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까지 당근이세요?

10월 8일 - 데일리 북저널리즘

지역 기반 커뮤니티에서 ‘동네 친구’ 만드는 게 대세다. 하지만 ‘동네’의 기준은 누가 정하나. 당신에게 ‘우리 동네’는 어디까지인가.

당근마켓이 커뮤니티 플랫폼으로서의 박차를 가하고 있다. © Panya Khamtuy/Seoul View via Getty Images
지난 10월 7일 당근마켓이 올해 안에 캐롯 100개를 채우겠다고 발표했습니다. 캐롯(Karrot)이 뭐냐고요? 당근마켓의 글로벌 서비스 이름입니다. 일본, 영국 등 해외 서비스 거점을 늘리겠다는 포부를 밝혔는데요. 그 기반에는 탄탄한 국내 성장세가 있습니다. 현재 당근마켓의 국내 사용자 수는 지난달 1600만 명을 기록했습니다. 우리나라 국민의 4분의 1이 쓰는 동네 커뮤니티임을 감안한다면, 또다른 지역사회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죠. 중고 거래부터 생활 정보까지 '동네'와 관련된 모든 분야에서 당근마켓이 전 지구적 박차를 가하는 중입니다. 

중고 거래 마켓으로 시작한 당근마켓이 최종 목표가 지역 기반 커뮤니티임을 밝힌 지는 오래죠. 작년 여름 당근마켓 김용현 공동대표가 한 인터뷰에서 구인 구직 서비스, 부동산 중개 서비스 등을 계획 중이라 밝힌 지 불과 1년여 만에 해당 서비스들이 앱에 들어왔습니다. 그것도 부가적인 커뮤니티 서비스들과 함께, ‘내 근처’라는 당당한 하나의 탭으로요. 이 탭만으로도 우리는 단기알바를 구하고 월세방을 보고 산책 친구를 구할 수 있죠. 이제 당근마켓에선 사람과 사람 간 일어나는 거의 모든 종류의 거래가 가능해졌습니다. 

커뮤니티 플랫폼은 당근이 처음도 유일도 아니죠. 과거엔 맘카페였습니다. 맛집, 병원 등 지역 생활 정보를 공유하고 입소문만으로도 이용자들은 힘을 얻었습니다. 하지만 ‘맘카페’는 옛말, 신생 기업들이 너도나도 커뮤니티 산업에 뛰어들고 있습니다. 편리한 UI와 귀여운 디자인을 자랑하면서요. 팬데믹의 영향도 있겠습니다. 장거리 이동이 불가해지자 사람들은 울며 겨자먹기로 집콕생활을 시작했죠. 먼 친척보단 가까운 이웃이 낫다는 말이 현실이 되자, ‘동네 친구’가 절실해진 사회에 ‘위피’, ‘심쿵’ 등 일명 ‘동네 친구’ 만드는 앱이 우후죽순 쏟아지고 있습니다.
‘넥스트도어(NextDoor)’는 뭘 하는 곳인가? ©How It Happened
커뮤니티 열풍은 우리나라 얘기만이 아닙니다. 당근마켓이 벤치마킹한 크레이그리스트(Craiglist)가 원조 격입니다. 1995년 미국에서 시작해 개인 중고 물품 판매는 물론 이벤트, 토론 등의 지역 기반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죠. 원조가 크레이그리스트였다면 대세는 넥스트도어(NextDoor)입니다. 넥스트도어는 2011년 미국에서 시작한 지역 기반 소셜 미디어입니다. 현재 11개국에서 2700만 여 명의 주간 사용자를 확보했고, 미국에선 세 가구 중 한 가구는 넥스트도어 사용자일 정도로 어마어마한 규모를 자랑합니다. 그러니 우리가 넥스트도어를 두고 ‘미국판 당근마켓’이라 부르는 걸 들으면 누군가 웃을지도 모릅니다. 사실은 당근마켓이 ‘한국판 넥스트도어’인 셈이니까요.

