리셀과 리셀테크에 이토록 관심이 쏠리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쉽게 말해 그 어느 때보다 돈이 된다는 겁니다. 지난해 농구 황제 마이클 조던이 신었던 ‘에어 조던 1’이 6억 9000만 원으로 운동화 경매 역대 최고가를 경신한 바 있는데요, 조던의 황금기를 다룬 넷플릭스 다큐멘터리 〈더 라스트 댄스(The Last Dance)〉 방영 이후 스탁엑스에서는 에어 조던 판매가 90퍼센트 급증했고, 3000달러 수준이었던 평균 가격은 7000달러까지
뛰어올랐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2019년 가수 지드래곤이 나이키와 협업해 만든 ‘에어포스1 파라노이즈’ 모델이 대표 리셀테크 사례로 꼽힙니다. 이 운동화는 국내 한정 818켤레만 제작한 빨간색 로고 모델, 지드래곤 지인 전용으로 제작한 88켤레의 노란색 로고 모델, 그리고 일반 흰색 로고 모델 등 총 세 종류가 있습니다. 발매 가격이 20만 원대 초반이었던 이 신발은 현재 평균 6배 이상 높은 가격에 판매되고 있으며, 무려 2000만 원에 거래되는 사례까지
있었죠. 지드래곤이 올해 연말에 나이키와 협업해 다시 한번 한정판 스니커즈를 출시할 거라는 소식에 리셀러들의 관심이 쏠리는
이유입니다. 주식이나 가상 화폐 투자보다 적은 자본금으로 당장 수익을 기대해 볼 수 있으니까요.
새로운 스니커즈 판매 방식도 리셀 열풍에 힘을 보태고 있습니다. 기존에 나이키, 아디다스 등은 한정판 스니커즈를 매장에서 선착순 방식으로 파는 게 일반적이었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며칠씩 매장 앞에 노숙 행렬이 펼쳐지고, 대신 줄 서주는 아르바이트까지 등장했었죠. 그런데 최근엔 풍경이 달라졌습니다. 래플(raffle)이라는 새로운 문화가 도입된 건데요, 추첨식 복권이란 의미의 래플은 추첨을 통해 구매 권한을 부여하는 겁니다. 같은 맥락에서 제비뽑기라는 의미의 드로우(draw)라는 용어를 쓰기도 하죠. 래플과 드로우는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돼 시공간적 제약이 없다는 점에서 소비자들의 기대 심리를 자극합니다. 또 선착순 방식의 공정성에 문제를 제기하던 이들도 누구나 쉽게 참여할 수 있도록 유도했죠.
신발만 있는 건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