꿈 속의 꿈 속의 꿈 속의 베스트셀러가 쓰여지는 법

10월 6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성공은 하나의 현상이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어떻게 우리 시대의 베스트셀러가 됐나?

©북저널리즘 김지연/쌤앤파커스
여러분의 동네에 꿈을 사고파는 상점이 있다면 어떨까요? 호기심이 생기시나요? 실리콘밸리의 스타트업 이야기는 아니고요, 지난해부터 베스트셀러 1위 자리를 점령하다시피 하고 있는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이미예 작가의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2020년대 초반을 대표하는 소설로 기록될 것입니다. 이 책은 2020년 7월에 출간되어 종이책만 70만 부가 팔렸고, 전자책까지 더하면 100만 부 이상 판매됐습니다. 2021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는데, 국내 작가의 판타지 소설이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한 것은 최초입니다. 이는 판타지 소설의 거장인 ‘룬의 아이들’의 전미희 작가도 해내지 못한 일입니다. 올해 7월에 발간된 2권도 전작의 인기에 힘입어 순항 중입니다. 지난주 발간한 한강의 신작 소설 ‘작별하지 않는다’에 잠시 1위 자리를 내주었지만, 출간 이후 두 달 넘게 1위에 머물면서 현재 19만 부의 판매량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출판사는 연말이면 1, 2권 합계 종이책 기준 100만 부 이상 판매를 예상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쯤 되면 신드롬이라 부를 만합니다. 흥미로운 것은 이 책이 출판계의 기존 흥행 공식과 가장 멀리 있는 작품이라는 점입니다. 우선 검증되지 않은 신인 작가의 첫 소설이고,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처음 대중에 공개되었으며, 전자책으로 먼저 발간되어 대중과 만났습니다. 대대적인 프로모션도, 작가의 기존 팬덤도 없었습니다. 책이 처음부터 잘 팔렸던 것도 아닙니다. 전자책이 발행되었을 때 소수의 대중이 꾸준히 긍정적인 평가를 보냈고, 흐름을 간파한 출판사 쌤앤파커스에서 홍보에 힘을 실으면서 새로운 도약의 발판이 마련되었습니다.

쌤앤파커스 측은 이 책이 성공한 원인을 묻자 대번 “독자”라고 답했습니다. 대중이 먼저 이 이야기를 알아봤고, 회사는 그것에 보조를 맞추었을 뿐이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독자들은 이 책에서 무엇을 보았던 것일까요? 무엇이 그들의 마음을 건드렸던 걸까요? 그리고 이 책의 성공이 담고 있는 의미,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예스24 종합 베스트셀러에 올해 7월 출간된 달러구트 꿈 백화점 2권과 1권이 동시에 올라 있다. ©예스24
최근 베스트셀러 순위 상단에 한강의 ‘작별하지 않는다’와 ‘달러구트 꿈 백화점’이 나란히 있는 모습은 아이러니합니다. 극적으로 대비되는 작품이기 때문입니다. 두 편 모두 소설이지만, 전자는 문단이 배출한 가장 인기 있고 검증된 작가의 책이고, 후자는 등단은커녕 단 한 권의 책도 내본 적이 없는 신인의 책입니다. 전자가 문학 전문 출판사에서 인프라와 자본력을 동원해 대중의 시선을 끌고, 작가의 팬덤과 시장에 형성돼 있는 문학 독자층의 반응을 유도했다면, 후자는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텀블벅에서 대중에 첫선을 보였고, 펀딩을 통해 대중의 관심을 학인하고 이러한 반응을 바탕으로 전자책과 종이책이 출간되었습니다.