넥스트도어든 당근마켓이든, 공통적으로 파고드는 시장이 있습니다. ‘하이퍼로컬(hyperlocal)’입니다. 하이퍼로컬은 기존의 ‘로컬(local)’보다 정교한 개념으로, 더욱 좁고 개인화된 생활권을 뜻합니다. 비슷한 단어로 ‘슬세권(슬리퍼 신고 다닐 수 있는 편한 지역)’이란 귀여운 신조어도 생겼죠. 로컬의 심화, 하이퍼로컬은 2020년대의 꽤 괜찮은 비즈니스 모델인가 봅니다. 옛날엔 없어서 가입을 못했지만, 이젠 다들 온갖 동네 정보를 내세우며 우리 플랫폼에 가입해 달라니 말입니다.

하지만 ‘동네 생활’의 기준은 누가 정하는 걸까요? 플랫폼 회사들이 정해주는 ‘동네’ 말고, 내가 생각하는 진짜 나의 동네요. 누군가에겐 지금 사는 아파트 단지일 수 있고, 누구에겐 어린 시절이 깃든 골목일 수 있고, 누구에겐 내가 걸어서 갈 수 있는 모든 곳일 수 있습니다. 우리가 생각하는 이웃은 어디까지고, 내가 수고롭게 물건을 사러갈 수 있는 곳은 어디까지며, 나는 얼마나 먼 지역의 사정까지 내 일처럼 공감할 수 있을까요. 당신, 어디까지가 당근이세요?
 

이 동네 저 동네

로컬스티치 서교점 ©로컬스티치
어느 동네에 사나요? 라는 질문에 삐빅- 서울시 중구 남산동이요, 라고 말하는 사람은 거의 없죠. 서울역이요. 홍대요. 송파구요. 해운대요. 사는 곳 근처의 전철역, 건물, 지역구, 지형학적 요소 등 우리는 다양한 문법으로 각자의 동네를 말합니다. 

서울시 도시계획체계에선 ‘생활권’을 기준으로 동네을 분할하기도 하는데요. 행정구, 행정동 대신 ‘주민 생활의 권역이 되는 지역’ 단위로 나누는 것이죠. 강남, 여의도, 목동과 같이 어떤 집단으로 자주 거론되는 지역들을 누가 명확히 규정할 수 있나요? 칼로 자르듯 나눌 수 없으니 덩어리로 뭉쳐 분류한 것이 생활권입니다. 지도를 보지 않으면 아무도 모르는 꼬불꼬불하게 나뉜 행정구역 경계선보다, 사람들의 실제 생활이 반영된 ‘생활권’이 우리에겐 좀 더 직관적으로 동네를 구분하는 기준이 될 수 있겠죠.

물리적 환경에 따라서도 동네 개념은 달라집니다. 한 사례로 당근마켓의 해외 서비스 ‘캐롯’에선 동네의 기준이 우리나라와 다르다는 점이 흥미로운데요. 당근마켓 글로벌 프로덕트 부문 김결 총괄은 서울과 일본은 앱 사용자 중심 4~6km 정도로 동네를 설정하는 반면 미국, 캐나다 등은 10~20km까지 반경을 설정한다고 밝혔습니다. 영미권에서 사용하는 ‘카운티(county)’라는 단어가 풍기는 광활함을 떠올리면 쉽게 이해가 가죠. 대중교통 시스템의 차이도 있겠으나 무엇보다 면적이 다른 두 땅에서 동네의 기준이 같을 순 없으니까요. 또 영미권에선 매디슨 에비뉴(Madison Avenue),  뉴욕 스트리트(New York Street) 등 수직으로 배열된 도시 구조가 흔합니다. 그뿐인가요. 우리나라와는 달리 전철역, 버스 정류장 이름에도 도로명이 들어가는 경우가 많죠. 선분으로 표기된 주소에 친숙한 영미권 사람들과, 지도에 차지하는 일정 면적으로서의 지역에 익숙한 우리나라 사람들이 ‘동네’를 떠올리는 방식이 다를 수밖에 없는 이유입니다.

구성원 또한 동네를 이루는 중요한 요소입니다. 《다시, 을지로》에서 김미경 저자가 ‘심심한 도시 공간이던 을지로에서 청년들과 제조업 종사자들이 어우러져 만들어 낸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는 사람들에게 상상력을 불러일으킨다’고 표현했듯, 비슷한 관심사의 사람들이 모여 만든 문화가 동네의 새로운 정의로 자리 잡습니다. 연남동 예술인들의 커뮤니티에서 시작한 도시 기획 연구소 어반플레이, 한 주택에 여러 작은 가게들이 입주하여 운영하는  코리빙&코워킹 스페이스 로컬스티치 모두 ‘그 동네스러움’을 형성하는 중요한 요소가 되어 한 지역을 꾸려 나갑니다. 말하자면 우리가 흔히 쓰는 ‘동네’라는 말에 어떤 합의된 기준이 있진 않습니다. 사람과 상황에 따라 동네도, 동네 친구도 달라지죠. 하지만 향후 설계될 동네를 논하는 전문가들에겐 어떤 암묵적 합의가 보이는데요.
 

