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러한 글로벌 IT 기업들의 바이오·헬스케어 산업에 대한 투자의 의미는 기본적으로 극복할 수 없던 질병에 대한 체계적 관리와 ‘의료화’라고 볼 수 있습니다. 북저널리즘의 전자책 《
늙지 않는 사람들의 사회》에서는 노화를 ‘불편’하고 ‘치료’해야 할 범주로 볼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 담겨 있습니다. 이 질문에 구글은 흔쾌히 “YES”라고 말한 셈이지요. 2013년 9월, 구글은 생명 연장을 연구하는 기업이자 구글의 자회사인 ‘칼리코(Calico; California Life Company)’를 설립하며 죽음과 노화에 도전장을 내밉니다. 당시 《
TIME》에서는 “Can Google Solve Death?”라는 제목으로 이들의 도전을 조명했지요.
칼리코의 도전은
현재진행형이지만 투자한 돈에 비해 너무나 알려진 것이 없다는 것이 아쉽습니다. 2016년 12월, 벌거숭이두더지쥐의 이상할 정도의 긴 수명과 특징(같은 크기의 다른 쥐보다 10배 이상 오래 살고, 암에 걸리지 않으며, 통증도 느끼지 않는)을 연구한다는 보도가 있긴 하지만, 비밀 유지 때문인지 별다른 성과가 없어서인지, 전반적인 연구 결과는 베일에 싸여
있지요. 달리 공개된 정보가 없다는 점은 제프 베이조스가 투자한 ‘알토스 랩스’도 마찬가지입니다. 알토스 랩스는 유전자 ‘리프로그래밍(Reprogramming)’을 연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는데, 명확한 연구 결과는 아직 공개되지 않았습니다. 리프로그래밍은 줄기세포와 관련한 연구 방법의 하나인데, 《
동아사이언스》에서 풀어놓은 설명에 따르면 분화가 끝난, 즉 ‘프로그래밍’된 세포를 다시 미분화된 상태로 되돌려 초기화시키는 기술이라고 합니다. 물론 암과 같이 무한 증식의 위험이 있고 아직 제어가 어렵지요.
제프 베이조스는 모험은 이것이 처음이 아닙니다. 베이조스의 패밀리 오피스인 ‘베이조스 익스피디션스(Bezos Expeditions)’는 지난 2018년에 노화 방지 치료법을 개발하는 기업인 ‘유니티 바이오테크놀로지’에 투자하기도
했습니다. 작년에도 ‘프로테오믹스(Proteomics; 단백질체학)’ 전문 스타트업인 ‘노틸러스 바이오테크놀로지’에 7600만 달러, 한화로 약 931억 원을
투자했습니다. 설립 이래 5년 동안 별다른 성과가 없는 회사인데도 투자하여 놀라움을 자아냈죠. 여기에 투자한 또 하나의 회사는마이크로소프트 공동 창업자 폴 앨런이 설립한 ‘벌컨캐피털(Vulcan Capital)’이었습니다. 지노믹스(Genomics; 유전체학)의 다음 트렌드로 프로테오믹스가 떠오른 순간이었지요. 생물학적 지식이 없이는 이해가 어렵지만 유전 정보에 의해 발현되는 단백질체를 분석하여 체내의 생리작용을 밝혀내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프로테오믹스
이번에 베이조스 익스피디션스를 통해 투자를 받은 스타트업 알토스 랩스에는 러시아 출신의 물리학자이자, 다양한 분야에 투자를 아끼지 않는 억만장자 유리 밀너(Yuri Milner)도 함께 투자했습니다. 《
MIT 테크놀로지 리뷰》에 따르면, 알토스 랩스는 현재 전 세계의 유전자 전문가들을 모으고 있는데, 위 영상에서 역분화, 말하자면 리프로그래밍 기술을 발견하여 2012년 노벨생리의학상을 수상한 야마나카 신야(Yamanaka Shinya) 교수가 수석 연구자이자 회사의 과학 자문위원회 의장이 된다고 합니다. 현재 리프로그래밍 기술은 아직 인체에 적용하는 것이 시기상조로 여겨지고 있지만, 최소 2억 7000만 달러에 이를 것으로 추정되는 알토스에 대한 투자금과 이를 바탕으로 한 저명한 인재들의 참여로, 과연 칼리코와 다른 길을 걷게 될지 모두의 이목이 집중되고
있습니다.
알토스 랩스가 항노화 기술 개발에 성공한다고 해도 과연 언제쯤 저 기술이 상용화되어 대중이 조금이라도 혜택을 누릴 수 있을까 의문스럽기도 합니다. 그렇기에 우리는 만병을 치유해줄 수 있는 ‘만능 세포’에 대한 연구나, 염색체 사이의 끈인 ‘
텔로미어(Telomere)’를 늘여 세포 노화를 방지하는 기술이 발명되었다고 해도 이를 현실감 있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 사실이지요. 대개 과학기술의 발전은 인류를 풍요롭게 했지만, 노화하지 않고 인류의 수명이 연장된다면 그것은 또 다른 사회 문제를 일으킬 것이며, 줄기세포 배양의 상용화는 고전적인 윤리 문제
[4]에 불을 지필 것입니다. 다만 확실한 것은, 알토스 랩스가 이전에 그 누구도 하지 못한 줄기세포의 완벽한 리프로그래밍을 해낸다면, 인간 사회의 패러다임은 커다란 변화를 맞게 된다는 점입니다. 생명 연장의 꿈을 현실화하는 것은 소수이지만, 모두에게 다가올 여파가 긍정적일지는 고민해 봐야 할 지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