전자가 전형적인 공급자 중심의 콘텐츠 모델이라면 후자는 지난 몇 년 동안 시장에 활력을 주고 있는 소비자 중심의 콘텐츠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몇 년 전 출판업계에 충격을 주었던 ‘죽고 싶지만 떡볶이는 먹고 싶어’가 대표적인 소비자 중심의 콘텐츠 모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 책이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대적인 주목을 받을 때 출판업계 사람들은 얼굴이 하얗게 질렸고, 일반 독자들은 ‘어쩜 내 맘을 이렇게 잘 알아주지?’하며 기뻐했습니다.
이 책은 독립출판물로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고 사회적 붐을 일으키며 출판계를 놀라게했다. ©출판사[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흥행의 이면에는 분명 소비자, 대중이 있습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니즈를 반영하는 상품이 시장에 등장하면 먼저 그것을 알아보고 반응합니다. 마케터가 대중을 설득하는 것이 아니라 대중이 먼저 ‘이 작품 좀 알려줘, 너무 좋아!’라고 말하며 기업이 적극적으로 움직이도록 자극합니다. 자발적인 팬덤이 형성되고, 흐름을 타게 되는데 이럴 때 콘텐츠 역주행 현상이 일어나게 됩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도 역주행을 통해 베스트셀러가 되었습니다. 쌤앤파커스에 따르면 종이책이 발간되고 몇 개월간 독자의 반응이 미미했다고 합니다. 다행히 전자책이 꾸준히 팔리고 있었고 책에 대한 독자들의 긍정적인 호응이 이어졌습니다. 마케터들이 추석 시즌에 맞춰 더 많은 대중이 책을 접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기획했고, 서서히 입소문을 타기 시작하면서 출간한 지 4개월 만인 10월 경 베스트셀러에 올랐고, 2021년 첫 주 베스트셀러 1위, 상반기 종합 베스트셀러 1위를 기록하게 됩니다. 출판업계에서 종이책의 흥행이 결정되는 기간을 출간 후 3주 정도로 이야기합니다. 그 기간 안에 책이 어느 정도 궤도에 오르지 못하면 흥행에 실패했다고 판단하고 대부분의 홍보 활동을 중단합니다.
©스토리움 LIVE ON
콘텐츠 역주행의 이면에는 언제나 대중의 응원이 있습니다. 그게 속임수가 아니라면요. 그렇다면 이 책의 무엇이 독자의 마음을 움직인 걸까요? 문화계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흥행에 대해 다양하게 분석하고 있습니다. 그중 대표적으로 언급되는 것은 ‘최근 판타지 장르에 대한 대중의 선호’, ‘코로나 장기화로 인해 대중이 따듯하고 감성적인 이야기를 원한다는 점’[1], 처음 소설을 쓴 작가라는 점과 소설을 쓰려고 삼성전자를 퇴사했다는 이슈가 불러온 ‘저자의 화제성’ 등입니다.

판타지 장르에 대한 선호는 웹소설, 팬픽 등의 콘텐츠를 소비하며 자란 젊은 세대가 출판시장에 유입되면서 장르물에 대한 시장의 장벽이 낮아졌고, 자연스럽게 판타지 장르에 대해 소비층도 확장된 것이라 볼 수 있습니다. 이때의 판타지물은 본격 판타지 장르라기 보다 일상의 이야기에 가벼운 상상력을 접목한 소프트한 판타지 장르입니다. 저자는 인터뷰에서 자신의 소설을 ‘현실 밀착형 판타지’라고 표현하는데 이는 위의 설명과 일치합니다.

또 한 가지 언급할 만한 것은 이 작품이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이 확인시켜주었거나 또는 확장시킨 소프트 판타지 소설의 팬덤을 일정 부분 흡수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이 책의 소재인 ‘백화점’은 히가시노 게이고 소설의 ‘잡화점’과 유사한 공간성을 보이고 있기도 한데, 이렇게 ‘판타지’한 공간 안에서 사람들이 만나고 자신의 삶의 문제를 확인하고 해결한다는 점에서 두 소설은 분명 같은 특성을 공유하고 있습니다. 대중의 니즈를 가장 민감하게 읽어내는 출판사 중 하나라 할 만한 ‘인플루언셜’은 이러한 흐름을 짚어 최근 판타지 소설 ‘미드나이트 라이브러리’를 출간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이 책 역시 곧바로 베스트셀러에 오르며 대중의 선택을 받았습니다.

코로나가 출판계에 미친 영향 중 하나는 어린이 도서 판매의 증가입니다. 어린이 도서 판매가 늘어나면서 청소년 문학 도서의 판매도 호조를 이뤘고, 어린이들이 가볍게 읽을 만한 판타지 소설이 시장에 필요했던 상황에 그 수요가 달러구트 꿈 백화점으로 유입되었습니다. 이는 책의 연령별 판매 부수에서도 나타납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은 20대(29.8퍼센트)와 30대(29.7퍼센트), 40대(28.2퍼센트)로 세대별로 고른 판매율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쌤앤파커스는 40대의 책 구매가 어린 자녀와 함께 읽기 위해 구입하는 경우가 더 많다고 밝혔습니다.