어떤 동네에 살 것인가

정재승 교수가 들려주는 세종시 스마트시티 ©스마트시티 국가시범도시
각자 마음 속엔 ‘살고 싶은 동네’가 있습니다. 교통의 요지인 서울역, 교육 인프라가 발달한 강남권, 맛있는 식당이 많은 연남동 등이요. 한 요소가 부족해도 내가 더 좋아하는 다른 요소가 있다면 우리는 그 동네에 살기를 선택합니다. 각 동네가 가진 매력들을 저울질하는 것이죠. 하지만 만약 모든 동네가 가진 장점이, 질적으론 차이가 있더라도 양적으로 통일된다면요?

박영선 전 국회의원이 주장한 ‘다핵분산도시’가 한 사례입니다. 지난 1월 박영선 전 의원은 시장 출마를 선언하며 서울을 작은 권역들로 분할하는 도시 계획을 발표했습니다. 일명 ‘21분 도시’라고도 불리는 이 도시는 주택, 식당, 병원 등 삶에 필요한 모든 것을 셀 단위로 밀집시키는 것이 핵심입니다. 분할된 지역 내 어떤 시설이든 21분 안에 이동할 수 있다 해서 얻은 이름이죠. 비록 박 전 의원의 선거 패배로 무산된 계획이나, 눈 여겨 볼 만한 설계입니다. 하이퍼 로컬리즘이 진화해 소규모 동네를 선호하는 움직임이 거세진다면 정치, 행정 또한 지금보다 훨씬 작고 민첩한 구도로 진행되길 바라는 사람들이 많아질 테니까요.

이미 실행에 옮기는 중인 도시도 있습니다. 정재승 교수가 책임으로 참여 중인 ‘세종 스마트시티’입니다. 지난 7월 착공하여 2023년 주민 입주를 목표로 하는데요. 세종 스마트 시티는 일종의 서비스 플랫폼입니다. 도시에서 벌어지는 현상을 고스란히 관찰하고 데이터화해, 주민들에게 최적의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죠. 예컨대 스마트 시티에선 도시 설계 전 자동차가 가장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노선부터 인공지능으로 분석하고, 그 노선에 따라 도시를 설계하기 때문에 응급 상황 발생 시에도 응급차가 가장 빠르고 순조롭게 목적지에 도착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든 것을 일사천리로 해내는 도시인가요? 정 교수는 ‘완벽한 도시’가 아닌 사람들에게 최적화된 ‘맞춤형 도시’라고 주장합니다.

말하자면 완전한 재설계죠. 스마트시티 개념이 세종시에서 성공한다면 다른 도시로도 확장하지 않을 이유가 없습니다. 더 살기 좋은 곳에서 살고자 하는 게 당연한 욕망이니까요. 박영선 전 의원이든, 정재승 교수든, 그들이 말하는 도시 설계가 최적의 도시 모델인가와는 별개로 ‘미래 도시’라는 주제가 흥미로운 이유입니다. 미래 도시의 현실화로 ‘살고 싶은 동네’의 기준이 집값, 편리함보단 문화, 구성원 등 완전히 다른 속성들로만 채워질지 모릅니다. 어쩌면 동네마다 가진 생활의 격차를 줄일 수도 있죠. 어느 도시든 살기 좋게 설계할 테니까요. 먼 미래라 할지라도요. 하지만 우리가 사는 공간이 작게 분화된다고 해서, 우리가 가진 인식이 그 틀로 줄어드는 건 아닐 텐데요.
 