이 책의 성공에는 이러한 사회적인 맥락과 더불어 콘텐츠의 매력과 완성도가 크게 작용했을 것입니다. 이와 관련해서 쌤앤파커스는 흥미로운 이야기를 들려주었습니다. 이 책의 가장 충실한 팬층인 10대은 세계관에 민감하고 또 중요시한다는 것입니다. 이 세대는 이야기의 구성과 완성도보다 작품의 세계관이 본인의 흥미를 끄는지가 중요하며, 저자가 설정한 세계관이 와닿지 않거나 관심이 없으면 곧바로 비판적인 입장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10대 독자에게만 한정된 현상은 아닙니다. 이 책이 성공한 경로를 보면 20~30대 젊은 독자들 또한 저자가 선보인 세계관에 먼저 반응했습니다. 이 책이 처음 텀블벅에 공개되었을 때의 제목은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 였습니다. 이 제목은 책의 세계관을 선명하게 보여주는 것이었고, 여기에 반응한 대중은 1800퍼센트라는 펀딩 참여율로 화답했습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원래 제목은 '주문하신 꿈은 매진입니다'였다. ©이미예
대중은 이 소재에 반응했고, 나아가 이야기가 지닌 따듯한 감성에 호감을 보였습니다. 호감을 느꼈다는 것이 중요한 지점입니다. 콘텐츠에 대한 호감도는 저자의 화제성과 자연스럽게 연결이 됩니다. 우리와 다를 바 없는 직장인이었고, 등단도 하지 않고 처음 글을 쓰는 저자에 대한 공감과 친근함은 책에 대한 호감도를 높였고, 그러면서도 세계관이 마음에 들었고, 여기에 저자가 소설을 쓰기 위해 삼성전자를 퇴사했다는 내러티브가 더해지면서 호감이 급상승하게 됩니다. 책에 대한 소문이 퍼져 나가자 책을 둘러싼 맥락적 흐름과 콘텐츠의 요소들이 결합하며 하나의 현상으로, 베스트셀러의 맨 꼭대기로 책을 밀어 올렸습니다.

하지만 세계관에 대한 호감은 양날의 검입니다. 호감이 없으면 책의 내용 전반에 대해 냉담해지게 됩니다. 실제로 이 책에 대한 서평들을 찾아보면 비판적인 평가가 상당히 많이 있습니다. 책이 워낙 화제라서 펼쳤지만, 생각보다 흥미롭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 책의 경우 작가의 세계관에 관심이 안 생기거나 공감이 되지 않으면 별다른 재미를 느끼기 어렵습니다. 오히려 작품에 대한 비판적인 견해를 드러내게 됩니다. 이러한 경향은 특히 작품의 문학성에 중점을 두는 독자들의 경우에 더 빈번합니다. 하지만 이 책이 진정으로 인상적인 것은 책에 대한 호감, 세계관 또는 아이디어에 대한 공감이 독서에 이토록 큰 영향을 미친다는 측면입니다.

달러구트 꿈 백화점 현상에 대해 장동석 출판문화 평론가는 “(요즘) 독자들이 반응하는 건 독자들 자신의 콘텐츠, 그러니까 기존 작가들이 가지고 있는 거대한 서사라든가 여성의 서사 같은 것에는 반응하지 않고 인스타그램이나 페이스북에서 보는 것 같은 소소한 이야기들”이라며, “대중이 잘 모르는 사람이 크라우드 펀딩을 하는데 만원, 이만 원씩 내는 건 자기와 비슷한 생각을 하는 서사에 대해서 이제 반응하기 시작한다는 것, 보통 사람들이 만들어낸 서사가 어떤 것일까 궁금해하고, 또 거기에는 나도 이런 걸 해볼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심리 같은 게 깔려 있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장 평론가는 앞으로 콘텐츠의 생산이 “보통 사람들의 꿈이 이런 방식으로 계속 이루어지는 형국으로 가게 될 것”이라고 진단합니다. 바로 이 지점이야말로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성공에 담겨 있는 가장 중요한 메시지가 아닐까요. 보통 사람들의 꿈이 하나의 이야기가 되고, 그 과정에서 저자와 독자의 경계는 점점 옅어지게 됩니다. 대중은 이미예 작가가 천재적인 문장가, 범접하기 어려운 날카로운 지성의 소유자이기 때문에 응원하는 것이 아닙니다. 물론 충분히 훌륭한 책을 썼지만요. 이러한 흐름은 출판을 넘어 우리 문화계에 지속적인 변화를 불러올 것입니다. 대중은 이미 그들이 공감하고 편안하게 다가갈 수 있는 이야기에 적극적으로 반응하고 있으며, 그것이 기존 독자층과 일정 부분 충돌하고 있지만 그럼에도 이러한 흐름은 더욱더 거세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변화하는 대중의 요구에 맞춰 우리 출판계는 어떻게 적응하고, 변화해야 할까요? 물론 이미 많은 출판사들이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작품의 대중성을 확인하고, 브런치와 같은 창작 플랫폼에서 작가를 섭외하는 등 빠르게 적응하고 있습니다. 이러한 흐름은 출판 다양성이 증가하는 선순환으로 이어질까요? 아니면 누구나 작가가 된다는 것이 결국 작품의 완성도와 문학성의 저하로 이어지고, 문단의 영향력 축소는 고스란히 순문학의 위기로 연결되게 될까요? 책에 대한 대중의 달라진 요구, 그리고 달러구트 꿈 백화점에 대해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는 판타지 소설 '달러구트 꿈 백화점' 현상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디지털 탐구생활》,《팬덤 3.0》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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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스24 관계자는 “‘달러구트 꿈 백화점’의 식지 않는 인기는 이야기에 담긴 따뜻한 위로와 상상이 지닌 힘을 증명한다”고 분석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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