동네 감각의 확장

아프가니스탄을 떠나기 위해 카불 공항에서 대기하고 있는 국민들 ©Aykut Karadag/Anadolu Agency via Getty Images
“공간은 살해당했다.” 독일 시인 하인리히 하이네가 말했습니다. ‘공간’의 개념은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뒤바뀌었죠. 철도가 생기기 전까지만 해도 우리에게 ‘다른 세상’이라는 것은 없었으니까요. 현재 발 딛고 있는 이곳이 곧 세상의 전부였습니다. 그러나 철도의 탄생으로 사람들은 이동하기 시작합니다. 과거에 갖고 있던 공간 관념이 어긋나기 시작합니다. 기세호 저자의 《적당한 거리의 죽음》에 따르면 ‘철도와 기차는 이전까지 사람들이 알던 세계를 산산조각 낸 다음, 다시 직선으로 이어 붙였’습니다. 기존 공간의 살해인 동시에, 새로운 공간으로의 도약인 거죠. 

철도가 공간을 새롭게 정의했다면, 동네는 네트워크를 통해 다시 정의될 수 있습니다. 30년 전의 젊은 세대에 비해 오늘날의 젊은 세대가 훨씬 해외에서 벌어지는 사건들을 거리낌 없이 받아 들입니다. 미디어를 통해 익숙해졌기 때문이죠. 지구 반대편에서 일어나는 일들에 쉽게 공감합니다. 마치 우리 동네 일을 보는 것처럼요. 물리적 거리의 심정적 축소는 내가 생각하는 동네, 말하자면 ‘동네 감각’의 확장입니다.

흔히 글로컬(global+local)이라 부릅니다. 교통, 통신의 발달로 사람들의 생활권이 전 지구적 규모가 되었다는 뜻이죠. 글로컬이 의미하는 바는 단순히 우리의 관심 영역이 넓어져서 기쁘다는 점이 아닙니다. 주목할 점은 그만큼 커진 연대 가능성입니다. 지난 9월 1일, 텍사스에서 임신 중절 금지법이 강화되자 이에 대한 반발로 전 세계 소셜 미디어에 #bansoffourbodies 캠페인이 퍼졌습니다. 최근 아프가니스탄 사태가 터지자 세계 각국에서 언론 보도가 쏟아지고 난민을 자국으로 수용했죠. 지역적 경계가 무의미해지는 온라인 공간에서, 우리는 보다 자유로운 동네의 개념으로 지구 반대편까지 다가갈 수 있습니다.

큰 동네에서, 다시 작은 동네로 돌아오겠습니다. ‘가깝고 따뜻한 당신의 근처’, 당근마켓이 정해주는 나의 당근은 GPS를 찍어 잡히는 행정동입니다. 두 개까지 설정할 수 있죠. 하지만 그 당근 두 개로 내 생활을 다 담을 수 있을까요. 꼭 지금 사는 동네만 당근이어야 할까요. 거주지와 멀더라도 자주 찾아가 기분 전환을 하는 동네, 혹은 가끔 가다 들러도 그때마다 마음이 편해지는 동네가 있죠. 내가 평소엔 느끼지 못하던 기분을 오히려 선물해주는 동네가 있다면, 그곳이 당근일 수 있습니다. 가보지 못했으나 늘 가려고 마음 먹는 장소가 있다면 그곳도 당근일 수 있습니다. 당근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동네에 어느 날 마음맞는 이웃이 생긴다면 그곳도 당근일 수 있습니다.

아무리 일상적인 단어도 사업 아이템으로 선정되는 순간 그 의미가 조금은 바래기 마련이죠. ‘동네 커뮤니티’ 열풍 속 ‘동네’도 그렇습니다. 오랜 시간 사용해 온 단어의 의미가 비즈니스 모델로만 소비되지 않기 위해, 그 말이 가져 온 의미를 생각해 볼 시점입니다. 지금, 당근은 어디까지인가요.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에서는 우리가 바라보는 동네의 다양한 의미들에 대해 살펴봤습니다. 읽으시면서 들었던 생각을 댓글로 남겨 주세요. 서로 다른 의견을 말하고 토론하면서 사고의 폭을 확장해 가면 좋겠습니다. 여러분의 댓글이 북저널리즘의 콘텐츠를 완성합니다.

오늘 데일리 북저널리즘은 <Z세대의 아마존>, <뉴·에·라 ② 당근마켓에 올라온 우리 집 전기>, 《로컬의 진화》, 《미래 도시의 조건》과 함께 읽으시면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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